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9월 기금형 퇴직연금 세부안 공개를 앞둔 가운데, 국내 첫 공적 기금형 모델인 '푸른씨앗'이 3년 만에 4만2000곳·19만 명·적립금 1조9000억 원 규모로 성장했다. 박종길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은 퇴직연금을 '퇴직금의 연장'이 아닌 사회보장제도로 봐야 사각지대를 메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커버스토리] 박종길 근로복지공단 이사장 인터뷰
근로복지공단이 운영하는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 제도인 푸른씨앗은 여러 중소기업이 납부한 퇴직급여 부담금을 공동기금으로 모아 전문적으로 운용한다. 운영위원회가 운용 원칙을 정하면 전문기관이 국내외 주식과 채권 등에 분산투자를 한다. 개별 근로자가 상품을 선택하는 일반 확정기여(DC)형과 달리 기금이 투자 판단을 대신하는 방식이다. 사업주는 근로자 연간 임금총액의 12분의 1 이상을 납부하고, 여기에 운용손익을 더한 금액이 퇴직급여가 된다.
푸른씨앗은 정부가 추진하는 일반 기금형 퇴직연금과 동일한 제도는 아니다. 근로복지공단이 운영하고 정부 지원이 결합된 중소기업 대상 공공형 기금이라는 특수성이 있다. 향후 도입될 금융기관 개방형이나 업종·지역별 연합형 기금에는 서로 다른 지배구조와 수수료 체계가 적용될 수 있다. 그럼에도 여러 사업장의 적립금을 모아 운용하고, 노사와 전문가가 운용 원칙을 정하며, 전문기관을 선정·감독한다는 기금형의 기본 구조는 푸른씨앗에서 이미 작동하고 있다. 가입자가 개별 상품이 아니라 자산을 맡길 기금을 선택한다는 점에서도 향후 제도 개편과 맞닿아 있다.
박종길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은 2001년 고용노동부 근로복지과 초대 과장을 맡았으며, 2011년엔 근로기준정책관으로 근무하면서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전면 개정을 담당했다. 당시 중간정산을 제한하고 개인형퇴직연금(IRP)을 도입해 퇴직급여가 노후 자산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박 이사장은 퇴직연금을 단순한 금융 상품이나 ‘퇴직금의 연장’으로 보면 노후 소득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박 이사장에게 푸른씨앗의 성과와 향후 퇴직연금 제도의 발전 방향을 들었다.
푸른씨앗이 만들어진 배경은 무엇입니까.
“푸른씨앗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퇴직연금 격차를 줄이기 위해 도입됐습니다. 영세·중소 사업장은 규약 작성과 금융기관 선정, 부담금 관리가 어렵고, 퇴직금을 사내에 적립하다 경영난이나 도산을 맞으면 체불로 이어질 위험도 크죠. DC형에 가입해도 근로자가 상품을 선택하지 않아 적립금이 원리금보장 상품에 장기간 머무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푸른씨앗은 소규모 사업장의 자금을 모아 규모의 경제를 만들고 공공기관의 책임 아래 전문 운용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푸른씨앗은 언제 출범했습니까.
“중소기업 공동기금에 대해 10여 년에 걸쳐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그 결과 2021년 4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이 공포됐고, 이듬해 4월 제도가 시행됐습니다. 근로복지공단은 전담운용기관 선정과 인프라 구축을 거쳐 2022년 9월 첫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표준계약서와 비대면 절차를 도입해 사업장의 행정 부담을 줄이고, 정부 재정 지원과 운용수수료 면제로 가입 문턱을 낮췄습니다.”
현재 가입 현황은 어떤가요.
“2026년 6월 기준 가입 사업장은 4만2000여 곳, 가입 근로자는 19만여 명이며 적립금은 약 1조9000억 원에 이릅니다. 2022년 말과 비교하면 사업장은 약 17배, 가입자는 약 19배, 적립금은 약 59배 증가했어요. 가입 대상은 올해 7월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됐으며, 2027년 1월부터 100인 미만으로 넓어집니다. 사업장을 거치지 않고 개인이 가입하는 ‘푸른씨앗 IRP’도 올해 7월 도입됐습니다. 자영업자와 프리랜서, 노무 제공자, 공무원, 교직원 등도 공적 기금형 운용을 선택할 수 있게 됐습니다. 상시근로자 30인 이하 가입 사업장의 월평균보수 281만 원(2026년 기준) 미만 근로자에게는 사용자 부담금의 10%를 최대 3년간 사업주와 근로자에게 각각 지원합니다. 2026년 6월까지 누적 지원금은 505억 원입니다.”
