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신용시장의 환매 제한은 단순 손실이 아닌 ‘신뢰’와 ‘유동성’ 문제를 드러낸 신호다. 다만 구조적 특성을 감안하면 금융위기 수준의 시스템 리스크보다는 시장 질서 재조정 과정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마켓 인사이트]
조용한 위기…경고등 켜진 사모신용 시장
건강검진을 받을 때 모든 지표가 정상으로 나오면 안심하게 된다. 수치는 명확하고 직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평온한 지표를 보며 내 몸은 완벽하게 통제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한두 개의 수치에 경고등이 켜지게 되면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은밀하고 치명적인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믿게 되고, 불안한 마음에 현미경의 잣대로 우리 몸을 샅샅이 살펴보기 시작한다.
조용한 위기…경고등 켜진 사모신용 시장
현재의 금융 시장에도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사모신용 시장을 둘러싼 환매 제한과 유동성 긴장은 바로 그런 성격의 신호다. 아직 사모신용 시장에서 광범위한 손실이 현실화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시장은 불안감을 가지고 기존과 다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안정적인 투자처인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이 자산이 스트레스 국면에서도 제값에 평가되고 제때 현금화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위기는 언제나 손실이 현실화되는 순간보다, 평소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흔들릴 때 모습을 드러내 왔기 때문에 이번 사모신용 시장의 경우에도 지금 나타나고 있는 이슈들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은행 규제의 빈자리, 사모대출이 메웠다

사모신용 시장의 팽창은 금융위기 이후의 제도 변화와 맞닿아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은행 규제가 강화되면서 전통 은행은 신용도가 낮거나 사업 구조가 복잡한 기업에 공격적으로 대출하기 어려워졌다. 그 빈자리를 메운 것이 대형 사모자산운용사들이었다. 이들은 외형상 신용등급이 낮아 보이더라도 현금흐름이 준수하고 사업 지속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기업에 직접 자금을 공급했고, 그 대가로 공모 하이일드채권(신용등급 BB+ 이하의 투기등급 채권)보다 높은 금리를 확보했다.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이 이어지던 시기에는 이 모델이 매우 효율적으로 보였다. 금융기관, 연기금, 보험사, 패밀리오피스 등의 자금이 사모대출 펀드로 대거 유입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 사모신용 시장은 최근 수년간 급팽창했고, 2026년 들어서는 업계 규모가 2조~3조5000억 달러 수준으로 거론될 정도로 금융 시스템에서 존재감이 커졌다.

문제는 이 시장이 전통적인 은행과는 다른 방식으로 돌아간다는 데 있다. 은행은 규제와 감독 아래 자산 건전성을 엄격하게 평가받지만, 사모대출 펀드는 상대적으로 규제 강도가 제한적인 공시와 자체 평가 기준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이 차이는 평상시에는 장점처럼 보일 수 있다. 장기 자산을 단기 시장가격에 휘둘리지 않고 보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트레스 국면에서는 다르게 보일 수 있다. 시장에서는 이미 가치가 낮아졌다고 보는 자산이 장부상으로는 여전히 안정적으로 보일 수 있고, 그 사이 투자자는 실제 손실 규모를 가늠하기 어려워진다. 이렇게 자산 가치를 공정하게 확인하기 어려운 구조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현재 사모신용 시장이 가진 첫째 리스크다.

이 구조적 취약성은 지난 몇 년간의 투자 흐름과 맞물리며 더 커졌다. 팬데믹 시기 저금리 환경에서 자금은 정보기술(IT), 소프트웨어, 헬스케어 등의 성장 산업으로 대거 유입됐다. 사모대출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시에는 반복 매출, 높은 마진, 디지털 전환 기대가 소프트웨어 기업의 신용을 정당화해주는 듯 보였다.

사스포칼립스가 부른 나비효과

그러나 2026년의 환경은 다르다. 생성형 AI 확산은 ‘사스포칼립스(SaaS-pocalypse)’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일부 기존 소프트웨어 기업의 가격 결정력과 사업모델 자체를 압박하고 있다. 이에 최근 투자자들이 AI가 기존 소프트웨어 기업의 상환 능력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사모대출 익스포저를 재점검하고 있다.
조용한 위기…경고등 켜진 사모신용 시장
실제로 블루 아울(Blue Owl)을 시작으로 아폴로, 아레스, 클리프워터 등 대형 사모 운용사들은 2026년 1분기 환매 요청 급증으로 환매 제한을 적용했다. 이에 주요 사모대출 펀드 관련 운용사들의 주가는 연초 이후 크게 하락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현재의 긴장이 자산의 본질 가치가 일부 하락하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이다. 진짜 위험은 신뢰 약화와 맞물려 정상적인 가격 형성이 어려운 상황으로 번지는 데 있다.

