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전통과 현대가 동일한 호흡으로 움직이는 도시다. 브레게는 이 미묘한 균형을 오래전부터 주목해왔다. 올해 창립 250주년을 맞이한 브레게는 이번에 서울에서 레인 드 네이플 컬렉션의 새로운 장을 펼친다. 장식이 아닌 본질, 과시가 아닌 깊이. 시간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그 안에서 고요하게 빛나는 아름다움을 들여다보는 순간이다. 이에 서울을 방문한 그레고리 키슬링(Gregory Kissling) 브레게 CEO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CEO 인터뷰]
“지금 서울은 전 세계에서 가장 생동감 있게 움직이는 도시 중 하나다. 그리고 한국은 시계를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문화와 장인 정신까지 함께 바라보는 시장이다. 시계를 좋아한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의 도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깃든 철학, 손끝의 온기, 그리고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이번 방문은 브레게의 250주년을 기념해 새롭게 공개하는 ‘레인 드 네이플’ 컬렉션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총 일곱 가지 레퍼런스로 구성된 새로운 250주년 기념 모델은 브레게가 여성의 손목 위에서 시간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대한 대답이자 한국 고객들이 오랜 시간 사랑해온 상징적 작품이기도 하다. 이 새로운 챕터를 처음 공개하는 뜻깊은 자리를 축하하기 위해 서울에 왔다. 이 도시의 감각과 숨결 속에서 브레게가 준비해온 새로운 순간을 함께 맞이하기 위해.”
창립 250주년이라는 시점에서 브랜드를 이끈다는 것이 부담이 되었을 것 같다.
“부담보다는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브레게는 1775년 창립자 아브라함-루이 브레게가 파리에 첫 공방을 연 이래 250년 동안 단 한 해도 멈추지 않고 기술과 미학을 발전시켜왔다. 이 ‘끊김 없는 연속성’이야말로 브레게의 무게이자 자부심이다. 창립 2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단순히 과거를 보여주는 시간이 아니라 브레게의 250년 여정을 온전히 다시 이야기하는 한 해로 계획했다. 파리에서 시작해 파리로 돌아오는 월드 투어 여정 속에서 현재와 미래를 함께 이야기하고자 한다. 올해 초 브레게가 처음 자리 잡은 파리에서 시작해 브랜드 역사상 중요한 순간과 의미를 지닌 도시를 차례로 방문하며 창립 250주년 기념 모델을 선보이고 있다. 뉴욕에서는 브레게 항공기의 첫 번째 대서양 횡단을 기리는 타입 XX 컬렉션을, 제네바에서는 아브라함-루이 브레게의 투르비용 특허를 기념한 미스테리어스 플라잉 투르비용을, 그리니치 표준시가 정립된 런던에서는 마린 오라문디 5555를 발표했다. 그리고 이번 서울에서 레인 드 네이플을 공개한 이유 역시 이 컬렉션이 지닌 섬세함과 감성을 가장 깊게 이해해온 시장이기 때문이다. 브레게의 이야기는 방대하고 깊어 하루, 하나로 요약할 수 있는 역사가 아니다. 250년은 수많은 장인의 손길, 시대 변화, 그리고 그 자체로 하나의 문명과도 같은 층위를 지녔다. 브레게의 250년은 하나의 점이 아니라 지속되는 선(線)이다. 그리고 그 선은 앞으로도 조용히, 단단하게 이어질 것이다.”
한국 시장은 브레게에 어떤 의미인가.
“한국은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미래를 향해 열린 시장이다. 브레게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과거를 모방하지 않고, 전통 위에서 혁신한다.’ 한국은 명품을 평가할 때 디자인이나 가격보다는 장인 정신, 완성도, 서사를 먼저 생각한다. 시계 역시 마찬가지다. 브레게는 250년 동안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은 혁신의 역사를 지닌 브랜드이며, 한국은 과거를 모방하는 브랜드가 아닌 전통 위에서 새로운 시대를 만드는 것을 선택한다. 전통과 현대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그 미묘한 균형을 가장 깊이 이해하는 시장이기에 한국은 브레게에 매우 특별하다.
