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부동산 대출을 조일수록 시중은행은 한술 더 뜬다. 국민은행이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정부 기준(6억 원)의 절반인 3억 원까지 낮추면서, 잔금을 앞둔 실수요자들은 제2금융권과 캐피털사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부동산 이슈]
무분별한 규제가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한 대전제인 공급을 가로막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비사업 이주비 대출과 중도금 대출 제한 등이 대표적이다. 투기적 목적이 아닌 실수요자와 공급을 위한 대출은 과감하게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7월 10일부터 전국을 대상으로 주택담보대출 최대 한도를 6억 원에서 3억 원으로 축소했다. 금융당국이 규제지역인 서울 전역과 경기도 15개 지역에 적용하는 주담대 한도는 6억 원이다. 수도권, 규제지역 외 지방에는 대출 한도가 따로 설정돼 있지 않았지만, 국민은행 자체적으로는 해당 지역에도 3억 원 한도를 적용키로 한 것이다.
이번 조치는 앞서 대출모집법인 접수 한도를 축소하고 다른 은행 상환 조건부 대출을 제한하는 조처를 내린 데 이어 주택 관련 대출의 장벽을 추가로 높인 것이다. 국민은행은 올해 당국으로부터 주담대 잔액을 전년 대비 축소하라는 관리 목표를 받은 상황이라, 다른 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리 필요성이 높아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다른 은행들도 분위기가 비슷하다. 우리은행이 모기지보험(MCI) 가입을 중단하고 지점별 주담대 취급 한도를 기존의 30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줄이기로 했다. IBK기업은행은 지난 6월 25일부터 대출모집인을 통한 신규 접수를 아예 중단했고 부산은행도 7월 2일부터 동일한 조치를 시행 중이다. 하나은행은 9월 실행하는 주담대와 전세자금 대출에서 대출모집인을 통한 접수를 7월 10일부터 중단했다. 8월 실행분 접수를 하지 않은 데 이어 9월 실행분 접수도 중단한 것이다. 신한은행도 7월 12일부터 MCI와 모기지신용보증(MCG) 가입을 제한하고 있다.
주요 시중은행은 정부가 정한 연간 가계대출 증가 목표치의 80%가량을 상반기에 이미 소진했다. 5대 은행 중 세 곳은 이미 목표치를 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7월 9일 기준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정책성 대출 제외)은 648조3607억 원으로 지난해 말(644조9700억 원)보다 3조3907억 원 증가했다.
15억 이어 10억대 부동산 과열되나
실수요자들의 고민은 커지고 있다. 신규 주택을 매입하려는 20~30대 청년이나 신혼부부뿐 아니라 새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8~9월 잔금을 치러야 하는 이들도 부담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대출 가능 여부를 묻는 글과 상담 후기가 하루에도 수십 건씩 올라오고 있다. 올 하반기 입주를 앞둔 30대 직장인 A 씨는 “잔금대출 한도가 예상보다 줄어들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 새마을금고 등 제2금융권을 알아봤지만, 대출이 쉽지 않았다”며 “부족한 잔금을 마련하기 위해 캐피털사에까지 문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마을금고는 집단대출과 비회원 신규 주담대 취급을 중단했다. 농·축협과 신협도 비조합원 대상 주담대를 제한하고 있다. 은행권과 상호금융권의 대출 문턱이 동시에 높아지면서 잔금 부족분을 메울 자금조달 창구가 빠르게 좁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잔금 대출 수요자들의 어려움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전국 아파트 입주 물량은 8만7300가구에 달한다. 입주 일정에 따라 잔금 마련 수요는 꾸준히 발생할 수밖에 없다.
실제 올 들어 수도권 부동산 시장은 15억 원 이하 중저가 주택 가격이 크게 오르며 시장 성장세를 견인해 왔다. 정부가 지난해 6·27 대책을 통해 대출 한도를 6억 원으로 제한했고 10·15 대책에서 15억 원 이하 주택은 최대 6억 원, 15억 원 초과~25억 원 이하는 4억 원, 25억 원 초과는 2억 원으로 다시 세분화한 영향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 들어 7월 첫째 주까지 누적으로 집값이 가장 많이 오른 곳은 성북구(8.83%)다. 이어 강서(7.84%), 구로(7.59%), 관악(7.25%), 동대문(7.03%), 영등포(7.01%), 서대문(6.94%) 등 상위 지역이 모두 중저가 주택이 많은 외곽이다.
담보대출 한도 추가 축소에 따라 수요가 보다 저렴한 10억 원 이하 중저가 아파트로 집중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윤지해 부동산114 리서치랩장은 “지역별, 또 물건 가격대별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며 “수요자가 전용면적 84㎡를 보다가 전용 59㎡로, 대단지를 보다가 중소형 단지로, 신축을 보다가 구축으로, 심지어 아파트를 보다가 빌라로 눈을 낮춰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서울 아파트값은 전용 40~60㎡의 중소형 아파트가 가장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올 들어 7월 첫째 주까지 누적으로 7.22% 올라 2.4% 오른 135㎡ 대형을 크게 앞섰다.