두 번째 리스크는 자산과 부채의 만기 미스매칭 문제다. 사모대출 펀드의 다수는 장기 자산에 맞춰 설계된 폐쇄형 구조를 갖고 있다. 이 경우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우선은 제한된 투자자군 내부에서 흡수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은 일부 개방형 또는 준개방형 구조다. 투자자에게는 미리 설정해 놓은 특정 주기별로 일정 한도의 환매 가능성을 약속하면서도, 실제 자산은 장기 대출채권에 묶여 있다. 평소에는 문제가 드러나지 않지만, 환매 요청이 집중되는 순간 자산과 부채의 만기 불일치가 노출된다.

이는 곧 ‘유동성의 문제’로 이어진다. 자산이 조금 나빠진 것과 자산을 제값에 팔 수 없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시장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결국 후자다. 손실이 장부상으로는 제한적이어도, 환매 압력과 신뢰 하락이 겹치면 운용사는 유동성이 높은 ‘우량 자산’부터 먼저 내놓게 된다. 시간이 갈수록 남는 자산의 질은 저하되고, 마지막 투자자일수록 더 큰 손실을 떠안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손실보다 무서운 신뢰의 붕괴

이때부터 문제는 수익률이 아니라, 누가 먼저 빠져 나가느냐의 게임으로 변한다. 뱅크런이 은행의 자본이 완전히 소진된 후에만 발생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사모신용 시장의 긴장도 실현 손실이 확정된 뒤에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불신이 먼저 움직이면 자금이 따라 움직이고, 자금이 움직이면 가격은 그 뒤를 따른다.

그러나 이러한 리스크가 존재한다는 이유로, 현재 사모신용 시장의 이슈를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와 동일시하는 것은 무리다. 당시의 핵심은 차주의 신용도와 상관없이 무분별하게 집행됐던 부동산담보대출이 구조화 상품을 통해 은행, 보험사, 투자은행 등 금융 시스템 전반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됐다는 데 있었다. 반면 현재 사모대출 시장은 기본적으로 사적 계약과 제한된 투자자 기반 위에 형성돼 있고, 상당 부분이 폐쇄형 구조다.

일부 환매가 가능한 펀드라도 대규모 환매 청구 발생 시, 특정 기간 내에 투자자들이 환매할 수 있는 자금의 액수를 제한하는 일종의 ‘출구 제어장치(gate)’를 보유하고 있어 펀드 자산의 급격한 붕괴를 방어할 수 있다. 규모 측면에서도 현재 미국 가계 및 기업 부채 대비 사모대출의 비율은 약 4.1%에 불과해 금융위기 당시 미국 가계·기업 부채 대비 모기지대출 비율인 약 36.9%보다 현저히 낮다. 즉, 리스크는 분명 존재하지만 전파 경로와 속도, 그리고 규모가 2008년과 동일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사모대출의 경우 선순위 대출의 비중이 높아, 기업 파산이나 청산 시 원금 회수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기본 시나리오를 사모신용 시장의 위기로 둘 필요는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이번 국면의 본질은 기초자산 가치가 일시에 증발하는 파산 시나리오라기보다 유동성 경색이 평가 손실을 가속화하는 시나리오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는 대응 가능성의 차이를 뜻한다. 2023년 실리콘밸리은행 사태에서도 문제가 됐던 것은 장기채의 평가 손실 그 자체보다, 예금 인출이 촉발한 강제 매각이었다.

SVB의 교훈…유동성 공급이 패닉 막는다

당시 미 중앙은행(Fed)은 긴급 은행 유동성 지원 프로그램인 BTFP(Bank Term Funding Program), 재할인창구, 예금자 전액 보호 등 전격적인 조치를 단행했고, 이러한 정책을 기반으로 유동성을 공급하자 패닉은 빠르게 진정됐다. 사모신용 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기초기업의 현금 창출력이 완전히 붕괴하지 않았다면, 시장이 직면한 문제는 ‘손실의 존재 여부’보다 ‘손실을 어떤 가격과 속도로 현실화하느냐’의 문제다. 다시 말해, 지금의 불안은 관리 가능한 신용 손실이 관리 불가능한 유동성 쇼크로 바뀌지 않도록 막을 수 있느냐의 문제다.

결론적으로 현재의 사모신용 시장에 리스크가 존재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환매 제한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며, 소프트웨어 업종에 대한 우려와 평가 불확실성, 투자자 신뢰 약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시장은 분명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이를 금융위기와 같은 시스템 붕괴와 동일시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하며, 사모 시장이 유동성과 가치평가, 그리고 신뢰의 균형이 재조정되는 시험대 위에 있다는 것이 현 상황에 대한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시험의 결과는 단순히 특정 사모펀드의 성과를 나빠지게 하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그 충격이 시스템 전체를 무너트리기보다는, 제한된 범위 안에서 리스크를 관리하며 새로운 가격 질서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투자자가 지금 집중해야 할 것은 공포의 크기를 키워 나가는 것이 아니라, 사모신용 시장의 구조와 신뢰에 대한 가격을 시장참여자들이 명확히 매겨 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대응하는 게 보다 합리적인 행동일 것이다.
조용한 위기…경고등 켜진 사모신용 시장
조용한 위기…경고등 켜진 사모신용 시장
조석민 SC제일은행 투자전략상품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