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정치·경제적 리스크 속에서 부자들은 어떻게 시장을 읽고 해석할까. 한경머니는 국내 주요 금융사의 프라이빗뱅킹(PB)센터를 대상으로 ‘고액 자산가의 대선 이후 하반기 투자 전략’에 대해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커버스토리] PB 설문조사
6월 새 정부 출범을 전후로 고액자산가들의 자산 운용 전략이 재편되고 있다. 정국 불확실성과 글로벌 관세 리스크가 동시에 부각되는 상황에서, 자산가들과 밀접하게 소통하는 금융 업계 프라이빗뱅커(PB)들에게 ‘부자들의 투자법’을 물었다. 한경머니는 지난 5월 7일부터 16일까지 ‘한경머니 프라이빗뱅킹 어워즈 2025’의 ‘베스트 PB센터’ 소속 PB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총 41명의 PB가 설문에 참여했다.

국내 경제 ‘낙관론’ 우세...정치 갈등이 최대 리스크
설문조사 결과, 새 정부 출범 이후 국내 경제에 대한 전망은 엇갈렸다. 응답자의 32%는 ‘다소 낙관적’, 29%는 ‘다소 비관적’으로 답했고, ‘중립적’ 응답도 24%를 차지했다. 전체적으로 낙관적 전망이 소폭 앞섰지만. 시장은 정치 변수에 따라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이다. 실제로 자산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국내 리스크로는 ‘정치 및 사회 갈등’(46%)이 1순위로 꼽혔다.


이현숙 신한 프리미어 PWM 잠실센터 PB팀장은 “대선 이후 정치 리스크 해소와 달러 약세 전환이 국내 시장 반등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면서 “상법 개정이나 주가 부양 정책이 시행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 팀장은 “대외적으로는 달러 약세, 대내적으로는 정치 안정이라는 두 축이 국내 자산 시장의 향방을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관세 정책 변화로 글로벌 경제가 격변하는 가운데, 자산가들은 하반기 글로벌 시장에 대해 ‘중립적’(46%)으로 신중하게 관망하는 태도가 뚜렷했다. 주요 글로벌 리스크로는 ‘관세 전쟁’(49%)과 ‘글로벌 경기 침체’(39%)가 꼽혔다.
도널드 트럼트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시장이 크게 출렁였지만, 자산가들은 성급한 매도는 지양하고 있었다. 김윤희 센터장은 “변동성이 크다고 분위기에 휩쓸려, 단기 추격 매도나 오르는 자산을 따라 매수하는 현상은 덜하다”며 “경험과 여유 자금이 쌓인 자산가일수록 중장기적 관점에서 운용하려는 성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일부 자산가들은 하락 국면을 저가 매수 기회로 활용하기도 했다. 홍은희 한국투자증권 마포PB센터장은 “3~4월 미국 주식이 하락했을 때도 장기 산업 전망을 고려해 미국 기술주를 매수한 고객들은 추가 수익을 실현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만큼 관세 리스크가 점차 일단락될 것으로 기대되는 현시점에서는 달러자산 확대, 미국 국채 및 글로벌 상품 매수를 주로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 변동성이 클수록 중요한 전략은 ‘리밸런싱’이었다. 자산가들은 포트폴리오를 점검하고 조정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이원휴 하나은행 도곡PB센터장은 “호재와 악재가 공존하는 시기라서, 포트폴리오를 유연하게 운영할 필요가 있다”며 “분산된 포트폴리오 내에서 미국 중심의 중장기채 비중을 늘리거나, 주식에서 선진국 비중을 늘리는 등 리밸런싱을 진행하고 있으며, 공격적인 투자 성향을 지닌 고객들은 특히 ‘분할 매수’를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차기 정부에서 기대되는 정책으로는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조세 및 상속세 개편’(54%)을 첫손에 꼽았다. 현재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다. 특히 자산 승계 과정에서 과도한 세 부담이 가업 유지와 자산 이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세제 개편을 가장 시급한 정책 과제로 꼽았다.
그렇다면 이들은 하반기 어떤 자산군에 주목하고 있을까. 구체적인 투자 전략에 대해서도 물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고객들이 가장 비중을 늘릴 것으로 보이는 자산군으로는 ‘채권’(24%)이 가장 많았다. 특히 유동성 확보를 위한 단기채뿐만 아니라, 금리 인하 사이클 진입에 대한 기대감 속에 중장기채 중심의 포트폴리오 확대를 고려하는 모습이다. 이어 ‘금, 달러 등 안전자산’(22%), ‘해외 주식’(20%)이 그 뒤를 이었다.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여전한 가운데, 자산가들은 여전히 리스크 헤지와 안정적 수익 추구를 병행하는 전략을 선호하고 있었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전쟁에 대한 대응 전략으로는 ‘위험자산 회피 및 유동성 확보’(54%), ‘포트폴리오 리밸런싱 강화’(27%)가 가장 많이 꼽혔다.