“레인 드 네이플 컬렉션은 나폴레옹 1세의 동생이자 나폴리 여왕 카롤린 뮤라가 아브라함-루이 브레게에게 의뢰한 여성용 손목시계에서 시작됐다. 아쉽게도 도면은 남아 있지 않지만, 퀘드올로지 공방의 기록을 통해 특유의 타원 형태와 워치메이킹 역사상 최초로 여성을 위해 디자인된 손목시계라는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번 250주년 기념 모델은 이 전통 위에 주얼리와 타임피스의 균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결과다. 레퍼런스 9935는 36.5×28.5mm 케이스에 블루 아벤추린 글라스, 머더오브펄, 풀 파베 세팅 다이아몬드 다이얼로 선보인다. 특히 블루 아벤추린 글라스 다이얼은 깊이를 더하기 위해 아벤추린 글라스 아래에 얇은 타히티산 머더오브펄을 깔았다. 덕분에 별빛 가득한 몽환적 밤하늘을 만들어냈다. 살짝 위로 솟은 머더오브펄로 완성된 달 위에는 새로운 ‘비밀 서명’이 은은하게 새겨져 있다. 새로운 537L2 칼리버는 플래티넘 로터 위에 정교한 쁘띠 트리아농 기요셰 장식으로 미학적 완성도를 높였다. 반면 레퍼런스 8925는 33×25mm의 보다 작은 비율에 브레게 골드 브레이슬릿과 섬세한 다이아몬드 세팅을 더해 손목 위에서 우아하면서도 확실한 포인트를 준다. 머더오브펄, 블랙 아벤추린 글라스, 브레게 골드로 구성된 다이얼과 오프센터 구조는 레인 드 네이플 고유의 감각을 그대로 이어간다. 모든 모델의 백케이스에 퀘드올로지 모티프 기요셰 패턴과 함께 250주년 기념 인그레이빙을 새겼다.”
“한국 고객들은 시계를 하나의 ‘시간을 담는 오브제’로 바라본다. 그 안에 깃든 이야기, 손길, 정신까지 함께 느낀다. 예를 들면, 레인 드 네이플 컬렉션의 유려한 타원형 케이스는 자기만의 시간을 품고자 했던 한 인물의 기억과 시대를 담은 상징이다. 한국 고객들은 그 섬세한 디자인의 유래와 문화적 맥락을 놀라울 만큼 정확하게 이해하고, 시계를 통해 자신의 감각과 개성을 표현한다. 마린 컬렉션 역시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브레게가 프랑스 왕립 해군의 공식 시계 제작사였던 역사적 배경은 정확성과 신뢰, 그리고 기술적 깊이에 대한 한국 고객의 기대와 맞닿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브레게는 제품만이 아니라 그 시계를 만들어내는 공방의 손길과 숨결까지 공유한다. 이는 브랜드의 자존심이고, 고객과의 약속이자 신뢰를 구축하는 핵심이다. 이 관계는 구매 이후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이커머스 시장은 점점 확장되고 있다.
“브레게는 이커머스 시장에 진출하지 않고 있다. 브레게가 전하고자 하는 가치는 단순히 제품을 ‘구매’하는 경험을 넘어 브랜드의 역사와 기술, 장인 정신을 직접 이해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히려 직영 부티크를 확장하는 데 집중한다. 브레게는 단일 모델에 의존하지 않는 브랜드다. 각 컬렉션이 서로 다른 기원과 철학을 지녔고, 이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고객과 충분히 시간을 갖고 소통할 필요가 있다. 직영 부티크는 브랜드의 세계를 가장 온전히 경험할 수 있는 장소다. 시계의 구조, 마감, 장식, 기술에 담긴 의도까지 직접 보고, 착용하고,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곳이다. 물론 소통하는 방식은 계속 변화하고 있다. 우리는 소셜 미디어와 디지털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브랜드의 이야기와 미학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고 있다. 다만, 선택의 순간만큼은 여전히 면대면의 경험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시계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시간을 함께 쌓아가는 관계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관계는 여전히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고객들은 점점 더 높은 하이엔드를 원한다. 브레게가 제시할 새로운 기준은 무엇인가.
