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시브 펀드와 알고리즘 매매가 시장의 55%를 점령한 가운데, 가격을 판단하는 인간의 비판적 시각이 사라진 자리를 기계적 모멘텀과 AI 기업들의 위험한 레버리지가 채우고 있다. 한 번의 균열로 전 세계 자본이 동시에 절벽으로 떨어지는 '둠스데이 머신'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할 때다.

[스페셜] '14조 달러의 야망' 블랙록의 성공 비밀
뉴욕증권거래소 전광판에 표시된 블랙록 로고. 사진=연합뉴스
뉴욕증권거래소 전광판에 표시된 블랙록 로고. 사진=연합뉴스
지난 2024년 8월 5일, 일본 니케이 지수가 단 하루 만에 12.4% 폭락했다. 1987년 블랙 먼데이 이후 최악의 하락폭이었다. 미국 시장이 열리자마자 변동성 지수(VIX)가 65까지 치솟았고 수천억 달러 규모의 '변동성 제어 펀드'들이 알고리즘에 따라 일제히 매도 버튼을 눌렀다.

하루가 지나자 모든 것이 밝혀졌다. 폭락을 촉발한 원인은 엔화 캐리 트레이드의 청산이었다. 하지만 시장을 진정한 공포로 몰아넣은 것은 다른 곳에 있었다. 아무도 판단하지 않고 기계만 움직였던 것이다.

이 사건은 현대 금융 시장의 불편한 진실을 드러냈다. 시장에는 가격이 있지만, 시장 가격의 판단은 누구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구도 판단하지 않는 시장

오늘날 미국 증시의 자금 흐름은 세 개의 이름으로 요약된다. 블랙록, 뱅가드, 스테이트스트리트. 이들 '빅3'가 운용하는 패시브 펀드(인덱스 펀드와 ETF)는 2023년 처음으로 액티브 펀드의 자산 규모를 추월했고, 2025년 말 기준 미국 전체 펀드 순자산의 55%를 차지한다. 이들은 개별 기업을 분석하지 않는다. 대신 시장 전체를 자동으로 매수한다.
2021년 3월 스테이트 스트리트 글로벌 어드바이저스(SSGA)가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앞 '두려움 없는 소녀(Fearless Girl)' 동상 주변에 '깨진 유리 천장' 조형물이 설치했다. 스테이트 스트리트는 블랙록, 뱅가드그룹과 함께 세계 자산운용업계 빅3를 형성하고 있다.
2021년 3월 스테이트 스트리트 글로벌 어드바이저스(SSGA)가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앞 '두려움 없는 소녀(Fearless Girl)' 동상 주변에 '깨진 유리 천장' 조형물이 설치했다. 스테이트 스트리트는 블랙록, 뱅가드그룹과 함께 세계 자산운용업계 빅3를 형성하고 있다.
ETF는 금융을 민주화했다. 누구나 저비용으로 분산투자를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2020년대 중반, 그 민주화는 새로운 독점을 낳고 있다. 시장의 주인은 사라지고, 기계화된 자본과 레버리지만 움직이고 있다. 이것이 '패시브 투자의 역설이자 그늘'이다.

2025년 미국 펀드 시장은 역사상 기록적인 해였다. 장기 펀드에 유입된 자금은 7650억 달러로 2021년 이후 최대 규모였다. 그러나 이 숫자의 이면은 극도로 편중된 흐름이다. S&P500을 추종하는 뱅가드 500 인덱스 펀드(VFIAX)에만 1030억 달러, 아이셰어즈 코어 S&P 500 ETF(IVV)에 780억 달러가 몰렸다. 뱅가드 한 곳에만 2400억 달러가 유입되며 35조 달러의 운용자산과 28%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했다.

