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 호서대 디지털금융경영학과 교수는 금융 버블의 역사를 짚었다. 지난 7월 2일 차현진 교수를 만나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을 때, 혁신의 가치와 과잉 기대를 어떻게 구분해야 할지 물었다.

[커버스토리] 반도체, 정점을 묻다- 차현진 호서대 디지털금융경영학과 교수
"이번엔 다르다는 생각이 가장 위험"
“버블은 언제나 지나간 뒤에 붙는 이름이다. 태풍의 한가운데에서는 신호가 보이지 않는다.”

인공지능(AI)을 둘러싼 기대가 역사상 유례없는 투자 열풍으로 번지는 가운데, 차현진 호서대 디지털금융경영학과 교수는 과거 두 개의 버블을 언급했다. 1720년의 미시시피 버블과 남해 버블이다.

한국은행에서 38년을 보내며 금융의 역사를 연구해 온 그는 “이번엔 다르다는 생각이야말로 우리가 되풀이해온 모든 문제의 공통된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 최근의 AI 투자 열기를 보면서 어떤 장면이 떠오르십니까.

“금융위기와 버블을 이야기할 때 바이블 같은 책이 있습니다. 찰스 킨들버거가 쓴 <서유럽 금융사>, <광기, 패닉, 붕괴>죠. 이후에도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등이 금융위기와 관련한 책을 썼지만 고전은 킨들버거의 책입니다. 18세기 이후 수많은 금융위기를 방대하게 조사한 책입니다. 책에 나온 다양한 사례 중 지금 상황에 가장 부합하는 것을 꼽으라면, 지금으로부터 306년 전인 1720년 프랑스의 미시시피 버블과 영국의 남해 버블입니다. 두 사례 모두 정부가 청사진을 제시했고 국민들이 대규모 자금을 쏟아부었지만 현실은 기대와 달랐습니다. 결국 큰 버블 붕괴를 겪었습니다.”

— 어떤 점에서 지금과 비슷하다고 보십니까.

“‘이 길밖에 없다’는 기대 속에서 국가가 앞장서고 국민들이 대규모 투자에 나섰던 사례입니다. 프랑스의 경우 영국은 산업이 발달했는데 프랑스는 어떻게 성장할 것이냐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프랑스는 캐나다부터 남쪽으로 식민지를 개척했는데, 자국 영토의 몇 배에 이르는 그 땅에 농사를 지으면 얼마나 풍요로워지겠느냐는 구상이었죠. 문제는 개간할 인력도 시설도, 투자할 자금도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토지 면적에 연동해 캐나다 땅 1에이커당, 1프랑씩 화폐를 발행하자는 구상이 나왔습니다. 땅은 사라지지 않으니 본위화폐와 다를 바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토지를 담보로 돈을 만들고, 그 돈으로 경제가 성장하고, 성장한 힘으로 땅을 더 넓히고, 넓어진 땅을 담보로 다시 화폐를 발행한다는 완결된 순환 구조입니다. 이대로라면 실패할 이유가 없어 보였습니다.”

— 그 순환 논리가 지금과 겹칩니까.

“AI로 생산성을 높이려면 데이터센터가 필요하고, 데이터센터를 통해 경제가 성장하며, 경제가 발전하면 데이터센터를 더 필요로 한다는 구조와 다르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 사업을 국가가 주도했습니다. 왕명으로 세워진 은행이 실무를 맡았고, 정부는 ‘새로 개척한 땅만큼 확실한 자산은 없다, 국민이 투자해야 프랑스의 영토가 넓어진다’며 애국심에 호소했습니다. 그러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땅에 대한 의문이 번지자 어느 날 갑자기 인출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사람들은 결말만 기억하지만, 출발점은 지극히 합리적이고 낙관적인 계산이었습니다. 당시를 두고 비합리적이었다고 평한다면, 지금도 같은 평가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 남해 버블은 어떠했습니까.

