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고채의 세계국채지수 편입은 외국인 자금 유입을 촉진하며 금리 안정과 환율 변동성 완화에 기여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단순한 지수 편입을 넘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금융시장 개방 의지를 보여준 전환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마켓 리더의 시각]
FTSE 러셀의 한국 편입 결정에 따라, 올해 안으로 한국 국고채는 WGBI 가중치 약 1.7%(2026년 4월 기준)로 아시아에서는 중국의 약 10%, 일본의 약 9% 이은 세 번째로, 세계 전체로도 열 번째 이내에 해당하는 상당한 비중을 가지게 됐다. 오랜 기간의 열망이 현실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WGBI 편입이 더욱 감격스러운 이유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채권, 주식, 그리고 원화의 저평가를 뜻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는 장기간 한국인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골치거리가 돼 왔다. 한국이 선진국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금융기관들과 금융 산업에서의 경쟁력은 뒤처진다는 인식은 고스란히 한국 자산의 매력도 저하와 가치 저평가로 이어졌다.
이러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우물 안 개구리였던 한국 금융 산업의 현실에서 연유했다. 한국 경제는 2000년대 이후 짧은 시간에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급성장했지만, 해외 자본 통제를 포함한 금융 관련 제도와 시스템은 큰 변화가 없었다.
아이가 빠르게 성장해 어른으로 몸집이 커졌지만, 커진 몸에 맞는 큰 새 옷을 만들어 주기는커녕 낡은 옷에 조금씩 천을 새로 덧대어 기워 가면서 누더기를 입은 상황이었다. 한국의 경제와 기업은 글로벌화됐지만, 자본시장과 외환 관련 법령과 제도는 수십 년 전 그대로였기에 외국 투자자들은 한국 금융 시장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WGBI 편입을 가능케 하기 위해 정부는 제도적 노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WGBI는 추종 자금 규모가 크기 때문에 편입 시 외국인 자금 유입을 통해 채권 시장의 금리 하락과 환율 안정 효과 및 통화와 재정 정책 측면에서도 자금 시장 안정화 등 여러 가지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외환 시장 개방과 외국인의 원화 거래 편의를 증진하기 위해 해외 소재 외국 금융기관들의 서울 외환 시장 참여를 허용하는 해외외국환업무취급기관(Registered Foreign Institution·RFI) 제도를 도입했으며, 외국인들의 국채 투자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해 적격금융기관(Qualified Financial Institution·QFI), 즉 국채통합계좌 시스템도 정착시켰다.
지난 4월 15일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4월 WGBI 편입이후 약 2주일간 외국인 국고채 순매수는 체결 기준 총 7.7조 원이었으며, 특히 그동안 국고채 투자가 제한적이었던 일본계 투자자들의 순매수도 2.8조 원으로 크게 증가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3월 23일 기준 3.63%까지 상승했던 3년물 국고채 금리는 4월 16일 기준 3.33%대까지 떨어져 약 0.3%(30bp)가량 하락했으며, 그동안 인플레이션 우려 때문에 급등을 거듭하던 초장기 30년물 국고채 금리도 지난 3월 27일 3.82%까지 치솟은 이후 4월 16일 기준 3.675%까지 0.145%(14.5bp) 하락한 결과를 보였다.
물론, 금리 하락에는 중동전쟁 정전협상과 종전 기대도 반영돼 있겠지만, WGBI 유입 자금으로 인한 금리 하향 안정화 효과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나 외국인들이 선호하는10년물을 중심으로 5년에서 20년 사이 중기물에서 금리하락이 돋보인다는 것도 고무적이다.
일례로, 그동안 시장 수요가 크지 않았던 국고채 20년물은 편입 이전에는 평소 인기가 시들해 천덕꾸러기로 인식됐지만, 외국인들의 매수가 시작되면서 수익률 하락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국고채 20년물 거래 수익률은 지난 3월 27일 기준 3.93%를 넘긴 이후 하락해 4월 16일 기준 3.62%까지 하락하면서 편입 이후 0.3% 이상 수익률이 급락한 상황이다.
7.7조 유입이 환율도 안정시켰다
이 같은 유입 자금이 환율에 주는 영향도 있었다. WGBI 추종 자금이 들어왔지만, 달러·원 환율에 주는 영향은 미미했다는 일각의 주장도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4월 들어 환율의 변동성이 많이 줄어들었으며, 환율 안정세에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 같은 현상은 4월 들어 환율이 하락세를 보였던 리스크 온 (risk-on) 시기에 더욱 뚜렷이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증거로, 4월 들어 휴전이나 전쟁 종식의 희망이 나타나는 리스크 온 시기 때마다 달러·원 환율은 그 하락 폭을 늘렸다. 리스크 오프(risk-off)가 나타날 때의 상승 폭보다 리스크 온 시기의 환율 하락 폭이 더 크게 나타나면서 달러·원 환율도 1470원대까지 하락할 수가 있었다.
편입보다 더 값진 것, 신뢰의 회복
한국 국채의 이번 WGBI 편입이 앞서 살펴본 여러 가지 면에서 한국 금융사에 매우 중요한 이정표이며 분기점이다. 그동안 국내 시장을 지키고 안주하겠다는 마음에서, 이제는 한국이 세계 금융의 중심으로 나아가겠다는 변화를 선택한 점을 외국인들은 보고 있다.
따라서 이번 한국 국고채의 WGBI 편입의 가장 큰 의미는 한국 국채가 선진 채권지수에 편입됐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편입 그 자체보다도 한국정부와 한국민들의 변화에 대한 열망과 노력, 그리고 진정성을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인식시켜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오랫동안 지속돼 온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탈피하고 글로벌 금융 시장을 지향하기 위해 과감한 변화를 시작한 한국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크게 주목을 하고 향후 이번 편입이 한국이 지향하는 동아시아 금융허브 도약을 위한 시발점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또한 한국의 국고채가 선진 채권지수에 편입된 것을 넘어 장래에 각국 중앙은행들의 준비 자산으로도 각광받는 글로벌 안전자산 반열에 오르는, 그 가슴 벅찬 대업을 완수할 수 있도록 정부와 시장참여자 모두가 앞으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변정규 다이와증권코리아 FICC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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