패시브 투자의 가장 치명적인 부작용은 주식 시장의 '수요 비탄력성'을 심화시킨다는 점이다. 하버드대의 가배(Gabaix)와 시카고대의 코이옌(Koijen)이 제시한 '비탄력적 시장 가설'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패시브 투자의 급증으로 개별 주식에 대한 수요 곡선은 약 11% 더 비탄력적으로 변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 기존에는 주가가 기업의 본질 가치보다 높아지면 액티브 투자자들이 매도해 가격을 조정했다. 그러나 패시브 펀드는 가격에 반응하지 않는다. 자금이 들어오면 기계적으로 사고, 나가면 기계적으로 판다. 그들은 '가격 발견자'가 아니라 '가격 수용자'이자 '모멘텀 추종자'다.
패시브의 역설…지수는 틀려도 멈추지 않는다
시가총액 가중 방식(cap-weighted) 인덱스는 이 문제를 증폭시킨다. 가격이 오른 주식의 비중을 더 늘리는 구조이므로, 고평가된 주식에 더 많은 자금을 배분하게 된다. 이는 버블을 조기에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키우는 역할을 한다. 연구에 따르면 패시브 자금의 유입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에 포함된 상위 50개 기업의 주가를 시장 전체 대비 30% 이상 추가 상승시키는 '지수 효과'를 유발했다.

경쟁 없는 자본주의의 탄생

결과적으로 2025년의 시장은 소수의 초대형 인공지능(AI) 기업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매수세와 나머지 기업들에 대한 무관심으로 양극화됐다.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아마존, 알파벳, 메타, 테슬라. 이른바 '매그니피센트 7'이 S&P500 전체 시가총액의 30% 이상을 차지한다. 패시브 자금은 이들에게 실적과 무관하게 자본을 공급한다. 강한 기업은 더 강해지고, 약한 기업은 구조적으로 소외된다. 시장은 스스로를 학습하지 않는다. 지수는 틀릴 수 있지만, 지수는 멈추지 않는다.

빅3의 과점은 단순히 자산 규모의 문제를 넘어 기업 거버넌스와 경쟁 구조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25년 기준, 블랙록, 뱅가드, 스테이트스트리트는 S&P500 기업의 88%에서 최대주주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체 시가총액의 20% 이상, 의결권의 25% 이상을 통제한다.
패시브의 역설…지수는 틀려도 멈추지 않는다
미국에서 델타항공과 유나이티드항공은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두 회사의 최대주주가 동일하다는 것이다.블랙록은 델타의 최대주주이면서 동시에 유나이티드의 최대주주다.
미국 뉴욕 라과디아 공항에 계류중인 델타항공의 여객기들. 블랙록은 경쟁사인 델타항공과 유나이티드항공 모두에서 최대주주다. 사진=연합뉴스
미국 뉴욕 라과디아 공항에 계류중인 델타항공의 여객기들. 블랙록은 경쟁사인 델타항공과 유나이티드항공 모두에서 최대주주다. 사진=연합뉴스
미국에서는 이를 '공동 소유(common ownership)' 문제로 정의하며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보스턴대의 아자르(Azar), 시카고대의 슈말츠(Schmalz), 미시간대의 테쿠(Tecu) 등의 연구자들은 “항공 및 은행 산업에서 공동 소유가 기업 경영진으로 해금 공격적인 경쟁을 자제하고 가격을 인상하게 만드는 유인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논리는 단순하다. 두 회사가 가격 전쟁을 벌이면 서로의 수익성이 깎인다. 두 회사의 대주주가 같다면, 그 주주는 가격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경쟁이 줄어들면 소비자 가격은 오르고, 혁신에 대한 인센티브는 줄어든다. 자본은 효율이 아니라 안정성을 선택한다. 이는 자본주의의 핵심 전제인 경쟁을 약화시킨다.

실시간으로 동시에 움직이는 자본

물론 반론도 있다. 블랙록 같은 자산운용사들은 자신들이 고객 자산을 대리하는 관리자일 뿐이며, 실질적인 소유주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일부 후속 연구들도 공동 소유와 가격 인상 간의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고 반박한다. 그러나 현재의 AI 인프라 투자 국면에서 공동 소유의 문제는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띤다.