양지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은 “주담대 한도 축소가 확산하고, 보유세 강화 등 세제 개편 영향이 겹칠수록 무주택 실수요자의 선택지는 좁아진다”며 “정말 외곽인 지역의 물건을 사거나 더 큰 월세 부담을 견뎌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의 대출 조이기 여파로 부동산 시장이 자산가 위주로 재편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대출 의존도가 높은 서민과 실수요자들은 전방위 규제에 발이 묶이는 반면, 대출 필요성이 낮은 현금 보유자들에게만 유리한 장세가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기준 서울 중위 아파트를 금융권 대출 없이 구입할 수 있는 계층은 자산 순위 상위 20%인 5분위(평균 자산 17억4590만 원)뿐이다.
임대차 시장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하향 지원’마저 포기한 실수요자들이 전월세 시장으로 발길을 돌릴 경우다. 매매 수요가 임대차 수요로 흡수되면서 전세 물건이 줄어들고, 체감 경기와 밀접한 임대차 시장의 불안정을 가중시킬 수 있다. 지난 7월 8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10년 8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 전월세 물건 부족이 지속되면서 주간 상승률이 0.32%로 2015년 10월 넷째 주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대출 문제로 집을 사지 못하는 수요는 결국 풍선효과처럼 다른 곳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대출 규제에 대한 부작용은 공급 시장으로도 번지고 있다. 정부가 시장에서 주택을 살 때 필요한 대출뿐 아니라 이주비 등 정비사업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대출까지 같은 기준으로 규제하고 있어서다. 투기과열지구 및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된 서울 전역과 경기도 15개 지역은 이주비 대출도 주택담보대출비율(LTV) 40%가 적용된다. 시공사 신용으로 추가 대출을 받을 수는 있지만, 일부 대형사에 한정된 데다 금리도 높다.
유휴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서울은 민간 재개발·재건축을 통해 전체 아파트 공급의 60~70%가량이 이뤄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이주를 앞둔 정비사업 구역 43곳 중 91%인 39곳이 이주비 조달에 차질을 빚고 있다. 이들이 이주하지 못해 착공이 미뤄지면 약 3만1000가구 공급이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시는 “이주 단계 주민의 부담은 착공 일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만큼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은 청년 등 실수요자 대출과 전세대출, 정비사업 이주비 대출 완화 여부를 주요 쟁점으로 설정했다. 대출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요구와 집값 및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현행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는 만큼 정책 우선순위와 규제 완화의 대상과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7월 15일 ‘부동산금융정책 국민 의견 경청토론회’에서는 부동산 대출 규제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이대열 대한주택건설협회 정책본부장은 “정부 지원이 없으면 개인 상환 능력보다는 부모 자산 지원 여부에 따라 주택을 구매할 수 있어 청년층 내부 간 격차 확대 우려가 있다”며 “안정적인 직업으로 상환 능력을 갖춘 청년이라도 주택을 구입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른바 부모 찬스를 쓰지 않고는 현재 대출 한도만으로 청년층의 주택 구입이 힘들다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반면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급이 제한된 상황에서 금융 지원을 늘리는 건 집값 상승으로 이어진다”며 “결국 청년을 위해 대출 규제를 완화한다고 하지만 청년이 사야 할 집값만 올리게 된다”고 맞섰다.
특히 청년층 등 실수요자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린 뒤 금융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는 의견에도 힘이 실렸다. 현 정부의 부동산 관련 금융 정책이 청년층, 무주택자 등을 실수요자로 정의하고 있지만 정책 효과가 왜곡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부동산원이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주택자금조달계획서 분석자료에 따르면 올해 2·4분기 서울 강남 3구에서 2030세대의 주택 취득 자금 중 ‘증여와 가족 차입’ 비중이 22.6%로 가장 컸다.
전세자금대출을 놓고도 지원 대상을 보다 선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김미루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금융정책연구부장 겸 경제전망실장은 “전세대출은 가격 상승 부담을 키우는 측면이 있다”며 “단기적으로 시장 안정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면 취약계층에 한정해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여신 업계에서는 주택 공급 활성화를 위해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공급 금융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요청이 나왔고, 건설 업계에서는 수도권 전역에 동일한 대출 규제를 적용하면서 주택 공급과 입주에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대출 규제를 지역별 여건을 고려해 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공개 토론에서 나온 의견을 종합해 정책 우선순위를 가다듬을 방침이다. 비거주 1주택자 전세대출 제한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 범위 확대, 청년·신혼부부 정책금융 지원, 부동산 PF 금융 지원 등 다양한 방안도 함께 검토해 정책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이유정 한국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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