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본시장 대전환의 설계도가 된 이토 리포트의 ‘기본적 문제의식과 메시지’ 전문을 번역·소개한다. 부동산 편중 구조, 자본시장 저평가, 기업 수익성 부진이라는 한국의 현실이 2014년 일본의 그것과 구조적으로 닮아 있는 지금, 이토 리포트는 단순한 역사적 문서가 아니라 대한민국 투자 대전환의 나침반이다

[커버스토리] 파트1: 생산적 금융의 시대
지난 5월 11일 도쿄 시내에서 일본 니케이 지수가 표시된 전광판 앞으로 지나는 시민. 니케이 지수는 지난 4월말 사상 최초로 6만선을 돌파했다. 2014년 발표된 이토 리포트의 개혁 청사진을 10년간 꾸준히 추진한 결과다. 사진=연합AP
지난 5월 11일 도쿄 시내에서 일본 니케이 지수가 표시된 전광판 앞으로 지나는 시민. 니케이 지수는 지난 4월말 사상 최초로 6만선을 돌파했다. 2014년 발표된 이토 리포트의 개혁 청사진을 10년간 꾸준히 추진한 결과다. 사진=연합AP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국가, 혹은 혁신 창출 능력을 보유한 국가는 어디인가. 이 물음에 대해서는 다양한 통계 조사와 전문가들의 견해가 있지만, 일본이 가장 유력한 국가 중 하나임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가장 혁신적인 국가의 기업 수익력은 어떠한가. 수익력을 나타내는 대표적 지표인 총자산이익률(ROA)이나 매출액영업이익률(ROS) 등을 살펴보면, 일본 기업과 미국·유럽 기업 사이에는 거의 2배의 격차가 있으며, 이러한 경향이 20년에 걸쳐 지속돼 왔다. 가장 혁신적인 것으로 여겨지던 일본 기업이, 지속적 저수익성이라는 패러독스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토록 풀기 어려운 패러독스를 안고 있는 나라는 일본 외에 없다. 이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으면 지속적 성장을 위한 방책을 찾을 수 없다. 이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출발점이다.
12년 전 일본의 경고…이토 리포트 전문
일본이 직면한 지속적 저수익성 패러독스

일본 기업에 대한 중장기 투자가 낮은 수익밖에 내지 못한다면, 합리적인 투자는 보다 단기적인 변동에서 수익 기회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세계적으로도 큰 논쟁이 되고 있는 시장의 쇼트터미즘(short-termism·단기 지향)에는 다양한 요인이 있을 수 있지만, 일본 주식 시장에서의 단기화는 투자 기회의 단기화가 초래해 온 부분이 상당히 크지 않을까. 이것이 하나의 가설이다.

일본 기업이 호조를 보이던 1980년대까지는, 자칫 단기 지향의 자본시장에 대해 많은 일본 기업들이 수익을 약속하면서도 실제 경영은 장기적 시점에서 수행하는 '이중 기준 경영'이 실천돼 왔다는 견해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일본 기업의 혁신 창출을 위한 장기적 투자를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이 바람직한 '이중 기준'이 점차 바람직하지 않은 '이중 기준'으로 변해 갔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일본 기업의 경영자들이 기업설명회(IR) 등의 기회에 투자자에게 자기자본이익률(ROE)나 경제적 부가가치(EVA) 등 자본시장이 중시하는 지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사내에서는 그러한 경영 지표를 언급하지 않고 사내 논리를 우선시하거나 다른 지표를 내세우는 경향, 즉 언어를 구분해 사용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1980년대와의 차이는, 1990년대 이후 일본 기업의 수익성이 급격히 저하된 것과 맞물려, 이러한 '이중 기준'을 자본시장이 간파하게 됐다는 점이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이중 기준' 경영은 일본 기업의 자본효율이나 기업 가치 향상이라는 시점의 결여 혹은 희박화를 초래한 요인이 됐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더해, 많은 일본 대기업에서는 사장의 재임 기간이 암묵적 관행상 4~6년으로 비교적 짧게 고정돼 있다.

장기 투자자가 부재한 ‘자산 운용 후진국’

그렇다면 일본의 자본시장은 기업의 중장기적 기업 가치 창조를 지원하고, 장기적인 금융자산 형성에 기여하는 것이 되고 있는가. 미·유럽에서 큰 문제로 논의되고 있는 자본시장 혹은 투자자의 단기 지향화, 그리고 그로 인한 기업 경영의 단기 지향화는 일본에서도 같은 문제를 초래하고 있는가. 이것이 제2의 문제의식이다.

