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가 새로운 경제·투자 자산으로 부상하고 있다.철강·자동차·기후기술·탄소시장 전문가들이 참여해, 산업 전환의 현실과 과제, 탄소감축 기술과 시장기회, 투자 전략 방향을 종합적으로 논의했다.
[금융 시장 뉴 트렌드]
동아시아재단은 2024년 1월부터 1년 6개월여간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한 후 ‘EAF 프리미엄 리포트 2024-2025: 탄소는 돈이다’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번 좌담회는 해당 연구에서 제기된 핵심 메시지와 산업적 함의를 심화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새로운 성장의 축으로 떠오른 탄소 시장의 의미부터, 실제 산업 현장에서의 전략적 대응까지 폭넓게 논의됐다.
좌담회에는 자동차·철강·기후 기술·자발적 탄소 시장 분야에서 김태년 미래모빌리티연구소장, 이준호 고려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문승희 SK주식회사 AX·<기후 기술의 시대> 및 <에너지 비즈니스> 저자, 전완 한국기후변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이 참여했다.
- 왜 탄소가 돈인지, 그 의미를 설명해 달라.
김태년 미래모빌리티연구소장(이하 김 소장)
“자동차 산업에서 이산화탄소 감축은 중요한 이슈다. 내연기관 중심의 구조에서 전기차 산업 전환 과정에서 과거 글로벌 시장을 주도했던 현대차·기아도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전기차 시대의 주도권은 배터리 기술과 공급망을 장악한 중국이 가져가고 있으며, 미국과 유럽도 정책 혼선 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탄소 감축은 결국 ‘돈’과 직결된다. 이산화탄소(CO) 감축을 위해서는 에너지 전환을 해야 하며, 엄청난 투자가 필요하다. 또한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막대한 패널티를 부담해야 한다. 반대로 감축에 성공하면 탄소배출권을 판매해 수익을 얻을 수 있다. 테슬라는 이 구조를 가장 혁신적으로 활용한 기업으로, 다른 제조사에 탄소배출권을 판매해 2024년 한 해에만 약 27억6000만 달러(약 4조 원)를 벌어들였다. 이는 현대차·기아의 연간 순이익(약 12조 원)의 3분의 1에 달하는 규모다. 탄소는 이제 환경 이슈가 아니라 산업 경쟁력과 기업 수익을 좌우하는 경제 변수다.”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시장을 확대하거나, 효율을 높이는 대량 생산을 해야 한다. 여기에 최근 들어 새롭게 떠오르는 영역이 환경이다. 과거에는 시장 개척이나 기술 혁신이 성장의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환경이라는 새로운 축을 통해 경제적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유럽이 먼저 주창했고, 미국의 동참으로 전 세계적으로 탄소 시장이 확대됐다. 정권에 따라 부침은 있을 수 있지만, 이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적 흐름이다.”
“탄소는 단순한 규제의 대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회의 영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업과 산업은 탄소 감축을 통해 비용을 줄이는 것을 넘어, 이를 기후 기술과 연결해 삶과 산업 전반에 적용할 수 있다. 특히 철강, 수소, 제철 등 핵심 기술 분야에서는 국가가 전략적 기술로 지정하고 이전을 제한하면, 기술 격차가 생기면서 특정 국가나 기업이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밸류체인 관점에서 보면 중국은 태양광 관련 핵심 부품의 약 80%를 장악하고 있다. 이렇게 지배적인 플레이어가 시장을 주도하면, 탄소와 기후 기술은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전략적 자산이자 경제적 자원으로 작동할 수 있다. ‘기후 기술의 패권화’가 이미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탄소 시장 관점에서 탄소를 자산가치 측면으로 이해하려면 탄소 크레디트를 사고팔 수 있는 탄소 시장의 구조를 이해하면 된다. 탄소 시장은 크레디트를 판매하는 공급 측면과 크레디트를 구매하는 수요 측면으로 구분할 수 있다. 탄소 크레디트를 공급하는 입장에서는 온실가스 감축 사업에 투자한 대가로 자산 가치 관점에서 탄소 크레디트를 판매하고자 할 것이다. 반대로 탄소 크레디트가 필요한 수요처 입장에서는 환경 규제, 이해관계자 요구사항 등의 리스크 관리 차원으로 탄소 크레디트를 구매하고자 할 것이다. 탄소가 시장에서 거래되는 점에서 말 그대로 ‘돈’이 된다."
