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너스가 선택된 게 아니라, 팀 쿡이 더 이상 안 된다는 판단이 먼저였다. AI 시대에 맞춰 못다 이룬 전환을 후임에게 넘긴 것은 애플만이 아니다. 버크셔 해서웨이, 디즈니, 월마트도 같은 선택을 했다.
[스페셜] 팀 쿡 이후의 애플
팀 쿡은 퇴임 발표 불과 한 달 전에 ABC TV의 <굿모닝 아메리카(Good Morning America)>에 나와 은퇴설을 일축하며 “나는 일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이 방송이 나온 후 월가의 댄 아이브스 웨드부시 증권 애널리스트는 “최소 1년은 더 재임할 것으로 봤다”고 했다.
예상보다 빨랐던 퇴진…AI 투자 빅테크의 50분의 1
하지만 중요한 것은 존 터너스가 왜, 어떻게 승계하게 됐는가 여부보다 왜 팀 쿡은 2026년 이 순간에 내려오게 됐는가다.
가장 큰 이유는 인공지능(AI) 혁명기를 지나고 있는 상황에서 팀 쿡의 움직임에 대한 이사회의 조급함이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알파벳이 2026년에 투입할 설비투자(CapEx)는 합산 약 7000억 달러로 추산된다. 애플의 AI 관련 예산은 140억 달러. 경쟁사들의 50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이다.
2022년 이후 애플 매출 성장률은 연평균 3.4%에 그쳤다. 새 시리(Siri)는 미완성이고, 애플 인텔리전스는 화려하게 발표됐지만 아직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미국 경제지 포천의 분석에 따르면 2026년은 미국 기업계의 ’CEO 대전환의 해’다. 워런 버핏이 벅셔해서웨이를 그레그 에이블에게, 밥 아이거가 디즈니를 조시 다마로에게, 더그 맥밀런이 월마트를 존 퍼너에게 넘겼다. 공통 키워드는 하나다. “AI의 속도에 맞춰 내가 끝낼 수 없는 전환은 후임에게 맡긴다.”
팀 쿡은 명시적으로 이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의 퇴진 타이밍이 그 말을 대신한다.
서구 매체들은 대체로 존 터너스를 ‘쿡의 후계자, 팀 주니어’로 그리고 있다. 이는 절반만 맞는 규정이다. 그의 커리어를 자세히 보면 다른 그림이 보인다.
그는 2001년 애플에 입사했다. 이는 매우 상징적인 시점이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복귀해 아이팟을 준비하던 시기이자, 팀 쿡이 공급망 혁명을 시작한 시기다.
존 터너스는 잡스와 쿡의 두 시대에 걸쳐 성장한 첫 세대 엔지니어다. 첫 업무는 애플 시네마 디스플레이 설계였고, 이후 25년간 아이패드·에어팟·맥·아이폰의 세대교체를 모두 지휘했다. 그가 총괄하는 하드웨어 부문이 애플 전체 매출의 약 80%를 책임진다.
그의 커리어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2020년 애플 실리콘(Apple Silicon) 전환이다. 맥에서 인텔 칩을 걷어내고 M1으로 시작하는 자체 프로세서로 넘어간 이 결정은 애플 역사상 가장 큰 하드웨어 도박 중 하나였다.
결과는 압도적 성공이었다. 맥은 40년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품군이 됐다. 이 결정을 하드웨어 팀 총괄로서 밀어붙인 사람이 존 터너스다.
팀 쿡이 ‘공급망 마스터’라면 존 터너스는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마스터다. 조니 아이브 이후 처음으로 하드웨어 디자인 결정까지 다 하는 최고 파워맨이다. 그 사람이 CEO가 됐다는 것은 애플이 그쪽 방향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뜻이다. 즉, 터너스는 쿡보다 잡스에 좀 더 가까운 사람이다.
실제 존 터너스는 CEO 승계 직전 인터뷰에서 “우리는 절대 기술을 출시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놀라운 제품, 기능, 경험을 출시하고 싶을 뿐이다. 고객이 그 밑바탕의 기술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존 터너스의 약점도 분명하다. AI 자체에 대한 직접 경험이 부족하고, 외교와 정치 경험이 없다. 그러나 이 약점은 팀 쿡이 회장(executive chairman)으로 남아 트럼프·시진핑·유럽연합(EU)·인도 외교를 계속 담당하는 구조로 보완된다.