“당시 영국의 남해회사(South Sea Company)를 중심으로 일어난 버블입니다. 영국은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데려다 아메리카의 스페인 식민지에 판매하면 막대한 부를 얻을 수 있다고 기대했고, 국가적인 사업으로 추진했습니다. 오늘의 기준으로는 용납될 수 없는 사업이지만, 당시에는 국가가 미래의 성장 동력으로 내세우며 기대를 키웠습니다. 논리는 그럴 듯했습니다. 아메리카는 땅이 넓은데 경작할 인력이 없으니, 노예를 공급하기만 하면 막대한 곡물이 쏟아진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독점 공급권을 남해회사가 갖고 있기 때문에 투자만 하면 수익이 보장되는 구조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스페인이 계약을 사실상 이행하지 않으면서 무너졌습니다.”
"이번엔 다르다는 생각이 가장 위험"
— 버블의 피해는 어느 정도였습니까.

“사실상 전 국민이 손실을 입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과학자 아이작 뉴턴, <로빈슨 크루소>를 쓴 대니얼 디포가 대표적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당대 지식인이 보기에도 합리적인 투자였다는 뜻입니다. 여파도 길었습니다. 300년이 지난 지금도 프랑스에서는 ‘뱅크(은행)’라는 말을 꺼립니다. 영국은 의회가 이른바 버블법을 만들어 100년 동안 회사 설립 자체를 막았습니다. 한동안 ‘컴퍼니’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 의심을 샀습니다.”

— 1720년 같은 해에 두 나라에서 동시에 터진 것도 의미가 있습니까.

“두 나라가 얼마나 경쟁했는지 알 수 있죠. 둘 다 국력을 한곳에 걸었고 함께 무너졌습니다. 지금 미국을 상대로 반도체를 팔아 더 잘 살아보자는 오늘의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 AI 인프라 투자에 전력질주를 하는 점에서, 1873년 ‘철도 버블’이 언급되기도 합니다.

”교훈이기는 하나 결이 다릅니다. 철도에는 이미 검증된 선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19세기 초에 영국이 증기기관을 앞세워 철도를 깔았고 프랑스가 뒤를 따랐으며, 통일 이후 독일도 같은 길을 갔습니다. 국토의 균형 발전이라는 효과도 실제로 있었습니다. 유럽의 투자가 일단락되자 ‘새로 돈 벌 곳은 미국밖에 없다’며 자금은 남북전쟁을 끝낸 미국으로 향했습니다. 대륙의 규모를 감안하면 철도 수요는 끝이 없으리라 본 것입니다. 유럽의 거대 자금이 미국으로 들어왔죠. 철도 버블은 돌아보니 버블이었던 것이지, 당시로서는 대단히 합리적인 판단이었습니다. 무너진 이유도 단순합니다. 과잉 투자입니다. 철도 회사들이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서 무너졌습니다. 길게 보면 대륙횡단철도는 필요했지만 지나치게 짧은 기간에 지나치게 많은 자금이 몰렸습니다. 너무 조급했던 겁니다. 그 여파가 너무 컸기 때문에 버블이 50년 동안 지속됐습니다. 그래서 대공황과 구분해 장기 불황이라 부릅니다.”

— 1873년 이후의 장기 불황은 결국 어떻게 끝났습니까.

“가슴 아픈 답입니다만, 제1차 세계대전입니다. 경제가 침체되자 각국이 판로를 찾아 식민지 쟁탈에 나섰고 그것이 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침체가 50년 가까이 이어진 것은 유럽 자금이 미국에 집중돼 있어 함께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시기가 문화적으로는 ‘벨 에포크’, 가장 아름다웠던 시대로 불렸습니다. 천재들이 쏟아지고 미술이 발달했어요. 사람은 빵만으로 사는 게 아니라는 또 다른 교훈이죠.”

— 최근 미국의 AI 관련 채권 발행 급증도 비슷한 신호로 읽으십니까.

