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임대차 시장에서 월세 계약 비중이 월 기준 처음으로 55%를 넘어섰다. 전세 계약이 급감하면서 ‘전세의 월세화’가 빨라지는 모습이다.
[부동산 이슈]
월세로 세금 부담은 완화하려는 고가주택 소유자, 절세를 위해 실거주에 나서는 다주택자와 1주택자로 인해 물건은 줄고 임대료 부담은 더 커질 수 있어서다. 정부가 지난 8월 13일 내놓은 공급대책이 이 같은 우려를 얼마나 잠재울 수 있을지 여부에도 시장의 관심이 쏠린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6월 서울 아파트 월세 계약은 9954건으로 전세 계약(8114건)보다 1840건 많았다. 전체 임대차 계약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55.1%다. 이는 서울시가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1년 1월 이후 최대치다. 올 들어 월세 거래가 전세를 웃도는 달은 있었지만, 격차가 수십여 건에서 수백 건 수준이었다. 지난 6월에는 2000여 건 수준까지 벌어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전세 계약이 빠르게 사라지며 나타난 현상으로 분석한다. 6월 전세 계약은 1년 전 같은 달(1만3039건)보다 37.8% 급감했다. 반면 같은 기간 월세 계약은 3.5% 늘어났다. 올해 상반기 전체로 봐도 전세 계약(5만9353건)은 전년 동기 대비 26% 줄었지만, 월세는 1.7% 감소에 그쳤다.
임대차 시장에서는 전월세 가격 모두 상승하는 모습이다. KB부동산이 발표한 ‘7월 전국 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지난 7월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7억458만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6월 6억9619만 원보다 839만 원(1.2%) 오른 것으로, KB부동산이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1년 6월 이후 처음으로 평균 전셋값이 7억 원을 넘어섰다.
한강 이남 11개 구의 평균 전셋값은 8억1104만 원으로 강북 14개 구(5억8685만 원)보다 약 1.4배 높았다. 하지만 지난해 말과 비교한 상승률은 강북 14개 구가 7.43%로 강남 11개 구(4.87%)를 크게 웃돌았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했던 서울 외곽 지역으로 전세 수요가 몰리면서 이들 지역의 가격 상승 폭이 더욱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런 분위기가 더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KB부동산이 조사한 서울 전셋값 전망지수는 136.1을 기록했다. 이 지수는 100을 넘으면 향후 3개월 동안 전셋값이 오를 것으로 예상하는 공인중개사가 더 많다는 뜻이다. 4월 이후 넉 달 연속 130을 웃돌며 강한 상승 기대가 이어지고 있다.
전세가 줄어드는 것은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정책적 요인까지 더해진 탓이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6·27 대책을 통해 수도권과 규제지역 주택을 대상으로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을 금지했다. 수도권과 규제지역의 전세대출 보증 비율도 기존 90%에서 80%로 낮아졌으며,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 등을 대상으로 한 정책대출 한도 역시 축소됐다. ‘부동산과 금융의 절연’에 따라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되는 과도한 유동성을 차단하겠다는 취지였다.
직접적으로 실거주하도록 하는 초유의 정책도 시행됐다. 지난해 ‘10·15 부동산 대책’에 따라 서울 전역과 경기도 15개 지역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였다. 거래 허가 후 4개월 안에 입주해야 하는 만큼 선호도가 높은 지역의 임대차 물량이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6월 매물 잠김 우려로 ‘무주택자가 살 경우 임대차 계약 종료일까지’ 실거주 의무를 유예하긴 했지만, 한시적 조치인 데다 대상도 지나치게 제한적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늘어난 세 부담이 세입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것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정부는 이번 세제 개편으로 내년 종부세가 올해보다 8000억 원가량 더 걷힐 것으로 전망한다. 내년부터 2031년까지 5년간 누적 기준으로는 약 9조3000억 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공시가 21억 원(시가 약 30억 원)이 넘는 약 16만8000가구(호)의 종부세가 늘어난다. 전국 상위 1.1%, 서울 상위 5.8% 가구에 해당한다. 공시가 35억 원(시가 약 50억 원)부터는 세 부담이 최대 5배로 늘어날 전망이다. 서울 강남·서초구 전용 84㎡ 이상 아파트, 용산구 고가 단지 등 약 3만 가구(전국 0.2%·서울 1.1%)가 대상이다.
