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동성이 일상화된 투자 환경에서 자산배분형 ETF의 가치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주식과 채권, 대체자산을 적절히 조합해 위험을 관리하는 자산배분형 ETF는 단기 수익보다 안정적인 장기 성과를 추구하는 투자자와 연금 자산 운용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올해 채권혼합형 ETF가 잇달아 출시된 것도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다.
[ETF 심층해부]
ETF는 생겨난 근본 목적이 여러 기초자산을 동시에 담는 ‘분산투자’에 있다. 기초자산 분산투자, 즉 자산 배분에 강점이 있다는 말이다. 특히, 올해처럼 매크로 환경과 지정학적 요인의 변동성이 커지는 국면에서는 자산 배분 전략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포트폴리오의 위험·수익 관리에 강점을 가질 수 있다. 또한 일반 주식 계좌를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투자자라도 퇴직연금 투자 관점에서는 자산배분형 ETF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에 우리의 노후를 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자산 배분은 포트폴리오에 포함되는 주식과 채권, 기타 자산의 비율을 의미한다. 자산 배분 투자는 각각 정해 둔 비율대로 투자금을 투자하는 것이다. 자산 배분 ETF는 이를 ETF로 구현해 놓은 것이다. 자산 배분 ETF를 적절히 활용할 경우 투자자는 효과적인 변동성 통제와 수익 추구를 동시에 누릴 수 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자산 배분 투자의 효과다. 포트폴리오 투자는 개별 자산 투자보다 단위 위험당 수익률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구간이 존재한다. 오래된 증시 격언 중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낙폭 줄이고 수익 지키는 자산 배분의 힘
자산 배분 ETF의 특징은 첫째, 펀드가 추구하는 투자 목표와 결과 추구 전략이 명확하다는 점, 둘째, 시장 상황을 고려한 동적 자산관리가 가능하다는 점, 셋째, 시장 변화에 펀드 자체로 대응이 가능하다는 점, 넷째, 운용역이라는 전문가가 자산 배분 포지션을 관리한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자산 배분 투자 전략 자체가 ETF로 구현돼 있기 때문에 낮은 운용보수와 거래 용이성이라는 장점이 더해진다.
특히, 장기 투자 시 자산 배분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된다. 미국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지난 20년간 매월 1월 1일부터 12월 31일 사이 고점 대비 평균적으로 약 15%의 하락하는 구간이 매년 발생했다. 즉, 주식 시장이 장기적 우상향하는 기간에도 변동성은 지속적으로 있었다는 의미다. 투자자들은 최적의 매수·매도 타이밍을 잡아 연중에 발생하는 하락 변동성에 대비하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연중에 발생하는 하락 변동성을 어떻게 방어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자산 배분 ETF의 경우 이 주식 변동성을 채권이나 대체자산 등과 혼합해 하락 낙폭을 줄이고 투자자가 시장을 이탈하지 않고 장기 투자를 지속할 수 있게 만든다. 또한 자산 배분 ETF는 룰베이스(rule-based) 혹은 운용 매니저의 재량에 따라 사전에 설정된 타깃 비중을 유지한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하락 변동성 장세에서는 하락한 자산을 저렴한 밸류에이션으로 담고, 급등한 자산을 차익실현 하는 투자가 가능하다.
어떤 시장에도 버티는 자산 배분 유형, 3가지
첫째는 ‘고정 비중 할당 전략’이다. 자산군별 투자 비율을 고정해주고 주기적으로 리밸런싱을 하는 방식이다.
자산 배분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주식과 채권을 60%와 40%로 각각 담는 60:40 전략 등의 전통적 자산 배분 혼합 전략과 영구 포트폴리오(permanent portfolio: 주식·장기채·금·현금을 각각 n분의 1로 담는 방식)가 대표적이다. 주식의 변동성과 인플레이션 및 침체를 방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둘째는 ‘위험 및 거시경제 기반 전략’이다. 자산의 투자금액보다는 각 자산이 전체 포트폴리오에 미치는 위험 기여도나 거시경제 국면을 기준으로 비중을 정한다. 주식과 채권의 위험 기여도를 각각 50:50이 되도록 채권과 주식의 비중을 조절하는 ‘리스크 패리티’ 전략이나, 레이 달리오가 대중화한 올웨더 포트폴리오(all-weather)가 대표적이다. 올웨더 포트폴리오 전략은 경제와 물가를 변수로 네 가지 국면별로 자산군별 리스크 패리티를 계산해 비중을 정한다. 어떤 매크로 환경에도 투자 성과를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셋째는 ‘전술적 및 테일리스크 전략’이다. 시장 상황이나 특정 목표 수익에 맞춰 유연하게 대응하는 형태를 말한다. 추세나 이동평균선, 거시경제 지표 등의 시그널을 바탕으로 비중을 조절해 최대 낙폭을 조정하는 형태의 ‘전술적 자산 배분 전략’이나, 극단적인 시장 폭락에 대비해 수익이 나도록 설계된 보험 성격의 ‘테일리스크 방어 전략’ 등이 있다.
퇴직연금 한도 벽…채권혼합형 ETF가 열쇠
국내는 올해에만 12개의 채권혼합형 ETF가 신규 출시됐다. 이러한 공격적인 출시는, 투자자들이 자산 배분에 대한 인식 변화보다는 연금 계좌에서의 운용 운신의 폭을 넓히기 위한 수단으로 채권혼합형 ETF를 활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퇴직연금 계좌(DC형·IRP)를 운용하다 보면 투자자 입장에서는 위험자산 70% 투자한도(안전자산 30% 의무 편입 룰)가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시장이 좋을 때 주식형 ETF에 100%를 투자하고 싶어도 30%는 어쩔 수 없이 채권과 같은 안전자산에 묶어 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내에 다수 상장된 채권혼합형 ETF의 경우 비위험자산으로 분류돼 퇴직연금 계좌에 편입이 가능하다. 따라서 위험자산 비중을 간접적으로 확대해 포트폴리오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수단으로 채권혼합형 ETF가 많은 인기를 누린다.
둘째는 단일 주도주 집중 투자다. 최근에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단일 기업의 주식을 담고 나머지를 국고채로 채우는 단일종목 채권혼합형 ETF가 인기를 얻고 있다. 개별 종목의 높은 성장성을 누리면서도 채권 이자로 변동성을 방어할 수 있어 연금 계좌에서 전술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 되고 있다.
임은혜 삼성증권 리서치센터 ETF전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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