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2~4시간. 계단을 오르고 짐을 나르는 휴머노이드가 인간의 동료가 되기엔 아직 짧은 가동 시간이다. 이 벽을 허물 열쇠로 '꿈의 배터리' 전고체가 주목받고 있다.
[스페셜] 전고체 배터리 대전
CES 2026을 기점으로 그 기대감은 더욱 빠르게 커지는 중이다. 글로벌 휴머노이드 시장 규모는 2024~2031년 연평균 42% 성장세가 예상된다. 2040년 휴머노이드 누적 보급 대수가 무려 5000만대를 넘어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휴머노이드의 시대, 피지컬 인공지능(AI) 시대의 개막이다.
피지컬 AI 시대, 마지막 퍼즐은 배터리
물론 당장 내일부터 피지컬 AI가 산업과 일상에 침투한다는 말은 아니다. 파운데이션 모델과 응용 소프트웨어 단계의 대화형·에이전트형 AI의 필요조건이 전력 인프라였다면, 하드웨어에서 작동하는 휴머노이드 구현에는 더 복잡하고 다양한 조건이 따라붙는다.
대표적으로 주변 환경 정보를 인식하는 센서, 추론과 의사결정을 수행하는 AI 시스템, 그리고 모터 감속기·제어기·배터리 등 다수의 부품이 필요하며, 각 요소별 병목이 해결돼야 비로소 온전히 작동할 수 있다. 특히, 배터리는 지각 판단·동작 전 과정에 필요한 에너지 공급원으로 로봇의 작동 시간과 출력 한계를 결정짓는다.
충분히 긴 시간을 몇 시간으로 볼지에 대해서는 견해차가 있겠지만 당장 현행 법정근로시간인 1일 8시간과 비교하면 휴머노이드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 테슬라의 옵티머스 2세대나 아틀라스 등 주요 모델들의 가동 시간은 약 2~4시간에 불과하다.
주된 원인은 배터리 탑재 공간의 제약에 있다. 대부분의 휴머노이드는 배터리를 흉부에 탑재하는데 공간 제약상 전기차만큼 충분한 용량을 확보하기 어렵다. 순수전기차(BEV)의 평균적인 배터리 용량이 50~100킬로와트시(kWh)인 데 반해 휴머노이드의 대당 탑재량은 2~4kWh에 머물러 있다.
작고, 가볍고, 오래가야…까다로운 3대 조건
결국 작업 현장에 투입된 휴머노이드는 일정 시간마다 배터리를 충전 또는 교체해야 한다. 하던 작업을 멈추고 배터리를 충전·교체하는 과정에서 유휴시간이 발생하고 이 빈도가 높을수록 비효율은 커진다. 관건은 한번의 충전으로도 오랜 지속이 가능하도록 에너지 밀도를 획기적으로 높이는 일이다.
무게 경량화는 전기차에서도 중요한 이슈이지만 휴머노이드에 있어서는 특히 민감한 문제다. 휴머노이드는 대기 중에도 센서와 제어 시스템 유지를 위해 일정 수준의 에너지를 소모하며, 걷거나 물건을 옮기는 동적 작업을 수행하면 에너지 사용량이 급증한다.
전기차 보조금과 판매량 간 상관관계에서 알 수 있듯 전기차 시장에서는 가격 경쟁력이 핵심이다. 일시적 수요 정체(캐즘)를 겪는 와중에 LFP 배터리 침투율이 날로 높아지는 배경에도 삼원계 대비 저렴한 가격이 있다.
한편, 최근 공개된 휴머노이드는 대체로 하이니켈 삼원계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삼원계가 가볍기도 하지만, 이제 막 개화를 앞두고 있는 휴머노이드 업계가 가격보다 성능 개선에 방점을 찍었다는 증거다. 전기차보다 공간 제약이 큰 이상, 부피 대비 에너지 밀도가 우수한 배터리가 필요한 건 당연지사다.
제품별 제조원가에서 배터리가 차지하는 비중도 눈여겨볼 만하다. 전기차에서는 배터리 원가 비중이 40%에 육박하는 반면, 휴머노이드의 배터리 원가 비중은 아직 낮은 편이다. 즉, 휴머노이드 업계는 전기차 시장보다 고가의 배터리를 수용할 여력이 있다.
