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로 접어든 한국에서 임종 직전의 유언을 둘러싼 분쟁이 더 이상 예외적 사건이 아닌 현실이 되고 있다. 최근 대법원이 산소호흡기를 착용한 암환자의 병상 유언에 대해 구수증서 유언의 효력을 인정하면서, 녹음·동영상·구수증서 유언을 둘러싼 상속 실무와 법적 기준에도 중대한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상속 이슈]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1000만 명을 넘어섰고, 사망의 약 75%가 병원·요양시설에서 발생한다. 자택에서 임종을 맞이하던 시대가 끝나면서, 산소호흡기·기관 삽관·진통제 투여 상태에서 유언을 남겨야 하는 상황이 일상이 됐다. 이른바 ‘임종 유언(deathbed will)’의 시대가 본격 도래한 것이다.
이 글에서는 우리 민법상 유언 방식의 체계와 실무 활용도, 최근 가장 빠르게 늘고 있는 녹음에 의한 유언의 법적 근거·요건·구체적 실무 방법, 다수의 무효 판례에서 도출되는 실무 체크 포인트, 이번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활성화될 구수증서 유언의 전망과 준비 방향을 차례로 검토한다.
초고령화 시대, 유언 방식이 바뀐다
구수증서 유언은 보통방식 중 다른 방식이 가능한 상황이라면 인정되지 않는다. 이를 ‘구수증서 유언의 보충성’이라 한다. 즉, 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는 평상시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보통방식’이고, 구수증서는 ‘질병 기타 급박한 사유’가 있을 때에만 허용되는 ‘특별방식’이다. 그런데 임종 자체가 점점 더 의료기기에 둘러싸인 형태로 진행되는 오늘날, ‘급박한 사유’와 ‘다른 방식이 가능한 상황’인지에 대해 사회적 기준이 필요한 상황이다.
한편 녹음에 의한 유언은 스마트폰 보급 이후 활용도가 늘고 있는 방식이다. 누구나 추가 비용·도구 없이 즉시 실행할 수 있고, 임종이 임박한 상황에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대법원 판결을 기점으로, 구수증서 유언도 활용도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 산소호흡기·기관 삽관 환자가 늘어나는 의료 현실에서, 발성 자체가 곤란한 망인이 유언을 남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이 구수증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는 녹음 유언과 구수증서 유언의 형식 요건과 실무 절차를 사전에 정확히 숙지하고 준비해 둘 필요성이 커졌다.
민법 제1067조는 녹음 유언의 법적 근거이며, 조문은 “녹음에 의한 유언은 유언자가 유언의 취지, 그 성명과 연월일을 구술하고 이에 참여한 증인이 유언의 정확함과 그 성명을 구술해야 한다”고 정한다. 짧은 한 문장이지만 다음 다섯 가지 요건이 모두 충족돼야 한다.
첫째, 유언자가 유언의 취지를 직접 구술해야 한다. 단순히 “예”, “그렇다”와 같은 단답이나 끄덕임만으로는 부족하다. 처분의 대상(어떤 재산), 처분의 상대방(누구에게), 처분의 방식(유증·증여 등)이 명확히 드러나도록 망인 본인의 입에서 나와야 한다. 둘째, 유언자의 성명을 본인이 직접 구술해야 한다. 셋째, 유언한 연월일을 망인이 직접 구술해야 한다. ‘연·월’만 말하고 ‘일’을 빠뜨리면 무효일 수 있으므로, 반드시 “○○○○년 ○월 ○일”의 형태로 완결돼야 한다. 넷째, 증인이 유언의 정확함을 확인하는 구술을 해야 한다. 단순한 추임새가 아닌, “위 유언이 정확함을 확인한다”는 취지의 명시적 구술이 요구된다. 다섯째, 증인이 자신의 성명을 직접 구술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민법 제1072조의 ‘증인 결격사유’를 반드시 점검해야 하며, 증인의 인원수는 1명 이상이어야 하나 한 명이 사후 연락 두절되거나 사망할 위험을 대비해 2명 이상을 두는 것이 좋다. 동영상 촬영도 앞의 요건을 모두 갖추면 녹음의 한 종류로 인정된다. 그리고 녹음 유언은 사후 가정법원의 ‘유언 검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민법 제1091조). 상속인 및 이해관계인이 입회한 가운데 법원이 녹음 파일을 재생·확인하고 그 내용을 조서로 남기는 절차로, 통상 사망 후 1~3개월 내에 진행된다.
녹음 유언, 쉬워 보여서 더 위험
녹음 유언의 형식 요건은 단순해 보이지만, 무효가 될 가능성이 높다. 실무상 녹음 유언을 시도하는 사례의 상당수가 사후 무효 분쟁으로 비화하므로, 아래와 같은 표준 시나리오를 준수하는 것이 중요하다.
1. 사전 준비 단계. 변호사 또는 가족이 아닌 제3자 1~2명을 증인으로 확보하되, 민법 제1072조 결격 여부를 사전 점검한다. 특히 수증자(유증을 받는 사람)의 배우자·직계혈족은 결격이므로, 가족 구성원을 증인으로 세우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녹음 장비는 휴대전화로 충분하나, 별도 녹음기 또는 동영상 카메라를 보조적으로 함께 사용해 다중 백업을 확보한다.
