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분간 아파트 분양가 상승곡선이 꺾이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공급 부족에 대한 우려가 여전한 가운데, 공사비 상승을 부채질하는 배경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이슈]
고분양가 논란에도 힐스테이트 메디알레는 1순위 청약에서 평균 11대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흥행을 거뒀다. 분양 업계에선 “앞으로도 분양가가 더 뛸 것이라고 보는 수요자가 많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지금이 가장 싸다’ 심리가 작용했다는 얘기다. 공급 부족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짙은 가운데, 최근엔 제로에너지와 층간소음 등 공사비 상승을 부채질하는 규제들도 도입돼 가격 오름세는 이어질 전망이다.
고삐 풀린 분양가, 이유는
아파트 분양가 상승곡선은 코로나19 사태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며 가팔라지기 시작했다. 시멘트 생산에 필요한 유연탄을 러시아로부터 들여오는 길이 막히고, 철근 가격도 요동치면서 공사비 자체가 올랐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 공급망에 타격을 준 것도 공사 원가를 크게 높였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주거용 건물의 건설공사비 지수는 2020년 99.42(4월 기준)에서 2021년 107.58로, 2022년엔 121.99로 급등했다. 2023년부턴 2020년 대비 약 30% 비싼 공사비 수준이 유지되고 있다.


아파트를 짓는 데 공사비보다 택지비에 더 많은 돈이 든다. 예컨대 최근 경기도 평택에서 분양한 A단지의 전용면적 84㎡ 분양가는 4억8580만 원이었다. 이 가운데 2억8045만 원(57.7%)이 건축비였고, 대지비 몫도 2억534만 원(42.3%)이나 됐다. 땅값이 비싼 서울 강남권의 경우 대지비 비율이 70%를 웃돌기도 한다. 대지비에는 땅을 확보하는 데 발생한 금융 비용도 포함된다. 2022년 ‘레고랜드 사태’ 이후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금 시장이 경색되며, 이 비용이 크게 올랐다.
본 PF로 좀처럼 전환되지 않으면서, 수년간 두 자릿수의 고금리 브리지론(토지비 대출)을 내며 버티는 사업장이 적지 않았다. 고스란히 분양가 인상 요인으로 이어졌다. 윤석열 정부가 2023년 1월에 분양가상한제 규제를 대폭 해제한 것도 신규 아파트 가격 오름세를 부채질했다.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구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분양가상한제가 더 이상 적용되지 않게 됐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가격 규제 해제로 민간의 공급을 촉진한 효과가 분명히 있었지만, 억눌려 있던 분양가가 단기에 급등하게 된 부작용도 나타났다”고 말했다.
환경 규제로 분양가 더 오른다
전문가들은 분양가 상승곡선이 꺾이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원자재 수급 여건이 조금 개선됐다곤 하지만, 인건비나 금융 비용 부담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분양가 상승을 야기할 수밖에 없는 규제들이 새로 추가됐다. 제로에너지 규제가 대표적이다. 올해 6월부터 새로 사업계획 승인을 신청하는 30가구 이상 민간 아파트 사업장은 제로에너지 5등급(에너지자립률 20~40%)을 달성해야 한다는 얘기다.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서다. 공공 사업장엔 이미 이 친환경 규제가 적용되고 있는데, 민간으로 확장된다.
원래 이 규제는 지난해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다. 당시에도 “친환경이란 정책 취지는 이해하지만, 분양가 상승 폭을 키워 주택 시장에 불안을 키울 우려가 크다”는 이유로 1년 유예됐다. 건설 업계는 추가 유예 내지 목표 수정 등을 요구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제로에너지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패시브, 건물의 단열성과 기밀 성능을 높여 에너지 유출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벽이나 지붕, 바닥 등에 고효율 단열재를 사용해야 한다. 옥상이나 벽면 녹화 작업을 통해 에너지 사용량을 줄일 수도 있다.
패시브와 함께 액티브 기술이 병행돼야 한다.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는 걸 뜻한다. 고효율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폐열회수형 환기장치 같은 수단이 동반돼야 한다. 각종 첨단 기술도 활용된다. 건물에너지관리시스템(BEMS)이 대표적이다. 에너지 사용 데이터 등을 바탕으로 건물의 조명과 냉난방, 환기 등을 자동 제어하는 시스템이다. 건물일체형 태양광(BIPV)도 있다. 벽 또는 유리창인 동시에 태양광을 흡수해 전기를 생산하는 설비를 의미한다. 제로에너지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선 액티브와 패시브 기술만으론 부족하다.