김 소장
“국내 전기차 수요가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는다. 기업과 정부의 책임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내연기관 엔진과 파워트레인 기술은 수만 개 부품으로 구성된 정밀 산업이지만, 전기차는 배터리와 모터 중심으로 단순화되면서 중국이 빠르게 기술을 따라잡을 수 있게 됐다. 국내 완성차 업체는 기존 조직과 연구원 대부분이 내연기관에 집중돼 있어 기술 전환 속도가 느리다. 유럽의 거대 기업들 역시 기존 엔지니어 조직의 전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국내 소비자가 전기차를 구매하도록 유도할 정책적 지원과 컨트롤타워가 충분하지 않아, 시장 활성화가 늦어지고 있다.”
이 교수
“탄소 시장이 활성화되려면 기본적으로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충분해야 한다. 이는 지정학적 조건에 크게 좌우된다. 북유럽 국가들은 수력 발전 비중이 50% 이상이고, 영국,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등은 바람의 세기와 풍량이 일정해 안정적으로 풍력 발전을 할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태양광·풍력 발전 조건이 제한적이어서 국내 신재생에너지 시장만으로 탄소 기반 경제를 확대하기 어렵다. 다만 한국은 수출 주도형 경제 구조를 갖고 있어, 유럽 등에서 신재생에너지 기반 정책이 시행되고 시장이 형성되면 이를 수출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코로나19 이후 유럽 기업들이 직원 출퇴근용으로 기아자동차의 전기차를 구매하며 현대·기아차가 유럽 시장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최근 원자력도 신재생에너지의 일부분으로 포함하는 경향이 높아지면서, 국내 원전 산업이 다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본다. 수소 산업의 경우 세계적 수요가 확대된 후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변화로 일시적으로 주춤했지만, 향후 2~4년 내 다시 시장이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한국이 수소 기술 개발에 성공하면 세계 시장에서 다시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김 소장
“자동차 산업의 전기차 전환도 곧 에너지 전환 문제와 직결된다. 현재 국내 전기 생산의 약 80%가 화석연료 기반이다. 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까지 30.2%로 확대하겠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어렵다. 만약 전기차를 화석연료 기반 전력으로 충전하면 CO₂ 배출이 문제가 된다. 국내에서 재생에너지 확대가 여의치 않기 때문에 대안으로는 소형모듈원전(SMR) 설치나 분산형 연료전지발전 활용이 필요하지만, 현재 국내 연료전지는 대부분 화석연료 기반이고, 그린 수소가 충분치 않아 CO₂ 배출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천연가스를 사용해 1톤의 수소를 생산하면 약 10톤의 CO₂가 발생한다. 정부는 2030년 전기차 450만 대 보급 목표를 제시했지만, 이에 따른 전력 공급 대책은 마련돼 있지 않다. 예컨대 450만 대를 충전하려면 13기의 원전이 필요하지만 설치와 안전 문제, 폐기물 처리 등 현실적 제약이 크다.”
