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워시 미국 중앙은행(Fed) 신임 의장이 의회 청문회를 순조롭게 마친다면 5월 중순 공식 취임한다. Fed 역사상 최연소 리더의 등장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케빈 워시 시대의 Fed는 어떻게 달라질까.
[스페셜] 중앙은행 새판짜기
그가 물려받은 유산은 가볍지 않다. 팬데믹 시기 단행된 무제한 양적완화(QE)로 비대해진 대차대조표와 인플레이션의 불씨, 디지털 화폐의 확산 속에 도전받는 달러 패권이 그를 기다린다. 특히 통화 정책과 재정 정책의 경계가 모호해진 상황에서, Fed의 독립성과 정책의 신뢰성을 다시 세우는 일은 큰 과제다.
1970년대생 ‘영파워’의 등장
과연 그는 시장을 꿰뚫는 통찰로 ‘제2의 그린스펀’이 될 것인가, 아니면 정치 권력의 압박에 흔들린 ‘제2의 밀러’로 기록될 것인가. 워시가 그리는 새로운 Fed의 설계도와 그 과정에서 시험대에 오를 독립성의 향방에 귀추가 주목된다.
지난 1월 30일 이후 글로벌 자산 시장이 요동쳤다. 주식과 채권은 물론 금, 은, 비트코인까지 일제히 흔들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차기 Fed 의장으로 케빈 워시를 지명하면서다. 당초 유력 후보였던 케빈 해시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이 아닌, 최연소 Fed 이사였던 케빈 워시가 낙점되자 증시 변동성이 커졌다.
워시의 지명 배경은 정치적 선호와 시장의 신뢰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최종 후보군 중 케빈 해시는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정책 핵심 설계자로, 정치와의 밀착 이미지가 시장의 불안을 자극했다. 학계 출신으로 Fed 내부의 신망이 두터운 크리스토퍼 월러 Fed 이사, 시장 전문가인 릭 라이더 블랙록 글로벌 채권부문 최고정보책임자(CIO) 사이에서 워시는 월가 현장의 감각과 Fed 이사로서의 정책 경험을 모두 겸비한 유일한 인물로 떠올랐다. 특히 정치권과의 거리 유지에 있어서도 케빈 해시보다 독립성 훼손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점이 결정적이었다.
손 교수는 “워시는 Fed의 임무를 '물가 조절, 통화 안정, 절제된 대차대조표'라는 좁고 명확한 정의로 되돌리려 할 것”이라며 “Fed가 만능 경제 해결사처럼 행동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며, 재량적 개입을 줄여 정책의 신뢰성을 확보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여전하겠지만, Fed의 활동 범위는 훨씬 작아진 시대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매파’라는 낙인, 지금도 유효할까
지명 당시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한 배경에는 워시의 과거 행보에서 기인한 ‘매파(통화 긴축 선호)’ 이미지가 자리했다.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Fed가 단행한 파격적인 양적완화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으며, 소신을 굽히지 않고 결국 2011년 이사직을 사퇴한 것으로 알려진다. 다만 현재의 워시를 과거의 잣대로만 평가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워시의 경제 철학은 한 마디로 ‘유동성은 엄격하게, 금리는 유연하게’로 요약된다. 언뜻 상충되는 두 방향이 공존한다. 하나는 Fed의 몸집을 줄이려는 매파적 원칙이며, 다른 하나는 인공지능(AI)이 가져올 성장을 믿는 낙관적 비풀기파(통화 완화 선호)적 태도다. 기준금리 측면에서는 경기 상황에 따라 인하 가능성을 열어 두는 유연한 기조를 유지하는 반면, 대차대조표 축소를 통한 유동성 회수에는 보다 엄격한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다.