이 구조가 애플에 매우 안정적이며 이사회를 안심시키는 인선이다. 만약 팀 쿡이 5년 이사회 의장을 재직하면 대외적 외교와 공급망은 쿡이 계속 맡고, 존 터너스는 제품에만 집중할 수 있다. 애플 주주도 좋아하고 중국도 좋아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좋아하는 시나리오다.
존 터너스가 취임 후 5~10년간 답해야 할 질문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새로운 판을 만들어야 한다. 애플은 이미 조용히 카리스마틱(Charismatic)이라는 새 운영체제(OS)를 준비하고 있다. 블룸버그 마크 거먼의 보도에 따르면, 이 OS는 다중 사용자 시스템 위에서 시리를 중심에 두고, 애플리케이션 대신 위젯과 음성으로 작동한다.
이 새 OS의 진짜 의미는 무엇인가. 애플 운영체제(iOS)는 모바일 중심 디바이스라는 한계가 있다. AI 홈 디바이스에는 다른 OS가 필요하다. 그게 카리스마틱이다. 데스크톱에서 모바일로 넘어갈 때 iOS가 판을 바꿨듯, 이제 모바일에서 AI 홈 디바이스로 넘어갈 때 카리스마틱 OS가 이 판을 바꿀 것이다.
즉, 존 터너스가 만들어야 하는 것은 새 제품이 아니라 새 판이다. 체스 비유를 하자면, 말판을 어떻게 움직이느냐가 아니라 새 판 위에서 어떻게 전략을 짜느냐의 문제다.
애플은 20억 대 디바이스 베이스에서 나오는 데이터로 자체 모델을 키워 결국 대체할 수밖에 없다. 제미나이 파트너십은 애플의 시간 벌기 전략이다. 관건은 20억 명이 한꺼번에 쓰는 AI 디바이스를 욕 안 먹고 애플스럽게 그 3~5년 안에 확보하려할 것이다.
셋째, 중국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 중국은 애플로부터 모든 플레이북을 배웠고, 애플은 지금 중국에서 제대로 장사하는 유일한 미국 기업이다. 그런데 오늘부터 내일은 달라진다.
첫 폴더블 아이폰과 새 하드웨어 카테고리가 어디서 생산되느냐가 결정적 시금석이 된다. 중국에서 뺀다면 큰뉴스가 되고, 남긴다면 지정학적 인질이 심화된다.
애플에 어떻게 베팅할 것인가
지금까지의 분석을 투자 관점에서 정리하면 세 가지 시나리오가 그려진다.
늦었지만 옳은 답(확률 40%). 존 터너스가 2027년 J595와 새 시리를 성공적으로 출시하고, 3~5년 안에 자체 AI 모델로 제미나이를 대체하며, 폴더블 아이폰과 20주년 아이폰이 흥행에 성공하는 경우다. 이 경우 애플 주가는 향후 5년간 완만한 상승세를 이어가고, 시가총액 5조 달러 돌파도 가능하다. 서비스 부문 매출은 연 15% 이상 성장을 유지한다.
시나리오 2
옳은 답이지만 너무 늦었다(확률 35%). 애플이 자기 페이스를 지키는 동안 구글·오픈AI·메타가 AI 에이전트로 사용자 일상을 먼저 점령한다. “그것을 위한 앱이 있다”가 “에이전트가 그것을 하게 하라”로 대체되면서 앱스토어와 검색 라이선스가 동시에 흔들린다. 애플은 살아남지만 축소된다. 시가총액이 3조 달러대로 후퇴할 수 있다.
시나리오 3
중국 리스크 폭발(확률 25%). 마중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중국이 애플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거나 미국 여론이 애플을 매국 기업으로 몰아붙이는 시나리오다. 중국 매출(전체의 약 17%)이 급감하고 공급망 이전 비용이 폭증한다. 이 경우 시가총액 20~30% 하락이 가능하다.
이 세 시나리오를 고려한 투자 전략은 다음과 같다.
단기(6개월~1년): 관망을 권한다. 새 시리 공개(2026년 6월 WWDC)와 폴더블 아이폰 출시(2026년 가을)라는 두 개의 검증 이벤트를 지켜본 뒤 판단해도 늦지 않다. 시장은 아직 터너스 시대를 가격에 반영하지 않았다.