문 매니저
“기업 입장에서는 탄소 규제와 인센티브, 즉 ‘당근과 채찍’ 전략이 중요하다. 배출권 거래제는 기업에 가장 큰 압력, 즉 채찍으로 작용하고 있다. 반대로 자발적 탄소 시장과 연계한 보상은 당근 역할을 한다. 기업이 탄소 감축 노력을 통해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다. 현재 SK, 삼성 등 대기업들은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하며 준비하고 있지만, 자발적 탄소 시장과 배출권 거래제를 연계하거나 해외 크레디트를 활용하는 플랫폼 구축은 충분히 진전되지 않아 고착화된 상황이다. 따라서 기업에 숨통을 틔워줄 수 있는 핵심 과제는 이 두 시장을 효과적으로 연계하고 활용하는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 교수
“현재 환경부에서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와 관련해 기업들에 과도한 부담을 주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수출 주도의 구조를 갖고 있는데, 최근 글로벌 시장이 막히면서 기업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마치 병원에 입원한 환자에게 갑자기 엄청난 부담을 지우는 것과 비슷하다. 따라서 NDC를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시기상 적절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정부는 부처별로 CO2 감축 목표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국가 전체적인 경쟁력과 산업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 산업에 부담을 주는 대신, 새 건축물 설계, 대중교통 확대 등 국가 차원의 CO2 절감 방법을 먼저 추진하는 것이 현 시점에서는 더 합리적이다.”
전 연구원
“NDC를 설정할 때 정부 입장에서는 과거보다 강화된 목표를 제출할 수밖에 없다. 다만 산업 현황과 에너지·시장 여건을 반영해, 현실적으로 줄일 수 있는 부분에서 감축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산업계와 정부가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이다. 또한 탄소 시장을 기반으로 하는 국제 감축 사업을 하나의 감축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현재 2030 NDC 부문별 감축 목표에는 국제 감축 사업을 활용해 3750만 톤을 감축하겠다는 목표가 포함돼 있다. 앞으로도 국제 감축 사업은 2035, 2040, 2045 NDC 목표 달성에 기여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 탄소 경제가 활성화되기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일까.
문 매니저
“기업이 스스로 탄소 감축을 실천하도록 장려하는 것이 곧 동력이 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 이후 대내외 경제 상황으로 인해 일부 사업 기회가 축소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주요 대기업들은 규제 대응과 수출·내수 상황을 고려해 탄소 감축 준비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 현재 자발적 탄소 시장 플랫폼에서는 기업의 감축 방법론과 검증받은 탄소 크레디트가 공시되고 있으나, 일부 정체된 부분이 존재한다. 따라서 규제와 리워드 성격을 연결하고, 산업의 물꼬를 트는 방식으로 국가 NDC 목표 달성과 연계될 수 있도록 논의가 필요하다.”
김 소장
“국가, 기업, 개인의 이해관계는 서로 다르다. 국가는 글로벌 환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NDC 등 정책을 추진하지만, 기업은 수익 창출이 최우선이므로 환경 투자에는 큰 비용이 들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대부분 기업은 정부 규제를 충족하기 위해 CO2 감축, 전기차 보급 목표 등 정책을 따른다. 소비자도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비용 부담 때문에 친환경 제품 구매를 주저한다. 따라서 전기차 구매 등 친환경 전환을 유도하려면 기업은 내연기관차 대비 가격 경쟁력이 있는 친환경차를 개발해야 하며 정부는 보조금 등으로 소비자의 비용 부담을 완화하는 등 구매 유인 정책이 필요하다. 결국 기업은 장기적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전기차·친환경 산업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다. 정부와 기업이 협력해 현실적이고 획기적인 실행안을 만들어야 한다.”
전 연구원
“기업과 정부가 함께 나아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현재 기업 경영도 과거 주주 중심에서 이해관계자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즉, 기업은 주주뿐 아니라 지역사회, 투자자, 정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시점이다. 탄소 중립 선언은 글로벌 기업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국내 기업도 점차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선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구체적인 목표 설정과 이행 과제를 통해 실제 탄소 중립 달성에 힘을 쏟아야 한다. 이를 위해 내부 온실가스 감축이 최우선이지만, 감축이 어려운 부분은 자발적 탄소 시장을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발적 탄소 크레디트을 구매하거나 배출 상쇄를 통해 전 지구적 감축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국내 기업들도 탄소 시장을 적극 활용하고, 관련 온실가스 감축 사업에 투자하며 참여를 확대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문 매니저
“대한상공회의소는 2023년 1월 국내 실정에 맞는 탄소감축인증 체계를 구축하며 자발적 탄소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탄소감축인증센터(KCCI Carbon Standard·KCS)를 발족했다.