일본의 금융자산을 보면, 미·유럽에 비해 현금·예금의 비율이 매우 높고, 주식이나 투자신탁의 비율이 낮다. 이 비율이 장기에 걸쳐 고착화돼 있으며, 성숙 국가에서의 중장기적 자산 형성이라는 관점에서는 균형을 잃고 있다. 이와 같은 오랜 세월에 걸친 간접금융에 의한 자금조달, 현금·예금 중심의 금융자산 형성이라는 구조가 일본 자본시장의 층이 얇은 이유로 꼽히고 있다.
12년 전 일본의 경고…이토 리포트 전문
기업과 투자자 간 대화 부재가 초래하는 악순환

기업의 혁신 창출 능력이 수익성이나 자본효율 향상으로 이어지고, 그것을 평가하는 투자자가 장기 자금을 공급함으로써 더 나아간 혁신 투자가 이루어진다는 선순환을 실현하는 것이, 장기적인 기업 가치 향상과 지속적 성장의 열쇠다.

자본시장에서 기업 경영자와 투자자 간 대화의 부재(혹은 대화의 질 저하)는, 양측 사이에 메울 수 없는 인식 격차를 만들어내고 있다. 기업 측은 투자자가 단기 실적에만 주목하고 중장기적인 활동에 관심이 없다는 것, 안정보다 변화(서프라이즈)를 지나치게 요구한다는 것을 불평한다. 반면, 투자자 측은 기업 경영자가 기업 가치나 ROE 등의 수익성 지표를 경영에 반영시키지 않고, 중기 경영 계획 등의 실행력이 낮으며, 타율적 거버넌스 구조가 도입되지 않았다는 것을 비판한다.
지난 5월 일본 도쿄 시내 도요타 자동차 매장 앞을 지나는 시민들. 사진=연합EPA
지난 5월 일본 도쿄 시내 도요타 자동차 매장 앞을 지나는 시민들. 사진=연합EPA
자본효율과 기업 가치 향상이 국부 유지·형성 열쇠

거시경제 지표가 개선되는 가운데, 일본 경제를 지속적인 성장 궤도에 올리기 위해서는 미시적인 기업 레벨에서의 수익력이나 자본효율, 즉 펀더멘털스의 개선이 시급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장기적인 일본 경제의 국부 유지·형성의 시점이다. 일본 경제는 급격한 고령화와 인구 감소에 직면하고 있다. 국내외의 자금 공급자로부터 모아지는 '금융자본', 경영·사업을 담당하는 인재인 '인적자본', 혁신 창출 능력의 원천이 되는 '지적자본', 공급망이나 사회규범 등의 '사회·관계자본', 환경 등의 '자연자본' 등 다양한 자본을 유효하게 활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넓은 의미의 '자본효율(capital efficiency)'을 높이는 것은 일본의 존립과 관련된 중요 과제다.

[핵심 메시지]
지속적 성장의 장애가 되는 관습·레거시와의 결별

이번 프로젝트는 이상과 같은 목표와 기본적 문제의식에 따라 기업 경영자와 장기 투자자, 증권 애널리스트, 시장 관계자, 학식 경험자 등이 한자리에 모여 현실의 비즈니스에서 직면하는 과제를 각자의 입장을 넘어 정면으로 논의해 왔다.

이번 프로젝트의 큰 목표는, 기업의 지속적 성장과 자본시장을 둘러싼 중요 논점에 대해 고정관념이나 인상론, 일화 수준의 논의에서 탈피해 일본의 역사, 현황을 글로벌한 맥락에서 가능한 한 사실과 증거에 기반해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검증하고, 지속적 성장을 위한 미래지향적 변혁 시나리오를 제시하는 것이다.

혁신 창출과 고수익성을 동시에 실현하는 모델 국가

지난 사반세기에 걸쳐 일본은 높은 혁신 창출 능력을 보유하면서도 지속적 저수익성에 안주해 왔다. 이 패러독스는 세계에서도 특이한 것이다. 혁신은 일본(그리고 세계)의 경제·산업을 성장시키는 엔진이다. 혁신을 창출하려면 중장기적 경영이 필요하다. 만약 경영이 단기주의화하고 있다면, 혁신을 위한 씨앗 뿌리기가 소홀해져 성장 기회를 놓치게 된다.

그러나 엔진이 높은 재무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혁신 활동을 지탱하는 자금은 유입되지 않는다. 앞으로는 왕성한 혁신 창출 능력과 높은 수익성(돈 버는 힘)을 동시에 실현하는, 세계에서 으뜸가는 모델 국가를 목표로 해야 한다. 그것은 21세기에 있어서 일본의 큰 과제이자 염원이다.

기업과 투자자의 '협창(協創)'에 의한 지속적 가치 창조

지속적인 기업 가치 창조는 기업과 투자자에 의한 '협창(협조)'으로 실현된다. 기업 가치는 기업 단독의 힘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기업의 부단한 노력 없이는 가치가 생겨나지 않지만, 투자자의 지속적인 지원 없이는 사업 활동의 지속도, 가치 창조도 어렵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일본 기업은 이러한 지원을 재인식하고, 높은 수준으로 지원에 부응해 나갈 필요가 있다. 특히 자본비용을 의식한 ROE 향상을 경영의 중핵 목표로 설정하고, 투자자와의 질 높은 대화를 통해 서로가 '협창자'로서 지속적 성장을 실현해야 한다.
일본 도쿄 항만에 정박한 컨테이너선. 사진=연합EPA
일본 도쿄 항만에 정박한 컨테이너선. 사진=연합EPA
자본비용을 상회하는 ROE, 그리고 자본효율 혁명을

ROE의 평균적 수준이 최근 1년간 상당히 회복됐다고는 하지만, 1년 전까지 오랜 기간 5%를 밑도는 낮은 수준에 빠져 있었다. 자본비용의 평균 수준은 그보다 훨씬 높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는 자본효율이 상당히 낮다는 것을 의미하며, 일본 기업의 구조적 문제라 할 수 있다.