중기(2~3년): 시나리오 1이 맞다면 애플은 강력한 매수 대상이다. 단, 매수 시점은 2027년 J595 출시 성공 여부가 확인된 뒤가 안전하다. 조기 진입하려면 배당과 자사주 매입이라는 안전판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장기(5~10년): 시나리오는 결국 애플의 판 바꾸기 성공 여부에 달려 있다. 카리스마틱 OS가 iOS의 후계자로 자리 잡는다면 애플은 향후 20년의 AI 디바이스 시대까지 주도한다. 실패한다면 마이크로소프트가 모바일에서 겪은 실패를 애플이 AI에서 겪을 수 있다.
한국 투자자를 위한 세 가지 시사점
한국 투자자에게 이 상황이 주는 시사점은 세 가지다.
첫째, 애플 부품사 투자의 새로운 문법이 필요하다. LG이노텍,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삼성전기 같은 애플 공급사들은 지금까지 아이폰 출하량에 연동해 주가가 움직였다. 그러나 터너스 시대에는 이 연동이 약해질 수 있다. J595·J490 같은 새 카테고리가 성공하면 이들 부품사에 새 매출 축이 열리지만, 애플이 부품 내재화를 가속하면 정반대 결과가 나온다.
AI 디바이스는 인텔리전스 컴퍼넌트다. 넣었다 뺐다 하기 어렵다. 한 번 들어가면 오래 간다. 그러나 애플이 테슬라처럼 자체 공급으로 갈 수도 있다. 향후 2~3년 부품사 계약 갱신 조건과 신규 카테고리 진입 여부를 면밀히 지켜봐야 한다.
둘째, 실리콘 주권이 승부처다. 애플이 조니 스루지를 최고하드웨어책임자(CHO)로 격상시 킨 것은 “실리콘을 소유하는 것이 제품을 소유하는 것”이라는 선언이다. 한국은 세계 최고 메모리 반도체 회사들을 가지고 있지만, 자체 시스템 반도체, 특히 AI 가속기와 모바일 AP에서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삼성 파운드리의 테슬라 AI5·AI6 수주는 좋은 신호지만, 한국 기업이 자체 제품에 들어갈 두뇌를 자체 설계하고 자체 생산하는 수직 통합을 구축하지 못하면 결국 다른 누군가의 손바닥 위에서 움직이게 된다.
셋째, 마라톤의 시간 지평이 필요하다. 존 터너스는 AI를 “교차로가 아닌 마라톤”이라고 표현했다. 애플의 승계자체가 향후 10년을 내다본 결정이다. 한국 기업의 의사결정 시간 지평은 분기 실적에 묶여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번 애플의 판 바꾸기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 결과가 나오는 시점은 2027~2030년 사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애플의 다음 5년을 예의주시하되, 그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 성장 경로를 설계하는 것이다.
존 터너스가 이끌 애플의 미래를 예측할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애플은 오리지널 아이팟 이후 모든 주요 플랫폼 전환에서 늦었다. MP3 플레이어, 스마트폰, 태블릿, 스마트워치, 무선 이어폰. 매번 애플은 통합의 스토리가 선명해질 때까지 기다렸고, 그다음에 레퍼런스 제품을 출시했다.
애플은 선발주자였던 적이 없다. 시장을 먼저 만들거나 군불을 떼고 남들이 먼저 나가서 반칙해서 힘을 다 뺀 다음에 나서서 완성시킨다. 존 터너스는 그 레퍼런스 제품 대부분의 출시를 함께 도운 인물이다.
이 패턴이 AI 시대에도 반복될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애플은 2027~2028년에 AI 시대의 ‘아이폰’을 무대에 올리게 된다. 그것이 J595 픽사 램프일 수도, AI 안경일 수도, 아직 이름 없는 무엇일 수도 있다.
만약 이 패턴이 이번에는 통하지 않는다면, 4조 달러 기업이 서서히 축소되는 첫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시계는 이미 흐르고 있다. 그리고 그 시계의 눈금을 지켜보는 일이, 향후 5년 글로벌 테크 산업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된다.
손재권 더밀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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