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가 없었다면 부동산 부양을 할 수도 있었을 타이밍이다.” 이윤수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국이 무리한 경기 부양 수단으로 부동산을 동원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의 상황을 “AI 복권에 당첨된 것”이라고 표현하며, 부동산에 집중됐던 돈의 흐름을 산업으로 돌릴 수 있는 골든타임이 왔다고 진단했다.

[커버스토리] 이윤수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AI 복권’ 당첨된 한국… 부동산 의존 끊을 기회”
“부동산 부양책을 쓰지 않아도 반도체 산업 덕분에 경기가 좋은 상황입니다. 만약 반도체가 없었다면 부동산 경기 부양을 할 수도 있었을 타이밍이거든요.”

이윤수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무리한 경기 부양의 수단으로 부동산을 동원하지 않아도 되는 최근 상황을 두고 “인공지능(AI) 복권에 당첨된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 덕분에 부동산에 집중됐던 돈의 흐름을 산업으로 돌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이 교수는 “산업 쪽으로 돈이 돌면 반도체가 아닌 분야에서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기업이 또 나오지 않겠나”라며 “성장 산업으로 돈이 모이는 시스템을 만든다면 우리나라에도 부동산이 아닌 다른 길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금융 시스템이 부동산을 중심으로 작동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부동산을 선호하는 것을 전통적인 경향성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물론 그 부분도 없지는 않죠. 그런데 사실은 여러 가지 원인이 얽혀 있습니다. 부동산은 주거 측면에서 중요한 것을 넘어, ‘실패하지 않는 자산’이 돼버렸거든요. 투자재로서의 성격이 굉장히 강해졌다는 겁니다. 여기에는 ‘사는 곳’과 ‘소유한 곳’의 분리가 가능한 전세 제도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부동산이 꼭 필요해서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레버리지를 일으켜 투자 수익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준 거죠. 여기까지가 수요 측면에서의 배경입니다. 그런데 이런 수요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대출이 늘어나는 건 아니거든요. 은행 입장에서도 부동산은 담보 평가가 쉽다는 측면이 큽니다. 특히 한국의 아파트는 가격 측정이 명확한 편이라, 은행 입장에서 대출을 내주기가 편리합니다. 규제 자체도 부동산 대출에 유리하게 돼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바젤Ⅲ를 굉장하게 엄격하게 따지는데요. 주택담보대출은 위험가중치(RW)가 낮습니다. 기업대출을 해주면 상당히 많은 자기자본이 필요하지만, 주택담보대출은 안전한 자산으로 평가되는 만큼 은행이 쌓아야 할 자기자본이 적게 든다는 것이죠.”

부동산 중심의 금융 구조로 인한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나요.
“우리나라 명목 국내총생산(GDP) 비중을 보면 제조업이 건설·부동산업보다 높습니다. 반면 대출 비중은 부동산이 훨씬 높죠. 주거용 아파트는 고용 창출이 확장되는 효과가 적은 ‘비생산적 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제 성장 기여도가 낮다는 이야기죠. 뿐만 아니라 금융기관 대출이 부동산에 지나치게 쏠려 있으면 금융 리스크로 확산될 우려가 있습니다. 선진국의 사례만 봐도 부동산 시장의 과도한 대출이 금융위기로 이어졌던 경우가 실제로 있었거든요. 마지막으로 금융도 산업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금융기관이 담보대출에만 안주하면 기술에 근거해 대출을 해주는 신용평가 체계를 고도화시키지 못합니다. 자본시장 안에서 금융이 해야 할 역할을 발달시키지 못합니다. 금융은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산업인데, 그런 성장의 기회가 막히는 셈이죠.”

