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안 마시는 사회, 2025년 주류 시장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래서 아래 술들의 ‘선전’이 더욱 반가웠는지 모른다.

주류 트렌드
SFWSC에서 대상을 수상한 ‘기원 시그니처’. 셰리와 와인 오크통에서 숙성한 달콤한 풍미와 함께 기원 특유의 매콤한 마무리가 돋보인다.
SFWSC에서 대상을 수상한 ‘기원 시그니처’. 셰리와 와인 오크통에서 숙성한 달콤한 풍미와 함께 기원 특유의 매콤한 마무리가 돋보인다.
기원이 쏘아 올린 대서사시
2025년은 한국 위스키 역사에 오랫동안 기록될 해였다. K-팝과 K-뷰티, K-푸드에 이어 K-위스키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 포문을 연 건 다름 아닌 국내 최초 싱글 몰트위스키 브랜드 기원. 지난 11월 세계 3대 주류 품평회 중 하나인 ‘샌프란시스코 세계주류경연대회 2025(SFWSC)’에서 대상에 해당하는 ‘베스트 오브 클래스’를 수상했다. SFWSC는 매년 70여 개국에서 2500여 종의 주류가 출품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주류 품평회다. 올해 기원은 대만의 카발란과 인도의 암룻 등 세계적 브랜드들과 경합을 벌였고, 최종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수상의 주인공은 ‘기원 시그니처’. 셰리와 와인 캐스크 숙성을 거친 달콤한 풍미와 한국적 스파이스의 조화가 극찬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이 외에도 ‘기원 유니콘’이 심사위원단의 만장일치로 ‘더블 골드’에 선정되며 기술력과 품질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기원 유니콘은 지난 9월 영국 ‘국제 와인 & 스피릿 대회(IWSC)’에서도 최고상(Trophy)을 수상했다. 이로써 기원 위스키는 같은 해 세계 3대 주류 품평회 중 두 곳에서 최고상을 받으며, K-위스키 역사상 최초이자 세계적으로도 최단 기간 내 양대 대회 석권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왼쪽부터) 글렌피딕이 애스턴 마틴과의 파트너십을 기념해 선보인 ‘글렌피딕 16년 한정판’과 잭 다니엘스가 맥라렌 포뮬러 1팀 과 협업한 ‘잭 다니엘스 × 맥라렌 2025’. 남자들이 좋아하는 슈퍼카와 위스키 브랜드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았다.
(왼쪽부터) 글렌피딕이 애스턴 마틴과의 파트너십을 기념해 선보인 ‘글렌피딕 16년 한정판’과 잭 다니엘스가 맥라렌 포뮬러 1팀 과 협업한 ‘잭 다니엘스 × 맥라렌 2025’. 남자들이 좋아하는 슈퍼카와 위스키 브랜드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았다.
위스키업계의 돌파구, 한정판 위스키
위스키 시장은 큰 폭으로 쪼그라들었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를 살펴보면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위스키 수입액은 1억4875만 달러(약 2074억 원)로 전년 동기 대비 8.7% 줄었다. 지난해까지는 하이볼 트렌드 등으로 저가 위스키 판매가 증가하면서 수입액은 줄어도 양은 늘어나는 행태를 보였으나, 올해는 수입 중량도 10.6% 감소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수입 규모를 빠르게 늘리며 공급 과잉이 이어진 데다 불경기와 소비 침체가 덮치면서 수요가 줄어든 영향으로 풀이된다. 이 중 소비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화됐다. 위스키 음용 경험이 누적되면서 새로운 위스키를 찾는 사람과 하이볼용 저가 위스키를 찾는 사람으로 시장이 양분화된 것이다. 지난해 저가 위스키가 쏟아졌다면, 올해는 위스키 애호가들을 겨냥한 다양한 한정판 위스키가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올해 가을에만 10여 종의 한정판 위스키가 출시됐을 정도다. 캐스크 스트렝스(물을 타서 도수를 낮추는 과정을 생략한 위스키), 싱글 배럴(하나의 오크통에서 나오는 원액으로 만든 위스키) 제품을 넘어 유명 아티스트와 협업하거나 전혀 다른 카테고리의 브랜드와 협업한 제품이 위스키 애호가들의 소장 욕구를 자극했다.