빅테크 기업들이 AI 주도권을 잡기 위해 '군비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이들의 공통 분모인 거대 자산운용사들은 과연 어떤 입장을 취할까. 블랙록은 엔비디아의 칩을 구매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대주주이자, 동시에 데이터센터를 짓는 건설사의 자금줄이며, 전력을 공급하는 에너지 기업의 주요 주주이기도 하다. 이러한 거미줄 같은 이해관계 속에서 자산운용사들은 특정 기업의 승리보다는 '생태계 전체의 자산 가치 상승'을 최우선 목표로 삼게 된다.

과거 금융위기는 인간의 판단 실패로 유발됐다. 실제 2008년 금융위기는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위험을 과소평가한 인간의 탐욕과 무지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지금의 위기는 다르다. 이것은 '동조화의 결과'다.

변동성 제어 펀드는 포트폴리오의 변동성(VIX 등)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시장이 평온할 때는 레버리지를 일으켜 주식 비중을 늘리지만, 변동성이 커지면 알고리즘에 의해 기계적으로 주식을 매도한다. 이들 펀드의 운용 자산은 약 3500억 달러에 달한다.

문제는 이들의 매매 패턴이 '친주기적(pro-cyclical)'이라는 점이다. 주가가 하락해 변동성이 상승하면 주식을 매도한다. 이 매도는 주가를 더 떨어뜨리고 변동성을 더 높인다. 그러면 알고리즘은 더 많은 매도 지시를 내린다.

ETF의 유동성 불일치

이것이 '부의 피드백 루프'다. 2025년 현재 시장의 낮은 변동성은 역설적으로 이러한 잠재적 매도 물량이 댐 뒤에 가득 차 있음을 의미한다. 작은 균열만 생겨도 댐은 무너질 수 있다.
패시브의 역설…지수는 틀려도 멈추지 않는다
ETF는 투자자들에게 주식처럼 언제든지 사고팔 수 있는 '일중 유동성'을 제공한다. 그러나 회사채 ETF나 인프라 펀드가 담고 있는 기초 자산은 거래가 매우 어렵고 유동성이 낮은 자산이다.

시장 위기 시 투자자들이 공포에 질려 ETF를 매도하면, ETF 운용사는 환매대금을 마련하기 위해 기초자산을 팔아야 한다. 유동성이 말라붙은 기초자산 시장에서 급하게 물건을 내놓으면 가격은 급락한다.

2020년 3월 팬데믹 당시 회사채 ETF에서 이 현상이 발생했다. ETF 시장 가격이 순자산가치(NAV)보다 훨씬 낮게 거래되는 가격 괴리가 나타났고, 이는 투자자들의 공포를 자극해 더 많은 매도를 불렀다. 미국 중앙은행(Fed)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상황은 훨씬 더 악화됐을 것이다. 현재 사모 대출 비중이 높아진 시장에서 이 현상은 훨씬 더 파괴적인 형태로 재연될 수 있다.

미시경제가 메크로다

블랙록은 2026년 글로벌 전망 보고서에서 도발적인 테제를 제시했다. 'Micro is Macro(미시가 거시다)'. 과거에는 금리, 인플레이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같은 거시경제 변수가 개별 기업의 운명을 결정했다.

그러나 AI 혁명은 이 공식을 뒤집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AI 인프라 투자의 규모가 너무나 거대해서, 소수의 특정 기업들의 자본 지출 계획이 국가 전체의 생산성, 에너지 소비, 금융 시장의 레버리지를 결정짓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AI 인프라 투자의 핵심적인 딜레마는 블랙록이 명명한 '자금조달의 험프(financing hump)'에 있다. 이는 투자 시점과 수익 실현 시점 사이의 극단적인 불일치를 의미한다. AI 모델을 학습시키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첨단 그래픽처리장치(GPU),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 막대한 전력 설비를 지금 당장 구축해야 한다. 맥킨지는 2030년까지 AI 데이터센터 인프라에만 5.2조 달러(약 7000조 원)의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한다.

