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사기 특별법이 2027년까지 연장되고도 전세금 반환을 둘러싼 위기는 잦아들지 않았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보증 자본은 정부 현물출자로 급한 불을 끄지만, 전세보증금 사고액은 여전히 눈덩이처럼 불어난 상태다. 전국 전셋값 양극화가 최대로 벌어진 지금, 세입자의 마지막 방패는 결국 소송이다.

[아하 부동산 법률]
위기의 전세 시장…HUG 보증도 만능 아니다
정부 자본 수혈로도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적자 구조는 완벽히 해소되지 않았다. 보증 한도 축소, 소득 심사 강화 등 지난 6월부터 적용된 새 규제가 시장에 던진 메시지는 명확하다. 임차인이 보증보험에 가입해도 집주인이 파산하면 대위변제금 회수는 많아야 30% 남짓에 그친다. 결국 보증보험은 ‘시간을 벌어주는 장치’일 뿐, 전세보증금반환 소송이 근본적 회수 수단으로 자리 잡는다.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 속도도 비슷하다. 상담 건수의 절반 이상이 보증 미가입 세입자거나, 보증 한도 초과로 사각지대에 놓인 케이스다. 정부 역시 사고액 급증에 대비해 5000억 원대 현물출자를 결정했지만, 구조적 적자를 메우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전세금반환 소송은 법률관계가 단순해 승소 확률이 100%에 가깝다. 핵심은 판결 결과가 아니라 실제 보증금을 회수할 수 있느냐다. 이사할 예정이라면 먼저 임차권등기명령을 받아 등기에 임차권을 공시한 뒤 이사하고, 판결을 받은 뒤에는 집주인 명의 부동산을 경매에 부치거나 경매 실익이 없을 경우 재산 명시·조회, 통장 압류 등 강제집행 절차로 채권 회수에 착수한다.

소송 실무에서는 전세보증금 전액을 돌려받지 못하고 이사한 경우에는 이사한 다음 날부터 민법상 연 5%의 지연이자를, 소장 부본이 상대방에게 송달된 다음 날부터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연 12%의 지연이자를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법원은 지연손해금 인정 범위를 이사 간 다음 날부터로 한정하고 반대급부 이행, 즉 이사가 완료되지 않은 경우에 지연이자를 인정하지 않는 등 신중히 해석한다. 따라서 이사를 한 뒤에는 반드시 인도를 완료했음에 대해 입증해야 한다. 이사를 했지만, 임대인에게 이를 알리지 않은 것은 원칙적으로 인도를 완료하지 않은 것이 돼 주의해야 한다.

한편 공인중개사 관점에서 보면 보증보험 가입 가능 여부와 전세가율 80% 이상 여부를 계약 체결 전 체크리스트로 두는 것이 분쟁 예방의 최소 조건이다. 현장에서 ‘갭투자(전세 끼고 매매)’로 의심되는 매물은 전세금반환 소송을 하더라도 전부 회수가 불가하게 되는 임차인의 적신호다.

재판까지 가는 시간을 줄이고 확정판결의 효력을 빠르게 얻으려면 소송 중에 조정 합의를 고려할 만하다. 집주인이 변제 계획을 제시하고 임차인이 수용할 여지가 있다면, 법원의 조정조서 한 장으로 강제집행력을 확보할 수 있다. 다만 변제 기일을 지키지 않을 경우나 기지출된 소송 비용에 대한 보전 방법이 확보돼야 하며, 약속한 지급기일 이후로의 지연손해금 가산 특약을 넣어야 실효성이 높다.

또한 집주인이 기존 담보권 처분을 통해 다른 재산을 빼돌릴 위험이 있다면, 다른 재산에 부동산 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을 병행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최근 상담 사례에서 조정조서를 통해 3기 분할 변제안을 받아낸 뒤 무리 없이 전부 변제받아 이후 집행 과정에서 발생할 예납 비용을 절감한 사례가 있었다. 효율과 속도 모두 잡은 셈이다.

전세 사기 특별법도, HUG의 보증도 만능열쇠는 아니다. 시장 리스크가 구조화된 이상, 임차인은 계약 단계에서 위험 신호를 읽고 분쟁 발생 시 즉시 전세금반환 소송과 임차권 등기명령으로 대응해야 한다. 늦출수록 회수율은 기하급수적으로 낮아진다. 준비된 임차인만이 위기의 전세 시장에서 살아남는다.

엄정숙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