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미디어의 권위가 약화된 자리를, 쉽고 친근한 언어와 실시간 소통으로 무장한 금융 유튜버들이 빠르게 메우며 새로운 금융 정보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는 유튜브, 틱톡 등에서 활동하는 핀플루언서를 통해 투자 가이드와 경제 흐름을 배우며 금융 문화를 바꿔 가고 있다.
[커버스토리]
특히 젊은 세대의 금융 정보 습득 문화를 핀플루언서가 바꿔 놓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증권사 찰스슈왑에 따르면 Z세대의 38%가 유튜브로부터 재무 정보에 대한 조언을 받고 있으며, 33%는 틱톡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를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쉬운 설명·실시간 소통으로 급성장
핀플루언서에 열광하는 분위기는 국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유튜브 통계 사이트 플레이보드에 따르면 상위권 경제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는 많게는 300만 명 수준을 자랑한다. 100만 명을 넘어선 채널로는 슈카월드(360만 명), 김작가TV(257만 명), 신사임당(225만 명), 월급쟁이부자들TV(203만 명), 달란트투자(144만 명), 언더스탠딩(119만 명), 재테크읽어주는 파일럿(116만 명), 전인구경제연구소(114만 명), 815머니톡(111만 명) 등이 있다.
이어 단희TV(92만 명), 소수몽키(92만 명), 부티플(88만 명), 박곰희TV(86만 명), 표영호TV(79만 명), 와이스트릿(78만 명)도 대중적 인기를 잡은 상위권 유튜브 채널이라고 할 수 있다.
양채열 전남대 경영학과 교수는 “자기 현실에 가까운 이야기를 해야 그 주제에 관심이 생기고, 관심이 있어야 재미있게 듣는다”며 “경제 이슈를 너무 먼 이야기처럼 어렵게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과 접목해 설명하기 때문에 젊은 세대들의 접근성이 높아졌다. 교수들도 몇몇 경제 지식을 잘 설명한 유명 유튜버 영상을 학생들에게 추천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전통적인 공중파 방송이나 경제신문과 달리 인터넷 밈(internet meme) 등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만큼 젊은 세대 입장에서는 보다 대중 친화적이라고 느끼기 쉽다. 라이브 방송이나 유튜브 댓글창으로 실시간 소통할 수 있다는 점도 재미 요소다. 양방향 소통이 가능해,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받는다는 느낌보다는 해당 주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데서 오는 만족감도 크다.
부동산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한문도 명지대 대학원 실물투자분석학과 겸임교수는 최근의 핀플루언서 문화를 “시대가 완전히 바뀌는 초입”이라고 표현했다. 한 교수는 “요즘 핀플루언서들은 자신이 콘텐츠를 통해 전달한 정보의 내용이 잘못됐다면 곧바로 피드백하고 사과한다”며 “구독자와 채널 운영자의 소통이 너무 잘되다 보니 신뢰를 쌓으며 채널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피드백을 제대로 하지 않는 핀플루언서는 오히려 구독자의 신뢰를 잃고 시장에서 도태되기 쉬워, 성장 가도에 놓인 핀플루언서라면 소통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해야 할 말은 한다”…구독자 신뢰가 1순위
솔직한 ‘날것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대중의 열망을 핀플루언서가 채워주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종욱 서울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과거에는 주요 경제지가 경제 뉴스를 주도했다. 그만큼 신문이 제공하는 정보의 퀄리티, 신뢰성이 컸다고 볼 수 있다”면서 “그런데 언젠가부터 광고주의 존재로 인해 언론의 대중적 신뢰도가 떨어진 측면이 있다. 어떤 이슈에 대해서도 명확한 진단을 내리지 않는다는 인상이 강해진 것이다. 대중이 보기에 답답한 면이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이 교수는 “대중의 입장에서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틀린 것은 틀렸다, 좋은 것은 좋다’고 확실히 이야기해주는 존재가 필요해졌다. 그런 측면에서 본인 채널을 갖고 있는 핀플루언서는 어떤 발언을 할 때도 큰 부담이 없다. 그들에게는 광고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구독자가 얼마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면서 “광고가 유튜브를 종속시키는 게 아니라, 유튜브가 광고를 끌어오기 때문에 레거시 미디어와는 정반대의 상황인 것”이라고 했다.
레거시 미디어에서 느낀 실망감이 핀플루언서에 대한 열광으로 이어졌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 교수도 “유튜버에게는 광고주나 사주의 입김이 아니라 구독자의 입김이 더 크다”라며 “예전에는 대중이 판단할 수 있는 소스가 별로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지 않나. 크로스체크가 가능하다. 정보를 유통하는 지형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했다.
일명 ‘염블리’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염승환 LS증권 이사도 비슷한 맥락에서 핀플루언서의 인기 요인을 짚었다. 염 이사는 “요즘은 증권사 등 금융사가 자체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경우도 많은데, 개인 유튜버에 비하면 조회수가 아주 높진 않다”면서 “그 이유를 물어보니, 금융사에서 내놓는 콘텐츠에는 어떤 순수하지 않은 목적이 있을 것이라는 개인투자자의 불신이 어느 정도 작용하는 것 같더라”고 말했다.