여기에 최적화된 제품으로 최근 전고체 배터리가 주목받고 있다. 배터리 업계의 오랜 숙원사업이었지만 CES 2026을 계기로 피지컬 AI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전고체 상용화를 향한 시계추가 빨라지고 있다.
안전과 밀도, 두 마리 토끼 잡은 전고체
컴퓨팅 업계에 양자컴퓨터가 있다면 배터리 업계에는 전고체가 있다. 공통점은 둘 다 '꿈'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는 점이다. 양자컴퓨터, 전고체 배터리는 각각 '꿈의 컴퓨터', '꿈의 배터리'라 불릴 만큼 혁신적인 차세대 기술로 거론돼 왔다. 그러나 제반 기술 미비와 비용 문제 등으로 꿈처럼 손에 닿지 않고 멀게만 느껴지는 기술이기도 했다.
전고체 배터리는 주요 업체들이 공표한 양산 시점이 임박한 데다, 전술한 피지컬 AI 기대감이 기폭제가 됐다. 전고체 배터리는 가연성의 전해액이 불연성의 고체로 대체돼 보다 안정적이다. 리튬메탈 음극 또는 무음극 구조를 활용해 에너지 밀도도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2~3배 높일 잠재력이 있다고 평가된다. 안전성과 에너지 밀도 모두 확보할 수 있기에 휴머노이드에 적합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다.
휴머노이드가 가정용으로 확산되면 소비자들의 안전한 제품 수요까지 더해져 전고체 배터리 보급 속도가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는 향후 휴머노이드 보급 확대와 함께 로봇용 배터리 수요가 2035년에는 2025년 대비 900배 이상이 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 중 70% 이상을 전고체 배터리가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처럼 갈수록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전고체 배터리에 대해 5문 5답을 통해 보다 자세히 알아보기로 한다.
[5문 5답으로 알아보는 전고체 배터리]
01 전고체 배터리가 무엇인가
전고체 배터리(All-Solid-State-BatteryㆍASSB)는 리튬이온 배터리를 구성하는 소재 중 하나인 전해질을 기존의 액체 형태(전해액)에서 고체 형태로 대체한 배터리다. 현재 상용화된 리튬이온 배터리는 양극에 있던 리튬이온이 음극으로 이동하면서 충전되고, 다시 음극에서 양극으로 이동하며 방전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때, 전해액은 리튬이온이 양극과 음극 사이를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중간 매개체 역할을 수행한다. 핵심 소재 가운데 유일하게 액체 형태를 띠는 이 전해액을 고체 전해질로 대신하면 이름처럼 모든 것이 고체인 전고체 배터리가 된다.
전고체 배터리를 구분 짓는 기준은 전해질의 형태지만 나머지 소재의 변화도 수반된다. 우선 분리막은 고체 전해질로 대체된다. 당초 분리막의 목적은 양극과 음극이 섞이지 않게 하는 데 있는데 전해질이 더 이상 액체가 아닌 이상, 분리막 역할도 가능해진다.
양극재는 기존 삼원계를 유지하더라도 리튬이온이 양극과 전해질 간 접촉 표면(계면)을 잘 통과하기 위해 별도의 특수코팅 또는 압착 작업이 필요하다. 음극재는 그동안 집전체인 구리박에 흑연을 코팅하는 방식으로 제조했지만, 전고체 배터리에서는 집전체에 리튬메탈을 더하는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리튬메탈 음극재는 흑연 음극재보다 리튬이온을 더 많이 저장할 수 있어 배터리 용량 확대에 유리하다. 아예 집전체에 특수코팅만 얹은 무음극 구조도 개발 중이다. 무음극 배터리는 충전 시 양극에서 나온 리튬이온이 전자에 반응해 집전체 위에 얇은 리튬메탈 음극을 자연 생성했다가, 다시 리튬이온 형태로 양극으로 이동하면서 방전된다.
