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자녀에게 재산을 미리 증여했다가 오히려 노후자금과 가족 관계 모두를 잃는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 ‘효도계약서’가 노후 보장과 상속 갈등 예방책으로 주목받지만, 단순한 서면 약속만으로는 완전한 안전장치가 되지 않기에 신탁 등과 병행한 법적 설계가 필요하다
[상속 플래닝]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들은 아파트를 팔지 말고 자신에게 증여해주면 아버지의 노후를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했다. 아들은 요즘 같은 시대에 아버지가 아파트를 주지 않으면 자신의 월급만으로는 아파트를 살 수 없으니 그 아파트를 달라고 했다.
나중에 마음 바뀌어도 복구 불가능
아버지는 아들의 간청에 마음이 약해졌고 아들에게 아파트를 증여해주었다. 그 후 아들은 아버지에게 매달 생활비로 200만 원씩을 지급했다. 그러나 손자가 태어나자 생활비 지급이 뜸해지더니 어느 날부터는 아예 생활비를 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생활비가 끊기자 당장 생활이 곤란해졌고, 아들에게 생활비를 다시 지급해 달라고 했다. 그러자 아들은 그렇지 않아도 말씀 드리려고 했다면서 손자도 태어나서 돈이 많이 드는데 베이비시터 비용을 대주지는 못할망정 생활비를 꼭 그렇게 받아겠냐고 했다. 아들 혼자 벌어서는 자기 가족 생계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그러면 원래 자기 노후자금이었던 아파트를 돌려 달라고 했다. 아파트를 돌려주면 팔아서 그동안 아들이 준 생활비는 다시 아들에게 주고, 남은 돈은 본인이 알아서 생활비로 쓰다가 죽고 남은 돈은 물려주겠다고 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아파트는 이미 줬으니 자식 지원해준 셈 치고 잊으라면서 부모로서 자식을 더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이렇게 돈, 돈 하면서 괴롭혀야 되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버지는 결국 자신이 거주하던 아파트에 주택연금을 설정해서 주택연금을 받았는데 그 아파트는 가격이 낮아 매달 받을 수 있는 돈이 너무 적어서 도저히 생활이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생활비와 아파트를 돌려달라는 문제로 다툰 다음부터 아들은 아버지와의 왕래마저 끊고 손주도 보여주지 않고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재산을 무상으로 증여해주면 나중에 다시 돌려받고 싶어도 재산을 되돌려 받을 수 없다. 간혹 증여 후 자녀가 배은망덕한 행동을 하면 증여를 해제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이는 정확한 내용이 아니다.
증여를 약속한 후 재산을 완전히 이전하기 전에 범죄를 저질렀거나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등의 사유가 있으면 증여를 해제할 수 있으나, 일단 증여재산이 완전히 이전된 후(예를 들면, 부동산 이전등기가 경료된 후)에는 해제할 수 없다. 즉, 증여 계약만 한 상태에서는 경우에 따라 해제가 가능하지만 증여가 완료된 후에는 해제가 어렵다.
효도계약서엔 구체적 내용 담아야
그러나 증여 계약을 체결할 때부터 자녀에게 일정한 의무를 이행할 부담을 지우고 의무를이행하지 않으면 증여 계약을 해제하고 재산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가능하다.
이러한 증여 계약을 부담부증여 계약이라고 하며, 최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효도계약서가 바로 이에 해당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재산을 주는 대신 효도할 것을 조건으로 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증여 계약을 해제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매월 1회 이상 함께 저녁식사를 하거나 매주 1회 부모의 집에 와서 시간을 보내거나, 생활비로 매달 얼마를 지급하는 등으로 요구하는 효도의 내용은 다양하다.
부모가 효도계약서를 작성하는 이유도 다양하다. 사례에서처럼 부모가 재산을 자녀에게 주는 대신 그에 상응하는 대가로 자신의 노후를 일정 부분 보장받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자녀에게 재산을 증여한 후 자녀가 이혼할 때를 대비해 이를 다시 돌려받을 여지를 남겨 두고 싶어서일 수도 있다.