100% 유기농 원료로 만든 로제 스파클링 와인으로 미세한 탄산과 드라이한 피니시가 매력인 ‘캘리 로제 스파클러’, 모스카토 품종으로 만든 알코올 도수 1% 미만의 논알코올 와인으로 풍부한 과일 향과 섬세한 꽃향기가 일품인 ‘보시오 스파클링 화이트 논알콜릭 드미섹’
100% 유기농 원료로 만든 로제 스파클링 와인으로 미세한 탄산과 드라이한 피니시가 매력인 ‘캘리 로제 스파클러’, 모스카토 품종으로 만든 알코올 도수 1% 미만의 논알코올 와인으로 풍부한 과일 향과 섬세한 꽃향기가 일품인 ‘보시오 스파클링 화이트 논알콜릭 드미섹’
내년이 더 기대되는 논알코올 와인
2025년 주류 시장에 잔잔한 반향을 일으킨 술(?)이 있으니, 바로 논알코올 와인이다. 논알코올 맥주가 시장에 안정적으로 안착한 데 이어 올해는 논알코올 와인이 업계의 신흥 강자로 떠올랐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논알코올 맥주 시장 규모는 2023년 644억 원에서 오는 2027년 946억 원으로 약 47%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논알코올 와인은 아직 시장 규모가 작아 관련 통계가 미비하지만, 올해 들어 와인 수입사와 대형 마트들이 앞다퉈 신제품을 내놓았다. 급기야 서울 연남동에는 ‘아티스트보틀클럽’이라는 논알코올 와인을 주력으로 하는 보틀 편집숍까지 생겨났다. 카페인과 디카페인 커피를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와인도 소비자들이 알코올과 논알코올을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논알코올 와인은 색과 맛만 교묘히 흉내 낸 포도 주스가 아니라 정통 와인 제조 방식을 거친 후 저온에서 알코올만 추출해 만든 와인으로, 최근 유럽과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메가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와인의 본고장으로 알려진 프랑스에서 논알코올 와인이 침체된 업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을 정도다.
(왼쪽부터) 국내에서 만날 수 있는 대표적 일본 맥주들. 삿포로 생맥주 70, 기린 이치방, 프리미엄 에비스, 아사히 슈퍼 드라이
(왼쪽부터) 국내에서 만날 수 있는 대표적 일본 맥주들. 삿포로 생맥주 70, 기린 이치방, 프리미엄 에비스, 아사히 슈퍼 드라이
한국인 술잔 채운 일본 술
올해는 국내 주류 시장이 전반적으로 침체 국면에 빠졌지만, 일본 주류는 오히려 성장했다. 2019년 노재팬 여파로 수입액이 급락했지만, 일본산 제품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면서 회복세가 확장 국면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성장세를 주도한 건 역시 맥주였다.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일본 맥주 수입액은 6720만 달러(약 906억 원)로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 성장했다. 일본 맥주의 독주는 다른 수입국과 비교하면 더욱 두드러진다. 2위인 미국보다 2.5배, 3위 중국과 비교하면 4배 가까이 많은 수치다. 기세를 몰아 삿포로는 서울 성수동에 ‘삿포로 프리미엄 비어스탠드’를, 기린은 여의도 한강공원에 ‘기린이찌방 프리미엄 비어바’를 각각 오픈했다. 두 브랜드가 국내에서 처음 선보이는 오프라인 펍이다. 더욱 주목할 점은 거의 모든 일본 주류가 약진을 보였다는 것. 특히 사케와 일본 위스키의 성장이 눈에 띄는데, 지난 9월까지 사케 수입액은 2020만 달러(약 290억 원)로 전년 동기 대비 18.1%, 위스키 수입액은 788만 달러(약 113억 원)로 8.2% 늘었다. 위스키 최대 생산국인 스코틀랜드 위스키가 3년 연속 감소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주목할 만한 수치다.


이승률 기자 ujh8817@hankyung.com | 사진 이준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