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확산이 초래한 전력 수요 급증은 전 세계 인프라 전략과 기후 지형을 뒤흔들고 있다. 에너지 자립 여부는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떠올랐으며, 북극해 개방과 유럽의 재무장은 새로운 지정학적 질서와 투자 기회를 예고한다

[마켓 리더의 시각]
미국 버지니아주 아마존 데이터 센터 전경 / 연합뉴스
미국 버지니아주 아마존 데이터 센터 전경 / 연합뉴스
아프리카와 일부 아시아를 제외하면 출산율이 2.0를 초과하는 국가를 찾아보기 힘든 현재, 인공지능(AI)과 로보틱스를 통한 생산성 혁신이 슈퍼 파워 국가들의 최우선 과제가 됐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AI 데이터센터는 어마어마한 전기를 요구하는 시설이며, 이로 인한 초과 전기 수요는 막대한 전력 인프라 투자를 필요로 한다.

전기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미국과 중국은 여전히 화석연료를 주된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제 기후변화는 선택이 아닌 적응의 문제이며, 투자자로서 새로운 기후가 제공하는 투자 기회를 기민하게 파악해야만 한다.

AI가 초래한 막대한 전력 수요

2025년 4월 국제에너지기구(IEA) 리포트에 따르면 AI 데이터센터에 의한 전력 수요는 매년 15%씩 성장해 2030년까지 2배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데이터센터의 냉각 방식을 수냉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에너지 효율성을 소폭 증가시키기는 하지만, 전력 효율성은 사실상 2013년 이후로 정체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AI 발전을 선택한 국가들이 직면한 문제는 전력을 어떻게 공급할 것인가다.

미국 에너지 관리청(EIA)이 공표한 국가별 데이터센터의 연간 비용에 따르면 일본, 유럽, 싱가포르 등 에너지를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는 기가와트시당 평균 18만 달러, 에너지를 데이터센터에 직접 공급할 수 있는 국가의 경우, 기가와트시당 평균 7만 달러가 소요된다. 즉, 에너지 자립이 AI 경쟁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요인이 된다는 의미다.
에너지 자립에서 북극해 해빙까지...기후에서 찾는 투자 기회
에너지 자립을 필수 요소로 고려하면, 국가별로 향후 취하게 될 전략 인프라 구성 전략은 명확하다. 미국은 AI가 요구할 가변 전력 수요를 직접 생산 및 공급이 가능한 천연가스로 감당할 것이다. 중국은 이미 구성돼 있는 석탄 인프라와 독과점적 경쟁력을 지닌 태양광 발전을 주 전력원으로 선택할 것이다. 7월 9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실제로 중국은 태양광 및 풍력 발전에 유리한 고비 사막에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건설하고 있다.
2025년 1월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하미시에 위치한 스청쯔태양광 발전소의 전경. 사진=연합신화
2025년 1월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하미시에 위치한 스청쯔태양광 발전소의 전경. 사진=연합신화
문제는 에너지 자립이 어려운 유럽과 한국이다. 자연스럽게 유럽과 한국은 재생에너지를 대안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예상보다 엄청난 인프라 구축을 필요로 한다. 전력 발전은 반드시 적정량만을 생산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2008년부터 태양광 발전량으로 인해 '덕 커브(Duck Curve)'라는 독특한 모양의 전력망 순부하(전력 수요량 - 생산량) 패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에너지 자립에서 북극해 해빙까지...기후에서 찾는 투자 기회
덕 커브란 낮 시간대에 태양광 발전량이 증폭해 순부하를 급격히 감소시키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 현상은 점차 심화돼 2023년부터는 '캐니언커브(Canyon Curve)'로 이어져 음의 순부하를 발생시키기 시작한다. 음의 순부하가 발생하면 전력 인프라에 대한 영구적 손상과 함께 대규모 정전을 발생시킬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출력 제어와 에너지저장장치(ESS) 외에도, 근본적으로는 재생에너지의 지역별 불균형 발전량을 조정하기 위한 대규모 전력 전송 시스템을 구축해야만 한다. 유럽 전력 전송 시스템 사업자(TSO)는 시설에 대한 향후 5개년 투자를 기존의 3배 규모인 3450억 유로로 상승시켰다. 그러나 7월 10일 BCG는 2500억 유로가 추가로 집행돼야 한다고 조사했다. 한국은 전력망 구축에 대한 사회적 합의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에너지 자립 기조를 전제로, 전력 인프라 투자 산업의 지속적인 매출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

북쪽으로 옮겨 간 지구의 중심

미국과 중국이 AI가 초래할 막대한 전력 수요를 화석 에너지로 감당하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기존 파리기후협정 탄소배출량 목표 달성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기후변화가 초래할 가장 큰 변화는 지구의 중심(인간 기준)이 적도의 북쪽으로 변경된다는 것이다. 중심점이 상승하는 이유는 다음 두 가지다. 첫째, 중국 대비 북쪽 위도의 지역들의 기후는 보다 온난해지고 거주 환경이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

둘째, 2030년 여름부터 북극해의 ‘아이스 프리 데이(ice-free day)’가 예상되기 시작했다. 기후변화로 국내총생산(GDP) 기준 가장 수혜를 입을 국가는 러시아, 미국, 유럽이다. 특히 북극해의 개방을 통해 중국을 글로벌 무역의 거점으로부터 배제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2024년 8월 중국 내에서 최초로 건조된 3척의 쇄빙선은 중국의 불안감을 반영하는 결과물이다. 쇄빙선 건조 능력은 핀란드, 캐나다, 러시아가 지니고 있으며, 한국 선박 제조 업체도 글로벌 선박 업체 대비 높은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

국내 첫 쇄빙연구선 아라온호가 북극 축치해를 항해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내 첫 쇄빙연구선 아라온호가 북극 축치해를 항해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북극해의 개방에 대비해 러시아는 모스크바를 기점으로 미국향 북극해 경로, 유럽향 발트해 경로, 아시아향 흑해 경로를 장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건설 중이거나 예정된 러시아의 가스 파이프라인(Murmansk-Volkhov·Ukhta-Torzhok 3·Pochinki-Anapa)을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를 통해 드러난 러시아의 확장 의도와 더불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의한 미국의 나토 탈퇴 우려는 유럽의 방위에 대한 불안감을 극도로 상승시킬 수밖에 없다.

지난 7월 8일 유럽연합(EU)은 15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GDP의 1.5%까지의 금액을 부채로 방위 지출이 가능하도록 결의했다. 유럽의 빠른 재무장 요구에 대응할 수 있는 국내 방산산업에 추가적인 수주 모멘텀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김규진 NH투자증권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