가장 중요한 게 단지 내 에너지 자체 생산시설을 설치하는 것이다. 태양광이나 지열 등 신재생에너지 생산시설을 갖춰야 하는데, 태양광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된다. 아파트 옥상이나 외벽에 태양광 발전기를 붙여야 한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런 작업을 하는 데 적지 않은 추가 비용이 든다는 점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옥상은 태양광 설치 면적이 제한적이라 건물 측면을 활용한 BIPV를 적용해야 한다”며 “건물 측면에 설치해도 고소작업에 의해 설치 공사비가 2배 이상 올라가는데, BIPV 전용모듈이 적용되면 비용이 더 뛴다”고 전했다.
층간소음 규제 강화도 변수
국토교통부는 앞서 제로에너지 건축물 인증 의무화에 따른 공사비 상승분을 전용 84㎡ 기준 가구당 130만 원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업계에선 정부 추산치보다 2~3배 비용이 더 들 것으로 보고 있다. 대형 건설사는 사정이 그나마 낫다는 평가다. 몇 년 전부터 자체 연구인력 등을 활용해 기술 개발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미 제로에너지 5등급을 달성해 준공한 단지도 적지 않다. 현대건설의 ‘힐스테이트 레이크 송도 1차’(인천 연수), 대우건설의 ‘검단신도시 푸르지오 더파크’(인천 서구)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중소형 건설사들은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층간소음이 이웃 간 강력범죄로 비화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만큼, 정책의 방향은 옳다는 평가가 많다. 문제는 이 규제 역시 분양가 상승세를 부채질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고성능 완충재를 사용하는 데 비용이 더 들기 때문이다. 기존보다 공사기간(공기)도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공기가 증가하면, 전체 공사비도 덩달아 늘어난다. 만약 층간소음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보완 시공 등 절차를 밟게 되면, 추가 비용이 더 늘어나고 입주 시기가 지연되는 데 따른 혼란도 예상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건설 업계 관계자는 “‘마피’(마이너스 프리미엄)가 붙은 지방 아파트를 중심으로 기획소송이 늘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아직 이 주택법 개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전 정권에서 발의된 법안인 만큼, 국회 문턱을 최종 통과하지 못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에서 층간소음 규제 강도가 더 세질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다. 현 정부 들어 안전관리나 인건비 등이 더 큰 폭으로 오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수도권 선호 지역에서 분양을 앞두고 있는 단지들은 당분간 청약 흥행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금이 가장 저렴하다'는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박지민 월용청약연구소 대표는 “서울 기준 시세의 100~110% 수준 분양가까지는 수요가 충분하다”며 “시세가 10억 원인 동네에서 11억 원 분양가에 새 공급이 이뤄지더라도, 초기 미분양을 감수하면 수개월 내 ‘완판’(100% 계약)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때문에 하반기 공급 예정인 단지들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서울에선 동작구 ‘힐스테이트 이수역센트럴’(총 927가구), 영등포구 ‘신길5동 지역주택조합’(2030가구), ‘문래진주 재건축’(324가구), 관악구 ‘신림2구역’(1487가구), 구로구 ‘오류현대 재건축’(447가구), 강북구 ‘강북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920가구) 등이 올해 하반기 분양을 계획하고 있다.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돼 가격 경쟁력까지 갖춘 단지들은 경쟁률이 더 높을 수밖에 없다. 서울의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구에서 분양하는 아파트가 여기에 해당한다.
서초구 ‘래미안 트리니원’(2091가구), ‘아크로 드 서초’(1161가구), ‘신반포21차 재건축’(251가구), 강남구 ‘자이 더캐럿 141’(230가구) 등이 연내 분양 가능한 사업장으로 거론된다. 다만 분양 일정은 건설사 사정과 시장 상황 등에 따라 밀리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남양주 왕숙, 인천 검단, 오산 세교, 인천 용현학익, 양주 옥정, 시흥 거모 등 수도권 주요 택지지구에서도 하반기 분양 물량이 쏟아질 예정이라 눈여겨볼 만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인혁 한국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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