이원휴 센터장은 “관세가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등의 언론 보도의 영향으로, 고객들의 체감 인식은 하우스뷰보다 다소 부정적인 편”이라며 “이런 시기에는 절세 목적의 국채나 단기채 편입, 미국 주식 중심의 분할 매수 전략이 선호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자산가들이 불확실성에 대응해 우선 위험자산의 비중을 줄이고 유동성을 확보한 뒤 포트폴리오를 유연하게 조정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하반기 주식 시장은 ‘소폭 상승’…미국 신뢰는 ‘견고’
하반기 국내 주식 시장에 대해 자산가들은 ‘소폭 상승’(41%)에 무게를 실었다. 보합(27%) 전망이 그 뒤를 따랐다.
이는 경기 반등에 대한 기대보다는 정책 기대감과 글로벌 금리 안정화 가능성 등 외부 여건이 완만히 개선될 수 있다는 판단에 기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상반기 조정을 겪으며 가격 부담이 일부 완화된 점, 대선 이후 정국 안정 및 주가 부양책 등 정책적 모멘텀에 대한 기대도 긍정적 전망에 힘을 실은 요인으로 보인다.
다만, 전반적인 지수 상승보다 섹터 중심의 투자가 중심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이주희 KB증권 대치금융센터장은 “‘지수는 박스권, 섹터는 강세’”라며 “삼성전자·하이닉스가 지수를 끌어올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방산, 소비재, 엔터, 글로벌 수요 기반의 종목 중심으로 투자가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 센터장은 “하반기 시장을 움직일 키는 결국 ‘정책’으로 정권 교체 가능성과 상법 개정, 미국은 관세 협상과 금리 인하 시점이 주요 변수”라며 “기회는 여전히 있지만 자산군 쏠림보다는 균형 잡힌 배분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미국 주식 시장에 대해서도 ‘소폭 상승’(61%) 응답이 과반을 넘었다. 상반기 변동성이 컸지만, 미국 시장에 대한 신뢰는 흔들리지 않았다. 주요 기술주 중심의 반등 기대와 글로벌 자금 유입 지속이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투자 유망국으로는 단연 ‘미국’(83%)이 꼽혔다. ‘중국’(12%)이 그 뒤를 이었지만, 격차는 컸다. 여전히 자산가들의 시선은 미국 시장에 집중돼 있는 모습이다. 글로벌 경기 흐름과 정책 안정성 면에서 미국 시장이 가장 높은 신뢰를 받고 있는 모습이다.
“미국 시장은 빠질 때 매수하면 결국 항상 회복해 왔다는 믿음이 있어요. 특히 인공지능(AI)은 구조적 트렌드라는 데 공감대가 큽니다.”(홍은희 센터장)

섹터별로는 ‘AI·반도체’(54%)가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 지난해 주식 시장을 이끈 핵심 테마였던 AI는 올해도 인프라 및 소프트웨어 수요 증가에 따른 ‘AI 2막’ 기대감이 커지며 주목받고 있다. 최근 미국 증시의 반등도 AI 관련주가 주도한 바 있다. 그 외에도 ‘방산’(30%), ‘바이오·헬스케어’(13%)가 유망 섹터로 부상한 점이 눈에 띈다.
종목 선호도 역시 AI와 방산, 반도체에 집중됐다. ‘유망 국내 기업’을 묻는 주관식 응답에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방산주와 국내 대표 반도체주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다수 언급됐다. ‘해외 유망 기업’으로는 엔비디아, 그리고 팔란티어가 가장 높은 선호도를 보였다. 테슬라도 주요 종목으로 이름을 올렸다.
새 정부 들어서도 부동산은 ‘강남 아파트’ 선호
이어 하반기 부동산 시장 전망에 대해 물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하반기 국내 부동산 시장에 대해서는 ‘보합’(54%) 의견이 가장 많았고, ‘상승’(29%), ‘예측 불가’(15%)가 그 뒤를 이었다. 주식 시장에 비해 부동산은 정책 변수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만큼, 자산가들 역시 새 정부의 부동산 정책 방향을 지켜보면서 매수·매도 시점을 조율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분위기는 ‘새 정부 출범 이후 부동산 시장 대응 전략’에서도 확인된다. ‘정책 불확실성으로 투자 보류’(44%)가 가장 많았고, ‘중립적 관망’(41%)도 적지 않았다.
자산가들의 부동산 선호 지역은 여전히 뚜렷했다. 투자 유망지로 ‘강남’이 단연 압도적이었다. 특히 관심이 높은 부동산 유형으로는 ‘강남 중소형 아파트’(44%)와 ‘강남 대형 아파트’(41%)가 나란히 상위에 올랐다. 자산가들 사이에서 강남 지역의 희소성과 학군, 브랜드 프리미엄에 대한 신뢰는 여전히 견고한 상황이다.
