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르띠에의 팬더와 불가리의 세르펜티, 반클리프 아펠의 알함브라는 각 메종을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상징은 하루아침에 탄생하지 않는다. 반복된 선택과 축적된 기준은 어떻게 메종만의 정체성이 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의 문화가 되는 것일까.

[주얼리]
메종의 언어
선택이 만든 정체성

까르띠에 가문의 이야기를 담은 책 <더 까르띠에>에는 흥미로운 일화가 등장한다. 전쟁 후 까르띠에에 입사한 젊은 디자이너 제임스 가드너는 하루라도 빨리 자신의 재능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하지만 입사한 첫날부터 장 자크 까르띠에(설립자의 증손자)는 가드너에게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아주 아름답지만, 아직 까르띠에답지 않습니다.” 그는 선배 디자이너들의 작업을 관찰하며 다시 스케치를 했고, 새로운 디자인을 자랑스럽게 내놓았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비슷했다. “좋습니다. 하지만 아직 완전한 까르띠에는 아닙니다.” 몇 달이 지나도, 몇 번의 시도 끝에도 같은 평가가 이어졌다. 그의 작업이 ‘진짜 까르띠에’로 인정받기까지는 무려 3년이 걸렸다. 훗날 가드너는 까르띠에를 다른 브랜드와 구별하는 것은 결국 ‘까르띠에 스타일’이었다고 회상했다. 까르띠에다움은 팬더나 특정한 모티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비례와 균형, 절제된 우아함을 다루는 방식에 있었다. 문제는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였다.

까르띠에의 팬더, 불가리의 세르펜티, 반클리프 아펠의 알함브라는 각 메종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아이콘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이콘은 시작이 아닌 결과다. 그 이전에는 수십 년, 때로는 한 세기 이상 축적된 취향과 기준이 존재한다. 정체성은 처음부터 완성된 형태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 출발점은 언제나 창립자의 취향이었다. 까르띠에의 설립자 루이 프랑수아 까르띠에는 비례와 균형, 절제된 우아함을 추구했고, 소티리오 불가리는 로마의 풍요로운 색채와 대담한 볼륨을 사랑했다. 알프레드 반 클리프와 에스텔 아펠은 자연과 동화적인 상상력에서 영감을 받았다. 처음에는 한 사람의 취향에 불과하던 것이 세대를 거치며 반복되고 축적되면서 하나의 미학이 되었고, 마침내 메종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다.

브랜딩 전문가들은 “브랜드란 로고나 슬로건이 아니라 일관된 선택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이는 주얼리 메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모든 것을 동시에 추구할 수는 없다. 결국 정체성이란 취향의 문제가 아닌 선택의 문제다. 까르띠에는 비례와 균형을, 불가리는 색채와 볼륨을, 티파니는 창조의 유산을 우선한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더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다. 메종의 힘은 무엇을 새롭게 만드는가보다 무엇을 만들지 않을 것인가를 아는 데 있다. 언어가 문법 없이 존재할 수 없듯, 메종 역시 자신만의 기준 없이는 정체성을 가질 수 없다. 이러한 기준은 아카이브를 통해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티파니앤코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크리스토퍼 영은 “중요한 것은 단순히 작품을 보존하는 일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디자인 드로잉과 광고, 사진, 서신 등 메종이 어떻게 꿈꾸고 창조하며 진화해왔는지를 보여주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아카이브의 목적은 과거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비추기 위해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티파니의 전설적 디자이너 쟌 슐럼버제가 1965년에 선보인 ‘버드 온 어 락’이 좋은 예다. 노란 새가 젬스톤 위에 내려앉은 상징적 모티프는 한 번의 디자인으로 끝나지 않았다. 새로운 스톤과 비례, 세팅을 통해 끊임없이 재해석되며, 오늘날까지 티파니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기능하고 있다. 아카이브는 이렇게 과거를 재료 삼아 현재와 미래의 창조를 가능하게 한다.

메종의 언어는 하나의 형태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중심에 둘 것인가를 명확히 아는 일이다. 어떤 메종이 스타일을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면, 어떤 메종은 스톤 자체를 언어로 삼는다. 로렌스 그라프는 평생 최고급 다이아몬드를 찾고, 커팅하고,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데 집중했다. 그는 2010년 제네바 소더비 경매에서 24.78캐럿의 팬시 인텐스 핑크 다이아몬드를 약 4615만 달러에 낙찰받았고, 이 스톤은 그라프 핑크라는 이름으로 당시 경매 기록을 다시 썼다. 대부분의 메종이 컬렉션과 디자인을 논할 때, 그라프는 스톤 자체를 이야기한다. 사람들 역시 특정 컬렉션보다 ‘세계 최고 수준의 다이아몬드’를 먼저 떠올린다. 그것이 그라프가 수십 년간 구축해온 정체성이다.

시장이 인정한 가치

이러한 정체성은 시장에서도 가치를 만든다. 세계적 옥션 하우스 ‘필립스’의 월드와이드 주얼리 부문 총괄 브누아 레플랭은 출처와 브랜드 헤리티지가 결합할 때 작품은 단순한 장신구를 넘어 문화적 오브제로 재평가된다고 설명한다. 희소성이 토대를 만든다면 메종의 역사와 서사는 그 위에 또 다른 가치를 더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필립스가 선보인 밴더빌트 패밀리 컬렉션은 단순한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미국 철도 재벌 가문의 역사와 함께 거래됐다. 작품의 가치는 소재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누구의 손을 거쳤고, 어떤 시대를 대표하며,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도 가치의 일부가 된다.

오늘날 컬렉터들은 더 이상 캐럿 수나 희소성만을 좇지 않는다. 그들은 작품이 탄생한 시대와 메종의 역사,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에 주목한다. 같은 다이아몬드라도 어떤 작품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단순히 희소성 때문만은 아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된 기준과 흔적이 작품에 깊이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아이콘이 메종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팬더와 세르펜티, 알함브라 같은 상징이 브랜드의 정체성을 구축했다고 믿는다. 그러나 선후는 반대다. 팬더가 까르띠에를, 세르펜티가 불가리를 만든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축적된 메종의 헤리티지가 비로소 그 아이콘을 탄생시켰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을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자신만의 문법으로 ‘어떻게 구현했는가’다.


한경 Prestige | 글 서재희 <드림즈> 편집장 | 일러스트 구이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