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시장이 또 다시 깊은 조정을 겪고 있다. 작년 10월 이후 이어져 온 하락 흐름이 올해 들어 한 차례 더 가속화되면서,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가 눈에 띄게 위축되고 있다.
[가상자산 따라잡기]
2026년 1월 중순 9만 달러 후반대까지 올라갔던 비트코인은 2월 첫째 주 장중 한때 약 6만 달러 초반까지 내려가며 시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같은 기간 이더리움은 3000달러대 초반에서 1700달러대로 내려앉아 40%가 넘는 낙폭이 발생했다. 이번 하락은 일회성 사건이라기보다, 몇 달 동안 반복적으로 진행된 하락이 누적되며 시장의 체력과 확신이 동시에 깎여 나갔다는 점에서 더 불편하고 무겁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이번 하락을 정당화할 만한 별다른 원인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다. 케빈 워시가 차기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으로 지명되며 유동성 축소에 대한 우려가 있긴 했으나, 연일 신고점을 경신 중인 국내 증시 등을 고려했을 때, 단순히 위험자산 선호가 꺾였다는 설명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핵심은 시장의 구조가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가격 자체보다 가격이 움직이는 방식, 즉 시장의 미시 구조를 봐야 한다.
가격 너머의 진실, 시장의 미시 구조를 보라
지난해 10월 초부터 가상자산 시장 내 유동성은 반복적으로 취약해지고 있었다. 데이터 제공 업체 분석과 보도에 따르면 비트코인의 시장 유동성 뎁스(중간 가격 대비 일정 범위 내 매수·매도 대기 물량)는 2025년 고점 대비 약 3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며, 로이터는 평균 1% 시장 뎁스가 2025년 약 800만 달러 수준에서 최근 500만 달러 수준으로 낮아졌다고 전했다. 시가총액이 크더라도 주문이 두껍게 쌓여 있지 않으면, 같은 규모의 매도에도 가격이 더 크게 출렁인다. 충격 흡수력이 떨어진 상태인 것이다.
10월 이후 유동성이 회복되지 못한 배경에는 몇 가지 요인이 겹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시장조성자의 위험 감수 여력이 줄어들었을 수 있다. 가격이 급변하는 구간에서는 시장조성자가 스프레드(가격 차이)를 넓히거나 호가 자체를 줄이는 방식으로 방어적으로 움직이는데, 이러면 시장의 두께는 빠르게 얇아진다.
거래소 및 상품별 구조 문제도 영향을 줬다. 일각에서는 특정 거래소 환경과 스테이블코인 기반 상품(예: 합성 달러 스테이블코인 USDe 등)과의 상호작용이 스트레스 국면에서 변동성을 키울 수 있음을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거시 환경 변화 역시 유동성 회복을 늦췄다. 최근의 변동성이 기술주 조정, 통화 정책 불확실성 환경에서는 시장조성자뿐 아니라 일반 투자자도 위험을 줄이며 호가와 거래가 함께 위축되기 쉽다.
거대 자본 수용 못하는 ‘낡은 운동장’의 한계
이렇게 얇아진 유동성 위에는 이미 전통 금융 자금이 본격적으로 진입해 있었다. 미국에서 현물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가 승인된 이후, 가상자산은 증권 계좌를 통해 접근 가능한 자산이 됐다.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기관 참여의 문이 넓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참여의 통로가 생긴 것과, 시장의 충격 흡수 능력이 커지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내용이다.
접근성이 좋아지면 참여자는 늘어나지만 시장 조성 및 청산, 프라임 브로커리지 같은 완충 인프라가 함께 커져야 시장의 안정성도 제고될 수 있다. ETF를 통해 전통 대형 기관의 가상자산 노출은 빠르게 증가했지만, 이를 감내해야 하는 시장조성자 등의 시장 인프라는 여전히 가상자산 전문 기관이 맡고 있다. 지난 수 년간 이들이 빠르게 몸집을 불리기는 했으나, 전통 금융 시장의 인프라에 비할 바는 아니다.
가령, 비트코인 ETF가 출시된 이후, 여러 헤지펀드들이 이를 기초자산으로 한 공격적인 투자 기법을 구현했다. 최근 미국 경제 매체 포춘(Fortune) 보도에 따르면 일부 홍콩계 헤지펀드들이 블랙록의 비트코인 현물 ETF 옵션에 고레버리지로 베팅한 뒤 그 포지션이 붕괴되면서, 이로 인한 손실 확대가 가격 급락의 한 단서로 거론되기도 했다. 본질적인 문제는 단순한 리스크 관리 실패가 아니라 해당 자본의 압도적인 '체급'에 있다. 즉, 기존 가상자산 시장의 시장조성자 및 유동성 구조가 대형 자본의 유출입을 감당하지 못하며 가격 변동성이 크게 나타났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투자 창구는 커지는데, 완충 인프라의 확장은 더디고, 얇아진 시장에서 큰 흐름이 출렁이는 모습이 반복될 수 있다. 단기 변동성이 단지 시장 심리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화의 속도와도 연결되는 이유다.
규제의 덫 ‘금가분리’, 제도화 발목 잡다
그렇다고 해서 가상자산 시장의 미래를 비관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스테이블코인 확산과 실물자산의 디지털화 흐름을 보면, 가상자산은 국제 자본 이동의 효율성을 높이는 도구로 채택되며 그 쓰임새가 더욱 성장하고 있다. 이 흐름은 가격 변동과 별개로 진행되는 구조적 변화다. 가격이 흔들릴수록 회의감이 커지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제도권의 참여가 시작된 이상 시장은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재정렬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지금의 하락은 세대교체의 진통에 가깝다. 과거에는 가상자산 시장 내부 자금이 중심이었고, 변동성도 그 내부 논리로 설명되는 구간이 많았다. 이제는 전통 금융 자금이 참여할 수 있는 경로가 생겼고 실제로 그 경로를 통해 자금이 움직인다. 다만 경기장은 아직 그 체급을 전제로 완성되지 않았다. 그래서 요즘의 하락은 가격의 논리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고, 유동성·규제·시장 구조를 함께 봐야 한다.
앞으로의 관건은 두 가지다. 첫째, 유동성의 질이 회복될 것인가. 단순한 거래량이 아니라 가격 충격을 흡수하는 두께가 늘어나는지가 중요하다. 둘째, 규제의 명확성이 확보될 것인가. 미국에서 시장 구조 법안 논의가 정리되고, 은행권과 가상자산 업계 간 쟁점이 해소될수록 제도권이 유동성 공급과 중개 인프라에 참여할 여지도 커진다. 그때가 되면 ETF를 통해 들어오고 나가는 자금의 충격은 줄고, 시장은 더 완만하게 움직일 수 있다.
지금은 전통 금융기관의 진입이 본격화되는 과도기 기간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지루하고 고통스럽다. 특히, 금가분리로 불리는 금융기관의 가상자산 취급 제한으로 그 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큰 자본이 들어오기 시작한 시장은 더 두꺼운 유동성과 더 명확한 규칙을 요구한다. 이번 하락은 거품 붕괴가 아니라, 체급이 달라진 자본이 얇은 시장 위에서 움직이며 발생한 구조적 충격이다. 이는 가상자산 시장이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비용이자 성장통이라고 생각한다.
박태우 스페이스바 벤처스 대표 tw@spacebar.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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