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간 자산가치 대비 30~60% 할인 평가를 받아온 국내 지주사들이 재평가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 중복상장 규제 강화, 상법·세제 개편 등으로 지주사 디스카운트 요인이 완화될 것으로 기대되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이 커지는 모습이다.

[마켓 트렌드]
서울 을지로6가 두산그룹 본사. 사진=한국경제
서울 을지로6가 두산그룹 본사. 사진=한국경제
‘시가총액이 자산 가치를 훨씬 밑도는 게 당연한 주식’. 지난 수십 년간 국내 상장 지주사들에 대한 시장의 평가였다. 하지만 요즘은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주요 지주사들의 사업 업황이 달라진 한편 지주사 디스카운트(저평가) 요인을 겨냥한 정책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는 까닭에서다.

신한투자증권에 따르면 그간 지주회사의 순자산가치(NAV) 할인율은 통상 30~60% 수준이었다. 실제 자산 가치가 10조 원이어도 시장은 그 기업 가치를 3조~6조 원으로 평가했다는 얘기다.

지주사, 통상 주가 60% 할인

여기엔 여러 이유가 있다. 일단 가장 큰 이유로는 대주주와 일반주주 간 이해 상충 문제가 꼽힌다. 현행 세금 제도하에선 상속·증여 등을 앞둔 상장사 최대주주가 기업 주가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해야 세금을 덜 낼 수 있다는 게 대표적이다.

현재 세법이 대주주에 적용하는 양도소득세율은 지방세 포함 27.5%, 상속·증여세율은 최대 60%(최고세율 50%+할증세율 20%)에 달한다. 이런 구조에선 기업 시총이 총 1조 원일 때 최대주주가 상속세를 6000억 원 내지만, 주가가 낮아 시총이 5000억 원 수준이라면 상속세를 3000억 원 낸다. 시장이 ‘대주주가 주가를 적극적으로 올리지 않을 공산이 크다’고 추정하는 게 합리적이었던 이유다.

‘더블 카운팅(중복 계산)’ 문제도 지주사 주가를 눌러 왔다. 주요 지주사들이 거느린 자회사를 줄줄이 상장시키자 시장이 중복된 이익만큼을 깎아서 평가한다는 현상이다. A지주사와 A의 자회사인 B기업, C기업이 각각 따로 상장돼 있다면 B와 C는 이미 주식 시장에서 가치 평가를 받고 있다. 시장이 A지주 주가를 따질 때 B·C 지분 가치를 그대로 반영하면 같은 가치를 두 번 인정하는 셈이 된다. 지난 5월 기준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대기업집단 102개 중 유가증권 시장(코스피)에 모·자 지분 관계 기업이 중복 상장된 기업집단은 47곳으로 지난해에 비해 3곳 늘었다.

여기에다 대부분 지주사는 대주주 중심 의사결정, 낮은 주주환원율, 불투명한 기업지배구조 등으로도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7월 세제개편안 등 관건

하지만 지난해부터는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지주사 주가 저평가 요인을 해소하려는 정책 움직임이 커지고 있어서다.

올 하반기엔 중복상장에 대한 규제가 강화된다. 한국거래소는 앞으로 중복상장을 원칙적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물적분할 자회사나 신규 인수 자회사 등을 상장하려면 상장 필요성과 투자자 보호 방안을 보다 엄격하게 입증해야 한다. 기업 합병·분할 시 공정가액 산정을 의무화하는 자본시장법 개정도 연내 이뤄질 전망이다. 주가를 비롯해 자산 가치와 수익 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기업 몸값을 산정하도록 하는 게 핵심 내용이다.

이르면 7월 말 발표될 세제개편안도 관건이다. 지난 5월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상장주식 저평가를 방지하기 위한 이른바 ‘주가 누르기 방지법’이 정부 세제개편안에 포함될 것이라고 했다. 법안은 주가순자산비율(PBR) 0.8배 미만 상장사의 상속·증여세를 산정할 때 단순 주가 대신 자산 가치와 수익 가치를 함께 반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업 오너가 상속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주가를 낮게 유지할 유인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금융당국은 기업의 주요 자산 가치를 재평가해 공시하게 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매입한 땅의 평가 가치가 크게 올랐어도 장부상에는 매입 시점 가치로만 기재돼 있는 경우 등을 막는 게 골자다. 당국은 일단 토지부터 시작해 범위를 차차 넓힌다는 구상이다.

