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쿡이 애플 CEO 자리에서 물러난다. 지난 4월 20일 전격 발표된 이 소식에 시장은 놀라울 만큼 무덤덤했고, 바로 그 반응이야말로 그가 15년간 이룬 성취의 크기를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스페셜] 팀 쿡 이후의 애플
더 놀란 사실은 그다음 날이었다. 팀 쿡의 퇴진 발표에 시장이 움직이지 않았던 것. 시간 외 거래에서 주가는 1% 미만 하락에 그쳤다. 지난 2010년 스티브 잡스 사망에 이은 팀 쿡의 승계 때는 세상이 떠들썩했다. 하지만 이번 리더십 교체엔 ‘무덤덤’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 반응이야말로 쿡이 이룬 성취의 크기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15년 전 그가 스티브 잡스로부터 CEO 자리를 넘겨받았을 때, 애널리스트들의 시선은 냉소에 가까웠다. 제프리 소넨펠드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의 회고에 따르면, 한 애플 이사회 멤버는 그에게 "애플 주식을 팔라"고 사적으로 조언했을 정도였다. 창업자 없는 애플이 '포스트 창업자 증후군'에 빠질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15년이 지난 지금, 숫자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한다. 1인 테크 싱크탱크 스트라테처리의 벤 톰슨이 정리한 수치에 따르면, 쿡 재임 기간 애플의 매출은 303% 증가했고, 이익은 354% 늘었으며, 기업 가치는 2970억 달러에서 4조 달러로 1251% 폭등했다. 미국 CEO가 단일 기업에서 창출한 가치로는 엔비디아의 CEO 젠슨 황에 이어 역대 2위다. 톰슨은 "팀 쿡은 비창업자 CEO 중 역대 최고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팀 쿡은 오는 9월 1일 정식으로 CEO 자리에 물러나며 애플 이사회의 의장으로 취임한다. 이날 존 터너스가 새로운 CEO로 공식 취임하면서 승계가 완료된다. 팀 쿡은 아직 제대로 평가되지 않았다. 그는 후에 어떤 CEO로 평가될까.
아이폰이라는 현금 인쇄기의 완성, 서비스 사업이라는 애플의 두 번째 축 구축, 그리고 중국 공급망이라는 제조 제국의 건설 등이 업적으로 꼽힌다. 하지만 여기에서 팀 쿡 성공의 역설이 나온다. 거대한 아이폰 생태계 구축을 위해 매진한 결과 인공지능(AI) 혁명에 뒤처졌고 중국 공급망 완성이라는 막대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지만 중국에 미국의 패권에 대항할 수 있는 제조업 방법론을 전수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아이폰의 완성자, 확장의 마스터
팀 쿡은 발명가가 아니었다. 그의 재능은 스티브 잡스가 2007년에 만든 아이폰을 전 세계 수십억 명에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잡스는 애플을 0에서 1로 만든 사람이었고, 쿡은 그 1을 N으로 확장한 사람이었다. 이 확장이야말로 창업자 승계의 가장 어려운 과제이자, 대부분의 후계자가 실패하는 지점이다.
아이폰 외에도 팀 쿡은 두 개의 새로운 제품 카테고리를 성공시켰다. 애플워치와 에어팟이 대표하는 '웨어러블·홈·액세서리' 부문은 지난해 354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이는 포천 500대 기업 중 128위에 해당하는 규모다. 스티브 잡스가 죽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사업부 하나가 통째로 만들어진 셈이다. 비전 프로 같은 실패도 있었지만, 웨어러블 카테고리 전체를 놓고 보면 쿡의 성적표는 압도적이다.
더 놀라운 것은 팀 쿡식 스케일의 법칙을 증명한 15년 동안 애플은 단 한 번의 대규모 리콜이나 심각한 제품 결함을 겪지 않았다는 점이다. 제조업에 종사해본 사람이라면 이 숫자의 의미를 안다. 이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성취다. 팀 쿡, 그리고 애플의 완벽주의에 가까운 ‘퀄리티 집착’에 따른 결과다.
전문가들은 팀 쿡의 진짜 전략적 성취는 서비스 사업이라는 두 번째 매출 축을 만들어낸 것라고 입을 모은다. 이는 단순히 "새 사업을 만들었다"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애플이라는 회사의 정체성 자체를 재정의했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 시대의 애플은 본질적으로 하드웨어 제품 회사였다. 매번 걸작을 만들어 팔고, 그 매출로 다음 걸작을 준비하는 구조였다. 수익은 단발성이었고 제품이 팔리지 않으면 회사가 흔들렸다.
팀 쿡은 이 구조를 근본적으로 뒤집었다. 앱스토어, 아이클라우드, 애플 뮤직, 애플TV+, 애플 페이, 애플케어, 그리고 구글 검색 라이선스로 이어지는 서비스 매출을 연간 1000억 달러 규모의 경상 수익원으로 키웠다. 지난해 기준 서비스 부문은 애플 전체 매출의 26%, 이익의 41%를 차지한다. 하드웨어 회사가 조용히 플랫폼 회사로 변신한 것이다.
