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국내 독서 플랫폼 밀리의 서재에서 인문·교양 독자들은 철학과 뇌과학, 역사 서적에 열광했다. 리뷰·하이라이트·완독률·별점 등 데이터가 가리킨 공통된 메시지는 하나, AI 시대일수록 ‘나’를 이해하고 세계를 읽는 힘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커버스토리]
사진=밀리의 서재
사진=밀리의 서재
책의 인기도를 살피는 방법은 다양하다. 서점에서의 ‘판매 부수’가 인기의 척도가 되는 게 일반적이지만, 독자들이 남긴 별점이나 리뷰 또한 독서 트렌드를 살피는 기준이 된다.

특히 국내 도서 시장에서 전자책 이용자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독자들이 책을 완독한 비율은 얼마나 되는지, 밑줄을 많이 그은 책은 무엇인지 데이터로 파악할 수 있게 됐다. 한경머니는 올해 상반기(1월 1일~6월 15일 기준) 국내 독서 플랫폼 밀리의 서재 인문·교양서 카테고리에서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은 책을 모아봤다.
AI 시대에 독자들이 펼친 책…철학과 뇌과학이 1위
리뷰로 쏟아냈다…책에서 얻은 통찰

올 상반기 밀리의 서재에서 가장 많은 리뷰가 달린 인문·교양 도서는 피터 홀린스가 집필한 <우리에게는 매일 철학이 필요하다>다. 밀리의 서재 이용자 3만9000명 이상이 이 책을 자신의 서재에 담았다. 저자는 세계 철학사에서 한 획을 그은 철학자의 사고법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제시한다. 다양한 사고모델(복잡한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 사용하는 인지적 해석 틀)을 살펴보는 것만으로 좁았던 관점이 넓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독자들은 이 책에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내 인생의 나침반이 돼줄 책”, “모호했던 삶의 문제를 논리적이고 철학적인 관점으로 명료하게 정리해주는 가이드북”, “철학의 개념을 어떻게 일상에서 현실적으로 연결할 수 있을지 알려주는 책”이라는 리뷰를 남겼다. 르네 데카르트처럼 세계를 객관적으로 의심하고, 노자처럼 잠시 멈추고 관찰하는 시간을 배울 수 있는 책이다.

두 번째로 리뷰가 많이 달린 도서는 시라토리 하루히코의 <독학이라는 세계>다. “다시 한번 공부가 아닌 독학에 대한 열의를 갖게 됐다”, “오랜만에 읽은 진짜 지식인의 에세이”라는 독자 리뷰를 받았다. 저자 시라토리 하루히코는 일본 최고의 지성인으로 꼽히는 철학자다. 정규 교육과정을 마치고 더 이상 학습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성인들은 스스로를 사유의 과정에 던지는 독학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특히 인공지능(AI) 시대가 가속화할수록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내놓는 ‘사고의 힘’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번거롭고 시간이 걸리는 탐구는 오직 자신으로 사는 사람만이 누리는 특권이다. 인간은 스스로 탐구할 때만 비로소 자신이 된다”는 게 핵심 메시지다.

리뷰 수가 많았던 세 번째 도서는 미국 톨레도대 인지신경심리학 박사인 크리스 나이바우어의 <뇌는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다. 이 책은 좌뇌와 우뇌의 기능을 살핀 후,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자아’, ‘나’라는 개념이 어쩌면 뇌가 만들어낸 해석 혹은 환상에 불과할 수 있다는 의문을 제기한다. 독자들은 “나의 모든 걱정과 불행이 좌뇌가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다면, 힘들 일이 전혀 없다”, “좌뇌가 만든 환상을 인식하는 순간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다”, “머릿속 고통과 잡념에서 조금은 헤어나올 수 있게 됐다. 아주 조금이라도”라는 감상을 달았다.
AI 시대에 독자들이 펼친 책…철학과 뇌과학이 1위
밑줄 그으며 탐독…하이라이트 많은 책

<뇌는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는 같은 기간 하이라이트(밑줄)가 많은 도서 1위로도 이름을 올렸다. 하이라이트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독자의 공감을 끌어낸 문장이 많은 책이라는 의미가 된다.
하이라이트가 많은 도서 2위에는 <넥서스>가 올랐다. 글로벌 메가히트작인 <사피엔스>를 집필한 유발 하라리가 쓴 책이다. 책에는 인간의 정보 네트워크가 어떻게 발전했는지 그 방대한 역사가 담겨 있다. 오늘날 가장 큰 정보혁명인 AI가 과거의 혁명들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는 과정을 통해 미래에 일어날 변화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하이라이트가 많은 도서 3위는 유튜브 철학하루를 운영하는 김철 작가가 옮긴 <니체의 초월자>다. 니체의 저서 가운데 현대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만한 77편의 글을 편역했다. “고독은 자기 삶을 책임진 사람의 몫이다”, “끝까지 버티는 자가 결국 이긴다”, “자기 안에 주인이 없는 자는 늘 타인의 명령을 찾게 된다. 내가 나의 주인이 되지 못하면 어디서도 노예다”와 같은 니체식 사고법을 읽기 쉽게 옮겼다.

