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이 금융권의 핵심 아젠다로 부상하고 있다. USDC 발행사 서클이 뉴욕증권거래소에 화려하게 상장했고 네이버페이 등 국내 원화 스테이블코인 관련 기업들의 주가도 들썩이고 있다. 일반 기업들 역시 무역결제 등에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스페셜] 스테이블코인 따라잡기
이러한 거침없는 상승세의 배경으로는 스테이블코인의 제도권 편입이라는 구조적 변화가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스테이블코인 등 가상자산 업무를 관할하는 대통령 실무그룹을 출범시켰고, 의회를 통과한 스테이블코인에 관한 업권법인 ‘GENIUS(Guiding and Establishing National Innovation for U.S. Stable coins) 법’을 지난 7월 18일 공식 선포했다. 우리나라 또한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등을 총괄하는 ‘디지털자산기본법’이 발의된 상황이다.
기업들의 대응도 빨라지고 있다. 2024년 11월 미국의 결제 기업인 스트라이프(Stripe)는 스테이블코인 기술 기업인 브리지(Bridge)를 인수하며 스테이블코인을 통한 지급결제 서비스를 확장했다. 미국 대형 은행들은 산하 간편결제 플랫폼인 젤(Zelle)을 통한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검토하고 있으며, JP모건은 예금토큰(Deposit Token)인 ‘JPMD’의 출시 계획을 발표하며 맞대응에 나섰다.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관심은 금융권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글로벌 유통 대기업인 아마존과 월마트는 물론, 여행 정보 업체인 익스피디아와 일부 항공사까지도 자체 스테이블코인 발행 가능성을 타진 중이다.
국내 또한 금융권을 중심으로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주요 시중은행은 스테이블코인 공동 발행을 위한 협의체를 수립했고, 하나은행, 국민은행, 카카오뱅크, 토스뱅크, 신한카드 등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상표권을 다수 출원했다. 네이버페이는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인 업비트와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관한 결제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으며, 카카오페이는 스테이블코인 사업 추진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가가 상한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아직 제도권에 편입조차 되지 못한 스테이블코인이 금융권의 어젠다를 선점하고 있는 셈이다.
비자(Visa)에 따르면 2024년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실사용 거래 규모는 5조6700억 달러에 달하며, 이는 2020년 대비 약 10배나 증가한 수치다. 스테이블코인은 2014년 처음으로 발행됐는데, 가치가 안정적이며 현금화하기 용이하다는 장점으로 인해 가상자산의 매매나 탈중앙화금융(DeFi) 프로토콜 이용 수단으로서 빠르게 정착했다. 가상자산 거래에 스테이블코인이 사용되는 비중은 2017년 12월 7.9%에 불과했으나 2025년 5월에는 84%로 크게 증가한 것으로 조사된다.
스테이블코인을 통한 속도와 비용 개선 효과는 전통적인 금융기관의 중개 없이 개인과 기업이 직접 거래(peer-to-peer)하는 구조에서 발생한다. 분산원장 네트워크를 통해 연중무휴 24시간 거래가 가능하다는 점 또한 금융사 영업시간으로 인한 제약을 해소해주며, 특히 시차의 적용을 받는 국가 간 지급거래에서 강점으로 작용한다.
현재 국가 간 지급거래에서 은행을 통한 해외송금은 송금인과 수취인의 거래은행 외에도 복수의 환거래은행(correspondent bank)을 거쳐야 할뿐더러, 각 은행이 국가 간 자본이동 규제 준수 여부를 점검하는 절차상의 중복으로 인하여 시간과 비용이 과도하게 소요된다. 스테이블코인은 이러한 복잡한 절차를 대체함으로써 효율성을 개선한다. 예컨대 200달러를 해외로 송금하는 경우, 은행을 경유한다면 1영업일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고 지급 금액의 12%를 비용으로 지불해야 하지만,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하면 0.5~3%가량의 수수료만 부담하면서 즉시 송금이 가능하다.
