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한 재산을 둘러싼 상속 분쟁은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며, 돈과 가족의 의미를 되묻는 사회적 화두를 떠올리게 한다. 최근 알랭 들롱, 머독 가문의 사례는 상속이 단순한 재산 분배를 넘어 전통과 가치관, 철학이 얽힌 복합적 갈등임을 보여준다
[상속 이슈]
2024년 8월, 한 시대를 풍미했던 프랑스의 ‘살아 있는 전설’ 알랭 들롱이 영면에 들었지만, 그의 가족은 평화를 찾지 못했다. 그의 사례는 상속 분쟁이 사망 후에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 아님을, 오히려 살아 있을 때부터 시작된 갈등이 죽음으로 인해 더욱 증폭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세기의 미남, 죽음 전부터 시작된 비극
알랭 들롱이 생전에 뇌졸중으로 건강이 악화되자, 그의 딸 아누슈카와 두 아들(안소니·알랭 파비앙)은 돌봄, 거주지, 의료 결정권을 두고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딸은 아버지를 자신이 거주하는 스위스로 모시려 했다. 그 이면에는 스위스의 낮은 상속세율(최대 4%)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반면 아들들은 아버지가 평생을 보낸 프랑스 저택에서 마지막을 보내야 한다고 맞섰다. 아들들은 “딸이 세금 문제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진 아버지를 조종하고 있다”며 고소까지 했다.
알랭 들롱의 사후, 이 싸움은 2라운드로 접어들었다. 딸에게 재산의 50%와 모든 작품의 저작인격권을 부여하는 유언장에 대해서, 지난 9월 아들들은 “아버지가 충분한 판단 능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작성된 유언장”이라며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현실판 <석세션>, 경영 철학이 충돌할 때
지구 반대편, 루퍼트 머독이 이끄는 글로벌 미디어 제국에서도 ‘왕좌의 게임’이 현실화됐다. 90대의 루퍼트 머독은 폭스뉴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으로 대표되는 자신의 보수적인 편집 노선을 이어갈 후계자로 장남 라클런을 점찍었다. 그러나 진보 성향의 차남 제임스를 비롯한 다른 자녀들은 이에 강력히 반발했다. 이들에게 상속은 단순한 재산 문제가 아니라, 미디어 제국의 ‘가치관과 방향성’을 결정하는 중대사였다.
이 지리한 싸움은 2025년 9월, 극적인 합의로 일단락됐다. 제임스를 포함한 세 자녀가 보유 지분을 포기하는 대신, 각각 약 11억 달러(약 1조5000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현금을 받는 조건이었다. 결국 장남 라클런은 경영권을 지켰지만, 가족은 사실상 돈으로 평화를 산 셈이다.
다른 점은 ‘돈’이 아닌 ‘가치관’의 충돌이었다. 머독 가문의 분쟁은 ‘재산’이 아닌, ‘기업’을 누가 계승할 것인가를 두고 벌어진 이념 전쟁이었다. 이는 가족기업의 승계가 단순한 부의 이전이 아니라, 창업주가 쌓아 올린 경영 철학을 넘기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소모적인 분쟁을 막으려면
재산의 규모가 다를 뿐, 앞서 살펴본 세기의 상속 분쟁에서 갈등의 본질은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다. 내가 떠난 후 남겨진 이들의 불행을 막기 위해서 다음과 같이 미리 준비할 것을 권한다.
첫째, 상속에 대한 나의 뜻에 대해 가족들과 소통하라. 왜 이렇게 재산을 분배하려고 하는지, 상속인들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에 대해 생전에 충분히 설명하고 소통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유언장의 존재 여부나 내용조차 상속인들에게 투명하게 공유되지 않을 경우 상속인들 간 법적 분쟁을 부추기는 결과가 될 수 있다. ‘그동안 그렇게 해 왔으니까, 알아서 이해하겠지’라는 안이한 생각은 상속인들을 길고 험난한 분쟁의 늪에 빠뜨릴 수 있다. 어느 누구도 나의 사망으로 이러한 결과가 발생하는 것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둘째,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기준을 세워 유언을 설계하라. 사전에 상속의 실질적인 기준을 세우고 합의하는 과정이 없다면, 상속인들은 유언에 대해 각자 자신의 잣대로 불공정함을 주장하게 된다. 기계적인 ‘n분의 1’만이 공정한 분배는 아니다.
사업을 잇는 자녀, 부모 부양을 맡은 자녀(기여분) 등 상속인들마다 고려해야 할 특별한 사정이 있을 수 있다. 기업 승계의 경우 머독 가문처럼 상속인들 사이의 가치관의 차이까지도 상속의 고려 대상이 될 수 있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기준을 세워 상속을 설계해야, 추후 상속인들 간의 ‘불공정한 상속’ 분쟁을 방지할 수 있다.
셋째, 건강할 때 전문가와 함께 ‘인생의 마지막 지도’를 그려라. 알랭 들롱의 사례는 급작스러운 건강 악화가 어떻게 분쟁의 도화선이 되는지 보여준다. 상속은 감정, 법, 그리고 세금이라는 세 개의 축으로 움직인다. 변호사, 세무사 등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법적 효력을 갖춘 유언장을 준비하는 것은 기본이고, 건강할 때 미리 의료 결정권과 재산 관리 권한을 지정하는 신탁이나 성년후견제도, 사전연명의료의향서까지 꼼꼼히 마련해 두는 것이 좋다. 이는 향후 상속인들 간의 갈등을 최소화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상속 분쟁은 한 가족의 역사를 부정하는 비극이 될 수 있다. 평생을 일궈 이룬 부와 명예가 자녀들에게 자칫 축복이 아닌 ‘저주의 유산’이 될 수도 있다. 자신이 떠난 뒤 남은 가족들이 함께했던 좋은 기억까지 상속받게 하는 것. 가족들 간의 불필요한 분쟁 발생을 사전에 방지해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모든 부모가 남겨야 할 진정한 유산일 것이다.
이수지 법무법인 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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