기금 운영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푸른씨앗은 정부와 노동계·경영계, 기금운용 전문가가 참여하는 운영위원회가 자금 운용 계획과 주요 정책을 결정하고, 전문위원회가 투자 전략과 성과를 점검합니다. 전담운용기관은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며 공단은 가입자 관리와 부담금 수납, 급여 지급을 담당하죠.”
실제 기금 운용 성과는 어떻습니까.
“2026년 자산 배분 계획은 국내 채권 54.3%, 해외 주식 16.9%, 해외 채권 15.7%, 국내 주식 6.1%, 단기자금 4.5%입니다. 채권을 중심으로 안정성을 확보하면서 주식과 해외 자산을 편입해 장기 수익률을 높이는 전략입니다. 연간 수익률은 2023년 6.97%, 2024년 6.52%, 2025년 8.67%를 기록했습니다. 2026년 6월 말 기준 누적 수익률은 34.47%입니다. 하지만 운용 기간이 짧고 시장 상황에 따라 손실이 발생할 수 있어 단정하기는 이르나 기금 규모 증가를 고려할 때 향후 지금보다 더 나은 장기 성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퇴직연금과 국민연금의 수익률을 숫자만 놓고 비교해서는 안 됩니다. 퇴직연금은 운용 손실이 가입자의 개인 계좌에 직접 반영돼 적립금이 줄어드는 것을 즉시 확인하게 됩니다. 따라서 수익률을 높이는 것 못지않게 큰 손실을 피하고 변동성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푸른씨앗이 채권 등 안전자산의 비중을 높게 가져가면서 분산투자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단기적으로 가장 높은 수익률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노후 자산을 장기간 안정적으로 불리는 것이 목적입니다. 시장 상황에 따라 손실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도 투명하게 알려야 합니다. 의사결정과 운용, 감독이 한 기관에 집중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노사정과 전문가가 참여하는 운영위원회가 주요 원칙을 정하고, 관련 전문위원회와 위험관리·성과 평가 체계가 운용 상황을 점검하며, 민간 자산운용사가 실제 운용을 담당하는 구조입니다. 공적 기금의 신뢰는 높은 수익률 한 번이 아니라 일관된 원칙과 투명한 책임 구조에서 나옵니다.”
“모든 근로자가 상품을 비교하고 시장 상황을 살피며 직접 투자 전략을 세우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중소기업 근로자는 적립금이 상대적으로 적고 생업이 바빠 운용에 많은 시간을 쓰기 어렵습니다. 여러 사람의 자산을 모아 전문가가 장기·분산투자 하는 기금형이 효율적인 이유입니다. 공동기금은 규모의 경제를 활용해 전문 운용기관과 위험관리 체계를 갖출 수 있습니다. 작은 사업장의 근로자도 전문적인 자산 운용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지난 2월 노사정이 기금형 퇴직연금 활성화에 합의했는데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기금형 퇴직연금의 필요성에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단순히 새로운 상품이나 사업자를 하나 더 허용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전문적인 기금 운용을 통해 수익성과 안정성을 높이고 국민의 노후 소득을 두텁게 보장하자는 방향에 노사정이 뜻을 모았다는 의미입니다. 다양한 형태의 기금이 도입되면 가입자의 선택지는 넓어질 것입니다. 다만 노사가 의사결정에 어떻게 참여하고 운용기관을 어떻게 감독할지 등 지배구조와 책임체계를 세밀하게 설계해야 합니다. 푸른씨앗은 국내에서 먼저 운영된 공적 기금형 모델로서 제도 발전의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실제 기금을 운용하며 쌓은 가입자·위험관리와 운용기관 선정·감독 경험을 새 제도 설계에 활용해야 합니다. 다만 푸른씨앗은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제도이므로 그 구조를 모든 기금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새 기금의 특성과 가입자의 수급권 보호를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국민연금공단의 퇴직연금 시장 참여에는 왜 신중한 입장이십니까.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은 모두 노후 소득을 위한 제도지만 구조와 책임 방식이 다릅니다. 퇴직연금은 후불임금 성격의 자산이 개인 계좌에 적립되고 운용 결과가 퇴직급여에 직접 반영됩니다. 따라서 노사 참여와 부담금 납부 관리, 수급권 보호까지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국민연금의 운용 역량은 인정하지만 과거 수익률만으로 참여를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시장의 다양성과 가입자의 선택권이 위축될 우려도 있는 만큼 감독과 손실 책임 체계를 충분히 논의한 뒤 결정해야 합니다.”
과거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을 전면 개정할 당시 지향했던 방향이 현재 제도에 충분히 구현됐다고 보시나요.
