AI 인프라 확산에 따른 수요 증가로 ARM의 중장기 성장성은 유효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고평가 부담과 기대에 못 미친 가이던스로 단기 주가는 조정 받고 있다.

[글로벌 종목탐구]
영국 케임브리지에 있는 ARM 본사에서 기업 문화를 설명하는 리차드 그리센스웨이트 총괄 부사장. 사진=한국경
영국 케임브리지에 있는 ARM 본사에서 기업 문화를 설명하는 리차드 그리센스웨이트 총괄 부사장. 사진=한국경
미국 증시에 상장된 영국 반도체 설계 업체 ARM 홀딩스가 실적 호조에도 불구하고 가이던스(실적 전망) 실망과 차익 실현 매물에 주가가 조정을 받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ARM 주가는 130% 이상 오르며 반도체 업계의 ‘인공지능(AI) 수혜주’로 부상했지만, 고밸류에이션에 대한 부담과 향후 분기 실적 둔화 우려가 단기 조정의 배경이 됐다.

장기적으로는 AI 인프라 확대에 따른 데이터센터용 중앙처리장치(CPU) 수요 증가, 고수익 라이선스 비즈니스 구조 등을 바탕으로 기업 가치가 재평가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적은 ‘서프라이즈’…AI 수혜 본격화

ARM은 5월 7일 2024 회계연도 4분기(2024년 1~3월) 실적을 발표했다. 순이익은 2억1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6% 감소했지만, 조정 주당순이익(EPS)은 55센트로 시장 예상치(52센트)를 웃돌았다. 매출도 12억4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34% 증가하며 월가 전망치(12억3000만 달러)를 상회했다.

하지만 ARM이 제시한 2025 회계연도 1분기(2024년 4~6월) 가이던스가 기대에 못 미치며 주가에 부담을 줬다. ARM은 해당 분기 매출을 10억11만 달러, 주당순이익을 30~38센트로 전망했는데, 이는 각각 월가 컨센서스(매출 11억 달러·EPS 42센트)를 밑돈다.

이에 따라 당일 ARM 주가는 정규장에서 1.4% 상승한 124.19달러로 마감한 뒤 시간 외 거래에서 11% 넘게 하락하며 110달러 선까지 밀렸다.

단기 실적 전망은 기대에 못 미쳤지만, 중장기 성장성에 대한 기대는 여전히 크다. ARM은 최근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2023년 기준 글로벌 데이터센터 CPU 시장 점유율이 15%였지만, 2024년 말까지 50%로 확대될 것”이라고 밝혔다.

ARM의 칩은 AI 연산에 필요한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나 신경망처리장치(NPU)가 작동하기 위한 '호스트 CPU' 역할을 수행한다. 전력 효율이 뛰어나고 확장성이 높아, 데이터센터 사업자들이 ARM 기반 칩으로 전환하고 있는 추세다.

엔비디아는 최신 AI 서버 시스템(블랙웰)에 ARM 아키텍처 기반의 ‘그레이스’ 칩을 탑재하고 있으며,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도 각각 자사의 클라우드 인프라에 ARM 기반 칩을 적용하고 있다. ARM의 인프라 부문 총 로열티는 일반 소비자용 칩 대비 2배 이상 높은 수준으로, AI 트래픽 증가에 따른 수익 레버리지가 커질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ARM의 비즈니스 모델은 전통적인 반도체 제조사들과는 다르다. 직접 칩을 생산하지 않고, 지적재산권(IP)를 중심으로 설계도와 아키텍처를 라이선스 형태로 판매한 뒤, 해당 기술을 탑재한 칩이 출하될 때마다 로열티 수익을 받는 구조다.

소프트뱅크, 대주주 리스크 여전

이런 모델은 고정비 부담이 낮고 수익성이 높다. 2024 회계연도 4분기 기준 ARM의 매출 총이익률은 96%에 달하며, 순이익률도 17%를 유지하고 있다. 엔비디아, AMD 등 고성장 반도체 기업 대비도 뒤지지 않는 수익 구조다.

다만 고성장 기대가 이미 주가에 선반영됐다는 분석도 있다. ARM의 현재 주가수익비율(PER)은 약 100배 수준으로, 실적 가이던스가 기대에 못 미칠 경우 조정 압력이 클 수 있다는 지적이다.

ARM은 여전히 일본 소프트뱅크가 약 90%의 지분을 보유한 비상장 지배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2023년 ARM을 미국 나스닥에 상장시키며 일부 지분을 유통 시장에 내놨지만, 지분 대부분은 여전히 비공개 상태다.

시장 일각에선 향후 소프트뱅크의 지분 매각이 본격화될 경우 유통 주식 물량 증가에 따른 주가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시티그룹은 “AI 수요 수혜를 반영하면 ARM의 주가는 고평가로 보기 어렵다”면서도 “향후 실적이 고성장을 이어가지 못할 경우 단기적 리밸런싱이 불가피할 수 있다”고 밝혔다. 투자등급은 ‘중립’, 목표가는 130달러로 제시했다.

단기 주가 조정에도 불구하고 ARM의 중장기 성장 스토리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고성능 AI 시스템과 데이터센터 확장이 본격화되면서 ARM의 기술에 대한 수요는 더욱 확대될 것이란 관측이다.

JP모건은 “AI가 산업 구조를 바꾸는 과정에서 ARM은 필수적 역할을 하는 기업”이라며 “설계 중심 모델의 확장성과 데이터센터 로열티 확대가 실적 레버리지를 키울 것”이라고 평가했다.
ARM, 가이던스 쇼크에 조정…장기 성장성은 유효
이소현 한국경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