조홍균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 교수는 “실제 임명 후에는 그동안의 생각과 다르게 전개될 가능성도 있다”며 “AI 기반 생산성 향상이 당장 몇 달 내 가시적으로 확인되기 어려운 만큼, 올해 내에 금리를 내리는 게 쉽지 않는 여건이며, 대차대조표 축소는 보다 신중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AI는 인플레이션을 이길 수 있나
조 교수는 “매파나 비둘기파냐의 이분법적 구분보다 중요한 건, Fed 조직의 지적 자산과 경험을 이끌 수 있는 능력”이라며 “Fed의 독특한 집단 의사결정 구조에서 스스로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다양한 논쟁을 조화롭게 이끄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같은 리더십이 위시의 진정한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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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워시는 누구인가
1970년생
스탠퍼드대, 하버드 로스쿨
모건스탠리 M&A 담당 7년, 이사 승진
2002~2006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수석보좌관
2006~2011년 Fed 이사(역대 최연소ㆍ36세)
스탠퍼드 후버연구소 펠로우, 쿠팡 사외이사 역임
신고 재산 약 1억9,000만 달러(역대 의장 중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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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시는 전통적인 중앙은행가와는 결이 다른, ‘월가 출신 정책가’에 가까운 인물이다. 1970년생으로 스탠퍼드대와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뒤 1995년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에 입사했고, 인수합병(M&A) 부서에서 7년 만에 이사로 승진했다. 이후 2002~2006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수석보좌관을 지냈다.
그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것은 2006년, 당시 36세라는 파격적인 나이에 Fed 이사로 지명되면서다. 공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전설적인 헤지펀드 매니저 스탠리 드러켄밀러의 투자 조직과 협력 관계를 맺으며 민간 금융 시장으로 복귀했다. 근래에는 실리콘밸리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에서 AI 산업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또한 쿠팡 사외이사를 지낸 바 있다. 금융을 바탕으로 기술에 대한 이해를 하고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Fed 의장으로서 워시의 궁극적인 목표는 ‘Fed의 인플레이션 억제 신뢰도를 회복하고, 조직을 더 예측 가능하며 절제된 형태로 재정의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는 생산성 향상, 규제 완화, 공급 여건 개선 등이 뒷받침된다면 언제든 금리 인하를 수용할 수 있는 열린 자세를 보이고 있다. "Fed를 더 절제되고 시장 민감도가 높으며, 신뢰도와 물가 안정 및 조직적 억제라는 본연의 임무에 집중하는 기관으로 만들려고 시도"를 할 것이라는 시각이다.
그의 정책 기조 중 가장 논쟁적인 핵심은 AI와 생산성 혁명이다. 워시와 트럼프 대통령이 공유하는 경제 비전에는 ‘AI로 생산성이 올라가면, 인플레이션 없이도 성장이 가능하다’는 시나리오가 있다. 과거에는 경기가 과열되면 금리를 올려 수요를 억제하는 방식으로 물가를 잡았지만, 이제는 AI 기술이 노동과 자본의 효율성을 높여 공급을 늘림으로써 인플레이션 압력을 자연스럽게 상쇄할 수 있다는 논리다. 고금리의 고통 없이도 고성장이 가능하다는 ‘생산성 중심 통화 정책’이다.
이는 1990년대 정보기술(IT) 혁명 초기, 모두가 인플레이션을 우려할 때 홀로 생산성 향상을 예견하며 저금리 호황을 이끌었던 앨런 그린스펀(1987~2006년)의 행보를 연상시킨다. 워시는 AI를 단순한 산업적 트렌드가 아니라, 거시경제의 판도를 바꿀 공급 측면의 강력한 도구로 보고 있다.
AI가 경제 성장률을 크게 끌어올린다고 가정하더라도, 전통 경제학 관점에서는 생산성이 높아지면 금리가 상승하는 게 교과서적인 흐름이다. 성장률이 높아지면 투자와 소비가 동시에 확대되고, 자금 수요가 증가하면서 금리에는 상승 압력이 작용한다.
이 때문에, 1970년대 정치적 압박에 굴복해 초인플레이션을 방조했던 윌리엄 밀러 의장(1978~1979년) 사례를 되풀이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금리 상승에는 많은 희생과 반대가 따르기 마련이다. 대기업 CEO 출신인 밀러 의장은 인플레이션 수습을 하지 못한 채 1년 만에 의장직에서 물러난 바 있다.