인증 및 검증 절차를 더 고도화하고, 신뢰성있게 구축하기 위한 단계로, 코르시아(CORSIA: 국제 항공 탄소 감축 및 상쇄 제도) 등록 절차를 밟고 있는 중이다. 실제로 감축된 결과물이 크레디트로 적절히 발행됐는지에 대한 검증은 신뢰성 있는 크레디트로 인정받기 위한 중요한 과제로서 그 중요성과 효용에 대한 논의는 지속적으로 이어가게 될 것이다. 인증·검증에 대한 절차와 온실가스 감축 방법론에 대한 전문적인 기준 및 절차에 대한 공론화가 충분히 이루어져야만 단체와 시장이 더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교수
“탄소 시장의 성장을 위해서는 핵심적으로 ‘탄소 감축 기술’이 필요하다. 과거 납이나 육가크롬 같은 환경 유해 물질을 사용한 제품은 지금은 대부분 국가에서 규제로 인해 생산과 판매가 불가능하다. 이는 기술 혁신이 없으면 시장 접근 자체가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철강 분야에서 수소 기반 제철 기술이 상용화되면, 기존 방식의 철 생산은 글로벌 규제로 제품화가 어려워지고, 이를 선점한 국가가 전 세계적인 주도권을 갖게 될 것이다. 따라서 현재 있는 탄소 시장을 활용하는 것뿐 아니라, 새로운 탄소 시장을 만들 수 있는 원천기술 개발에 국가 차원의 투자가 필요하다. 특히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은 향후 국가 경쟁력과 경제적 기반을 좌우할 수 있는 핵심 기초 기술이다.”
문 매니저
“수소환원제철은 기후 기술에서 가장 각광받는 기술이기도 하다.”
- 한국형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같은 정책적 장치가 필요할까.
이 교수
“자동차 분야에서는 전기차 관련 혜택을 한국 기업이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중국 기업이 가져가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한국형 IRA와 같은 제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김 소장
“우리나라는 미국과 상황이 조금 다르다. 우리는 중국 의존도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과거 사드 사태 때 요소수 부족으로 디젤차가 멈춘 사례처럼, 중국 의존도가 산업 운영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미국처럼 차별적 대우를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본다. 정부도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지를 고심하고 있다.”
- 탄소와 관련해서 핵심 기술, 유망한 투자 분야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이 교수
“수소환원제철은 올해 예타안이 통과되고 정부 예산에도 반영돼, 국회를 통과하면 내년부터 본격적인 과제가 시작된다. 다만,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 투자가 곧바로 2030년까지 탄소 감축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술 개발과 상용화는 별개의 과정이다. 개발된 기술을 상용화하려면 시간과 추가 과정이 필요하다. 그 대신, 전기차 전환 과정에서 하이브리드차가 각광받는 것처럼, 수소환원제철의 중간 단계 기술도 주목하고 활용할 필요가 있다. NDC에서 CO2 배출 저감은 기업의 목표가 아니라 국가의 목표다. 그러므로 국가가 그 비용을 부담하고, 특히 국가에서 발주하는 공공 영역 사업에 이러한 친환경 기술로 생산된 제품을 우선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그래야 기술이 완성됐을 때 시장이 열린다. 생산량이 늘어나면 기업들도 가격을 줄일 여지가 생긴다. 이러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의 마중물이 필요하다.”