게다가 전 세계 외환거래의 88%, 무역 결제의 54%는 달러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높은 인플레이션을 경험하는 국가에게 안정적인 가치 저장 수단이 되며, 수출입 기업에는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대금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세 번째, 스테이블코인은 토큰화된 자산 생태계와 연결됨으로써 금융거래의 시너지를 창출한다. 토큰화(tokenization)란 예금, 주식, 부동산 등 전통적인 자산에 대한 권리나 가치를 분산원장상의 디지털 토큰으로 표현하는 것을 일컫는다.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토큰화된 자산의 거래는 연중무휴 결제, 스마트 계약(smart contract), 결제 시스템 차이로 인한 마찰이 없는 원활한 거래 등 분산원장 기반 지급결제의 다양한 장점을 실현할 수 있게 해준다. 특히 대금 지급과 자산 이전의 실시간 동시결제(PvP·DvP)를 구현함으로써 대금을 지급했는데도 자산을 받지 못하거나, 자산을 인도했는데도 대금을 받지 못하는 결제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스테이블코인은 전통적인 금융 인프라가 발달하지 않은 개발도상국에서 금융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스마트폰과 인터넷만으로도 글로벌 결제 시스템에 접속할 수 있어, 은행 계좌가 없는 인구도 저축, 투자, 대출 등 금융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활용되는 가장 대표적인 분야는 해외 송금이다. 기존 소액송금업자인 머니그램은 2021년부터 스테이블코인 기반 해외송금 서비스를 추진해 왔으며, 옐로카드, 펠릭스, BC레밋 등 스테이블코인 송금 업체는 송금 전후 과정에서 스테이블코인과 법정통화 간 환전 기능(on-ramp, off-ramp)을 부가함으로써 이용자들의 송금 편의성을 제고하고 있다. USDC 발행사인 서클도 스테이블코인 기반의 국가 간 결제 인프라인 ‘서클 페이먼트 네트워크(Circle Payment Network)’를 출범시켰다. 이는 참여 금융기관이 자본 이동 규제를 준수하면서 스테이블코인으로 국가간 지급결제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분산원장기술 기반의 통신·결제 시스템이다.
한편 결제 분야에서는 기업 간 결제(B2B)가 기업과 소비자 간 결제(B2C)보다 빠르게 스테이블코인을 채택할 전망이다. 기업은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해 매입처 결제, 공급 업체 송장 처리, 담보 이전 등 다양한 지급거래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남미에서 스테이블코인 B2B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컨두잇(Conduit)은 2024년 결제 처리 규모가 16배 증가하며 약 100억 달러를 기록했다.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우주 기업 스페이스X는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등 전통적인 은행 인프라가 발달하지 않은 국가에서 스테이블코인으로 판매 수익을 수취하고 본국으로 송금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아마존, 월마트 등 유통 대기업의 경우, 결제 시스템에 자체 스테이블코인을 탑재한다면 판매자 정산 속도를 개선하고 카드사 수수료를 상당한 규모로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소비자의 결제 행태는 수수료보다 습관에 더욱 크게 영향을 받으므로 B2C 분야의 스테이블코인 채택은 점진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결제 시장에서의 주도권 유지, 가상자산 친화적인 MZ 소비자 확보, 금융 인프라가 미비한 개발도상국 시장 선점 등의 차원에서 페이팔이나 스프라이트를 비롯한 결제 기업들은 자사 서비스에 스테이블코인 결제 기능을 탑재하고 있다. 마스터카드 등 전통적인 카드사 또한 스테이블코인으로 결제가 가능한 크립토카드를 출시하거나 다른 스테이블코인 결제사업자와 제휴하면서 결제 시장의 지형 변화에 대비하고 있다.
디페깅, 코인런 리스크 대응 방안은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은 제도적 불확실성이다. 미국의 'GENIUS 법안'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유통 등을 관할하는 업권법으로서 지난 7월 16일 의회를 통과했으며 곧바로 트럼프 대통령이 법안에 서명하면서 시행에 들어갔다. 국내 또한 스테이블코인에 관한 법안이 이제 막 입안되는 단계로, 법안 간의 조율·정립 후 통과까지는 어느 정도 기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스테이블코인은 전통적인 지급결제의 한계를 보완하고 글로벌 금융 비즈니스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자산이다. 다만 제도 및 운영상의 기반이 아직 성숙되지 않은 만큼 과도한 낙관도, 막연한 경계심도 아닌 균형 잡힌 시각과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신상희 하나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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