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펀드의 대부’ 레이 달리오가 이끄는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가 올해 1분기 미국 대형주 비중을 대폭 줄이고, 금과 중국 빅테크, 신흥시장 중심의 자산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했다. 글로벌 불확실성에 대비해 지리적·자산군별 분산 투자를 강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대가들의 포트폴리오]
중국 항저우 알리바바 본사 앞을 지나가는 한 시민. 사진=연합AFP
중국 항저우 알리바바 본사 앞을 지나가는 한 시민. 사진=연합AFP
‘헤지펀드의 대부’ 레이 달리오가 이끄는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가 올해 1분기 미국 대형주 중심의 자산을 대거 매도하고, 금과 중국 빅테크, 사이버 보안 등 비(非)전통 자산군에 적극적으로 자금을 배분한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자산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대표적인 분산투자 전략인 ‘올웨더(All Weather)’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7월 10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따르면 브리지워터는 올해 1분기 포트폴리오에서 미국 대표 주가지수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을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 ‘SPDR S&P 500 ETF(TRU)’(SPY)를 약 27억4000만 달러(약 3조7900억 원) 규모로 매도했다. 전 분기 대비 보유 비중이 13.45%포인트 줄어들면서 전체 매도 종목 중 가장 큰 비중 축소 폭을 기록했다. SPY는 여전히 브리지워터의 최다 보유 종목(비중 8.67%)이지만, 한 분기 만에 보유 비중이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미국 대형주 축소…비전통 자산으로 이동

SPY 외에도 브리지워터는 구글 모회사 알파벳(비중 약 1%포인트 감소), 엔비디아(0.72%포인트), 메타(0.53%포인트), 앱러빈(0.72%포인트) 등 미국 대형 기술주 중심으로 비중을 줄였다. 특히 메타는 약 1억1300만 달러(약 1560억 원)어치, 앱러빈은 1억2900만 달러, 제약 유통 업체 맥케슨(MCK)은 1억1700만 달러어치를 매도하면서 기술·헬스케어 업종 전반에서 리밸런싱에 나선 것으로 나타났다.

눈에 띄는 점은 이와 동시에 신흥 시장 자산 및 대체 자산에 대한 편입이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브리지워터가 1분기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은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BABA)였다. 7억1000만 달러(약 9830억 원) 규모로 매수했으며, 이로 인해 알리바바의 포트폴리오 내 비중은 3.37%포인트 증가해 총 3.47%로 확대됐다. 이는 브리지워터 전체 종목 중 네 번째로 큰 비중에 해당한다.
레이 달리오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 창립자. 사진=연합뉴스
레이 달리오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 창립자. 사진=연합뉴스
두 번째로 많이 편입한 종목은 금 ETF인 SPDR 골드 셰어즈(GLD)였다. 매수 규모는 3억1900만 달러(약 4420억 원)에 달하며, 포트폴리오 비중은 1.48%를 기록했다. 금값 상승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인플레이션 헤지 및 안전자산 확보 차원의 전략적 선택으로 풀이된다.

이어 중국 검색엔진 기업 바이두(BIDU)에 1억7300만 달러(0.81%), 글로벌 여행 플랫폼 부킹홀딩스(BKNG)에 1억6300만 달러(0.71%), 사이버 보안 대표주자인 팔로알토네트웍스(PANW)에는 6700만 달러(0.67%)를 각각 추가 매입했다.

주목할 점은 브리지워터의 1분기 매수 상위 5개 종목 중 3개(BABA·BIDU·BKNG)가 중국 또는 신흥 시장 기업이라는 사실이다. 브리지워터는 과거에도 이머징마켓에 전략적으로 투자해 왔지만, 이번 분기엔 미국 자산의 비중을 줄이는 동시에 아시아 및 글로벌 자산 비중을 높이며 포트폴리오의 지리적 분산도를 강화한 모습이다. 특히 알리바바와 바이두는 각각 4위, 10위 이내의 상위 보유 종목으로 올라섰다.

1분기 말 기준 브리지워터의 전체 포트폴리오 상위 보유 종목은 SPY(8.67%), iShares Core S&P500 ETF(IVV·5.67%), iShares MSCI 이머징마켓 ETF(IEMG· 4.75%), 알리바바(3.47%), 알파벳(2.18%) 순이다. ETF 중심의 포트폴리오 구조를 유지하고 있으나, 포트폴리오의 무게중심이 미국에서 신흥 시장과 대체자산으로 옮겨 가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금·중국·이머징마켓으로 ‘올웨더’ 리밸런싱

시장에서는 이번 분기 브리지워터의 매매 전략이 ‘올웨더’ 포트폴리오 철학의 정교화로 해석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웨더 전략은 경기 침체, 인플레이션, 금리 상승 등 다양한 거시경제 환경에서도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할 수 있도록 자산을 주식, 채권, 원자재, 현금 등으로 광범위하게 분산하는 전략이다.

특히 미국 대형주와 기술주 중심의 노출을 줄이고, 금과 신흥 시장 중심의 ETF 및 개별주를 확대한 점은 지정학 리스크와 달러 강세, 인플레이션 불확실성 등에 선제적으로 대비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글로벌 경제의 다극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미국 자산에 대한 과도한 편중이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앞서 카렌 카니올탬버 브리지워터 공동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자산 시장이 단기적인 모멘텀에 휘둘릴 가능성이 크다”며 “지금은 투자자산을 전방위적으로 점검하고 전략적 배분을 강화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어 “지정학 리스크, 물가, 통화 정책 등 다양한 불확실성이 얽혀 있어 단일 자산에 집중하는 전략은 위험하다”고도 덧붙였다.

브리지워터가 기존 미국 대형 기술주와 ETF 중심의 포트폴리오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는 것은 최근 시장의 복합적 리스크 구조와도 맞닿아 있다. 미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하 시점이 지연되며 채권과 주식 간 상관관계가 높아졌고, 미·중 갈등 장기화, 유럽의 정치 불확실성, 주요국 총선 등 다양한 지정학 변수들이 시장에 중첩되고 있다. 브리지워터는 이를 단기적인 시장 조정으로 보지 않고, 구조적 위험 요소에 대한 대비책으로 자산군 자체를 재구성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브리지워터의 분기별 포트폴리오 변화를 장기 추적해 온 미국 투자정보 업체 시킹알파(Seeking Alpha)는 최근 분석 보고서에서 “브리지워터는 전통 주식 시장의 일방적 상승 흐름이 끝나고, 향후 2~3년간은 불균등한 회복과 반복적인 충격이 이어지는 국면으로 진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금, 신흥 시장, 테마형 ETF 등으로 리스크 헤징을 강화하는 것은 단기 수익률 하락을 감수하더라도 전체 생존성과 회복력을 높이겠다는 전략적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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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현 한국경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