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신도시는 서울의 만성적인 주택 부족과 집값 폭등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제한구역 외곽에 대규모 주거지를 조성하며 시작됐다. 1기부터 3기에 이르기까지 단순 물량 공급에서 자족 기능 강화와 선제적 교통망 구축으로 정책적 진화를 거듭해 왔으나, 여전히 베드타운 탈피와 공급 속도 확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커버스토리]
당시의 시대 분위기 역시 집값 급등에 불을 붙였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 이른바 ‘3저 호황(저금리·저물가·원화 약세)’, 여기에 베이비붐 세대의 결혼 러시까지 겹치면서 주택 수요는 한꺼번에 폭발했다. 전두환 정부 시절 강력한 안정화 정책의 영향으로 연평균 10.5% 수준에 머물던 지가 상승률은, 노태우 정부 출범 첫해인 1988년 27.5%로 뛰었고 1989년에는 32%까지 치솟았다. 주택 가격도 1988년 13.2%, 1989년 14.6%, 1990년 21% 오르며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노태우 정부가 1988년 내놓은 ‘주택 200만 호 건설 계획’은 이런 흐름 속에서 나온 고육책이었다. 이 계획의 핵심 수단이 바로 1기 신도시 조성이었다. 정부는 1989년부터 분당, 일산, 평촌, 중동, 산본 등 5곳을 순차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입지는 서울 광화문을 중심으로 반경 20km 안팎의 수도권 핵심 지역이었다. 목표는 분명했다. 약 29만2000호, 당시 서울 전체 주택의 약 20%에 해당하는 물량을 단기간에 한꺼번에 공급하겠다는 것이었다. 규모만 봐도 정책의 성격은 ‘속도전’에 가까웠고, 실제로 도시는 매우 빠른 속도로 만들어졌다.
1995년 일산·평촌·산본, 1996년 분당·중동까지 차례로 조성이 마무리됐다. 5개 신도시는 업무, 주거, 상업, 공공청사, 체육시설, 공원, 녹지를 모두 갖춘 ‘계획도시’였다. 면적으로 보면 분당이 19.6㎢로 가장 컸고, 일산(15.7㎢), 중동(5.5㎢), 평촌(5.1㎢), 산본(4.2㎢)이 뒤를 이었다.
다만 성과가 곧바로 ‘이상적인 도시’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도시의 일상은 당초 구상과는 달랐다. 주거 기능은 빠르게 채워졌지만, 고용 창출은 충분히 따라오지 못했다. 그 결과 1기 신도시는 주택 공급지 역할에 머물며 자족성이 떨어지는 ‘베드타운’ 구조로 굳어졌다. 고용 분산을 동반하지 않은 대규모 주택 공급은 서울로 향하는 통근 수요를 키웠고, 이는 수도권 교통 혼잡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규모의 경제와 ‘자족 도시’를 향한 첫발
이들 신도시가 다시 등장한 배경 역시 1기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주택 공급이 급감한 상황에서 경기가 회복 국면에 접어들자 집값은 다시 빠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주택은 계획부터 입주까지 통상 3~5년이 걸린다. 공급이 줄어든 공백은 시차를 두고 그대로 가격에 반영됐다. 노무현 정부 5년(2003~2008년) 동안 전국 집값이 56.4% 상승한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부동산은 다시 정치·사회적 갈등의 중심 이슈로 떠올랐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가 선택한 해법이 2기 신도시였다. 다만 접근 방식은 1기와 달랐다. 이번에는 단순한 주택 공급을 넘어 ‘자족’이라는 목표가 전면에 내세워졌다. 더 이상 잠만 자는 도시를 반복할 수는 없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었다. 주거 기능에 업무·상업·산업 기능을 함께 얹어, 도시 안에서 일하고 소비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입지도 비교적 분명한 역할 분담을 띠었다. 판교·동탄·위례는 서울 강남권 주택 수요를 분산하기 위한 대체지로, 김포 한강·파주 운정·인천 검단은 서울 강서·강북권 수요를 흡수하는 거점으로 계획됐다. 광교는 수도권 남부의 행정·업무 기능을 맡았고, 양주(옥정·회천)와 평택 고덕 국제화 지구는 각각 경기도 북부와 남부의 성장 거점 역할을 기대받았다.
동시에 2기 신도시는 1기보다 전반적으로 규모가 커졌다. 특히 화성 동탄2신도시는 24㎢로 2기 신도시 가운데 가장 넓었고, 파주 운정(약 16.6㎢), 김포 한강(약 11.7㎢), 광교(약 11.3㎢), 양주(약 11.2㎢), 고덕 국제화(약 13.4㎢), 인천 검단(약 11.2㎢) 등 여러 지구가 10㎢를 넘는 대형 계획지로 조성됐다. 판교(약 8.9㎢)와 위례(약 6.7㎢) 역시 수도권 주요 신도시로 자리 잡았다.
