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올해 1분기 경기민감 소비재와 하이일드채권에 대한 하락 베팅을 강화하는 한편, AI 인프라 기업과 금광주에 대한 투자 비중을 늘리며 포트폴리오를 재편했다. 나스닥과 엔비디아 풋옵션은 줄여 AI 랠리에 대한 경계는 완화했지만, 소비 둔화와 신용위험에 대한 방어 전략은 유지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가들의 포트폴리오]
지난 6월 안토니오 네리 휴렛팩커드엔터프라이즈(HPE)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미국 라스베이거스 베네치안 리조트에서 열린 'HPE 디스커버 라스베이거스' 행사에서 기업의 AI 도입 가속화 방안과 AI 시대의 비즈니스 전환 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AP
지난 6월 안토니오 네리 휴렛팩커드엔터프라이즈(HPE)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미국 라스베이거스 베네치안 리조트에서 열린 'HPE 디스커버 라스베이거스' 행사에서 기업의 AI 도입 가속화 방안과 AI 시대의 비즈니스 전환 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AP
행동주의 투자자 폴 싱어가 이끄는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올 1분기에 경기에 민감한 고가소비재 업종, 하이일드채권에 대한 '하락 베팅(풋옵션 확대)'을 강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쟁 등 지정학적 긴장 고조와 원자재 가격 상승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미국 소비와 신용 시장에 대한 경계감을 높인 것으로 분석된다.

엘리엇이 꾸준히 늘렸던 나스닥 상장지수펀드(ETF) 풋옵션을 축소하고 인공지능(AI) 서버를 주력으로 하는 휴렛팩커드엔터프라이즈(HPE)의 보유 비중을 늘린 것도 주목할 만한 포인트로 꼽힌다. 시장에선 "엘리엇이 약세장 베팅을 전반적으로 줄였지만, 소비 둔화와 신용 위험은 계속 경계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기민감 소비재주 전망 부정적

엘리엇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올 1분기 주식 보유 현황 공시(13F)에 따르면, 엘리엇의 보유 비중이 가장 많이 커진 종목은 스테이트스트리트가 운영하는 '임의소비재' 섹터 SPDR ETF(종목명 XLY) 풋옵션이다.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36%로 전 분기 대비 2.33%포인트 커졌다. 이 ETF는 아마존, 테슬라, 홈디포, 맥도날드, 부킹닷컴 등 경기민감 소비주에 주로 투자하는 상품이다.

풋옵션은 특정 가격에 자산을 향후 매도할 수 있는 권리다. 이 비중을 높였단 건 경기민감주의 주가 하락을 예상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중동 전쟁에 따른 인플레이션과 경기 둔화 여파로 소비 시장이 위축될 것으로 봤다는 얘기다.

엘리엇이 하이일드채권에 투자하는 아이셰어즈 iBoxx 하이일드 기업 채권 ETF(종목명 HYG) 풋옵션 비중을 1.98%포인트 높인 것도 주목할 만한 대목으로 꼽힌다. 하이일드채권은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이 발행하는 채권으로, 부도 위험이 큰 대신 이자(수익률)가 높은 게 특징으로 평가된다. 경기 둔화의 직격탄을 맞는 저신용 기업의 차환 부담과 국채와의 금리차 확대 가능성을 경계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금광 관련 종목에 대해선 기존 '하락 방어'에서 '적극적인 상승 베팅'으로 전환했다. 금광주에 투자하는 반에크 금광주 ETF(종목명 GDX) '콜옵션'(특정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 비중은 0.91%포인트 높였고, 같은 종목의 풋옵션 비중은 4.56%포인트 낮췄다.

엘리엇의 귀금속 인프라 관련 종목에 대한 관심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귀금속 로열티 기업인 트리플플래그 프레셔스메탈 지분을 23.25% 보유하고 있다. 호주 금광 업체 노던스타와 관련해선 "세계적 수준의 금광을 보유했지만, 경영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며 기업 체질 개선을 압박하고 있다.
폴 싱어 엘리엇매니지먼트 창업자. 사진=한국경제
폴 싱어 엘리엇매니지먼트 창업자. 사진=한국경제
나스닥100 '하락 베팅' 축소

올 1분기 엘리엇의 포트폴리오에서 비중이 줄어든 건 기술주 중심 나스닥 시장에 대한 풋옵션과 필수소비재 풋옵션이다. 헤지펀드가 특정 종목 관련 풋옵션 비중을 줄였다는 건 하락 가능성이 낮아진 걸로 봤다는 의미다.

