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은 군사정권 하 브라질에서 남편의 강제 실종 이후 진실을 추적한 유니스의 삶을 그린다. 원작은 마르셀로 파이바의 회고록 <Ainda estou aqui>이다. 감독 월터 살레스는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운명이 강요하는 것과 가부장적 유대를 끊고, 자신을 재창조한 '유니스'가 있다”며 “그녀는 절제되고 고요한 저항이란 독특한 스타일을 보여줬다. 그녀가 투쟁한 30년 간의 기억은 브라질의 재 민주화 역사와 맞물린다, 그것이 이 영화를 만든 이유"라고 밝힌 바 있다.
영화는 유니스의 절제된 저항, 강인한 모성, 피해자 역할을 거부한 태도를 중심에 둔다. "우리는 피해자가 아니다"라는 유니스의 신념은 민주화의 과정과 나란히 흐른다. 배우 페르난다 토레스는 그런 유니스를 내면에서 길어 올리듯 연기한다.
절제된 표정, 울음을 삼키는 침묵은 말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한다. <아임 스틸 히어>는 ‘기억’의 복원에도 공을 들였다. 가족이 함께한 해변가 집은 실제와 거의 흡사한 구조의 주택을 찾아냈고, 배우들은 그곳에서 합숙하며 정서를 나눴다. 그들이 함께 만든 가족사진과 홈비디오는 극 중에서도 사용됐다. 이 ‘찐 가족 케미’는 영화 전반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프로덕션 디자인 역시 치밀하다. 턴테이블과 레코드판, 서재의 책장, 테이블풋볼까지, 디자이너 카를로스 콘티는 시대의 공기와 자유의 흔적을 고스란히 재현했다.
원작자 마르셀로가 “우리 집 냄새가 난다”고 말한 건 결코 과장이 아니다. 무엇보다 감독 월터 살레스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무려 7년을 준비했다. 유년 시절 파이바 가족과 친구였던 그는 루벤스의 실종과 그 이후 닫힌 집의 풍경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는 “강제 실종은 죽음만이 아니라, 남은 자에게 지속적인 고통을 남긴다”고 말하며, 이 영화가 ‘망각에 맞서는 기록’임을 분명히 했다. 촬영은 아이러니하게도 브라질의 극우 정권과 코로나 팬데믹이 동시에 진행되던 시기에 시작됐다. 영화 속 1970년대의 공포와 현재의 위협이 묘하게 겹쳐졌고, 살레스는 "망각은 과거를 재현한다"는 메시지를 영화 전반에 심었다.
전 세계를 울린 걸작, 대중과 평단의 만장일치 <아임 스틸 히어>는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 베니스 각본상을 포함해 총 53관왕을 기록했다. 로튼토마토 97%, 메타크리틱 85점, 브라질 역대 흥행 3위라는 수치는 단지 영화의 완성도를 넘어, 그 메시지의 시의성과 보편성까지 인정받았음을 보여준다. 마틴 스코세이지, 알폰소 쿠아론 등 거장 감독들의 극찬은 물론, “거울이자 경고”(The Film Verdict), “시의적절한 걸작”(The Globe and Mail), “정치와 가족 서사를 꿰뚫는 헌사”(Screen International) 등 전 세계 언론의 평가가 쏟아졌다.
브라질의 과거사지만, 이 영화는 한국의 기억과도 맞닿는다. 권위주의 정권, 진실을 요구한 국민, 그리고 그 과정에서 희생된 평범한 가족의 이야기. 전주국제영화제 문석 프로그래머는 “이 영화는 한국 현대사의 거울”이라 했고, 주브라질 한국문화원은 “잔잔하지만 강렬한 울림”이라 전했다. <아임 스틸 히어>는 거대한 역사를 미소와 침묵으로 밀어낸 한 여성의 이야기다. 그것은 단지 과거의 복원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진실’과 ‘존엄’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묻는 조용한 외침이다. 개봉은 오는 8월 20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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