“당시 가장 큰 문제의식은 퇴직급여가 노후 자산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중간에 소진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근로자들이 퇴직금을 중간정산으로 받아 생활비 등에 사용하거나, 회사를 옮길 때마다 퇴직급여를 해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노후 소득을 위해 마련한 자산이 정작 은퇴할 때는 남아 있지 않은 셈이죠. 그래서 주택 구입과 같은 예외적인 사유를 제외하고 중간정산을 제한했습니다. 이직하거나 퇴직한 뒤에도 퇴직급여를 계속 적립·운용할 수 있도록 개인형퇴직연금(IRP)도 도입했습니다. 이후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을 비롯한 여러 제도가 추가되면서 퇴직연금 시장은 상당히 성장했습니다. 다만 당시 생각했던 것만큼 충실하게 발전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가장 아쉬운 점은 퇴직연금 의무화를 완성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퇴직연금 도입을 확대하는 방향을 법에 담았지만 기존 퇴직금 제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고, 실효성 있는 제재도 없었습니다. 가입의 보편성과 사각지대 해소, 장기적인 자산 축적이라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행 퇴직연금에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요.
“첫째는 퇴직연금의 실질적인 의무화입니다. 지금처럼 퇴직금 제도와 퇴직연금 제도가 사실상 선택적으로 운영되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를 줄이기 어렵습니다. 대기업은 노동조합이 있고 근로자의 요구도 강해 퇴직연금 가입률이 높습니다. 반면 노동조합이 없는 소규모 사업장은 사업주와 근로자 모두 관심이 낮고, 당장의 부담 때문에 가입을 미루기 쉽습니다. 둘째는 적립의 충실성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퇴직연금에 가입했다고 해서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업주가 법에서 정한 부담금을 제대로 적립하는지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합니다. 근로자의 수급권을 보호하려면 가입 여부뿐 아니라 부담금 납부와 적립 상황에 대한 감독도 강화돼야 합니다. 근로복지공단이 사업주의 부담금 적립 상황을 점검하고 문제가 있는 사업장을 고용노동부에 통보하는 등 역할을 분담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습니다. 제도 확대와 함께 이미 가입한 제도를 내실 있게 운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년 미만 근로자도 퇴직급여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는데, 이유는 무엇인가요.
“현재는 원칙적으로 1년 이상 계속 근로해야 퇴직급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장기근속을 유도한다는 취지였지만 노동 시장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단시간·기간제근로자가 늘었고 직장을 자주 옮기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지금의 1년 요건은 이들을 노후 소득 보장에서 배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 ‘퇴직금을 한 번이라도 받아보고 싶다’고 말하는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계약 기간이 1년이 되기 직전에 끝나 평생 퇴직금을 받아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일부 사업주가 퇴직금 지급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계약 기간을 1년 미만으로 정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장기근속을 유도하기 위한 기준이 지급 회피 수단으로 악용되는 셈입니다. 예컨대 입사 후 한 달 정도 유예기간을 둔 뒤 매월 임금의 12분의 1을 적립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1년을 채우지 못하더라도 일한 기간에 비례해 노후 자산을 쌓을 수 있고, 1년 미만 계약을 반복하는 관행도 줄일 수 있습니다. 퇴직급여가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진 사람만의 혜택이 돼서는 안 됩니다.”
“사용자가 명확한 전통적 근로자만 일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플랫폼 종사자와 프리랜서, 특수형태근로 종사자처럼 계약 형식은 다르지만 자신의 노동을 제공해 소득을 얻는 사람이 크게 늘었습니다. 이들은 국민연금만으로 노후 소득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렵고, 사용자가 부담금을 내는 기존 퇴직연금의 혜택도 받기 어렵습니다. 고용 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로 노후 준비를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려서는 안 됩니다. 노무 제공자가 일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노후 자산을 적립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합니다. 푸른씨앗 IRP처럼 개인이 공적 기금형 운용을 선택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한 것도 이런 공백을 줄이기 위한 시도입니다. 다만 가입할 수 있도록 문만 열어 놓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소득이 낮은 노무 제공자에게는 재정 지원과 수수료 감면 등 실질적인 유인이 함께 마련돼야 합니다.”
소규모 사업주는 왜 퇴직연금 가입을 부담스러워 하나요.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현금흐름입니다. 퇴직금 제도를 유지하면 사업주가 회계상 충당금을 설정하더라도 그 돈을 반드시 외부 금융기관에 적립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금을 사업 운영에 활용하다 근로자가 퇴직할 때 지급할 수도 있습니다. 반면 퇴직연금에 가입하면 부담금을 실제로 외부에 납부해야 합니다. 근로자의 수급권 보호를 위해서는 바람직하지만, 운영자금이 빠듯한 영세사업주에게는 자금이 빠져나가는 것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제도에 대한 정보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은 점도 문제입니다. 지원금과 수수료 면제 같은 혜택을 알지 못하는 사업장이 적지 않습니다. 실제 가입 사업주들로부터 ‘이렇게 좋은 제도를 왜 이제야 알았느냐’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가입 절차를 간소화하고 현장 안내와 홍보를 확대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정부 지원과 수수료 면제 같은 인센티브만으로는 가입 확대에 한계가 있다는 의미인가요.