엘리엇은 필수소비재 섹터 SPDR ETF(종목명 XLP) 풋옵션 비중은 3.15%포인트 줄였다. 이 ETF는 월마트, 코스트코 등 서민용 생필품을 저가에 팔거나, 코카콜라와 필립모리스(담배) 등 생필품 기업에 투자한다. 풋옵션 비중 축소는 가격 하락세가 둔화하거나 주가 반등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미국 소비 둔화 추세에도 생필품 관련 종목의 하락세는 상대적으로 덜할 것으로 봤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엘리엇이 나스닥100 지수를 추종하는 인베스코 QQQ 트러스트(종목명 QQQ) 풋옵션 비중을 2.93%포인트 줄인 것도 관심을 받았다. 포트폴리오 비중은 기존 4.08%에서 1.15%가 됐다. QQQ는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 아마존, 메타, 브로드컴 등 대형 기술주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QQQ 풋옵션을 줄였다는 건 엘리엇이 빅테크, AI 랠리가 멈출 가능성에 대한 위험 분산 전략을 약화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개별 종목 투자에서도 엘리엇의 AI·빅테크에 대한 시각 변화가 엿보인다. 휴렛팩커드엔터프라이즈(HPE) 비중을 1.27%포인트 확대한 게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HPE는 AI 하드웨어 기업으로 최근 AI 서버, 고성능 컴퓨팅, 네트워킹 사업에 주력한다.

엘리엇이 1분기에 AI 대표주 엔비디아의 풋옵션의 비중을 기존 2.48%에서 0%로 줄였다는 점도 HPE 비중 확대와 같은 선상에서 진행된 전략으로 볼 수 있다. AI 랠리 전체를 무조건 부정하기보다는 저평가 AI 인프라 기업에 대한 매수 비중은 늘리는 쪽으로 전략을 선회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노르웨이지안크루즈가 새 타깃

현재까지는 엘리엇의 베팅이 통하는 모습이다. HPE는 지난 6월 1일 2026회계연도 2분기(2~4월) 실적을 공개했는데,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40% 늘어난 107억 달러를 기록했다. 컨센서스인 98억 달러를 웃도는 수치다. 조정 주당순이익(EPS)도 79센트로 컨센서스인 53센트를 넘었다. 안토니오 네리 HPE 최고경영자(CEO)는 "고객들이 인프라 현대화와 AI 확장에 계속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HPE 주가는 최근 한 달(지난 6월 13일 기준) 41.1% 급등했다.

사우스웨스트항공 비중은 3.68%포인트 줄였다. 엘리엇은 2024년 19억 달러 규모 사우스웨스트항공 지분을 들고 경영 전략 변화를 요구했다. 이후 이사회 개편, 좌석 정책 변화, 구조조정 등을 이끌어냈다. 행동주의 전략을 통해 일정 성과를 내자 비중 축소를 통한 차익실현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이란 전쟁 여파로 여행 수요가 줄고 항공유 가격이 급등하면서 항공주 실적이 급감할 것이란 우려를 미리 반영했다는 의견도 있다.

노르웨이지안크루즈라인 비중은 1.23%포인트 키웠다. 여객선 업황에 대해 긍정적으로 봤다기보단 행동주의 전략의 새로운 타깃으로 삼았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지난 2월 엘리엇의 지분 확보 소식이 알려지며 노르웨이지안크루즈라인 주가는 장 한때 8% 넘게 급등했다.
하락 베팅 줄이고 AI 인프라 샀다…엘리엇의 선택
하락 베팅 줄이고 AI 인프라 샀다…엘리엇의 선택
하락 베팅 줄이고 AI 인프라 샀다…엘리엇의 선택
황정수 한국경제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