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미국 월가에 작은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종이 서류 더미에 파묻혀 매주 수요일 문을 닫아야 했던 뉴욕 증권 시장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세계 최초의 전자 주식거래 시스템이 가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이름은 NASDAQ(National Association ofSecurities Dealers Automated Quotations), 즉 ‘전국 증권 딜러 협회의 자동화 시세 시스템’이었습니다. 처음엔 그저 500개 기업의 주가를 화면에 띄우는 시세판에 불과했지만, 이 작은 출발이 반세기 뒤 세계 최대 기술주 시장의 씨앗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25년 후인 1996년, 한국도 나스닥을 벤치마킹해 코스닥을 만들었습니다. 대기업 중심의 코스피 시장에서 소외된 중소·벤처기업에 자금조달의 문을 열어주겠다는 취지였습니다. 출발점의 철학은 같았습니다. 차별받은 기업들을 위한 시장, 혁신의 플랫폼. 그런데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오늘, 나스닥과 코스닥의 운명은 너무도 달라졌습니다.
2000년, 두 시장은 똑같은 재앙을 맞았습니다. 닷컴 버블 붕괴였습니다. 나스닥 지수는 고점 대비 78% 폭락했고, 코스닥은 무려 2900선에서 600선대로 곤두박질쳤습니다. 수백 개의 기업이 사라졌고, 수많은 개인투자자가 전 재산을 잃었습니다. 표면상 두 시장이 겪은 위기의 규모와 충격은 비슷했습니다. 그러나 이후의 행보는 완전히 갈렸습니다.
미국은 고통을 제도적 개혁의 에너지로 전환했습니다. 허위 공시에 징역형까지 부과하고 투자은행의 매수 추천 남발의 고리를 끊었습니다. 나스닥 자신도 주식 시장에 상장해 주주의 감시를 받는 구조로 탈바꿈했습니다.
한국은 달랐습니다. 코스닥 거품은 정부가 정책적으로 키운 것이었습니다. 김대중 정부의 벤처 육성 정책이 직접적인 불쏘시개였기에, 정부 스스로 책임을 인정하고 강력한 수술에 나서기 어려웠습니다. 피해는 대부분 힘없는 개인투자자에게 집중됐고, 주가 조작과 회계 부정으로 처벌받은 경영진은 대부분 집행유예나 솜방망이로 끝났습니다. 2005년 코스닥이 한국거래소(KRX) 산하로 통합되면서 독립적인 혁신의 거점은커녕 코스피의 '하위 시장'이라는 낙인을 안게 됐습니다.
이후 20년 동안 역대 정부는 코스닥 활성화를 외쳤지만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처벌의 부재, 기관투자가 생태계의 미성숙, 그리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흔들린 정책. 구조적 결함은 반복됐습니다.
그런데 지금, 분위기가 다릅니다. 정부가 코스닥 레벨업을 전면에 내걸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공약한 ‘생산적 금융’의 실현 기반이 바로 코스닥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호 커버스토리를 준비하면서 가장 강하게 든 생각은 이것이었습니다. 문제는 기업이 아니라 시장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국에 투자할 만한 기업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 기업들을 키우고 성장시킬 수 있는 시장을 만들지 못한 것이 진짜 문제였던 것입니다.
나스닥이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를 만든 게 아닙니다. 나스닥은 그 기업들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자금을 공급하고, 실패를 허용하면서 성장을 지원했습니다. 코스닥도 그런 시장이 될 수있습니다. 제도의 변화가 시장의 신뢰로 이어지고, 그 신뢰가 자본을 부르고, 자본이 혁신 기업의 성장을 뒷받침하는 선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질 때, 비로소 진짜 레벨업이 시작됩니다. 30년 만에 찾아온 기회입니다. 이번만큼은 놓치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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