문 매니저
“국가 전체 예산에서 기후 기술에 투자되는 비중은 0.3%에 불과하다. 다른 글로벌 국가들이 1~2%를 투자하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작은 규모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태양광과 해상 풍력에 대부분의 예산이 투여되고 있어, 다른 기후 기술에 투자할 여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우리나라가 클린테크(clean tech), 카본테크(carbon tech), 에코테크(eco tech), 푸드테크(food tech), 지오테크(geo tech) 등 5대 기후 기술을 육성한다는 계획인데, 각 영역의 대표적인 분야에만 투자한다고 해도 예산이 부족할 것이다. 재원을 확대해야 하고, 기업이나 스타트업, 연구소 등에꾸준히 지원하며 상용화까지 긴 호흡으로 이끌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 소장
“기후 기술은 우리나라 미래와 직결된 분야이고, 탄소는 곧 경제적 자원이다. 현재 정부의 기후 기술 예산 비중은 0.3% 수준라면 이 비중을 10% 수준으로 늘려서 획기적인 기술 개발을 이뤄내야 한다.”
이 교수
“기후 기술은 단순히 연구실에서 끝나는 기술이 아니라, 상용화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돼야 하는 가장 첨단 기술이다. 따라서 대기업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기후 기술 프로젝트가 정부 목표 달성을 위한 것임에도, ‘왜 대기업에 예산을 투자하느냐’는 질문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정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대기업의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고, 그에 필요한 자금은 당연히 정부가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다. 실제로 미국, 일본, 유럽에서도 수소환원제철 기술 같은 핵심 기후 기술은 대부분 정부 주도로 지원된다. 이번 국내에서 추진되는 수소환원제철 기술 예산을 보면, 총 8000억 원 규모인데 그중 정부 지원은 3000억 원 정도다. 기업들과 논의해 보면 8000억 원조차도 충분하지 않은 수준이다. 기후 기술과 공공 영역에서의 기술 개발을 논할 때, 이를 수혜받는 주체를 단순히 대기업으로 보는 시각은 버릴 필요가 있다. 실제 수혜의 주체는 국민이며, 이러한 기술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다.”
김 소장
“우리나라 대학 연구원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현재 대학에서 석·박사급 전문가를 충분히 양성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기업이 정보기술(IT)이나 자율주행 분야의 전문 인력을 거의 독점해 버린다. 그 결과 중소기업들은 필요한 전문 인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기술 개발과 혁신에서 뒤처지게 된다. 또한 정부가 공적 자금을 들여 개발한 기술도 중소기업과 공유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전기차 분야를 포함해 일부 중소기업은 기술 의존도가 높고 중국 기술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업할 수 있도록 기술 공유와 인력 양성을 지원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
- 투자했을 때 우리가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분야는 무엇인가.
김 소장
“자동차 분야에서 수소·전기차 기술은 장기적으로 상당한 시장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수소전기차는 승용차보다는 상용차 쪽에서 활용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그룹은 이미 경쟁력 있는 수소 트럭을 개발했으며, 글로벌 기술 수준에서도 도요타와 동등하게 발전해 왔다. 배터리 기술 측면에서도 국내 기업이 강점을 가지고 있다.”