정부가 추진하는 생산적 금융의 큰 방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우리나라는 부동산에 지나치게 집중된 구조 탓에 무엇보다도 주거비가 비싸졌습니다. 심지어 법인도 부동산 투자를 통해 낸 이익으로 사업 손실을 메우는 경우가 있죠. 그만큼 부동산은 고평가되고, 가격은 더 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싼 집값을 감당하는 이들이 많아지면 내수 시장에서의 소비 여력도 떨어집니다. 소비하는 사람이 없으면 산업도 성장하지 않죠. 악순환입니다. 정부가 단기적인 경기부양책을 생각했다면 부동산에 욕심을 낼 수도 있었을 텐데요. 부동산이 아닌 생산적 금융으로 정책 방향을 설정한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산업 쪽으로 돈이 돌면 반도체가 아닌 분야에서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기업이 또 나오지 않겠습니까. 성장 산업으로 돈이 모이는 시스템을 만든다면 우리나라에도 부동산이 아닌 다른 길이 생길 것입니다.”

이런 정책 흐름이 계속 이어질 수있을까요.
“계속해서 부동산 경기 부양을 하지 않을 것인지는 지켜봐야겠지만, 다행인 것은 부동산 부양책을 쓰지 않아도 반도체 산업 덕분에 경기가 좋은 상황입니다. 만약 반도체가 없었다면 GDP상으로 부동산 경기 부양을 할 수도 있었을 타이밍이거든요. 우리나라로서는 굉장한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상 AI 복권에 당첨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요. 덕분에 억지스러운 경기 부양을 안 해도 되는 측면이 생긴 겁니다. 지방 부동산 인프라 사업을 하더라도 질서 있게 조정할 수 있는 여력이 생겼고요. 거시경제적인 측면에서 옥석 가리기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여유가 주어졌습니다. 인프라와 기본적인 주거 환경을 만드는 사업은 추진하겠지만, 적어도 무리한 경기 부양의 수단으로 동원하는 것은 일단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AI 복권’ 당첨된 한국… 부동산 의존 끊을 기회”
금융기관들도 정부의 생산적 금융 기조에 공감한다는 뜻을 밝혔는데요. 은행 등이 생산적 금융을 적극적으로 공급하면 건전성 리스크가 커지지 않을까요.
“사실 건전성 문제는 생기겠죠. 생산적 금융에 들어간다는 것은 모험자본이나 첨단 산업에 자금을 투입한다는 뜻이라, 아무래도 불확실성이 큽니다. 투자 대상 기업이 성장을 얼마나 할지도 모르고, 모든 기업이 성장하는 것도 아니거든요. 특히 중소기업이나 벤처, 첨단 산업은 은행이 필요로 하는 담보가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기술과 사업모델을 평가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데요. 은행 입장에서 해당 기업에 빌려준 자금을 회수할 수 있을지 판단하기가 상당히 어렵죠. 회수 기간도 깁니다. 미국 테슬라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나스닥에 상장하고도 한참 동안 이윤을 보지 못했어요. 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이윤이 쉽게 안 나오더라도 투자가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한 거죠. 이는 은행 대출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자본시장도 어느 정도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금융기관이 리스크 테이킹을 했는데도 최종적으로 이자만 가져갈 수는 없는 거잖아요. 지분이 좀 들어가야 되는 거죠. 고위험·고성장 기업에 투자했을 때 원금 회수와 더불어 추가적인 이익을 가져갈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또한 실패했을 때 과도한 제재를 받는다면 금융기관의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봐야 합니다.”

과거 정권에서도 정부 주도로 중소기업과 혁신 산업을 지원하는 정책을 펴왔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는데요.
“사실 생산적 금융, 즉 국민성장펀드는 이름만 다를뿐 굉장히 오래전부터 해 왔던 정책입니다. 노무현 정부의 ‘모태펀드’, 이명박 정부의 ‘녹색·신성장동력펀드’, 박근혜 정부의 ‘성장사다리펀드’, 문재인 정부의 ‘뉴딜펀드’ 등이 비슷한 구조인데요. 관의 주도로 시장에 마중물을 대겠다는 취지였죠. 정부가 정책 자금을 모으고 금융기관이 참여하는 것, 특정 산업과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것도 지금의 국민성장펀드와 비슷하고요. 다만 예전에는 벤처, 창업에 투자가 집중됐다면 이번에는 규모가 엄청 커졌죠. 5년간 150조 원 이상으로 설계가 돼있거든요. 대상 산업도 AI, 반도체와 같은 전략 산업 중심으로 차별화했고요. 한편으로는 산업의 성격상 결국 대기업을 위주로 투자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는 것 같습니다. 반도체·2차전지 산업을 대기업이 하고 있으니까요. 또 펀드가 워낙 큰 규모로 조성되다 보니, 투자할 만한 기업이 없어 엉뚱한 곳으로 돈이 흘러가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AI와 같은 혁신 산업의 경우 많은 자금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150조 원 정도는 조성돼야 충분한 투자가 이뤄진다고 볼 수 있는 겁니다.”