그러나 이 인프라가 실제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현금 흐름을 창출하기까지는 상당한 시차가 존재한다. 생성 AI가 '신기한 장난감'을 넘어 '필수적인 비즈니스 도구'로 정착하는 데는 수년이 걸릴 수 있다. 이 간극을 메우는 것은 부채, 즉 레버리지다. 사모 대출(private credit) 시장은 2025년 기준 약 3조 달러 규모로 급성장했다. 은행보다 규제가 덜하고 자금 집행 속도가 빠른 이 시장은 AI 데이터센터 개발자들에게 매력적인 자금처가 됐다.

문제는 투명성이다. 사모 대출은 공개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으므로 실시간 가격 책정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부실 자산의 가치가 장부상에 과대 계상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 '현물 지급 이자(PIK)'나 '순자산가치 대출(NAV Lending)' 같은 공격적인 금융 기법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는 차입자가 당장 현금으로 이자를 갚는 대신 대출 원금을 늘리는 방식이어서, 겉으로는 연체율이 낮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부실이 은폐되고 있을 위험이 크다.

매출 돌려막기의 그림자

패시브의 가장 어두운 단면은 AI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매출 돌려막기(round-tripping)'다. 빅테크 기업들은 AI 스타트업에 현금을 투자하는 대신, 자사의 클라우드 서비스 사용권인 '클라우드 크레디트'를 제공하거나, 투자금의 상당 부분을 자사 서비스 이용료로 회수하는 계약을 맺는다.
패시브의 역설…지수는 틀려도 멈추지 않는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오픈AI에 100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한다. 오픈AI는 이 돈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애저(Azure) 클라우드를 사용해 AI 모델을 학습시킨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돈을 다시 '클라우드 매출'로 계상한다. 결과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매출은 증가하고, 오픈AI는 투자를 받은 것처럼 보이며 기업 가치가 상승한다. 돈은 밖으로 나가지 않고 내부에서 회전하지만, 두 회사의 가치는 모두 상승한다.
2024년 5월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서 열린 '마이크로소프트 빌드' 컨퍼런스 중 샘 올트먼 오픈AI CEO(왼쪽)가 케빈 스콧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기술책임자(CTO) 겸 AI 부문 수석 부사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투자금은 오픈AI를 거쳐 다시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 매출로 돌아온다. 사진=연합AFP
2024년 5월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서 열린 '마이크로소프트 빌드' 컨퍼런스 중 샘 올트먼 오픈AI CEO(왼쪽)가 케빈 스콧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기술책임자(CTO) 겸 AI 부문 수석 부사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투자금은 오픈AI를 거쳐 다시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 매출로 돌아온다. 사진=연합AFP
이러한 구조는 2000년대 닷컴 버블 당시 통신 회사들이 서로의 광섬유 네트워크 용량을 교환하며 매출을 부풀렸던 '광섬유 스와프'나 엔론의 분식회계와 놀랍도록 유사하다. 이는 '실질적인 외부 수요' 없이 장부상 숫자만 불리는 '합성된 성장'이다. 엔비디아와 코어위브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엔비디아는 GPU 클라우드 업체인 코어위브에 투자했고, 코어위브는 엔비디아의 H100 칩을 대량으로 구매하며 이 칩을 담보로 수십억 달러의 대출을 받아 사업을 확장한다. 엔비디아의 매출은 코어위브의 구매로 인해 급증하고, 코어위브의 기업 가치는 엔비디아 칩 보유량 덕분에 급등한다.