최관순 SK증권 연구원은 “중복상장과 기업 가치 훼손 방치는 그간 지주회사 할인의 가장 큰 원인”이라며 “자본시장 체질 개선을 통해 지주회사에 대한 추가 가치 재평가가 이뤄질 수 있다”고 했다. 유건호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앞서 나온 1·2차 상법개정안 중 일부 내용은 유예 기간이 끝나 올 하반기부터 적용을 시작한다”며 “지주사의 거버넌스 개선도 본격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2월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 열린 상법 개정안 관련 공청회 장면. 사진=연합뉴스
지난 2월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 열린 상법 개정안 관련 공청회 장면. 사진=연합뉴스
자회사 업황 등에 큰 영향

그렇다고 해서 모든 지주사의 주가가 상승세를 타는 것은 아니다. 자체 사업부와 자회사 가치가 주가의 핵심 요소라서다. 지난 6월 중순까지 1년간 두산(약 217%), 효성(약 167%), 삼성물산(약 151%), SK(약 129%) 등의 주가가 급등한 반면 CJ의 주가는 14%만 올랐다. 같은 기간 롯데지주는 주가가 오히려 0.9% 내렸다.

증권가는 각 지주사의 순자산가치에서 비중이 높은 사업부나 자회사를 꼼꼼히 따져 투자 결정을 하라고 조언한다. 지주사의 주가 움직임을 따지려면 먼저 사업 내용과 매출 기반을 알아야 한다. 지주사는 금융지주와 일반지주사로 나뉜다.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 금융 기업을 아래에 두고 있다면 금융지주회사다. 이를 제외한 지주사는 일반지주회사다.

일반지주회사도 둘로 나뉜다. 자체 사업이 없다면 순수지주회사다. 이들은 지분을 보유해 자회사를 지배하는 게 본업이라 매출과 현금흐름이 자회사 배당금, 브랜드 로열티, 경영자문 수수료 등에서 나온다. LG, HD현대, CJ, 효성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순수지주회사의 주가와 순자산가치는 자연히 자회사 가치와 크게 연동된다.

자회사를 지배하는 한편 자체 사업도 하고 있다면 사업지주회사다. 이런 회사는 자체 사업 실적과 자회사 가치가 주가 흐름에 각각 영향을 준다. 정보기술(IT) 서비스 사업을 하는 SK, 건설·글로벌 부문을 둔 한화, 전자BG(비즈니스그룹) 사업 부문을 둔 두산 등이다.
서울 서린동 SK그룹 본사 사옥. 사진=한국경제
서울 서린동 SK그룹 본사 사옥. 사진=한국경제
AI 시장 수요 등 동력 따져야

지주사로 통하는 주요 기업 중 지난 1년간 주가 상승률이 가장 높은 기업은 두산이다. 두산은 공정거래법상으로는 지주사가 아니지만, 기업 구조 때문에 증권가에선 지주사로 통한다. 이 기업은 인쇄회로기판(PCB) 핵심 소재인 동박적층판을 생산하는 자체 사업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 사업 부문인 전자BG의 지난해 매출은 1조8751억 원으로 전년 대비 87% 늘었다. 두산의 전체 NAV 비중이 높은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는 각각 최근 인공지능(AI) 수요에 따른 원전 확대 기대, 피지컬 AI 확산 기대를 받고 있다.
오너 주가 누르기 끝나나…지주사 재평가 본격화
SK도 산하 기업 실적 기대를 받고 있다. 자회사 SK스퀘어를 통해 보유한 손자회사 SK하이닉스의 실적이 높은 반도체 수요에 힘입어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서다. 이경연 대신증권 연구원은 “SK는 그룹 전반의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을 거쳐 외형 성장과 수익성 개선이 동시에 나타날 것”이라며 “AI 데이터센터 솔루션 기업인 비상장 자회사 SK에코플랜트도 ‘히든 밸류(감춰진 가치)’ 요인으로 부상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오너 주가 누르기 끝나나…지주사 재평가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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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 주가 누르기 끝나나…지주사 재평가 본격화
선한결 한국경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