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산악, 1967년, 222.5x91.5(x7)cm, 국립현대미술관
김병기, 산악, 1967년, 222.5x91.5(x7)cm, 국립현대미술관
삼성그룹 故 이건희 회장의 기증품이 미국 워싱턴 D.C.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에서 첫 해외 전시를 시작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은 15일(현지시간)부터 내년 2월 1일까지 특별전 <한국의 보물: 모으고, 아끼고, 나누다>를 공동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이건희 컬렉션 국외 순회전의 첫 번째 단계로, K-컬처 열풍 속에서 한국 고유 문화유산의 저력을 본격적으로 세계에 소개한다.

이번 전시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국보 7건과 보물 15건을 포함해 총 172건 297점의 한국 전통 문화재, 국립현대미술관이 보유한 박수근·김환기·이응노 등 대표 근현대 미술품 24점, 모두 205건 330점이 출품된다. 미국 연방정부의 일시적 셧다운으로 개막이 한 차례 연기됐으나, 업무 재개 직후 전시가 정상 개막됐다.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은 1923년 개관 이래 미국에서 가장 먼저 한국미술을 소개한 기관으로 꼽힌다. 이곳에서 이건희 회장 기증품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한국 특별전이 열린 것은 한국 문화외교의 의미 있는 성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박물관의 탄생 배경이 ‘개인의 수집 → 국가 기증 → 공공 향유’라는 흐름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이건희 컬렉션의 기증 정신과도 자연스럽게 맞닿는다.
2021년 이건희 회장 유족은 고인의 수집품 약 2만 1천여 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1천여 점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다. 두 기관은 지난 4년간 기증품 목록집·도록 발간, 상설 및 특별전 개최를 이어오며 국민적 환호 속에서 누적 262만 명 관람 기록을 세운 바 있다. 이번 전시는 그 여정이 해외로 본격 확장된 사례다.
이응노, 군상, 1985년, 167×68cm, 국립현대미술관
이응노, 군상, 1985년, 167×68cm,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는 한국의 수집 문화를 보여주는 책가도 병풍으로 시작해, 삼국시대 불교미술부터 고려청자, 조선 회화, 근현대 미술까지 한국미술의 장대한 흐름을 아우른다.
가장 주목되는 전시품은 정선의 걸작 <인왕제색도>, 조선 회화의 절정을 보여주는 김홍도 <추성부도>, 민간과 왕실의 미감을 담은 책가도, 왕실 권위를 상징하는 일월오악도, 그리고 한글 창제 정신과 불교 신앙이 응축된 <월인석보> 등이다.

불교미술에서는 삼국시대 금동보살삼존입상, 고려 대방광불화엄경 권15, 조선의 사직사자도·법고대 등이, 도자 부문에서는 고려청자 운학문 매병, 분청사기 묘지명, 조선 백자 사발과 청화백자 등이 전시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박수근·이응노·김환기·박생광·백남순 등 20세기 한국미술의 전개를 보여주는 대표작 24점을 선보인다. 특히 김병기의 6m 연작 <산악>, 백남순의 8폭 병풍 <낙원> 등 대형 작품도 함께 전시되며 한국 근현대미술의 다양성과 실험성을 소개한다.

이번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추진하는 ‘한국실 지원 사업’의 결실이기도 하다. 박물관은 미국과 영국 주요 박물관과 한국실 협약을 체결하며, 장기적 협력 체계를 구축해 왔다.
워싱턴 D.C. 전시는 내년 2월 1일 폐막 후 미국 중서부의 시카고박물관으로 이동해 3월 7일부터 7월 5일까지, 이후 9월에는 영국 런던의 영국박물관으로 이어진다. 순회 과정에서 지역 관람객의 특성에 맞춰 일부 구성 및 연출을 새롭게 선보일 계획이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한국문화의 창의성과 예술성을 전 세계에 알리는 뜻깊은 자리”라며 “한국의 역사·정신·미적 가치가 세계인과 소통하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 역시 “전통을 기반으로 역사적 다양성과 혼성성을 수용해온 한국미술의 흐름을 글로벌 무대에서 소개하는 자리”라고 의미를 더했다.

K-팝·K-드라마로 한국 문화에 친숙한 미국 관람객들은 이번 전시를 통해 K-컬처의 ‘뿌리’를 이루는 전통문화와 미술의 깊이를 경험하게 된다. 전시장에서는 인왕제색도 부채, 고려청자 키링,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등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의 인기 문화상품도 함께 소개된다.
또한 내년 1월 22∼23일에는 ‘한국미술과 수집’을 주제로 한 국제 심포지엄도 열려 한국미술 연구의 지평을 확장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