2. 도입부 구술. 망인이 다음과 같이 구술한다. “나, 김○○(주민등록번호 ○○○○○○-○○○○○○○)는 ○○○○년 ○월 ○일 다음과 같이 유언한다.”
주민등록번호까지 포함하는 이유는 동명이인 분쟁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함이다.
3. 재산 구술. 부동산은 등기부상 지번까지 특정한다. 예금, 증권은 금융기관명과 계좌번호를 명시한다. 유언집행자가 있다면 그 지정도 명확히 구술한다.
4. 증인 확인 구술. 증인이 다음과 같이 구술한다. “위 유언자 김○○의 유언이 정확함을 확인합니다. 증인 ○○○(주소 ○○○, 주민등록번호 ○○○○○○-○○○○○○○).”
5. 녹음 진행 방식. 도입부부터 증인 확인까지 한번에 끊김 없이 녹음해야 한다. 중간 정지, 재녹음, 편집은 절대 금지다. 음성이 다른 기기로 재생된 내용을 재녹음한 것으로 감정되면 무효가 될 수 있다.
6. 동영상 촬영 시 추가 팁. 동영상으로 촬영할 경우, 그날 자정 무렵의 TV 뉴스 화면을 함께 잠시 촬영해 두면 작성일자에 대한 사후 시비를 원천 차단할 수 있다. 상속 실무에서 자주 권장되는 노하우다.
7. 사후 보관·검인. 녹음파일 원본은 별도 USB, 외장하드, 클라우드에 즉시 다중 백업한다. 휴대전화 한 곳에만 보관할 경우, 분실·고장 시 큰 분쟁의 씨앗이 된다. 망인 사망 후 상속인 또는 유언집행자가 가정법원에 검인을 신청한다.
의료 현실 반영한 판결…
구수증서 시대 온다
녹음 유언조차 어려운 임종 직전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남는 것이 구수증서 유언이다. 민법 제1070조는 ① 질병 기타 급박한 사유로 다른 방식의 유언이 불가능할 때, ② 유언자가 2인 이상의 증인 참여하에 유언의 취지를 구수(口授)하고, ③ 증인 한 사람이 이를 필기·낭독한 다음, ④ 유언자와 증인이 그 정확함을 승인해 각자 서명 또는 기명날인하고, ⑤ 급박한 사유가 종료한 날로부터 7일 이내에 법원에 검인을 신청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런데 이번 대법원 판결은 기존 흐름에 의미 있는 균열을 만들었다. 망인이 산소호흡기를 착용한 채 일부 계좌번호를 어눌하게 발화한 사안에서, 대법원은 “유언자가 일부 계좌번호조차 겨우 기억에 의존해 어눌하게 말할 정도였다면, 의사 능력이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녹음 방식 유언이 가능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유언의 전체 취지를 일관되게 육성으로 녹음할 수 있는 신체적 능력이 있었는지를 별도로 심리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 변화로 인해 앞으로 산소호흡기, 기관 삽관, 말기 암, 뇌졸중 후유증 등으로 발성이 곤란한 망인의 임종 유언이 구수증서 방식으로 인정될 여지가 넓어졌다. 인구의 약 25%가 65세 이상이고, 그중 상당수가 의료기기에 의존한 임종을 맞이하는 우리 사회에서 구수증서 유언은 예외적 방식이 아닐 수 있으며, 이제는 모든 변호사, 상속실무가가 구수증서 유언의 절차를 사전에 숙지하고, 의뢰인이 위급 상황에 처할 때 즉시 가동할 수 있는 표준 프로토콜을 준비해 두어야 한다.
건강할 때 공증이 최선
우리 민법이 유언 방식을 엄격하게 정한 이유는 분명하다. 망인이 더 이상 말할 수 없게 된 후에 그의 진정한 의사가 무엇이었는지를 둘러싼 분쟁을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엄격함이 지나치면 정작 망인의 진심을 외면하게 된다는 역설도 존재한다.
녹음 유언은 스마트폰 시대의 가장 보편적 유언 방식이 될 수 있으나, 다섯 가지 요건 중 하나라도 흠결되면 무효라는 점에서 ‘쉬워 보여서 더 위험한 방식’이 됐다. 동시에 이번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구수증서 유언이 의료 현실에 부합하는 임종 유언의 방식으로 부상할 계기가 마련됐다. 1958년 제정 당시에는 예외 중 예외였던 구수증서 유언이, 2026년 초고령사회에서는 현실적인 임종 유언 방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가장 좋은 유언은 여전히 ‘건강할 때’, ‘공정증서로’ 작성한 유언이다. 그러나 그 시점을 놓친 사람에게도 우리 법은 마지막 길을 열어 두고 있다. 녹음 유언이든, 구수증서 유언이든, 형식 요건을 정확히 숙지하고 실무 프로토콜을 따른다면 망인의 진심은 사후에도 효력을 가질 수 있다. 상속은 단순한 재산의 이전이 아니라, 한 사람이 평생 쌓아 온 의사와 사랑이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마지막 절차다. 형식이라는 문턱이 그 진심을 가로막지 않도록, 변호사와 의뢰인 모두가 임종 유언 시대의 새로운 표준을 논의할 때다.
곽준영 법무법인 웨이브 대표변호사
© 한경매거진&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