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어스가 스코틀랜드 위스키 업계에 남긴 유산.

[위스키 이야기]
두 번과 네 번
이름을 걸다

국어사전에서 설명하는 위 문장의 뜻은 ‘명예를 책임지다’이다. 이름을 걸고 하는 일에는 무게가 실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걸겠다고 하면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는 결의가 느껴져 믿음이 갈 수밖에 없다.
위스키 업계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최초의 인물은 존 듀어(John Dewar Sr.)로 기록된다. 때는 바야흐로 1846년, ‘최고의 품질’을 철학으로 삼았던 존은 스카치위스키 역사상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술병에 아로새긴 제품을 선보였다. 위스키의 이름은 ‘듀어스(Dewar’s)’.
국내에서 조금 덜 알려져서 그렇지 듀어스는 발렌타인, 조니워커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 명성의 블렌디드위스키다. 일찍이 우수성을 인정받아 1893년에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영국 왕실 인증 허가 브랜드를 뜻하는 ‘로열 워런트(royal warrant)’를 수여 받았다. 이후 국왕이 일곱 번이나 바뀌었지만 듀어스는 현재까지도 로열 워런트의 지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스카치위스키 중 로열 워런트를 가진 브랜드는 수없이 많지만 듀어스처럼 오랜 시간 그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브랜드는 극히 드물다. 100여 년이 훌쩍 넘는 긴 시간 동안 존 의 철학이었던 ‘최고의 품질’을 고수하고 있는 덕분이다. 듀어스의 뛰어난 맛과 우수한 품질력은 수상 경력으로 입증되는데, 위스키 관련 수상만 1000개 이상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상 경력을 가진 블렌디드위스키로 알려져 있다.
듀어스의 창립자 존 듀어. 블렌디드 스카치 위스키 업계에서 가장 먼저 자신의 이름을 건 위스키를 출시한 인물이다.
듀어스의 창립자 존 듀어. 블렌디드 스카치 위스키 업계에서 가장 먼저 자신의 이름을 건 위스키를 출시한 인물이다.
듀어스는 전 세계 위스키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미국과 일본에서 가장 사랑받는 위스키 중 하나다. 특히 미국인들의 듀어스 사랑은 한마디로 대단하다. 매년 블렌디드 스카치위스키 판매량 순위에서 1위, 2위를 다툴 정도다. 여기에는 재미있는 비화가 숨어 있다. 1891년 미국의 산업자본가이자 ‘강철왕’으로 유명한 앤드루 카네기는 듀어스 본사에 친필 서신 한 통을 보낸다. 벤저민 해리슨 미국 대통령에게 선물할 위스키 한 배럴을 구매하고 싶다는 것. 스코틀랜드산 위스키가 미국 백악관까지 날아간 이 일을 계기로 듀어스는 강철왕이 대통령한테 선물할 만큼 좋은 위스키라는 입소문을 타고 미국 시장에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당시 듀어스의 인기가 어찌나 높았는지 이를 시샘한 미국 버번위스키 생산자들이 언론에 스캔들을 일으켰을 정도. ‘대통령이 자국산 제품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비판에 해리슨 대통령은 곤혹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비단처럼 부드러운 풍미의 비밀

‘부드럽다.’ ‘섬세하고 깔끔하다.’ 위스키 애호가들은 듀어스의 풍미를 이렇게 평가한다. 싱글 몰트위스키가 각 증류소의 개성을 내세운다면 블렌디드위스키는 수십 가지의 몰트와 그레인위스키를 혼합한 균형 잡힌 맛이 특징이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블렌디드위스키가 싱글 몰트위스키보다 맛이나 목 넘김이 부드러운 편이다. 듀어스는 그중에서도 극강의 부드러움을 선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맛의 비밀은 듀어스가 자랑하는 독자적인 블렌딩 기법에서 찾을 수 있다. 듀어스는 블렌디드위스키로는 드물게 ‘더블 에이징 공법’을 내세운다. 각각 숙성한 몰트위스키와 그레인위스키 원액을 블렌딩 후 바로 병입을 진행하는 여느 블렌디드위스키와 달리 듀어스는 이를 다시 오크통에서 6개월간 숙성하는 메링(각각의 위스키 원액이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일종의 안정화 작업) 과정을 거친다. 무려 1890년부터 135년째 고수하고 있는 전통이다. 이 과정을 통해 위스키들의 독특한 특성이 서로 조화를 이뤄 부드러운 맛이 완성된다는 것이 브랜드 설명. 듀어스의 프리미엄 라인업인 ‘듀어스 더블 더블’은 한 술 더 뜬다. 더블 더블이라는 이름처럼 두 번을 넘어 네 번의 숙성을 진행한다. 각기 다른 오크통 네 개에 따로 또 같이 단계적으로 숙성해 한 겹씩 풍미를 덧입히는 것. 그래서 듀어스를 입에 넣는 순간, 다양한 풍미가 입안을 휘몰아친다. 참고로 이 기나긴 ‘숙성의 여정’은 병을 담은 상자 뒷면에 일러스트로 잘 설명해 놓았다.
현재 듀어스의 풍미는 7대 마스터 블렌더인 스테파니 맥로드가 책임진다.‘듀어스 더블 더블’의 핵심 공법을 개발했으며 지난 2019년부터 ‘국제위스키대회’에서 6년 연속 ‘올해의 마스터 블렌더’를 수상했다.
현재 듀어스의 풍미는 7대 마스터 블렌더인 스테파니 맥로드가 책임진다.‘듀어스 더블 더블’의 핵심 공법을 개발했으며 지난 2019년부터 ‘국제위스키대회’에서 6년 연속 ‘올해의 마스터 블렌더’를 수상했다.
원조 하이볼 맛집

요즘처럼 무더운 여름에는, 니트보단 ‘위스키 하이볼’에 더 손이 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위스키 하이볼의 원조가 바로 듀어스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듀어스가 세계적인 위스키 브랜드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존의 둘째 아들인 토미 듀어(Tommy Dewar)의 공이 컸다. 그는 혁신적인 마케터이자 홍보 분야의 혁신가였다. 식음료 브랜드 사상 최초로 동영상 CF(현재 뉴욕 MoMA에서 원본 필름을 보관 중이다)를 제작했는가 하면, 1891년부터 2년 동안 26개국을 여행하며 32곳의 판매 에이전트를 개척하기도 했다. 이후 세계를 돌아다닌 경험으로 책을 쓰고 정치에 입문해 런던 장관을 역임했다.
하이볼은 그가 미국 여행 중에 고안한 것으로 알려진다. 내용은 이렇다. 1891년 토미가 뉴욕의 한 바에서 위스키에 얼음과 소다수를 넣어달라고 주문했는데 바텐더가 너무 작은 잔을 줬다는 것. 이에 그는 얼음과 소다수를 풍성하게 넣을 수 있는 긴 잔을 요구했고 당시 술을 의미하는 볼(ball)과 긴 잔이 합쳐져 하이볼이라 불리게 됐다는 내용이다.
하이볼의 기원에 관한 설은 이외에도 몇 가지 더 존재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하이볼이라는 이름만큼은 듀어스에서 처음 사용했다는 것. 실제 하이볼은 1902년 듀어스에 의해 상표로 등록되기도 했다.
토미 듀어와 하이볼의 일화를 소개한 1905년 신문 기사
토미 듀어와 하이볼의 일화를 소개한 1905년 신문 기사
이승률 기자 ujh881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