현 정부가 “과도한 전세대출이 집값 상승을 유발했다”고 보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실거주 위주 정책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 대통령은 지난 6월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전세는 특이하게 대한민국에만 있는 사금융인데 이젠 사라져 가는 추세”라며 “전세대출을 많이 해준 것이 집값 상승의 주된 원인, 정상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장은 정부 정책의 취지를 고려하더라도 변화의 속도가 지나치게 급진적이라는 점을 우려한다. 공사비 상승과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 위축 등으로 신규 공급이 쉽지 않은 데다 시장 내에서 전월세 물량을 공급하는 임대사업자까지 줄어들고 있다. 공급은 쉽지 않은데 그나마 돌아가고 있는 전월세 물량까지 실거주로 전환시키면서 불안이 가중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권의 말 바꾸기로 가뜩이나 줄어든 임대사업자는 이번 세제 개편에 따라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재경부는 조정대상지역에 위치한 매입 임대아파트의 양도세 중과 배제와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재산세 감면과 종부세 합산 배제 등 혜택도 종료된다.
2017년 문재인 정부 당시 등록임대사업자로 가입한 집주인들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정부는 전월세 시장 안정을 위해 등록임대사업자 제도를 적극 장려하며 의무 임대 기간을 채우면 양도세 중과 배제와 장기보유특별공제, 종부세 합산 배제, 취득세 감면 등 각종 세제 혜택을 제공했다. 당시 등록했던 8년 임대주택들이 지난해부터 순차적으로 의무 임대 기간을 마치기 시작했다. 의무 임대 기간이 끝나는 순간 그동안 종부세 합산에서 제외됐던 임대주택이 다시 주택 수에 포함되게 된다.
민간 임대사업자를 단순 투기 세력이 아닌 공급 주체로 인정해야 시장이 안정될 수 있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매매 시장뿐 아니라 전월세 시장에서도 공공 주도 공급의 한계가 명확하다는 것이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서울은 시민 절반 이상이 임차인인 도시인 만큼 비거주 주택 보유자의 긍정적 기능을 평가해야 한다”고 했다.
전세가 상승이 다시 매매가를 끌어올리는 문제도 우려된다. 주택 가격이 계속 올라가는 걸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포모(FOMO·소외 공포)에 전월세 불안까지 겹치면서 무주택 청년층의 매수 심리를 자극할 수 있어서다.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서울 집합건물(아파트·연립·오피스텔 등) 매매 등기 8만6834건 가운데 생애 최초 주택 매수는 4만66건으로 전체의 46.1%를 차지했다. 관련 통계가 공개된 2010년 이후 가장 높은 비중이다. 지난해 상반기 생애 최초 주택 매수자 비중은 37.6%로, 1년 만에 8.5%포인트 상승했다.
상반기 생애 최초 주택 매수가 가장 많았던 곳은 강서구로 3003건(7.5%)이었다. 이어 노원구 2913건(7.3%), 은평구 2532건(6.3%), 송파구 2374건(5.9%), 성북구 2225건(5.6%), 구로구 2167건(5.4%) 순이었다. 올해 들어 중랑구, 노원구, 성북구 등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상승률을 기록한 배경에도 생애 최초 매수세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상반기 서울 생애 최초 주택 매수자 가운데 20·30대 비중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만 19~39세 매수자는 전체의 66.4%를 차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57.2%)은 물론 부동산 시장 급등기이던 2020년(61.2%), 2021년(60.7%)보다 높은 수준이다.
전국 기준 상반기 30대 이하가 매수한 주택은 12만4059가구에 달한다. 전년 같은 기간(9만8999호)보다 25.3% 오른 수치다. 재작년보단 49.4% 늘었다. 김효선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실거주 유도와 보유세 강화 등의 움직임이 상급지부터 연쇄적으로 전세 감소, 월세 상승을 불러올 수 있다”며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실수요자의 중저가 지역 내 집 마련 수요는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는 오피스텔과 도시형생활주택 등 비아파트 공급 확대와 임차인의 전세 비용 부담을 줄이는 내용을 담은 전월세 종합대책을 8월 13일 내놨다. 공급 속도가 빠른 비아파트 규제를 완화해 전월세 시장 불안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설명이다. 다만 시장에서는 단순한 공급 물량 확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수요자가 선호하는 주거 품질을 갖춘 주택 공급과 함께 중장기적인 아파트 입주 물량 확대가 병행돼야 전세 시장 불안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가파른 월세화 흐름 속에 전세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아주 작은 수급 변수만으로도 크게 요동칠 수 있는 구조”라며 “제도 변화의 진통이 고스란히 무주택 서민의 주거 불안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질서 있는 연착륙을 유도하는 정책적 세심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유정 한국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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