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와 상속을 한꺼번에 설계하는 수단으로 주목받는 유언대용신탁이 이혼이라는 변수와 만나면 어떻게 될까. 신탁한 부동산 자체는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지만, 위탁자가 보유한 신탁수익권은 나눠야 할 재산으로 인정될 수 있다.
[상속 플래닝]
상속 자문에서 예상치 못한 복병 중 하나가 바로 ‘이혼’이다. 본인의 노후나 자녀의 미래를 위해 평생 힘들게 일군 재산이, 예기치 못한 이혼으로 엉뚱한 사람에게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혼에 의한 재산분할은 부부가 혼인 중 공동으로 형성한 재산을 청산·분배하는 것으로, 아내와 남편 명의로 된 부부공동재산에 대해 그 재산의 형성 및 유지에 기여한 정도 등에 따라 각자의 몫을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이혼으로 인한 재산분할 사건에서 가장 첨예하게 다투는 부분은 재산의 형성 또는 유지에 대한 기여도라고 할 수 있다. 기여가 인정돼야 재산을 분할받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유언대용신탁이 이혼과 마주쳤을 때
한편, 유언장 대신 재산을 안전하게 승계하면서 노후까지 든든하게 대비하는 대표적인 수단으로 최근 ‘유언대용신탁’이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신탁이란 내 재산을 믿을 만한 자에게 맡긴 후 관리·처분하고 그로 인한 수익을 수익자에게 주게 하는 것이다. 이때 재산을 맡기는 자를 위탁자, 재산을 맡아서 신탁 계약대로 관리·처분해주는 자를 수탁자, 맡긴 재산을 신탁재산, 맡긴 재산을 운용해 발생하는 수익을 신탁수익이라고 한다. 신탁수익을 가져가는 사람은 수익자라고 한다.
수익자는 위탁자일 수도 있고, 위탁자 아닌 제3자가 될 수도 있다. 신탁이 되면 신탁재산의 명의는 위탁자에서 수탁자로 변경되며, 수탁자는 신탁 계약에서 미리 정한 대로 신탁재산을 관리하고 그 수익을 수익자에게 나눠줘야 한다.
최근 금융기관에 자산을 맡겨 관리하다가 자신이 사망하면 자녀들에게 신탁재산과 수익을 물려주도록 하는 유언대용신탁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유언대용신탁이 이혼이라는 복병을 만나면 어떻게 될까.
한 재혼 부부의 사례를 살펴본다. 아내는 재혼 전에 이미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었다. 재혼한 후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아내는 본인 소유이자 부부 전체 재산의 75% 이상을 차지하는 시가 약 20억 원 상당의 아파트를 은행에 유언대용신탁 했다.
유언대용신탁 계약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 생전 수익자(아내)
아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아내가 해당 아파트에서 무상으로 거주하거나, 아파트를 다른 사람에게 임대해주고 매달 월세를 받아 생활비로 쓸 권리를 가짐.
· 사후 수익자(전남편과의 외아들)
아내가 사망하면 아들이 아파트를 이전받음.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은 “부부 공동재산인 아파트를 동의 없이 마음대로 신탁해 처분했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아내는 “내가 평생 일군 재산을 내 아들에게 주겠다는데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고 화를 냈다.
신탁재산은 빠져도 수익권은 남는다
부부의 갈등은 끝내 좁혀지지 않았고, 남편은 아내를 상대로 이혼의 소를 제기했다. 이혼소송에서 남편은 유언대용신탁 된 아내의 아파트(20억 원)도 당연히 재산분할 대상에 넣어서 나눠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내는 유언대용신탁으로 이미 소유권이 은행에 넘어간 이상 은행이 소유자가 됐으므로 아파트는 이혼의 재산분할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에서 첫 번째로 짚어봐야 할 핵심은 ‘이혼 시 재산분할 기준일 당시 해당 부동산의 법률상 소유자가 누구인가’다. 내 부동산을 은행에 유언대용신탁 하고 신탁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까지 마치고 나면, 부동산의 법률상 소유권은 기존 위탁자(아내)에서 수탁자인 은행으로 넘어가게 된다. 법적으로 소유권자는 수탁자인 은행이지 위탁자인 아내가 아니다.
따라서 이혼할 당시 이미 해당 아파트는 아내의 소유가 아니라 은행의 소유이기 때문에 아파트 자체를 아내의 소유로 보아 재산분할 대상으로 삼는 것은 어렵다. 실제 이혼 사건에서도 법원은 유언대용신탁 계약에 따라 수탁자에게 소유권이 이전된 아파트는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아파트가 이혼으로 인한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해서 남편이 아무런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아내는 아파트의 소유자는 아니지만 유언대용신탁 계약에 따른 신탁수익권을 가지고 있다.
사례의 유언대용신탁 계약에 따르면 아내는 ‘아파트에 무상으로 거주하거나, 임대 시 월세를 수령할 권리(신탁수익권)’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신탁수익권은 재산적 가치가 있으므로 재산분할 대상이 될 수 있다.
아파트 대신 비율…법원의 균형 맞추기
그러나 실무적으로는 ‘아내가 앞으로 남은 생애 동안 무상으로 거주하거나 월세를 수령할 권리의 이혼 당시 시가’를 정확히 평가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재산적 가치가 있는 권리임에는 분명한데 얼마인지 알기 곤란한 것이다.
이혼으로 인한 재산분할금을 계산하려면 재산이 얼마인지를 확정해야 하므로, 신탁수익권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어렵다면 신탁수익권도 재산분할 대상으로 삼기 어렵게 된다.
그러면 남편은 아무런 재산을 받지 못하는 걸까. 그건 아니다. 유언대용신탁 된 재산과 신탁수익권이 재산분할 대상인 재산에 잡히지 않는다면, 법원은 이런 사정을 고려해 남은 부부 공동재산(예금·주식·다른 부동산 등)을 나눌 때 상대방 배우자의 재산분할 비율을 크게 높여주는 방식으로 전체 분할 액수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 아파트 자체는 안 나누더라도, 다른 재산에서 상대방 몫을 더 챙겨줘 실질적인 평등을 맞추는 것이다.
실제 이혼 사건에서 법원은 유언대용신탁 된 재산이 이혼으로 인한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되고, 신탁수익권 가치는 평가하기 곤란하게 되자, 상대 배우자에게 이례적으로 높은 재산분할 비율을 인정해 남은 재산에서 많은 몫을 가져가도록 판단했다.
유언대용신탁재산은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되나, 신탁수익권은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현재 유언대용신탁재산이 문제가 된 이혼 사례는 아직까지는 드물지만 앞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재 확인되는 하급심 사례는 혼인 기간 중 함께 거주하던 부동산에 관해 유언대용신탁을 했기 때문에, 만약 유언대용신탁을 하지 않았다면 그 부동산은 이혼 시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될 수밖에 없었던 경우였다.
그러나 만약 결혼 전부터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유언대용신탁 해 혼인 중에도 부부 공동생활과 아무런 관련 없이 분리돼 따로 관리됐으면 어땠을까. 신탁 구조를 어떻게 설계하는지에 따라 이혼으로 인한 재산분할에서 상당히 다른 결과도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