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방위산업의 지형도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함께 완전히 달라졌다. 냉전 이후 이어지던 평화가 깨지면서 급하게 무기가 필요한 국가들은 아시아 변방에 위치한 한국에 도움으로 요청했다. 이에 힘입어 국내 방위산업은 내수산업에서 고성장 수출산업으로 변모했다
[스페셜] K-방산 리포트
군대를 다녀온 남성들 정도가 전차나 자주포 등 직접 다루어본 무기체계에 익숙함을 느꼈을 수는 있겠지만, 그 무기를 어떤 기업이 제조하는지 크게 궁금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한국에서 성장 산업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 방위산업이며, ‘K-방산’과 같은 키워드로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됐다.
명실상부한 성장 산업으로
국내 주식 시장에서도 방위산업 관련주들의 상승세는 크게 돋보였다. 완성된 무기체계를 생산하는 체계 종합 업체 4개 사의 2021년 말부터 2025년 상반기까지의 주가수익률(PER)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1550%, 현대로템 +845%, LIG넥스원 +687%, 한국항공우주 +177%를 기록했다. 4개 기업의 합산 시가총액 기준으로는 777% 상승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도 무기,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도 무기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부각되고 있다. ‘兵可百年不用, 不可一日無備(병가백년불용, 불가일일무비)’라는 <목민심서> 병전편에 적힌 이 글귀는 수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교훈으로 삼아야 할 이야기다.
글로벌 방위산업 시장은 수출 기준으로 미국과 유럽 국가들을 포함한 방위산업 강국 10개 국가가 시장 점유율을 90%를 차지하는 시장이다. 냉전 이후 무기 수요가 크게 감소하면서 미국과 유럽의 방위산업 기업들이 통폐합과 생산 능력 축소를 단행하면서 무기체계의 공급 능력은 크게 줄어들어 있었던 상황에서, 급하게 무기가 필요한 국가들이 아시아 변방에 위치한 한국에 도움의 손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한국은 분단 국가로서 끊임없이 무기를 개발하고 생산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 상황이 오히려 기회가 됐던 것이다. 2022년 러·우 전쟁이 터진 해에, 한국은 동유럽의 폴란드로부터 20조 원에 달하는 기본 계약을 체결하게 됐다.
한국 방위산업의 해외 수출 계약 규모는 2020년까지만 해도 매해 30억 달러 수준에 그쳤다. 그러다 2021년 70억 달러, 2022년 170억 달러로 그 규모가 크게 늘어났다. 2022년 이전에는 한국군을 상대로 한 내수 중심의 산업이었지만, 수출 중심의 산업으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수와 수출은 수익성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내수는 국방비로 불리는 국가 예산에 기반하고 있는 만큼 방위산업 기업들이 누릴 수 있는 수익성이 한정돼 있지만, 수출은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수요자와 공급자 간 협상을 통해 결정되는 시장의 논리가 적용된다.
냉전 이후 국지전 중심의 전쟁 양상 변화로 포병체계보다 전투기와 정밀 유도 타격 중심의 선호도가 높아졌지만, 러·우 전쟁이 발발하고 국가간의 전면전에서는 재래식 무기체계인 포병 화력의 중요성이 다시 한 번 부각되면서, 포병 체계 중에서도 기동성을 갖춘 현대화된 자주포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K-9과 같은 궤도식 자주포의 경우 독일의 PzH-2000 정도가 유일한 경쟁자인데, PzH-2000 마저도 공급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보니 선택지가 K-9으로 집중될 수 밖에 없었다.
올해 방위산업에서 가장 주목했던 이벤트는 바로 나토(NATO)의 방위비 지출 목표 상향이다. 나토는 기존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방위비 지출 2% 목표를 설정했지만, 이를 올해 6월 나토 정상회담에서 2035년까지 5%까지 늘리는 것으로 목표치를 상향 조정했다. 5% 목표치는 간접비 1.5%를 포함한 수치로 직접 군사비는 3.5% 수준이다. 말이 1%, 2%의 차이지, 기존 목표 2%에서 1.5%포인트 증액하는 것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증분만 수백조 원 이상의 예산이 늘어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도 올해 ‘ReArm EU’로 불리는 유럽 재무장 계획을 공개하면서 8000억 유로(약 1300조 원) 지원을 추진한다. 1500억 유로는 ‘SAFE’로 불리는 프레임워크 안에서 EU가 대출해주고, 6500억 유로는 각 국가의 부채한도 면제를 통해서 확보하는 형태다. 이미 올해 5월에 부채한도 면제 신청을 받고 승인까지 났으며, 지난 7월 30일에는 SAFE 대출 신청 현황이 공개되면서 실제 자금 집행 움직임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머나먼 한국에서는 이러한 유럽에서의 변화가 한순간의 기대감, 모멘텀이었을지 모르지만, 유럽은 진지하게 재무장에 나서고 있다.
