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에 다시 승계의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넘치는 독설과 카리스마로 아이폰 신화를 쓴 스티브 잡스의 뒤를 팀 쿡이 이었듯, 오는 9월 1일부터는 존 터너스가 팀 쿡이 일군 4조 달러 플랫폼 제국을 물려받습니다. 쿡 취임 때 그랬던 것처럼, 새 최고경영자(CEO)를 향한 의구심이 ‘역시 애플’이라는 찬사로 바뀔 수 있을지 투자자들은 궁금해합니다.
승계는 위기의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이번 애플의 CEO 교체는 ‘전격적이지만 담담하다’는 상반된 평가를 받습니다. 발표 시점은 갑작스러웠지만 주식 시장은 별다른 충격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애플의 경영이 탄탄하다는 뜻이지만, 뒤집어 보면 리더십 교체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투자자가 그만큼 많았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올해 새 CEO를 맞은 곳은 애플만이 아닙니다. 미국 경제지 포춘은 2026년을 ‘CEO 대전환의 해’로 규정합니다. 워런 버핏이 벅셔해서웨이를 그레그 에이블에게, 밥 아이거가 디즈니를 조시 다마로에게, 더그 맥밀런이 월마트를 존 퍼너에게 넘겼습니다.
공통 키워드는 ‘AI 전환’입니다. 버핏은 트레이드마크인 가치투자로 불멸의 수익률을 이어왔지만, 인공지능(AI) 시대에도 그의 투자법이 유효할지는 의문입니다. 벅셔에 투자처를 찾지 못한 천문학적 현금이 쌓여 가는 것은 새로운 투자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징후일 수 있습니다. 맥밀런은 AI가 월마트의 200만 개 일자리 전부를 바꿔놓을 것이라며 “앞으로의 트랙을 나보다 더 빨리 뛸 수 있는 사람이 보이면, 바통을 넘기고 물러나 응원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애플의 리더십 전환을 관통하는 키워드 역시 AI입니다. 애플은 AI 시대에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아 왔습니다. AI 인프라 투자액은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메타·알파벳 4개 사 합산의 50분의 1에도 못 미칩니다. 새 시리는 미완성이고, 화려하게 발표된 애플 인텔리전스는 여전히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급기야 응급처방으로 구글의 제미나이를 새 시리에 탑재하기로 했습니다. 이사회가 ‘공급망의 마스터’ 팀 쿡 대신 자체 칩 개발을 성공시킨 ‘엔지니어링의 마스터’ 존 터너스를 선택한 배경입니다. 애플조차 기존 방식을 버리고 새 판을 짜는 데 사활을 걸고 있는 것입니다. AI가 모든 것을 바꿔놓고 있습니다. 누구도 이 파고를 비켜가지 못합니다.
한경머니 8월호의 중심 테마도 AI입니다. 커버스토리인 반도체 피크아웃 논쟁 역시 거대한 AI 스토리의 일부입니다. AI 혁명은 불과 몇 년 전까지 위기 적신호가 켜져 있던 국내 반도체 회사들을 세계 최고 수준의 이익을 내는 기업으로 바꿔 놓았습니다. AI라는 거대한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승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4명의 반도체 전문가가 반도체 피크아웃의 가능성과 시점, 미리 감지할 수 있는 지표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시점과 논리는 저마다 다르지만, 피크아웃이 이미 시작됐다고 보는 전문가는 한 명도 없습니다. 모두가 한목소리를 낼 때가 진짜 위기라는 시장의 격언이 이번엔 예외일까요. 좀 더 지켜볼 일입니다.
© 한경매거진&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