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꽃 한 송이를 두고도, 하이 주얼리 메종은 전혀 다른 것을 본다. 누군가는 그 안의 질서를 보고, 누군가는 피어나는 찰나를 포착하며, 또 누군가는 현실 너머의 환상을 꿈꾼다. 하이 주얼리를 상징하는 5개의 메종이 대자연을 대하는 다섯 가지 시선.
[주얼리]
“반클리프 아펠에 자연은 언제나 살아 움직이는 생동감 그 자체다.”
반클리프 아펠 창립자의 조카이자 메종의 성장을 이끈 자크 아펠은 “행운을 얻기 위해서는 행운을 믿어야 합니다”라는 말을 남겼고, 오래전부터 행운의 상징으로 여겨온 네잎클로버는 1968년 탄생한 ‘알함브라(Alhambra)’ 컬렉션을 통해 메종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자연을 행운의 전령이자 시적인 동반자로 바라보는 메종의 시선이 투영된 결과다. 반클리프 아펠의 시선 속에서 꽃은 고정된 형태에 머물지 않는다. 1937년에 제작한 ‘피오니 클립’은 금속 지지대를 숨겨 보석을 촘촘히 세팅하는 ‘미스터리 세팅’ 기법을 통해 방금 피어난 꽃잎의 유기적인 볼륨감을 완벽하게 구현했다. 사실 자연 속 꽃은 완벽한 대칭이 아니다. 꽃잎 하나가 살짝 기울어져 있거나, 바람에 일렁이기도 한다. 반클리프 아펠은 바로 그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의도적인 비대칭 구조를 택한다. 비대칭이야말로 살아 있는 꽃의 본질에 가장 가깝기 때문. 찰나를 눈부신 영원으로 바꾸는 것, 그것이 반클리프 아펠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다.
“부쉐론에 식물이란 결코 길들일 수 없는 대자연의 자유로움이자 움직이는 생태계 그 자체다.”
엉겅퀴는 아름다운 꽃의 전형적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가시가 돋고 제멋대로 자라며, 정원보다 들판이 더 어울린다. 그런데 부쉐론은 이 엉겅퀴를 주얼리의 세계로 불러들였다. 1878년에 탄생한 역사적 엉겅퀴 브로치 아카이브 피스를 비롯해 아이비, 양치식물 같은 모티프는 메종이 자연을 바라보는 고유한 시선을 보여준다. 이들에게 자연은 잘 가꾼 정원이나 꽃이 완벽하게 피어난 순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완전히 피지 않은 봉오리나 이미 시든 꽃처럼, 변화하고 순환하는 과정 전체를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인다. 예측할 수 없이 자라고 순환하는 생명력 그대로를 주얼리에 담으려는 것이다. 하이 주얼리 컬렉션 ‘이스투아르 드 스틸’의 ‘길들여지지 않은 자연(Untamed Nature)’ 에디션은 이 유산의 정점과도 같다. 특히 프랑스어로 엉겅퀴를 뜻하는 샤동(Chardon) 네크리스와 브로치는 엉겅퀴의 날카로운 윤곽과 끈질긴 생명력을 극사실적으로 드러낸다.
“부첼라티에 자연은 피어나는 순간이 아니라 그 안에 내재된 완벽한 질서다.”
1919년 메종을 세운 마리오 부첼라티는 그 섬세한 조직 속에서 자연의 구조와 닮은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부첼라티가 주목한 것은 식물이 피고 지는 찰나보다 그 안에 깃든 질서였다. 잎맥이 뻗어가는 방향과 가지가 교차하는 형태를 통해 메종은 금속으로 정교하고 세심한 조직을 새기며 자연이 지닌 힘과 아름다움을 담아내고자 했다. 그중 ‘라마지(Ramage)’ 컬렉션은 부첼라티 철학의 정수라 할 만하다. 서로 얽히고 뻗어가는 잎과 꽃의 움직임을 오픈워크 기법으로 풀어냈는데, 금속이라는 단단한 소재를 살아 숨 쉬는 식물의 조직처럼 보이게 한다. 1mm의 골드 판을 손으로 직접 뚫어 가지와 잎의 실루엣을 만들고, 그 위에 다이아몬드를 올린다. 이처럼 자연이 만들어낸 구조를 금속 위에 옮기고, 그 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 시간을 초월해 금속에 구현된 영원의 질서야말로 부첼라티가 식물을 대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쇼메에 식물이란 오랜 관찰 끝에 보석 형태로 영원히 새겨진 자연이다.”
쇼메는 스스로를 ‘자연주의 주얼러(naturalist jeweller)’라 정의한다. 1780년 공방을 연 창립자 마리 에티엔 니토는 식물을 사랑하는 조세핀 황후와 교류하며 자연에 깊이 몰두했다. 특히 쇼메의 자연주의는 식물세밀화의 시선과 맞닿아 있다. 꽃의 심미적 아름다움은 물론 형태와 구조를 정확하게 관찰하고 기록하는 식물세밀화처럼 꽃잎의 유기적 곡선과 미세한 이슬방울, 나뭇잎의 결에 이르는 정교한 묘사를 통해 보석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겹겹이 피어난 수련 꽃잎의 움직임을 그려낸 ‘워터 릴리’나 쇼메 자연주의 세계관의 정수를 보여주는 ‘클로버 & 고사리과 식물(Clover & Fern)’이 대표적이다. 당연히 ‘자연’이라는 유산은 하이 주얼리 컬렉션에도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특히 지난해 선보인 ‘주얼스 바이 네이처(Jewels by Nature)’ 컬렉션은 고요한 줄기와 섬세한 잎맥, 빛을 머금은 꽃잎까지 자연의 면면을 고스란히 옮긴 듯한 사실주의적 표현의 정수를 보여준다.
“베베르에 자연이란 메종의 환상과 감정을 투영해 다시 피워낸 예술이다.”
19세기 말 유럽에서 등장한 아르누보는 자연의 곡선과 식물의 리듬, 비대칭적 형태를 예술과 공예 안으로 끌어들인 양식이다. 꽃과 잎, 곤충과 여성의 이미지는 유기적 곡선과 신화적 분위기 속에서 현실과 상상이 만나는 세계로 확장되었다. 1821년에 창립해 1881년 폴과 앙리 베베르 형제가 이어받은 뒤 아르누보 주얼리의 거장으로 자리 잡은 베베르는 자연이 불러일으키는 감정과 환상을 표현하는 데 집중한다. 성장과 장수를 상징하는 은행잎에서 영감받은 ‘징코(Ginkgo)’ 컬렉션이 대표적이다. 징코 컬렉션은 은행잎 형태를 그대로 옮기지 않고, 그 잎이 가진 상징과 에너지를 조합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꽃을 형상화한다. 비대칭적으로 펼쳐진 꽃잎과 이슬처럼 흩어진 다이아몬드는 자연에서 출발했지만, 현실을 넘어선 세계를 표현한다. 각 잎맥은 매트 골드 위에 정교하게 조각되어 은행잎의 생명력을 섬세한 질감으로 남긴다. 식물은 베베르 안에서 예술가의 상상으로 다시금 피어난다.
한경 Prestige | 글 김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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