배터리의 모든 요소를 고체로 구성함으로써 얻는 첫 번째 효익은 안전이다. 액체 전해질은 가연성일 뿐 아니라 액체 특성상 고온 환경에서 기화하거나 외부 충격으로 누출될 우려가 있다. 이는 화재·폭발 등 사고 가능성과 직결된다. 전고체 배터리의 전해질은 불연성의 고체로서 열적 안정성이 우수해 이를 탑재한 전기차나 로봇의 화재 발생 우려를 낮출 수 있다. 적정 사용 온도는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가 섭씨 -20~60도, 전고체 배터리가 -40~100도로 알려져 있다.
두 번째 효익은 에너지 밀도다. 앞서 고체 전해질은 분리막 역할을 함께 수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의 분리막이 없어진 자리에는 더 많은 활물질이 투입 가능하다. 즉, 동일 부피에서 에너지 밀도를 높이거나, 같은 에너지 밀도하에서 소형화가 가능하다. 무음극 구조를 적용하면 음극이 차지하는 공간과 무게를 없앰으로써 밀도를 더 높일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액체 전해액을 탑재한 현재의 리튬이온 배터리는 셀과 셀 간 분리가 불가피하지만 전고체 배터리라면 셀의 적층도 가능해 작지만 더 강한 제품 구현이 가능하다. 안전과 에너지 밀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점, 전고체 배터리가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04 전고체 배터리도 여러 유형이 있나
전해질은 리튬이온이 양극과 음극 사이를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중간 매개체이기 때문에 높은 이온 전도도를 구현하는 것이 핵심이다. 전고체 배터리는 고체 전해질의 구성 물질에 따라 대표적으로 황화물계·산화물계·고분자계(폴리머)로 구분된다.
산화물계는 보통 수준의 이온 전도도 및 안정성을 보이지만 접촉 계면 형성이 어려워 1000도 이상 고온 소결을 통해 제조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고분자계의 경우, 액체 전해액 제조 공정과 유사하고 재료 특성상 다양한 형상으로 가공할 수 있지만, 낮은 이온 전도도와 안정성이 단점으로 꼽힌다. 현재 가장 활발히 연구개발(R&D)이 추진되고 있는 건 바로 황화물계다.
반고체 배터리(semi-solid-state-battery)는 전해질의 일부만을 고체로 대체해 기존 전해액 기반 배터리보다 에너지 밀도를 높인 제품이다. 전고체 배터리로 나아가는 중간 단계에 해당하며, 기존 생산 라인과 호환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그간 업계에서는 반고체·준고체·전고체 등 비슷한 용어가 혼용돼 왔으나 중국 전고체 배터리 기술 표준안은 반고체 배터리를 공식 분류에서 배제하며, 액체 함량을 극도로 낮춘 기술만을 전고체 표준으로 인정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해당 표준안에 따르면 반고체 배터리는 고체-액체 하이브리드 배터리로 봄이 타당하다.
로봇뿐 아니라 드론·항공우주·방위산업 등이 전고체 상용화 초기 수요를 견인할 전망이다. 가격보다 성능 가치가 중요한 영역으로 고가를 무릅쓰고 전고체 배터리 채택 유인이 존재하는 특수 산업군이다. 전고체 배터리는 가격 경쟁력에서 아직 리튬이온 배터리에 크게 뒤처진다. 전고체 배터리의 kWh당 가격은 리튬이온 배터리의 약 5~6배로 추정된다.
드론·UAM 등 항공 모빌리티는 전기차 이상의 안전성이 요구되고, 로봇과 마찬가지로 작고 가벼우며 물리적 충격에 강한 배터리가 필요하다. 지난 4월 발사에 성공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유인 달 탐사선 아르테미스 2호로 주목받고 있는 우주산업도 마찬가지다.
반면, 2차전지 최대 전방시장인 전기차 업계 전반으로 대중화되기까진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LFP 점유율이 삼원계를 위협하듯 전기차 업계는 가격 민감도가 높아 상용화 초기 전고체 배터리는 초고가 차량에만 제한적으로 탑재될 공산이 크다. 에너지저장장치(ESS) 역시 전고체 배터리 초기 시장과는 거리가 있다. ESS는 건물이나 부지에 설치되는 만큼 무게·부피의 제약이 적고 LFP로 안전성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어서다.
정우철 삼일PwC컨설팅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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