대표적인 벽돌책으로 손꼽히는 <총 균 쇠>도 리뷰(5위), 하이라이트(6위) 지표에서 순위권에 오르며 여전한 저력을 과시했다.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류 문명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준 석학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책으로, 1998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스테디셀러다. 특정 국가가 부유해지는 이유,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게 되는 배경, 세계가 불평등해진 이유를 장대한 스토리로 풀어냈다.
AI 시대에 독자들이 펼친 책…철학과 뇌과학이 1위
한 번 펼치면 결말까지…완독 지수 높은 책

책장에 고이 모셔 두는 소장용 책이 있는가 하면, 펼치는 순간부터 결말을 보기까지 손에서 놓기 힘든 책도 있다. 올 상반기 완독률이 가장 높았던 책은 다름 아닌 역사 서적이다.

<썬킴의 거침없는 중국사>, <썬킴의 거침없는 세계사>가 나란히 1·2위를 차지했다. 썬킴은 지루한 역사 이야기를 특유의 스토리텔링 능력으로 영화처럼 전달하는 작가다. <중국사> 편에서는 삼국지의 최종 승자인 수양제가 나라를 망친 이유, 원나라가 100년도 못 가 몰락한 배경 등 중국의 역사를 한 줄기의 흐름으로 써냈다. <세계사> 편에서는 인류 최초의 대량 살육전인 제1차 세계대전, 히틀러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치밀하게 계획된 제2차 세계대전, 일본이 태평양 전쟁의 패전국으로 남게 된 역사까지, 서로 긴밀히 연결된 역사의 고리를 섬세하게 풀었다.

독일 출신의 에크하르트 톨레가 쓴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도 완독 지수 상위권에 올랐다. 저자는 달라이 라마, 틱낫한과 더불어 21세기의 영적 지도자로 불리는 인물이다. 스코틀랜드 숲에서 은둔 생활을 하던 그의 지혜를 짧지만 강렬한 언어로 책에 담았다.

이탈리아 출신 이론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가 집필한 <모든 순간의 물리학>도 완독률이 높은 책 중 하나다. 세계적인 물리학자인 저자는 ‘루프양자중력’으로 블랙홀을 새로이 규명한 우주론의 대가다. 양자역학, 우주의 구조, 입자 등의 이론을 제시하면서도, 초심자가 이해할 수 있는 비유를 통해 우주 미스터리를 설명했다.
AI 시대에 독자들이 펼친 책…철학과 뇌과학이 1위
별점으로 검증…높은 점수로 증명된 고퀄리티 도서

별점 상위 도서 중에는 <나에게는 새의 말이 들린다>가 눈에 띈다. 저자인 스즈키 도시타카는 세계 최초로 동물도 말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생물학자다. 그가 박새를 연구하기 시작한 지 5~6년이 흐를 무렵, 자연스럽게 새에게도 언어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기원전부터 2000년이 흐르는 긴 시간 동안 언어는 인간만이 갖고 있다는 인류의 생각은 보편적인 것이었다. 저자는 동물의 울음소리가 단순한 감정 표현을 넘어서 특정한 언어적 의미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겠다는 사명감을 갖게 된다. 새의 언어에 존재하는 문법 규칙을 발견하는 과정이 책에 고스란히 담겼다.

또 다른 별점 상위권 도서로는 장기 베스트셀러인 <라틴어 수업>이 있다.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 출신인 한동일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책이다. 2010년부터 2016년 서강대에서 진행한 라틴어 강의를 글로 옮겼다. 첫 학기에 24명의 학생으로 시작한 이 강의는 두 번째 학기에 67명으로 늘었다. 수강을 하게 해달라는 학생들의 문의가 쇄도하며 수강생을 대폭 늘린 것이다. 이후 학기부터는 200명의 학생이 한 교수의 수업을 듣기 시작했고, 연세대, 이화여대 등 다른 학교 학생들까지 청강하기에 이른다. 한 교수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은 그의 수업이 단순한 라틴어 강의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라틴어를 매개로 전하는 그의 인문학적 통찰은 학생들에게 더할나위 없는 지적 자극과 삶에 대한 위로를 건넨다.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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