판교는 정보기술(IT)·벤처기업이 집적되면서 “신도시도 일하는 도시가 될 수 있다”는 상징적인 사례로 떠올랐다.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오피스, 점심시간에도 붐비는 거리 풍경은 1기 신도시와는 분명히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모든 2기 신도시가 같은 궤적을 그리지는 못했다. 업무용지를 확보했다고 해서 기업이 자동으로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기업은 사람을 보고, 사람은 교통과 생활 여건을 본다. 교통망 구축이 늦어지면 인재 유입이 더뎌지고, 인재가 모이지 않으면 기업도 결정을 미루게 된다. 여기에 산업 유치를 뒷받침할 정책적 지원과 규제 완화, 연구·교육 인프라가 충분히 따라붙지 못한 지역도 적지 않았다.
그 결과 일부 지역은 자족 기능을 일정 부분 갖추는 데 성공했지만, 다른 곳들은 여전히 ‘서울로 출근하는 도시’에 머물렀다. 주택 공급이 먼저 빠르게 진행되면서 도시의 성격이 주거 중심으로 굳어 버린 곳도 적지 않았다. 상당수 신도시가 지금도 단계별 개발을 이어가고 있는 현실은, 2기 신도시가 겪고 있는 긴 과도기를 보여준다. 동시에 이는 자족이 도시계획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산업 정책과 교통, 교육, 주거 환경이 함께 맞물려야 비로소 도시가 기능한다는 점을 분명히 드러낸다.
3기 신도시는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 이후, 수도권 집값 급등에 대응하기 위해 추진된 대규모 공공 주도 주택 공급 프로젝트다. 남양주 왕숙·왕숙2, 하남 교산, 인천 계양, 고양 창릉, 부천 대장 등 수도권 핵심 입지들이 잇따라 후보지로 발표됐고, 6개 지구에 19.3만 호 대규모 공급이 계획됐다. 목표는 분명했다.
교통이 먼저다, ‘선(先)구축’으로 승부하는 3기
서울 도심과 가까운 곳에, 비교적 큰 규모의 주택을 공급해 수요 압력을 낮추겠다는 것이었다. 배경은 2기 신도시 때와 닮아 있으면서도, 한층 더 절박했다. 2010년대 후반 들어 수도권 집값은 다시 가파르게 상승했고, 특히 서울과 서울 인접 지역을 중심으로 매수 심리가 과열됐다. 저금리 환경 속에서 유동성이 부동산 시장으로 쏠렸고, 재건축·재개발 규제와 맞물리면서 ‘도심 공급 부족’에 대한 불안이 가격을 밀어 올렸다. 정부는 수요 억제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고, 결국 다시 ‘공급 확대’ 카드를 꺼내 들었다.
3기 신도시의 가장 큰 특징은 입지였다. 1기와 2기가 서울 외곽에 비교적 넓게 퍼져 있었다면, 3기는 서울과 상대적으로 더 가까운 곳에 자리 잡았다. ‘서울 접근성’ 자체를 경쟁력으로 삼겠다는 전략이었다. 출퇴근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은, 베드타운 논란에도 불구하고 수요자들에게 강력한 유인으로 작용했다.
“집부터 짓고 길을 놓는다”는 비판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 아래, 주요 3기 신도시들은 GTX-A·B·C 등 기존 또는 계획 중인 광역 교통망과 연계되는 구조로 설계됐고, 공급 방식에서도 ‘속도’가 정책적으로 강조됐다. 하지만 대규모 공공택지 개발이 안고 있는 토지 보상 문제와 지역 반발, 인허가 절차 등이 맞물리면서 실제 사업 속도는 당초 계획보다 늦어지고 있다. 여기에 2021년 일부 지역에서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토지 투기 의혹이 불거지면서 정책 신뢰도에 큰 타격을 주기도 했다. 3기 신도시 사업 전반에 대한 불신이 커졌고, 공공 주도 개발 방식 자체에 대한 비판도 한동안 이어졌다.
자족 기능을 둘러싼 논쟁도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3기 신도시 역시 단순한 주거지가 아니라, 업무·산업·상업 기능을 함께 갖춘 ‘직주근접 도시’로 만들겠다고 강조해 왔다. 하지만 기업 유치와 일자리 창출은 2기 신도시에서도 쉽지 않았던 과제였다. 교통이 아무리 좋아져도, 도시 안에 충분한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결국 또 하나의 ‘서울로 출근하는 도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럼에도 3기 신도시는 한국 신도시 정책의 또 한 번의 전환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1기가 ‘양으로 밀어붙인 공급 확대’였다면, 2기는 ‘자족’을 설계에 담으려는 시도였다. 3기는 여기에 ‘교통’과 ‘공공 주도 대량 공급’, 그리고 정책적으로 강조된 ‘속도’를 전면에 내세운 실험에 가깝다. 집값 안정이라는 단기 목표와, 수도권 공간 구조를 재편하겠다는 중장기 목표가 동시에 얹힌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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