이 교수
“우리가 강점을 가진 분야 중 하나가 바로 배터리다. 연구실 수준에서 만드는 것은 아이디어 구현에 불과하고, 누구나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싸게, 대량으로 만들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전고체 배터리도 연구실에서는 만들 수 있지만, 실제로 값싸게 상용화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없다. 토요타가 개발 후 상용화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배터리와 관련해 LG에서 개발한 기술 중 하나는 건식 기술이다. 기존 배터리는 액체 솔루션에 원료를 섞어 바르는 방식으로 생산되는데, 이는 에너지 소모가 크다. LG는 액체 대신 고체 파우더와 폴리머를 혼합해 생산함으로써 원가를 낮추고 생산효율을 높였다. 또 다른 기술은 미디움 망간 전지로, 기존보다 비싼 원료 사용을 줄이고 가격 경쟁력을 높인 형태다. 많은 회사가 이 아이디어를 가졌지만 실패한 반면, LG가 세계 최초로 생산을 하게 됐다. 삼성, SK 등 주요 대기업들이 가진 경쟁력 있는 기술이 상당하다. 이런 기술력은 우리 기업이 가진 차별성이다. 현대차의 경우 배터리 자체를 제조하는 것은 아니지만, 배터리 조립 후 운행 과정에서 수명이나 파손 여부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런 배터리 매니지먼트 시스템(BMS) 분야에서 현대차는 양질의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고, 국내 배터리 3사는 제조 기술 면에서 뛰어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문 매니저
“에너지저장장치(ESS) 분야도 올해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ESS가 단순히 배터리 팩으로 자동차에만 탑재되는 게 아니라, 기관망 전력 활용까지 확대되고 있다. 최근 '2025 기후산업국제박람회(WCE 2025)'가 열렸는데, 스탠다드 에너지라는 스타트업 기업에서 바나듐 이온 배터리를 기반으로 상용화 실증을 진행하는 사례를 볼 수 있었다. 단순한 연구실 수준이 아닌, 실제 실용화 단계로 기술이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기후 기술을 개발하는 신생 기업들의 등장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교수
“바나듐은 원료 확보가 어렵고 시장가격 변동도 큰 자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SK의 석유화학 공정에서 나오는 폐촉매를 재활용해 바나듐을 회수하는 기술과 공정을 갖추고 있다. 이를 통해 배터리용 바나듐뿐 아니라, 수소 저장용 합금 개발에도 활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바나듐 공급과 활용 측면에서 최적화된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문 매니저
“가장 관심 있게 보는 분야는 다이렉트 에어 캡처(DAC)와 이산화탄소 포집·저장·활용(CCUS) 분야다. SK그룹 내에서도 석학들과 함께 산업 간 협업 체계를 구축해, CCUS 관련 흡착 물질을 개발하고 이를 전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산업 전반에서 CCUS 성공 사례를 만들고자 준비하고 있다.”
- 향후 5년 후 기후 기술 관련 투자 키워드를 꼽아 본다면.
이 교수
“철강, 자동차, 배터리 세 영역이다. 다만 최근 인공지능(AI) 시장이 워낙 크게 주목받다 보니, 에너지 관련 시장이 상대적으로 가려져 보이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여전히 중요한 투자 기회가 존재한다.”
김 소장
“배터리가 투자 관점에서는 단기적으로 변동성이 크지만, 장기적으로는 여전히 유망하다고 본다. 테슬라 메가팩처럼 ESS에서도 수익 창출이 가능하지만, 고성능 전기차에 사용되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높은 반면 화재 위험성이 있어 BMS가 잘 갖춰져야 한다. 안전성을 고려하면 리튬 인산철 배터리(LFP)나 소듐 이온 배터리(SIB) 등 다양한 대체 배터리 개발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이 교수
“미국에서는 AI 수요로 데이터센터가 지속적으로 증설되고 있다. 데이터센터가 증설될수록 ESS 분야가 더욱 각광받고 있다. 철강 분야를 보면 단기적으로는 어려워 보이지만, 향후 2년 내 극적인 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개발 중인 수소환원제철 기술은 전 세계에서 다른 나라가 따라올 수 없는 기술이다. 한국 기술은 철광석 원료의 약 60% 이상을 활용할 수 있어, 글로벌 시장에서 앞서 나갈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전 연구원
“지금 자발적 탄소 시장에서 고품질 크레디트로 평가받는 감축 기술은 제거 기술이다. 공기 중 CO2를 직접 포집하는 DAC 기술이나, 산업 공정에서 발생하는 CO2를 포집해 활용하거나 저장하는 CCUS 기술 같은 온실가스 제거 사업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제거 기반 프로젝트는 투자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프로젝트에서 발행된 크레디트은 회피 크레디트보다 프리미엄이 붙어 자발적 탄소 시장에서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볼 때, 투자자 입장에서는 제거 기반 온실가스 감축 기술을 주요 투자 대상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 소장
“탄소 관련 투자에서 주의해야 할 부분 중 하나는 그린워싱이다. 기업들이 친환경 제품을 만들겠다, 탄소 감축을 위해 투자하겠다 말하지만 실제 투자금액이 전체 수익 대비 극히 미미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친환경 기업이라고 광고하는 아람코는 관련 투자가 전체 수익의 1%밖에 안 된다고 한다. 실질적인 친환경 활동으로 인정받으려면 최소 10% 수준의 투자가 필요하며, 국내 기업 중에서도 실제 투자 규모와 실행력이 의심스러운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에, 투자자 입장에서는 기업의 행동과 실적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전 연구원
“국내 배출권거래제에서는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기업들을 할당 대상 업체로 지정해 국가가 관리하고 있다. 이 제도에서는 유연성 기제로 상쇄를 허용하고 있으며, 3차 계획 기간 기준 상쇄배출권 사용 한도는 5%다. 즉, 국내 배출권거래제에서는 할당 대상 업체가 무한정으로 상쇄하는 것은 제도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 마무리 발언 부탁한다.