“사모대출이 그 전형입니다. 부채가 많은데도 매출이 좋으니 문제없다는 논리인데, 그 매출의 상당 부분을 자금을 대준 쪽이 만들어줍니다. 우려스러운 대목입니다. 어느 한 고리가 어긋나면 파장이 클 수 있습니다. 철도 버블 때에도 당대 미국 최대 부호였던 제이 쿡의 투자은행이 과도한 채권 발행으로 파산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최대 금융기관이 해체된 것에 비할 만합니다. 데이터센터 경쟁도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뒤처진다는 두려움 때문에 기업도 국가도 뛰어듭니다. 부채를 일으켜 철도를 깔다가 수익성이 따라주지 않아 무너진 것과 구조가 같습니다. 철도를 짓던 사람들은 다 망하고, 나중에 현금을 쥐고 있던 곳에서 헐값에 사들였죠. 그러고 나서는 독점이라고 또 비판받았고요. 지금도 아마 데이터센터를 짓다 망한다면 현금을 가진 누군가가 헐값에 사가지 않겠습니까.”
"이번엔 다르다는 생각이 가장 위험"
- AI가 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습니다.

“이 세상 그 어떤 발명도 생산성을 그렇게 급격하게 높이지는 않았습니다. 전기, 컴퓨터, 인터넷, 페니실린, 엑스레이 등 위대한 발명들이 있었지만 마찬가지예요. AI가 사람 일을 대체한다고 하면 낡은 기술을 가진 사람들을 재교육해 다른 쪽으로 보내야 합니다. 그럼 교육 비용이 많이 들죠. 시스템을 바꾸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지난 150년, 남북전쟁 이후 생산성 향상이 2%를 넘은 적이 없습니다.”

-AI는 실제로 유용한 답을 주고 있지 않습니까.

“제가 대학을 다닐 때는 ‘기계는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게 정설이었어요. 고트프리드 빌헬름 라이프니츠가 남긴 유명한 비유가 있습니다. 당시 최고 기술로 만들 수 있는 기계가 풍차였는데, 거대한 풍차 안에서 바퀴가 돌고 축이 돈다고 해봅시다. 생각하는 기계가 있다면 그 안에서 ‘생각’은 어디에 있습니까. 축에 있나요, 톱니에 있나요. 혹은 벨트에 있나요. 철학자 존 설의 사고실험에는 '차이니즈 룸'이 나옵니다. 감옥에 갇힌 사람과 간수가 서로 다른 언어를 씁니다. 간수가 중국어로 ‘뭐 먹고 싶으냐’고 써서 넣으면 잠시 후 ‘피자를 달라’는 답이 나와요. 간수는 안에 있는 사람이 중국어를 아주 잘한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안에 있는 사람은 뜻을 하나도 모릅니다. 그 방의 거대한 도서관에서 본 문자와 똑같이 생긴 걸 찾아 대응하는 답을 내밀 뿐이에요. AI도 방대한 데이터로 비슷한 응답을 할 뿐이에요. 애초에 생각을 안 하는데 무슨 인공 '지능'입니까. 그런데 아무도 그런 얘기를 안 해요.”

-AI(Artificial Intelligence)라는 용어에 문제가 있다고 보시는군요.

“누구는 AI 하면 데이터센터를 생각하고, 누구는 영화 <그녀(Her)> 같은 AI 비서를 생각하고, 누구는 메모리 반도체 많이 파는 걸 생각합니다. 구글 쪽은 AI로 광고 수입 늘리는 걸 생각하고, 누구는 지브리풍 그림을 공짜로 그리는 걸 생각하죠. 다 다른 걸 생각하는데 그걸 뭉뚱그려 'AI 혁명'이라고 부릅니다. ‘figure of speech’, 언어에 의한 상상력이에요. 간호사를 백의의 천사라고 부르니 천사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얘기로 바뀌고, 종합병원에 가면 천사가 천 명 있다는 식으로 자기가 만든 말에 자기가 빠져드는 거죠.”
"이번엔 다르다는 생각이 가장 위험"
— 1929년 대공황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대공황은 성격이 다릅니다. 전기와 화학비료, 냉장 기술 같은 발명으로 생산성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 배경 중 하나였습니다. 명백한 생산성 향상이 과잉 생산으로 이어진 것이지요. 대공황을 과잉 투자의 결과로 보는 분석은 거의 없습니다. 지금 AI는 그만한 생산성을 가져올지 자체가 불투명합니다. 결이 완전히 다릅니다. 생산성이 오르면 일자리가 줄어들지 모른다는 상상 속에서 투자가 앞서가고 있는 국면입니다.”