“브레게가 가진 가장 큰 힘은 ‘새로운 무기’가 아닌,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안에 흐르고 있는 진정성이다. 무언가를 과장하거나 새롭게 꾸며낼 필요는 없다. 250년 동안 이어온 발명, 손끝의 시간, 그리고 역사 자체가 브레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브레게의 시간은 늘 고요하고 단단한 속도로 흘러왔다. 과시적 화려함이 아닌 깊이, 한 번의 발명으로 시대를 바꾸는 본질적 가치, 그리고 장인의 손끝에서 천천히 완성되는 움직임. 우리의 슬로건 ‘Crafting Emotions for 250 Years, One Invention at a Time’은 단순한 문구가 아니라 브레게가 존재하는 방식 그 자체다. 브레게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다. 우리가 걸어온 길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시계 한 점 안에 담긴 철학, 기요셰의 촉감, 공방의 호흡, 그리고 시간을 대하는 태도를 고객과 직접 연결하는 것이다. 앞으로의 하이엔드는 더 크거나 화려한 것이 아니라 시간을 견디는 진정성이며, 브레게는 바로 그 기준을 이미 지니고 있다.”
앞으로 브레게가 보여줄 미래는.
“브레게의 시간은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의 유산은 반복을 위한 자료가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아름다움과 기술을 탄생시키는 영감의 원천이다. 전통과 혁신은 브레게에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닌 한 방향으로 흐르는 두 개의 축이다. 브레게는 모든 시계를 자체적으로 제작할 수 있는 제조 역량을 갖추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만들 수 있다’는 의미를 넘어 브랜드의 철학이 형태를 얻고 시간 속에서 생명력을 갖는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도 기술과 디자인에서 꾸준히 혁신을 이어갈 것이며, 각 제품군을 시대에 맞게 확장할 것이다. 또한 브레게에 고객과의 관계는 구매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순간이 시작이다. 우리는 수십 년, 혹은 수백 년이 지난 시계도 다시 되살릴 수 있는 복원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것은 애프터서비스를 넘어 ‘시간을 지켜내는 책임’이자 브레게가 오래도록 이어온 지속가능성의 철학이다. 브레게는 수명을 다한 시계를 만들지 않는다. 시간을 견디는 시계, 세대를 넘어 전해질 유산을 만든다. 변치 않는 가치 위에서 끝없이 진화하는 것, 그것이 브레게가 앞으로 보여줄 미래다.”
브레게를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Legacy in Motion. 우리는 전통을 단단히 품고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고, 혁신하는 브랜드다. 브레게의 정체성은 ‘과거의 가치’와 ‘미래의 비전’이 함께 흐르는 것이다. 과거를 기반으로 하되, 시선은 언제나 미래로.”
- 그레고리 키슬링 CEO는…
스위스 뇌샤텔 출신으로 스와치 그룹에서 20년 넘게 경력을 쌓아온 마이크로 기술 엔지니어다. 그는 MBA와 럭셔리 경영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까르띠에의 무브먼트 설계자로 근무한 이후 모든 칼리버의 기술적 책임을 맡았다. 2004년, 오메가의 프로덕트 매니저로 합류했고, 2008년 프로덕트 매니지먼트 책임자로 근무한 후 2014년 하우스의 경영진에 합류했다. 2022년에는 스위스 비엘에 본사를 둔 하우스 부사장으로 임명돼 제품 개발을 총괄했다. 그는 기술력과 미적 감각, 리더십을 인정받아 2024년 10월 1일부로 브레게 CEO로 취임했다.
양정원 기자 neiro@hankyung.com | 사진 브레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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