다만, 현재로선 부동산 전체 시장의 과열이 아닌, 선별적 수요가 확인되는 분위기다. 이주희 센터장은 “부동산은 지금도 ‘똘똘한 한 채’만 움직이는 양상이고, 비강남권이나 비핵심 지역은 전고점 회복도 못하고 있다”며 “고객들도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고, 일부 고점 지역에선 현금화를 고려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금과 같은 안전자산에 대한 자산가들의 관심은 여전히 높았다. 특히 상속·증여를 염두에 둔 고객들 사이에서는 꾸준한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실제 포트폴리오에서의 비중은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금 투자 비중에 대해 묻자, ‘5% 미만’(56%)이 가장 많았고, ‘5~10%’(37%)가 뒤를 이었다. 이미 금 가격이 많이 상승한 상황에서 최근 추가 매수가 활발하진 않았다.
이주희 센터장은 “한국에서의 금 매입은 환율이 반영돼 순수 시세 차익을 보기 어려워, 미국 상장 금 ETF 등 상품을 통해 금을 확보하는 방안도 선호된다”고 말했다.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에 대한 인식도 예전과는 달라진 분위기다. 가상자산에 대한 투자 전략으로는 ‘비중 유지’(49%) 응답이 가장 많았고, ‘비중 확대’(7%)를 고려한다는 응답도 나왔다.
이현숙 PB팀장은 “예금과 보험 중심으로 자산을 운용해 오던 고객이 가상자산 편입을 고려하는 사례도 눈에 띈다”며 “과거에는 고위험 베팅으로 여겼지만, 이제는 자산가들도 가상자산을 포트폴리오 다변화 수단 중 하나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금리 인하 전망 우세…채권은 ‘국채’, 통화는 ‘달러’ 선호
하반기 금리 전망에 대해서는 ‘인하 가능성 있음’(63%), ‘인하 확실’(29%) 등 응답자의 90% 이상이 인하를 예상하고 있다. 그러면 금리 인하 시기에 자산가들은 어떤 채권 전략을 택하고 있을까.
윤경린 NH투자증권 프리미어블루 강남센터 이사는 “정책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고액자산가들은 금리 방향성과 환율 변화를 주시하며 채권 비중 확대에 나서는 모습”이라며 “특히 국내 채권보다 미국 장기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이는 금리 인하 기대에 따른 자본차익 가능성과 달러 자산 확대 수요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기 불확실성이 여전한 상황에서 자산가들은 고정 수익성과 절세 효과를 동시에 기대할 수 있는 채권에 주목하고 있었다. 특히 선호하는 채권 유형으로는 ‘국채’(80%)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국채는 신용도가 높고 안정적인 수익을 제공하며, 과세 이점까지 있는 점이 자산가들에게 큰 매력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외환 및 통화 전략 부문에서도 ‘미국 달러’(90%)에 대한 강한 선호가 뚜렷했다. 금리가 정점에 도달했다는 인식과 함께, 향후 금리 인하 사이클에서 달러 약세 가능성이 반영되며 달러 자산을 미리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김윤희 센터장은 “포트폴리오 구성에서 통화 분산이 선호되고 있으며, 달러 비중을 줄였던 고객들이 원·달러 환율 1300원대 초반에서 재매입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객 자산 이동, ‘주식→채권’ 가장 두드러져
이어 최근 3개월간 고객들의 주요 자산 이동 경향을 살펴봤다. 주관식으로 진행된 설문에서도 뚜렷한 흐름과 전략이 포착됐다. 가장 많이 언급된 자산 이동은 ‘주식에서 채권으로’의 이동이었다. 이는 불확실성을 피하면서도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추구하는 인컴 중심 전략으로 해석된다.
또한 주식에서 예금이나 현금으로 전환한 사례도 다수 나타났다. 이는 시장 변동성이 확대되는 가운데 유동성을 확보하려는 목적으로 풀이된다. 반대로 예금에서 채권으로의 이동은 정기예금 수준 이상의 수익을 기대하는 ‘플러스 알파’ 전략으로 해석된다.
특히 국내 채권에서 미국 채권으로의 이동도 눈에 띄었다. 최근 미국 국채 수익률이 4.5%에 근접하는 등 금리 인하기에 미국 장기채의 가격 반등 여지가 크다는 판단에서다.
하반기 투자 키워드는 ‘기회 포착’
고객의 투자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소로는 ‘PB 및 전문가 의견’(68%)이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 이어 ‘언론 및 뉴스’(22%)도 자산가들의 판단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하반기 자산가들의 투자 전략을 한 단어로 요약한다면 무엇일까. 응답자의 71%가 ‘기회 포착’을 꼽았다. 이는 방어보다 ‘적극적 대응’을 택하겠다는 고액자산가들의 전략 기조를 잘 보여준다.
이원휴 센터장은 “단기채 등을 통해 확보한 유동성 자금으로 투자 확대를 통해 추가 수익을 실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PB 입장에서 하반기 고객에게 추천하고 싶은 자산군에 대해서도 물었다. 가장 많이 언급된 테마는 ‘AI·반도체’였고, 그 뒤를 ‘자산 배분’, ‘국내 주식’, ‘미국 주식’, ‘채권’ 등이 이었다. 이로써 AI·반도체와 미국 주식, 채권이 2025년 하반기에도 자산가들에게 가장 유력한 투자 테마임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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