김 소장
“전기차 관련해서는 현재 정부 규제가 상당히 복잡하다. 국토교통부, 기후에너지환경부, 산업통상자원부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증과 시험을 요구하다 보니, 신차 출시까지 약 1년이 걸리기도 하고, 출시 시점에는 이미 구형 모델이 되는 경우도 있다. 기존 법률이 내연기관차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어 전기차와 배터리 관련 규제까지 중복되기 때문에, 전기차에 대해서는 규제를 단순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정부 지원은 전기차 위주로 확대돼야 하고, 하이브리드나 경차 등 내연기관 혼합형 차량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친환경차라는 점을 고려해 자동차세를 낮게 유지하는 것도 당연한 조치다. 한편, 미래 모빌리티 관련 특별법이 난립하면서 기존 법과 상충되는 경우가 많다. 기업들이 법 체계를 이해하고 준수하기 어렵기 때문에, 법을 단순화하고 규제를 최소화하는 방향, 즉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전기차 보급이 늘어나면 세수가 감소하는 문제도 있어, 세수 중립을 위해 전기차 효율, 전기 생산 과정에서의 CO2 배출량, 신재생에너지 사용 비율 등을 고려한 차등화 정책도 함께 검토돼야 한다.”
이 교수
“뉴턴이 ‘내가 멀리 볼 수 있었다면, 그것은 거인의 어깨에 올라탔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듯이, 지금 경제 상황은 굉장히 복잡하고 앞을 보기 어려운 환경이다. 멀리 보기 위해서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야 하는데, 현재 우리가 주목할 수 있는 영역, 즉 환경의 거대한 흐름에 올라타면 단기적으로 혼란스러워 보이는 것들도 장기적 시야에서는 명확히 보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정부 정책도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추진하고, 기업들도 선제적 투자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면 좋겠다.”
전 연구원
“국내 자발적 탄소 시장이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공급자와 수요자가 균형 있게 맞물려야 한다. 현재 공급 측면은 대표적으로 팝플과 탄소감축인증표준에서 사업 등록 및 크레디트 발행 실적을 쌓고 있는 반면, 수요 측면에서는 크레디트 거래가 활발하지 않은 실정이다.따라서 정부 입장에서는 자발적 탄소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수요자들을 독려하고 활성화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정책 방안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시장이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장기적인 탄소 감축 목표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문 매니저
“기후 산업과 관련해 보면, 아직도 ‘비용이 많이 든다’거나 ‘나의 일은 아니다’라는 개인적·기업적 고정관념이 남아 있다. 이러한 생각들은 산업 전반에서 변화를 늦추는 요인이 되고 있다. 자동차 산업에서도 내연기관과 전기차 간 이해관계, 고로에서 전기로 전환할 때의 이해충돌 등 다양한 문제가 존재한다. 따라서 탄소와 기후 문제를 바라보는 개인, 기업, 정부 모두가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만 실질적인 변화와 산업 발전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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