국민성장펀드가 결국 대기업에만 투자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는 어떤 배경에서 나오는 건가요.
“개별 기업이 보유한 기술 등 일종의 무형 자본을 평가하고, 이 무형 자본이 창출할 성장 여력과 이득을 가늠한 뒤 자금을 투자해야 하는데요. 상당 부분 우리나라에서 기존에 했던 방식이 아닙니다. 특히 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많은 규모의 돈을 선별적으로 대출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회수 문제까지 고려하면 오히려 안전한 선택을 하게 될 수 있죠. 만약 반도체가 아니라 ‘넥스트 반도체 산업’을 찾아서 투자를 해야 한다면, 삼성전자에 하는 것보다는 훨씬 어렵고 불안감이 크겠죠. 그쪽으로 큰 돈이 들어갈 수 있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생산적 금융을 본격화하는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부작용은 없을까요.
“지금까지 반복됐던 문제인데요. 민간 금융이 먼저 자금을 투입하고 심사 기능을 키워야 하는데, 정부가 이 과정에 들어오다 보니 민간 금융의 역량이 더 커지지 못하는 겁니다. 만약 민간 금융이 이 역할을 나서서 한다면 AI 투자와 맞물려 자본시장이 함께 성장할 기회를 가질 수 있거든요. 지금은 정책성 펀드가 마중물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기업 심사 체계가 고도화되기 전인 국민성장펀드 초기에는 특정 산업과 기업에 자금이 과도하게 몰릴 수 있습니다. 저는 반도체 외의 산업을 적극적으로 키우고 다각화하지 않으면 우리 경제의 쏠림 현상이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보는데요. 반도체 사이클이라는 것 자체가 변동성이 상당히 크기 때문에 골이 깊습니다. 반도체가 가라앉는 사이클이 왔을 때 우리나라 경제를 떠받칠 수 있는 산업이 과연 무엇일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곳을 투자하고 키워야 합니다.”

생산적 금융으로의 대전환 속에서 개인투자자들은 어떤 태도를 갖는 것이 좋을지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일단 레버리지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동산은 자연스럽게 빚을 내서 투자하는 시장입니다. 그만큼 수익률도 컸죠. 부동산은 유동성이 낮고 거래 비용이 커서, 어떤 면에서는 손절하기가 힘든 상품입니다. 또 주식의 경우 수익률이 높긴 하지만 주가가 내려갈 때는 타격이 큽니다. 레버리지를 하게 되면 자산 형성이 아니라 투기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신중한 투자를 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부동산이냐 주식이냐를 떠나서, 장기 분산투자를 유지하는 것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당분간 금융 투자 시장으로 자금이 쏠린다고 해도, 이 흐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예측하기 힘듭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가져갈 수 있는 자산은 기본적으로 분산투자를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지금처럼 정책이 급격하게 바뀌는 시기에는 정책에 민감하게 따라가는 경향이 있는데요. 정책이 투자의 신호가 될 수는 있지만 너무 과신하면 안 됩니다. 예컨대 정부가 특정 산업을 지원한다고 해서 과연 그 산업이 100% 잘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정책이 가는 방향과 시장이 가는 방향을 함께 봐야 된다고 조언드리고 싶습니다.”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 사진 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