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대담한 비움이 더 강력한 오라를 완성한다. 리차드 밀의 핵심 철학을 가장 순수한 형태로 정제한 새로운 ‘RM 55-01 매뉴얼 와인딩’은 기술적 과시를 거부하고 필수적인 요소만 남겼다. 속을 시원하게 비워낸 초경량 스켈레톤 무브먼트가 선사하는 고요하고도 대담한 시간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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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덜어낼 것이 없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본질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시원하게 속을 비워낸 투과성이다. 기계식 시계의 필수 요소인 로터마저 과감히 생략한 수동 와인딩 시스템을 채택해 무브먼트 사이로 빛이 자유롭게 통과하는 극적인 스켈레톤 구조를 완성했다. 덕분에 무브먼트 전체 무게는 고작 5g 미만. 손목 위에 얹는 순간, 중력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 듯한 경쾌함과 마주한다.
가볍다고 얕봤다가는 오산이다. 항공 우주 산업의 총아인 5등급 티타늄으로 만든 베이스플레이트는 마이크로 블라스트와 블랙 PVD 코팅을 입어 묵직한 다크 포스를 풍긴다. 3개의 티타늄 브리지 역시 타이탈릿(TitalytⓇ) 처리를 거쳐 기어 트레인을 단단히 움켜쥐고 있다.
사실 경도가 아주 높은 5등급 티타늄을 리차드 밀 특유의 엄격한 오차 허용 범위 내에서 절삭하고 가공하는 건, 엔지니어에게는 그야말로 ‘뼈를 깎는’ 도전이다. 하지만 직선과 곡선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살려낸 새틴 브러시 마감 부품을 보고 있으면, 그 지독한 고집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케이스는 카본 TPTⓇ, 화이트 쿼츠 TPTⓇ, 그레이 쿼츠 TPTⓇ 세 가지 첨단 복합 소재로 구성됐다. 특유의 질감과 물결무늬는 브랜드의 시그너처인 토노형 라인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깃털 같은 무게와 방탄급 내충격성을 동시에 선사한다. 내부에서 박동하는 메커니즘은 그야말로 반전 매력이다. 에너지를 더 부드럽고 일정하게 전달하는 더블 배럴 시스템과 충격에 강한 가변 관성 프리 스프렁 밸런스(4Hz)를 탑재해 최고 수준의 정확도를 유지한다. 여기에 4단 구조의 플랜지 위를 흐르는 로듐 도금 핸즈는 단조로울 수 있는 스켈레톤 다이얼에 깊이감 있는 입체적 리듬을 더한다.
멀리서 보면 묵직한 절제미가 돋보이고, 가까이에서 보면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기계식 시계의 매력. 비어 있는 공간이 결코 공허하지 않고 시간이 태어나는 안식처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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