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법원은 거래의 형식적 외관을 갖췄더라도 경제적 실질과 괴리된 비합리적인 조세회피행위라면 실질과세 원칙을 적용해 과세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놓았다. 이는 단순한 서류 구비만으로 과세를 피하던 과거의 관행에 경종을 울리는 결정으로, 향후 조세소송 및 자산 관리 방식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상속 이슈]
실질과세 원칙은 교묘한 법적 형식을 빌려 조세 부과를 회피하려는 시도를 차단함으로써 조세법률주의의 형식적 한계를 보완하고 과세 형평성을 실현하는 기능을 한다. 다만 이 원칙이 지나치게 확장될 경우, 과세관청의 편의적 해석을 통해 자의적 과세가 가능해져 납세자의 재산권과 법적 안정성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
1달러에 넘긴 주식, 실질 규명해야
과거 대법원은 납세의무자에게 거래 형식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조세회피 목적이 있더라도 가장행위로 볼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거래는 유효하고, 실질과세 원칙으로 거래의 효력을 부인하려면 법률에 개별적·구체적 부인 규정이 마련돼야 한다는 태도를 취한 바 있다(2011년 4월 28일 판결 등).
이후 2012년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국세기본법 제14조 제1항에 근거해, 귀속명의자에게 지배·관리 능력이 없고 제3자가 실질적으로 이를 지배·관리하며 그 괴리가 조세회피 목적에서 비롯된 경우에는 실질 지배·관리자를 납세의무자로 보아야 한다는 ‘실질귀속자 과세’ 법리를 확립·확장해 왔다(대법원 2012년 1월 19일 판결).
이러한 흐름 속에서 대법원은 실질과세원칙이 사법상 효력이 인정되지 않는 가장행위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고, 그 정도에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실질과 괴리되는 비합리적인 형식이나 외관을 취했다고 볼 만한 조세회피행위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대법원 2025년 3월 27일 판결).
나아가 최근 대법원은 이러한 법리를 상속세에 적용하면서, 조세회피 목적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더라도 간접사실 등을 통해 조세회피행위에 관한 과세요건사실의 존재를 추정할 수 있는 경우에는 납세의무자가 이를 배제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을 증명하지 않는 한 적법하게 과세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대법원 2025년 12월 24일 판결).
이 판결은 피상속인이 보유하던 약 278억 원 가치의 J회사 발행주식 29만9999주를 사망 1개월 전 조세피난처인 셰이셜공화국에 설립된 K사에 주당 1달러(약 3.3억 원)에 매도한 사안이다. 처분청은 피상속인이 매각 전 보유하던 J회사 주식 29만9999주를 상속재산으로 보아 상속세를 부과했는데, 원심은 매매계약서가 존재하고 대금이 입금됐다는 형식적 요건을 근거로 이를 유효한 거래로 보아 상속세 부과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납세자의 ‘특별한 사정’ 증명 필수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이 ‘가장행위’의 개념을 민법상 무효 여부에만 한정해 심리한 점을 중대한 과오로 지적하며 원심을 파기했다. 실질과세원칙은 사법상 무효가 아니더라도 실질과 괴리된 비합리적 형식을 취한 조세회피행위 전반에 확장 적용될 수 있고, 법원은 과세관청이 ‘가장행위’라는 표현을 사용했더라도 그것이 사법상 ‘가장행위’만을 의미하는지, 나아가 실질과세원칙에 따른 과세까지 포함하는지를 적극적으로 석명하고 심리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사안에서 피상속인이 J회사 주식을 K사에 매각한 행위가 조세회피행위에 해당하는지, 주식이 양도된 후에도 이 사건 주식에 관해 피상속인 또는 상속인 측이 여전히 실질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상태였는지 등에 관해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로 관련 조세 소송의 양상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첫째, 과세관청이 경험칙에 근거한 비정상적 거래의 간접사실들을 입증했다면, 법원은 이를 실질과세원칙 적용의 문제로 적극 석명하고 심리해야 할 의무가 있다. 둘째, 납세자가 해당 거래에 경제적 합리성이 존재한다는 ‘특별한 사정’을 구체적으로 증명하지 못하는 한, 외관상의 형식을 부인하고 실질에 따라 과세될 가능성이 커졌다.
조세피난처 활용, 이제 안 통한다
과거에는 피상속인이 사망 직전 해외 페이퍼컴퍼니로 자산을 이전할 경우 서류상 절차만 완비하면 과세관청이 이를 부인해 과세하기가 쉽지 않았다. 조세피난처의 정보에 접근하는 데 한계가 있고, 이미 이루어진 법률행위를 사법상의 가장행위로 입증해 무효화하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대법원 판결로 인해 종래 ‘가장행위’ 주장이 사법상 통정허위표시에 해당하는지 여부만을 다투는 것으로 평가되던 데서 나아가, 조세법상 외관과 실질이 괴리돼 실질에 따라 과세요건 충족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조세회피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까지도 함께 평가하도록 했다.
앞서 본 바와 같이 대법원은 조세회피행위 해당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그러한 행위에 합당한 이유가 무엇인지, 조세회피 목적 외 경제적 합리성 있는 이유와 동기가 존재하는지, 해당 거래가액이 산출된 경위와 기준이 무엇인지 등을 심리할 것을 요구한다. 과세관청이 경험칙에 비추어 과세요건사실을 뒷받침할 간접사실들에 대한 증명을 마쳤다면, 그 경험칙의 적용을 배제할 특별한 사정은 납세자인 원고가 증명해야 하고, 이를 증명하지 못할 경우 조세회피행위로 인정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조세 소송에서 법원이 실질과세원칙 적용을 위한 ‘실질’을 규명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석명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아졌고, 결과적으로 조세회피 목적 등 과세요건의 입증 책임이 사실상 전환되는 것처럼 보일 위험도 있다.
향후 법적 형식과 경제적 실질이 다른 행위에 대해 실질과세원칙에 따라 과세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납세자가 그 행위에 합당한 이유, 조세회피 목적 외 경제적 합리성 있는 이유와 동기, 거래가액 산출 경위와 기준, 주장하는 경위의 신빙성을 뒷받침할 근거 등 다양한 입증 활동을 준비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해당 거래가 실제 존재하는 정상적인 거래임을 입증하려면 과거처럼 단순히 계약서와 입금증빙만으로는 부족하고, 거래의 동기, 가격 산정의 논리적 근거, 사후 지배권 행사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까다로워진 상속 소송
특히 조세피난처나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한 역외거래의 경우 ‘법률 절차를 준수했다’는 주장만으로는 더 이상 과세당국과 사법부의 엄격한 검증을 통과하기 어려워졌음을 명심해야 한다.
결국 페이퍼컴퍼니처럼 실체 없는 해외 법인을 통한 자산 이전은 실질과세원칙에 따라 그 외관이 부인되고, 주식이나 자산이 피상속인의 상속재산에 그대로 산입돼 과세될 위험이 커졌으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조웅규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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