— AI 시대에 한국이 놓인 위치를 어떻게 보십니까.

“미국의 기대는 AI가 인류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리라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 온기에 기대고 있는 쪽입니다. 우리에게 이것은 AI 혁명이라기보다 ‘AI 혁명에서의 제조업 매출 확대’입니다. 우리는 AI로 생산 방식을 바꾸거나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전력과 희소자원을 대량으로 쓰는 메모리 반도체를 수출하려는 것입니다. 말은 AI 시대지만 실질은 오래된 제조업 모델입니다. 1960년대 가발, 1970년대 합판, 1980년대 TV를 팔던 것과 구조가 다르지 않습니다. 비유하자면 비단 상인이 ‘AI 시대가 오면 종사자들이 비단옷을 즐겨 입을 테니 비단을 더 짜자’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곁불을 쬐는 경제는 오래가기 어렵습니다. 물론 반대 사례도 있습니다. 골드러시에서 마지막에 이익을 남긴 것은 작업복을 만들던 회사였다고 하죠. 다만 온 나라가 한 품목에 매달리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 우리나라 상황으로 보면 어떻습니까.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정부 주도로 중화학 산업이 성공한 건 맞습니다. 그때는 일본이라는 모델이 있었죠. 앞서 그 길을 간 나라가 있으니 따라가면 된다는 확신이 있었죠. 경제개발계획도 우리가 후발주자였기에 가능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메모리 반도체에서 우리 앞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전인미답의 길을 가고 있는 거죠. 그 상황에서 정부가 앞장서고 기업이 뒤를 따르는 구도가 1720년대 두 버블과 어떻게 다른지는 한번쯤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 코스피의 쏠림 현상은 어떻게 보십니까.

“가장 경계해야 할 신호입니다. 지금 시장에서 두 개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대단히 큽니다. 남해 버블 당시 영국 자본시장도 사실상 소수의 회사로 구성돼 있었고, 그중 한 곳이 시장을 대표하게 되자 전 국민의 자금이 그곳으로 몰렸습니다. 반도체 실적을 놓고 '국민배당금'과 'N% 성과급' 논쟁이 이는 상황도 우려스럽습니다. 두 가지 모두 지금의 수출 호조가 계속되리라는 기대를 깔고 있어요. 일장춘몽을 갖고 싸우는 것 아니냐는 겁니다.”

— 지금이 버블인지, 정상적인 고평가인지는 어떻게 구분하십니까.

“버블은 언제나 지나간 뒤에 붙는 이름이지, 그 한가운데서는 알 수 없습니다. 킨들버거가 남긴 교훈 중 하나가 그것입니다. 태풍의 한가운데에서는 신호가 보이지 않습니다. 지나고 나서야 몰랐다고 말할 뿐, 그 시점에서는 가장 합리적인 투자로 보입니다. 튤립 버블조차 당시의 계산으로는 나름 근거가 있었습니다.”

— 같은 일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역시 킨들버거의 지적입니다. 인간의 탐욕은 변하지 않는데 지혜는 그만큼 자라지 않습니다. 위기는 늘 다른 얼굴로 찾아오지만 돌아보면 본질은 같았습니다. 케네스 로고프의 조언처럼 ‘이번엔 다르다’는 생각이 가장 위험합니다. 내가 처한 상황은 전례가 없으니 비교할 잣대도 없다고 여기는 태도 말입니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의심해볼 단서가 분명히 있는데, 스스로 비교의 기준을 버리는 것입니다. 확증편향이죠.”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 무엇입니까.

“자중자애하자는 것입니다. 남이 잘되는 것을 부러워하는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위기가 온다고 단정하고 싶지 않고, 제 판단이 옳다고 확신할 근거도 없습니다. 다만 이 국면이 길게 가지 않는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는 진지하게 따져보아야 합니다. ‘이번엔 다르다’는 생각이야말로 우리가 되풀이해 온 모든 문제의 공통된 출발점이었습니다.”
"이번엔 다르다는 생각이 가장 위험"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사진 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