개개 기업의 자본비용 수준은 다르지만, 글로벌 투자자로부터 인정받으려면 우선 제1단계로서 최소한 8%를 상회하는 ROE를 달성하는 것에 각 기업이 헌신해야 한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최저한도'이며, 8%를 상회했다면, 또 이미 상회하는 기업은 더 높은 수준을 목표로 해야 한다.
12년 전 일본의 경고…이토 리포트 전문
기업과 투자자 간 '고품질 대화'를 추구하는 '대화 선진국'

지속적인 기업 가치 창조가 기업과 투자자에 의한 '협창'으로 실현된다고 한다면, 양자 사이에 존재하는 상대방에 대한 선입견이나 단정, 우려를 불식하고 상호 신뢰관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 경영자와 투자자 간의 목적을 가진, 질 높은 '대화·인게이지먼트'다.

올해 2월에 책정된 '일본판 스튜어드십 코드'는 이러한 대화에 대한 기관투자자 측의 인센티브를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앞으로는 기업과 투자자 간의 이해 대립적인 관계를 재검토하고, 21세기의 자본주의에 걸맞은 질 높은 대화를 모색해야 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통합 보고'는 중요한 테마다.
일본 도쿄 시내 관청가에 위치한 경제산업성 청사. 이토 리포트는 경제산업성이 추진한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사진=연합뉴스
일본 도쿄 시내 관청가에 위치한 경제산업성 청사. 이토 리포트는 경제산업성이 추진한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사진=연합뉴스
전체 최적을 향한 인베스트먼트 체인 변혁

일본 기업의 오랜 저수익성으로 인해, 인베스트먼트 체인(자금 제공자로부터 자금을 최종적으로 사업 활동에 사용하는 기업에 이르기까지의 경로 및 각 기능의 연결)의 각 부분에서 다양한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국부 형성이나 자본시장의 풍요로움, 그리고 기업의 지속적 기업 가치 창조는 인베스트먼트 체인을 구성하는 각 플레이어가 성숙하고, 가치 창조를 향해 효율적으로 행동하는 것의 축적으로 실현된다.

21세기의 중장기 자금 제공자로서 개인투자자의 존재에 주목하고 싶다.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800조 엔을 넘는 개인 예금이 중장기 에쿼티 자금으로 직접·간접적으로 기업에 향한다면, 인베스트먼트 체인 자체가 훨씬 풍요로워진다. 전체 최적 지향의 인베스트먼트 체인 변혁은 21세기 일본의 국부를 풍요롭게 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BOX] 이토 리포트란 무엇인가

2014년 8월 일본 경제산업성이 발표한 ‘지속적 성장을 위한 경쟁력과 인센티브 -기업과 투자자의 바람직한 관계 구축’ 보고서의 통칭이다. 좌장을 맡은 이토 구니오 히토쓰바시대 특임교수의 이름을 따 이토 리포트로 불린다.

아베노믹스 성장 전략의 일환으로 탄생했다. 당시 일본 기업의 ROE는 평균 5% 안팎으로 미국·유럽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세계 최고의 혁신 능력을 보유하면서도 수익성은 20년째 바닥을 헤매는 '패러독스'가 출발점이었다. 보고서는 그 원인을 기업과 투자자 간 대화 부재, 자본비용 무시 경영, 단기주의에서 찾았다. 핵심 처방은 명쾌했다. ROE 8% 이상을 최저 목표로 설정하고, 자본비용을 의식한 경영을 실천하라는 것이었다.

이토 리포트는 단발성 보고서가 아니라 10년 개혁의 설계도가 됐다. 스튜어드십 코드(2014년), 기업지배구조 코드(2015년), 도쿄거래소의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미만 기업 개선 요구(2023년)까지 일관된 정책 실행이 이어졌다. 니케이225는 2012년 대비 5배 이상 상승했다.

이재명 정부의 생산적 금융은 이토 리포트와 문제의식이 닮았다. 부동산 편중 자산 구조, 자본시장 저평가, 기업 수익성 부진이라는 한국의 과제가 2014년 일본의 그것과 구조적으로 같다. 밸류업 정책, 상법 개정, 스튜어드십 코드 강화를 동시에 추진하는 방식도 일본의 경로를 따른다. 이토 리포트가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하나다. 대전환은 선언이 아니라 10년의 인내로 완성된다.

일본 경제산업성 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