결국에는 금융사가 특정 상품을 판매하거나, 애널리스트가 추천하는 종목을 띄우기 위해 콘텐츠를 만드는 것 아니냐는 선입견이 적지 않게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염 이사는 “그게 전혀 사실이 아니더라도 이미 개인투자자에게는 그런 불신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고 느꼈다”며 “반면 개인 유튜버들은 본인 채널에서 개인투자자와 자주 소통하며 유대감을 쌓는 만큼, 구독자를 진실되게 대한다는 인상을 크게 주는 것 같다”고 했다.
전통적인 미디어나 금융기관의 경제 해설보다 자신이 즐겨보는 핀플루언서의 콘텐츠를 더 믿고 따르는 현상은 앞으로 더 심화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개인투자자가 저렴한 비용으로 정보의 비대칭을 빠르게 해소할 수 있다는 점은 핀플루언서 문화의 강력한 순기능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제는 전문가의 시대가 됐다”며 “과거에는 전문가를 노출해주는 역할을 언론이 했지만, 이제는 숨어 있던 전문가들이 스스로 유튜브 화면에 등장해 자신의 노하우를 전달하고 있다. 대중이 그들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수용하는 것이 시대적 흐름이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개인의 취향을 맞춤형으로 충족해주는 핀플루언서 채널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염 이사는 “핀플루언서 채널의 종류가 과거에 비해서도 굉장히 다양해졌다. 해외 주식 중에서도 미국 주식 분석만을 다루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밤새 미국 증시 시황을 라이브로 중개하는 사람도 있다”면서 “이런 콘텐츠는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핀플루언서만이 소화할 수 있다. 어딘가에 소속된 이들이 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콘셉트다. 개인투자자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딱 맞는 채널을 찾아서 보기가 더 쉬워졌다”고 말했다.
핀플루언서 한마디에 주가 급등락
핀플루언서 문화의 순기능은 분명하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점은 그들 발언의 신뢰성을 검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명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높은 신뢰도를 유지하는 핀플루언서일수록 브랜드 이미지에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때 팬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가 한순간에 신뢰를 잃은 사례도 종종 나온다. 핀플루언서의 영향력을 무기로 시장의 공정경제를 무너뜨리는 경우다.
대표적인 사례가 ‘슈퍼개미’ 김정환 씨의 행보다. 김 씨는 유튜브 채널에서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추천한 뒤 수십억 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았다. 1심에서는 무죄 판단을 받았다가 최근 항소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과 벌금 3억 원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개인투자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전문 투자자라는 지위에서 자신의 주식 보유 사실과 매도 계획을 알리지 않은 채 해당 종목을 추천하고 모순되게 곧바로 매도했다”면서 “이는 부당한 수단과 계획을 사용한 부정거래 행위로 중대한 범죄”라고 했다. 또 “자본의 흐름을 왜곡하고 공정성과 투자자 신뢰를 훼손해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크므로 엄한 형사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설령 발언에 특정한 의도가 없다고 하더라도 핀플루언서의 한마디에 따라 주가가 급등락을 한다면 그 피해는 개인투자자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더욱이 이런 사례는 이른바 ‘사고’가 터진 뒤에야 최종 검증이 가능한 만큼, 개인투자자 차원에서도 주의가 필요하다.
염 이사는 “핀플루언서의 영향력이 강해질수록 더 객관적으로 발언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선행매매는 가장 위험한 것이기 때문에 특정 종목을 먼저 사 둔 뒤 유튜브를 통해 이야기하는 것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다. 음과 양은 언제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대중들도 명심하고 선별해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자 손실에 대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핀플루언서의 영향력이 크다 보면 약간의 금융 쏠림 현상이 관찰되기도 한다”며 “미국에서는 유력 핀플루언서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발언한 내용 때문에 뱅크런이 발생하기도 했다. 아직 국내에서는 그런 사례가 없지만 혹시나 생길 법한 가능성에 대해서는 고려할 필요가 있다. 감독 사각지대에서 피해가 생긴다면 구제해줄 수 있는 장치가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팩트에 기반하지 않은 정보를 잘못 전달하는 것도 우려스러운 지점이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대형 핀플루언서의 분석을 보면 다소 과도하게 해설하는 부분도 있고, 사실이 아닌 것을 이야기하는 경우도 존재한다”며 “정책의 취지와는 다른 방향을 이야기하는 사례도 있어서 우려가 된다”고 말했다.
핀플루언서가 자신의 영향력에 무게를 느끼고 책임감을 가질 필요도 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건전한 핀플루언서 육성 문화가 조성돼야 될 것 같다”며 “물론 정책적으로 접근할 부분도 있지만 핀플루언서들 스스로가 자정해야 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대안만으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현실적으로는 대중이 자발적으로 감식안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특정 종목을 과도하게 추천한다거나 특정 업체의 광고를 받는 것이 반복되면 의도를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익명을 요구한 핀플루언서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이야기만 골라서 해주는 핀플루언서 채널을 편식해서 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며 “예를 들어 자기가 매수한 주식에 대해 긍정적인 이야기만 한다고 해서 올바른 채널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핀플루언서가 특정 의도를 갖고 듣기 좋은 이야기만 전할 수도 있다는 점을 항상 의심해야 한다. 유튜브를 보더라도 여러 견해를 균형 있게 살펴보기를 권한다”고 말했다.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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