러·우 전쟁이 언젠가 끝난다면, 러시아는 다시 과거 수준으로 무기를 보충할 것이기 때문에, 실제 유럽이 확보해야 할 무기 규모는 수만 대에 달하는 것이다. 물론, 러·우 전쟁이 끝나고 다시 유럽이 평화로워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유럽에서 부족한 무기체계가 한국이 잘하는 지상 무기에 집중돼 있다는 점 또한 우리에게는 긍정적인 부분이다.
유럽에서는 이미 러·우 전쟁 이후를 우려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월경 지역인 칼리닌그라드 접근성 확보를 위한 폴란드 및 발트 3국 침공 가능성, 최근 나토에 가입한 북유럽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국지전 가능성 등 러시아의 유럽 재침공에 대한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지금의 긴장감이 한순간에 사라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최근 유럽에서 흥미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나토가 독일에게 10년 이내에 최대 7개의 전투 여단을 제공해 달라고 요청했고, 독일 국방부가 이를 위해 연내 8000대 규모의 지상 무기체계 발주를 계획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한국이 유럽 무기 시장에서 차지하는 시장 점유율은 5~10% 수준이다. 결코 무시할 숫자는 아니지만, 한국에서 우려하고 있는 것처럼 유럽에 한국 방위산업은 무조건적으로 배척할 대상은 아니다. 오히려 본인들에게 부족한 부품이나 열위에 있는 무기체계 분야에서는 협력을 통해서 윈윈(win-win)을 추구해볼 수 있는 파트너다.
한국 방위산업의 성장은 이제 막 시작됐다. 진정한 글로벌 방위산업 강국을 거듭나기 위한 첫 번째 스테이지, 내수 산업에서 수출 산업으로의 변화를 막 끝냈을 뿐이다. 아직 수많은 기회가 있다. 앞서 설명한 유럽에서 수요가 늘어나는 것에 더해, 시장의 확대와 역할의 확장을 기대해본다.
시장의 확대란 한국이 현재 주력하고 있는 유럽 시장을 넘어 중동과 아시아태평양, 남미 지역에서의 새로운 무기 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뜻한다. 특히 주목하는 것은 중동이다. 중동도 여러 분쟁을 겪으면서 무기 수요는 최고조에 달해 있다. 그리고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무기들의 노후화 이슈로 교체 수요도 커지고 있다.
최근 수년간 한국의 중동을 대상으로 한 수출 마케팅 노력을 보면 유럽 이상으로 적극적이다. 방위사업청이 수없이 중동을 방문하고, 반대로 중동에서도 한국을 방문해 훈련을 참관하는 등 활발하게 교류가 이어지고 있다. 이미 중동에는 LIG넥스원의 유도 무기체계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천무 다련장 로켓의 수출 레코드가 있지만, 전투기와 전차, 포병체계, 방공체계 등 폴란드 이상의 수출 기회를 노려볼 수 있을 것이다. 가끔 한국군이 중동으로 연합훈련을 떠난다는 소식이 들리는데, 훈련도 훌륭한 마케팅 수단이 될 수 있다.
현재 대표적인 사례가 폴란드 K-2 전차의 현지 양산 계약이다. 올해 8월에 체결한 폴란드 K-2 2차 계약에서는 2027년부터 폴란드의 부마르 지역에서 현지 양산하는 계약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현지 양산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이미 폴란드 인접 국가인 슬로바키아에서 폴란드 생산 K-2 전차에 대한 구매 협력 의향서(LOI)를 체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물론 리스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과 같은 신흥 주자로서 일본과 튀르키예가 급부상하고 있다. 일본은 최근 호주와 10조 원 규모의 호위함 11척 계약을 체결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필리핀 등에 무상 무기 제공 등을 실시하면서 미래 방위산업 수출을 위한 포석을 깔기 시작했다.
방위산업은 방산 기업과 상대국 정부가 계약하는 기업과 정부 간 거래(B2G) 사업이지만, 실상은 정부 간 거래(G2G) 사업의 성격을 띠고 있기도 하다. 수요국들이 가격과 성능을 고려한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지만, 종종 판매국과의 정치적인 관계 등을 고려한 선택을 하는 만큼, 정부 차원에서의 강력한 지원 사격도 필요하다.
정리해보면, 한국 방위산업은 2022년 이후 내수 중심 산업에서 수출 주도 산업으로 변화하면서 변곡점을 맞이했고, 한국의 대표적인 성장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 방위산업의 성장은 여기서 끝이 아니라,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고, 또 한 번의 변곡점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양승윤 유진투자증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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