“그렇습니다. 지원책은 초기 가입 부담을 낮추는 데 효과가 있습니다. 사업주는 납부 부담을 덜고, 근로자는 정부 지원분이 추가로 적립돼 더 많은 노후 자산을 쌓을 수 있습니다. 공공기관이 운영한다는 신뢰와 정부 지원이 푸른씨앗 성장의 중요한 동력이 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업주의 자금 부담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남아 있는 한 인센티브만으로 전체 사업장의 가입을 이끌어내기는 어렵습니다. 당근만 제시해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모든 사업장이 퇴직급여를 외부에 적립하도록 방향을 분명히 하되, 영세사업장이 감당할 수 있도록 재정과 수수료를 지원해야 합니다. 가입 대상과 재정 지원 대상도 구분해야 합니다. 푸른씨앗에 가입할 수 있는 사업장 범위가 넓어졌다고 해서 모든 사업장이 동일한 지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사업장 규모와 근로자의 보수 수준 등 지원 요건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특히 소규모 사업장 근로자는 적립금이 크지 않아 수익률 차이를 체감하기 어렵습니다. 대기업에서 장기간 근무해 적립금이 많이 쌓였다면 수익률 1~2%포인트 차이도 큰 금액이 됩니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퇴직연금이 어디에 투자되고 얼마의 수익을 내는지 관심을 갖게 됩니다. 반면 이직이 잦거나 근속기간이 짧은 근로자는 적립금이 수백만 원 수준인 경우가 많아 수익률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어린이집 교사처럼 특정 시기에 이직이 집중되는 업종에서는 적립금이 쌓이기 전에 돈이 빠져나가는 일도 반복됩니다. 퇴직연금은 장기간 쌓여야 수익률의 효과도 커집니다. 이직하거나 퇴직할 때마다 인출하면 노후 소득 보장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습니다. 노동 시장에서 완전히 은퇴하기 전까지 적립금을 유지하도록 유도하고, 중도인출 시 세제 혜택이 줄어드는 등의 장치를 정교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해외 퇴직연금 제도에서 우리나라가 참고할 만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미국의 401(k)는 세제 혜택과 기업의 기여, 장기 투자와 전문적인 자산 운용이 결합된 제도입니다. 근로자가 장기간 자산을 축적하도록 유도하고 기업도 일정 부분을 부담해 노후 자산의 규모를 키운다는 점에서 참고할 부분이 많습니다. 우리나라는 법정 퇴직급여라는 좋은 마중물이 이미 있습니다. 사용자가 매년 일정 수준의 퇴직급여를 부담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보다 출발점이 유리합니다. 문제는 이를 퇴직금에만 한정해 생각하면서 제도의 확장성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퇴직연금을 개인연금과 연계하거나 근로자의 추가 납입을 유도하면 자산 규모를 키울 수 있습니다. 자산이 커질수록 전문적인 분산투자와 장기적인 자산 형성 효과도 커집니다. 자동가입과 기업의 추가 기여, 세제 인센티브 등도 우리 현실에 맞게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퇴직연금은 어떤 제도로 발전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퇴직연금의 정체성을 ‘퇴직금’에서 ‘사회보장제도’로 전환해야 합니다. 퇴직금의 연장선에서만 바라보면 1년 이상 근무한 전통적인 근로자만을 대상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회보장제도로 접근하면 1년 미만·단시간근로자뿐 아니라 플랫폼 종사자 등 노무 제공자까지 포괄해야 한다는 방향이 분명해집니다. 가입의 보편성을 확보하고 사업주가 부담금을 제대로 적립하는지 점검하는 한편, 이직이나 중도인출로 자산이 소진되지 않도록 장기 축적을 유도해야 합니다. 적립된 자산을 실질적인 노후 소득으로 연결하기 위한 전문적인 운용체계도 필요합니다. 퇴직연금 의무화와 가입 대상 확대, 적립 관리, 중도인출 제한, 기금 운용은 별개의 과제가 아니라 함께 추진해야 할 과제입니다. 국민연금과 개인연금을 잇는 두 번째 노후 소득 보장 기둥으로서, 퇴직연금이 모든 일하는 사람의 노후를 지탱하는 사회안전망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글 김수정 기자
사진 강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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