효도계약서는 부담부증여 계약이다. 따라서 먼저 증여계약서를 작성할 때 이는 단순증여가 아니라 부담부증여라는 점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 물론 계약 명칭을 부담부증여라고 하지 않더라도 계약 전반을 살펴보면 부담부증여로 인정될 수 있다. 그러나 굳이 증여이냐 부담부증여이냐 그 다툼의 여지를 남겨 둘 필요가 없으므로 제목부터 정확하게 기재하자.
두 번째, 증여에 따라 자녀가 부모에게 부담하는 내용을 명확하게 기재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아버지의 노후를 최선을 다해 책임지겠습니다’ 하는 정도로는 부족할 수 있다. 생활비를 원한다면 매달 얼마를 언제 지급해야 할지 명시해야 한다. 생활비 외에 수술비 등 병원비나 요양비 지급도 포함하고 싶다면 이 부분도 명확하게 기재할 필요가 있다. 자녀가 부모를 지속적으로 방문하기를 원한다면 매월 몇 회 이상 방문하거나 함께 식사를 할지도 기재해 둘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증여계약서 제목도 단순증여가 아니라 부담부증여라는 점을 명시하고, 부담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계약이 해제된다는 점 역시 정확하게 기재해 둘 필요가 있다. 요즘에는 부모의 서면 동의 없이는 해당 증여재산에 관해 근저당권 등을 설정하지 않기로 한다는 특약을 넣기도 한다.
정리해보면, 효도계약서는 부담부증여 계약임을 명시하고 자녀의 효도 부담을 정확하게 기재해야 하며 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 증여 계약이 해제돼 증여재산을 반환해야 한다는 점을 잘 기재해 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랬다면 아들이 약속과 달리 아버지에게 생활비를 지급하지 않았을 때 아버지는 효도계약서 위반을 이유로 증여 계약을 해제하고 아들에게 아파트를 반환하라고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아들이 이미 그 아파트를 매각해 버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러한 경우 아버지는 아들에게 아파트를 돌려받지 못함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아들이 증여 계약 해제 전에 아파트를 매각해서 다 써 버리고 아들 명의의 재산이 전혀 없는 경우다. 아버지가 아들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판결을 받더라도 강제집행할 아들의 재산이 없으므로 아버지는 결과적으로 생활비를 지급받기 어렵게 된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아버지가 장래에 받을 생활비 지급청구권을 채권으로 해서 근저당권 등을 설정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부모 자식 간에 재산을 증여해주기로 하고 효도계약서까지 받은 상태에서 자녀에게 너를 믿을 수 없으니 근저당권까지 설정해 달라고 하기는 쉽지 않다.
설령 근저당권을 설정해주었다고 하더라도, 아들이 생활비를 앞으로도 잘 지급할 테니 아파트를 팔 수 있게 아버지의 근저당권을 말소해 달라고 요청하면 이를 거부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효도계약서를 잘 작성해 두었더라도 실제 이행에서는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효도 계약과 신탁 병행 가능
노후 대비와 재산 상속을 안전하게 하고 싶다면 효도계약서 외에도 신탁을 활용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신탁이란 자신의 재산을 수탁자에게 맡긴 다음 계약에 따라 관리, 처분하게 하고 그 수익은 자신이 지정한 수익자에게 지급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자녀에게 증여하면서 효도계약서 외에도 증여받은 재산을 신탁해서 관리할 것을 조건으로 걸어 둔다. 증여 계약과 동시에 신탁 계약을 체결해 증여한 재산을 신탁 회사에 신탁한 다음, 아들이 아버지에게 생활비를 연체하는 등 효도계약서를 위반하면 다시 재산을 반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효도 계약과 신탁을 병행하면 자녀가 효도 계약을 위반한 경우 소송할 필요도 없이 신탁 회사로부터 바로 재산을 다시 반환 받으면 된다.
이 사례에서 아버지에게 충분한 남은 재산이 있었다면 아들의 변심이 괘씸하기는 해도 크게 문제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아들에게 증여한 재산은 자신의 노후를 담보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재산 증여로 인해 생계에 곤란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면 효도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은 물론이고 신탁을 통해 자신이 죽기 전까지 노후를 보장받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양소라 법무법인(유)화우 자산관리센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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