세부 수치를 보면 서비스 사업의 위력이 더 선명해진다. 구글이 아이폰 기본 검색엔진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애플에 지급하는 트래픽 유치 비용(TAC)은 연간 200억 달러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 한 줄의 계약이 애플 이익의 상당 부분을 책임진다.
이 서비스 사업의 진짜 의미는 아이폰 매출 성장이 둔화된 최근 몇 년간에도 애플의 이익이 계속 늘어난 것에서 드러난다. 2022년 이후 애플의 매출 성장률은 연평균 3.4%에 그쳤지만, 이익은 여전히 증가 추세다. 서비스가 하드웨어 정체를 상쇄해주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가 회사의 정체성을 라이선스 매출에서 클라우드 구독 매출로 전환시킨 것과 구조적으로 유사한 대전환이다. 다만 이 전환을 아이폰이라는 간판 뒤에서 조용히 진행했기 때문에 외부에서 잘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공급망의 제왕: 중국이라는 제조 제국의 건설
팀 쿡이 애플에 합류한 것은 1998년이다. 당시 애플은 자체 공장과 창고를 운영하는 수직 통합 제조 업체였고, 이 체제는 애플의 가장 큰 재무적 부담이었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체계적으로 공장을 닫고 창고를 줄였으며,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위탁 제조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애플의 적시 공급망(just-in-time supply chain)은 이후 20년간 글로벌 제조업의 교과서가 됐다.
이 성취는 두 얼굴을 가진다. 한편으로는 연간 2억 대의 아이폰을 15년간 무결점으로 만들어낸 세계 최고 수준의 운영 시스템을 구축한 승리다. 다른 한편으로는 애플의 지정학적 취약성을 극단으로 밀어붙인 결과이기도 하다.
미ㆍ중 갈등이 심화되고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압박이 강해지는 지금, 애플은 중국에서 벗어나기 가장 어려운 미국 기업이다. 애플이 중국에서 만들어낸 이해관계가 너무나 깊어졌기 때문이다.
중국이 미국의 관세전쟁에 이어 기술 수출 금지라는 초강수를 두고 있음에도 오히려 ‘기술 자립’을 실현하면서 승승장구할 수 있는 것에는 팀 쿡이 지난 15년간 중국에 제조 공식을 전수한 배경이 있다. 중국이 정부 차원에서 팀 쿡을 애지중지하는 이유가 있다. 오늘날 중국을 만든 공신 1위는 시진핑 주석이며 2위는 팀 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뉴욕타임스 딜북의 앤드루 로스 소킨이 정리한 것처럼, 팀 쿡은 CEO에서 외교관으로, 다시 글로벌 파워 브로커로 진화한 인물이다. 이사회가 그를 집행의장(executive chairman)으로 붙잡아 둔 것은 이 외교 자본을 애플이 계속 활용하기 위해서다.
남긴 것과 남기지 못한 것: 유산의 이중성
팀 쿡의 15년을 요약하면 이렇다. 스티브 잡스가 만든 아이폰을 완성시키고, 서비스 사업이라는 두 번째 매출 축을 구축했으며, 중국 공급망을 통해 애플의 제조 우위를 극한까지 확장했다. 이 세 가지가 4조 달러라는 시가총액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모든 성공은 그림자를 남긴다. 팀 쿡의 유산에도 어두운 면이 있다. 아이폰 완성의 이면에는 아이폰 이후 카테고리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있다. 비전 프로는 판매 부진에 시달리고, 자율주행차 프로젝트는 수십억 달러를 쓰고 폐기됐다. 애플 서비스 부문을 이끄는 에디 큐가 최근 구글 반독점 재판에서 남긴 말 "10년 뒤에는 아이폰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는 이 공백에 대한 애플 내부자의 두려움을 드러낸다.
가장 중요한 점은 팀 쿡은 자기 독트린의 가장 큰 위반자가 됐다는 사실이다. 그는 2009년에 일명 ‘팀 쿡 독트린’, 즉 "핵심 기술을 소유하고 통제한다"고 했지만 중국 제조에의 의존과 구글 제미나이 라이선스로 스스로 어겼다.
그럼에도 최종 평가는 압도적으로 긍정적이다. 3.7조 달러라는 시가총액 증가는 그 어떤 어두운 면으로도 지울 수 없는 성취다. 팀 쿡은 창업자 승계의 가장 어려운 시험을 통과했고, 애플을 하드웨어 회사에서 플랫폼 회사로 변신시켰으며, 15년간 4조 달러 기업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다. 이제 그 성취의 그림자를 걷어내는 일은 후임자의 몫이다.
존 터너스의 시대가 무엇이 될지는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팀 쿡이 남긴 것 위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후계자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물론, 그 선물의 크기가, 동시에 그가 감당해야 할 부담의 크기이기도 하다.
손재권 더밀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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