이러한 순환 구조는 시장이 상승할 때는 서로의 가치를 밀어 올리는 긍정적 피드백 루프로 작동하지만, 자금줄이 마르는 순간 연쇄적인 붕괴를 초래하는 뇌관이 된다. 영국의 AI 스타트업 빌더닷에이아이(Builder.ai)는 2024년 2억2000만 달러의 매출을 보고했으나, 실제 매출은 5000만 달러 수준에 불과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가짜 송장을 통한 매출 부풀리기가 적발되면서 회사는 파산했다.

1929년의 유령, 다시 나타날까

1920년대는 신용과 마진이 대중을 시장으로 끌어들였다. 당시에도 '금융의 민주화'라는 표현이 쓰였다. 누구나 주식을 살 수 있게 됐고, 시장은 영원히 오를 것처럼 보였다. 2020년대는 ETF와 AI가 같은 역할을 한다. 차이는 기술이고, 유사점은 레버리지와 과잉 낙관이다.

'둠스데이 머신' 시나리오는 이렇게 전개된다. 예상보다 더딘 AI 수익화, 엔비디아 등 핵심 기업의 어닝 쇼크, 또는 대만 문제 같은 지정학적 위기가 트리거가 된다. AI 관련주 급락으로 S&P500 지수가 감마 플립 포인트를 하향 돌파하면, 딜러들의 숏 감마 헤지 매도 물량이 쏟아지며 하락이 가속화된다. 주가 급락으로 VIX가 치솟자, 수천억 달러 규모의 변동성 제어 펀드들이 기계적으로 주식을 투매한다.
패시브의 역설…지수는 틀려도 멈추지 않는다
주가 폭락으로 AI 기업들의 담보 가치가 하락하자, 사모 대출의 마진콜이 발생한다. 데이터센터 자산유동화증권(ABS)의 스프레드가 급등하며 신규 자금조달이 중단된다. 자금 경색으로 빅테크·스타트업 간의 매출 돌려막기 고리가 끊어지고, 스타트업 연쇄 도산과 회계 부정이 발각된다. 비유동성 자산을 담은 ETF와 공모 펀드들의 환매 중단 사태가 속출한다. 패시브 자금의 매도세만 남고 받아줄 액티브 자금은 실종된 상태에서 시장은 자유낙하한다.

시장은 커졌다. 그러나 책임은 사라졌다. 자본은 자동화됐고, 리스크는 집단화됐으며, 레버리지는 보이지 않게 누적되고 있다. AI 시대의 금융은 더 똑똑해졌지만, 더 취약해졌다.
뉴욕증권거래소의 트레이더. 사진=연합AFP
뉴욕증권거래소의 트레이더. 사진=연합AFP
자동화된 낙관론의 종말

패시브는 중립이 아니라 구조적 집중이다. 지금의 S&P500은 분산된 포트폴리오가 아니라, AI라는 단일 팩터와 그에 연동된 레버리지에 집중 투자하는 상품에 가깝다.

AI 투자는 소프트웨어 문제가 아니라 인프라, 에너지, 부채 문제다. 데이터센터에 투자한다는 것은 전력에 투자한다는 뜻이고, 전력에 투자한다는 것은 에너지 안보에 투자한다는 뜻이다. 다음 위기는 개별 기업이 아니라 금융 구조 자체에서 온다. 모두가 같은 지도를 보고 운전하면, 모두가 동시에 절벽으로 떨어질 수 있다.

따라서 개인투자자는 ETF만 믿지 말고 진짜 다각화를 추구해야 한다. 주식과 채권이 같이 무너지는 상황에 대비해, 상관관계가 낮은 실물 자산(금·원자재)이나 진정한 의미의 대체 투자를 포트폴리오에 편입해야 한다.

블랙록의 말처럼 '미시가 거시가 된' 세상에서, 특정 기업의 실패는 더 이상 개별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시스템 전체를 뒤흔드는 파도가 될 것이다. 지금은 낙관론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라, 다가올 파도에 대비해 방파제를 점검해야 할 때다.

손재권 더밀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