정부는 돈을 풀고, Fed는 돈을 거둔다
대차대조표와 관련해서도 복잡한 변수가 있다. 미국 정부의 재정 적자다. 재정 지출이 계속 확대되는 상황에서 Fed가 국채 보유를 줄이면, 그 공백을 민간 시장이 메워야 한다. 국채 공급이 늘어나는데 Fed가 사주지 않으면 국채 금리는 오를 수밖에 없고, 이는 정부의 이자 부담을 키우는 동시에 민간 투자를 구축하는 효과를 낳는다. 재정 정책과 통화 정책이 충돌하는 지점이다. 정부가 돈을 쓰는 속도와 Fed가 유동성을 거둬들이는 속도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느냐, 이것이 워시 시대 대차대조표 정책의 딜레마가 될 것이다.
팬데믹 시기 무한정 확장된 Fed의 대차대조표를 줄이는 것은 단순히 '돈을 거두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특히 오는 11월 중간선거까지 약 6~8개월은 향후 2년, 나아가 미국 경제의 방향을 좌우할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인플레이션을 잡느냐 못 잡느냐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동력 역시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경제를 둘러싼 큰 논쟁은 단순한 인플레이션 수준이 아니다. 올해 물가 상승률이 2%로 낮아지더라도, 유권자들에겐 “이미 오른 물가 수준 자체가 문제”가 된다. 선거에선 최근 인플레이션보다 “누적된 생활비 부담”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워시가 물려받은 또 하나의 무거운 과제는 통화 정책의 독립성 그 자체다. 1990년대 이후 인류가 찾아낸 이상적인 정책 분업이 있었다. 재정은 선출된 정부가 맡고, 통화 정책은 독립된 중앙은행이 담당하는 구조다. 정치로부터 분리된 중앙은행이 물가와 금융 안정을 책임지는 이 분업은 수십 년간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 연이은 전쟁을 거치면서 그 구조가 사실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
독립성 회복의 시간이 왔다
워시는 코로나19와 전쟁이 만들어낸 전시 체제에서 벗어나 독립성을 회복해야 하는 시점이 언제인지를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정치권은 중간선거를 앞두고 금리 인하를 원한다. 시장은 유동성 축소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워시의 선택이 Fed의 다음 챕터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금리는 내릴 수 있지만, 돈은 줄인다”는 워시의 정책 성향을 종합하면 이 조합은 시장에 중요한 신호를 준다. 시장에서는 단기금리는 하락 압력을 받고, 장기금리는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Fed 의사록에서 리스크 평가도 팽팽하게 갈리고 있다. 많은 위원이 추후 금리 인하가 적절하다고 보지만, 일부는 물가가 높게 유지될 경우 추가 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는 Fed 내부가 시장의 예상보다 훨씬 더 신중하며, 내부적인 의견 대립이 치열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조홍균 교수는 "지금은 문명사적 대전환이 동시에 밀려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AI가 만드는 패러다임 전환, 스테이블 코인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금융 혁명, 그리고 모든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기후위기다. 이는 통화 정책, 재정 정책, 금융 정책 모두가 영향을 받는 대전환이다.
조 교수는 "케빈 워시 시대의 중앙은행의 역할은 '트러스트 디자이너(trust designer)', 즉 최종 신뢰 설계자가 돼야 한다"며 "경제 주체들이 불확실성 속에서도 시스템을 신뢰할 수 있도록 제도와 정책을 설계하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거시경제 중심에서 금융 중심으로
기존 Fed의 통화 정책은 성장, 물가, 고용 같은 거시경제 변수가 중심이었고, 금융 요인은 보조적으로 반영됐다. 워시는 자본시장 출신답게 금융 안정을 정책 판단의 중심에 두는 접근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거시경제가 중심이고 금융이 주변이었던 구조에서, 금융이 모형의 중심에 가까워지는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벤 버냉키 의장 이후 Fed는 점도표, 포워드 가이던스 등 정교한 신호 체계를 통해 시장과 적극적으로 소통해 왔다. 워시는 이 방식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래를 너무 구체적으로 제시하면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을 때 정책 유연성이 제약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린스펀 식의 전략적 모호성으로 회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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