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하루가 다르게 출렁일 때마다 연금 계좌를 열어보는 일은 그 자체로 피로하다. 은퇴 연도 하나만 정해두면 나머지는 알아서 굴러가는 펀드, TDF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다.

[커버스토리]
뉴욕증권거래소 트레이딩 플로어의 트레이더들. 사진=AFP연합
뉴욕증권거래소 트레이딩 플로어의 트레이더들. 사진=AFP연합
국내 증시가 유례없는 변동성을 겪으면서 연금 투자자들의 마음고생이 크다. "언제 팔아야 할지, 지금 담아도 될지" 매번 고민하는 것 자체가 피로한 일이다. 이런 가운데 전 세계에 분산투자를 하는 타깃데이트펀드(TDF)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TDF는 투자자가 예상 은퇴 시점(target date)을 정하면, 펀드가 그 시점에 맞춰 위험자산과 안전자산의 비중을 알아서 조절해주는 상품이다. 가입자가 매번 시장을 들여다보며 사고팔 자산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월가가 찾은 답, 미국이 키운 시장

정부가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를 위해 도입한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의 핵심 적격 상품으로 TDF가 지정되면서, 이제는 연금 투자의 필수재로 자리 잡았다.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2026년 8월 14일 기준 국내 TDF 설정액은 총 17조8827억 원에 이른다.

지금은 퇴직연금 시장의 대세가 된 TDF지만, 처음부터 주목받은 것은 아니다. TDF의 고향이자 세계 최대 연금 시장인 미국의 성장 배경을 보면 이해가 쉽다.
사고팔 이유가 없다…연금은 TDF에 맡겨라
TDF는 1990년대 초 등장했다. 당시 미국의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 제도인 401(k)가 확산되고 있었지만, 근로자가 직접 투자 상품을 골라야 한다는 큰 문제가 있었다. 금융 지식이 부족한 가입자 상당수가 위험자산을 아예 담지 않거나, 반대로 한 자산에 몰아 넣었다가 시장 폭락 때 큰 손실을 보는 극단적 행태를 보였다.

이런 행동경제학적 오류를 해결하기 위해 월가 자산운용사들이 내놓은 해법이, 가입자가 은퇴 연도만 정하면 전문가가 은퇴 시점까지 포트폴리오를 자동으로 관리해주는 펀드였다. 1993년 3월 웰스파고 인베스트먼트 어드바이저의 도널드 러스킨과 래리 틴트가 이를 개발해 출시했다. TDF의 출발점이다.

TDF가 본격적으로 성장한 계기는 2006년 미국이 제정한 '연금보호법(PPA)'이다. 미국 정부는 근로자 저축률을 높이기 위해 기업의 퇴직연금 자동 가입을 독려하고, 가입자가 별도 지시를 하지 않으면 자금이 자동으로 투입되는 '적격디폴트투자대안(QDIA)' 제도를 도입했다. 쉽게 말해 가입자가 아무 선택을 하지 않아도 정부가 인정한 안전한 상품에 돈이 자동으로 쌓이도록 만든 장치다.

이때 미국 노동부(DOL)가 대표 QDIA 상품으로 지정한 것이 TDF였다. 이후 별도 운용 지시가 없는 가입자의 자금이 TDF로 자동 유입되는 구조가 자리 잡으면서 TDF 시장은 빠르게 커졌다. 모닝스타에 따르면 2025년 말 기준 미국 TDF 시장 규모는 4조8000억 달러(약 6791조 원)로 전년 대비 20.3% 늘었고, 최근 10년간 연평균 11.9% 성장했다.

글라이드패스…활주로에 착륙하듯 비중 조정

TDF의 고향인 미국에서 이미 검증된 만큼, 한국 시장에서도 도입 이후의 성장 속도는 결코 느리지 않았다. 한국은 다소 늦은 2016년에 TDF 개념을 공식 도입했다. 자산운용사들이 글로벌 대형 운용사와 제휴하거나 독자적인 생애주기 모델을 개발하면서 출시가 이어졌다. 초기에는 직접 종목을 고르지 않는 상품에 대한 소극적 인식 탓에 2018년 순자산이 1조4000억 원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장기 수익률이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확연히 앞서고 글로벌 분산의 안정성이 입증되면서 인식이 빠르게 바뀌었다. 결정적 전환점은 디폴트옵션 시행과 TDF 100% 투자 허용 규정 완화였다.

감독당국이 적격 TDF를 위험자산 투자한도(70%) 제한이 없는 상품으로 인정하면서 자금이 집중 유입됐다. 전체 TDF 순자산의 95% 이상이 퇴직연금·개인연금 계좌에서 들어온 자금이라는 점은, TDF가 우리 국민의 노후 자산 형성을 책임지는 대표 수단으로 안착했음을 보여준다.
사고팔 이유가 없다…연금은 TDF에 맡겨라
TDF를 이해하는 핵심 개념은 글라이드패스(glide path)다. 비행기가 목적지 공항에 착륙할 때 고도를 서서히 낮추는 모습에서 따온 이름이다. 투자자의 나이와 은퇴 시점에 맞춰 위험자산(주식)과 안전자산(채권 등)의 비중을 자동 조절하는 곡선 스케줄을 뜻한다.

비행기가 이륙 직후에는 고도를 높이 유지하다가 활주로에 가까워질수록 서서히 고도를 낮추듯, TDF도 은퇴가 멀리 남은 시기에는 위험자산 비중을 높게 가져가다가 은퇴가 가까워질수록 안전자산 비중을 늘려 간다. 2030세대처럼 은퇴까지 시간이 많이 남은 자산 축적기에는 단기 변동성을 견딜 여유가 있으므로 주식 비중을 70~80%까지 높게 유지해 복리 효과를 극대화한다.

4050세대인 자산 완충기에는 은퇴가 가시화되면서 주식 비중을 서서히 줄이고 채권·대체자산 비중을 늘려 변동성을 낮춘다. 은퇴가 임박했거나 은퇴 이후인 자산 보존·현금흐름 생성기에는 주식 비중을 20~30%까지 크게 줄이고, 국공채·단기채·배당주·리츠 등 변동성이 적고 현금흐름을 꾸준히 만들어내는 자산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바꾼다.
사고팔 이유가 없다…연금은 TDF에 맡겨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전광판. 사진=한경DB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전광판. 사진=한경DB
2045냐 2055냐, 빈티지 고르는 법

초기 글라이드패스는 오직 나이만을 변수로 삼아 자산을 기계적으로 배분하는 정적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 TDF는 한 단계 진화한 동적 글라이드패스를 채택하는 추세다. 연령별 기본 배분을 바탕에 두되 금리 흐름, 물가 상승률, 경기 상황 등 시장 변화를 실시간 반영해 주식과 채권 비중을 전술적으로 조정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시장 급변기에 발생할 수 있는 급격한 자산 하락 위험을 선제적으로 방어한다.

TDF 상품명 뒤에는 2035, 2045, 2055 같은 네 자리 숫자가 붙는데, 이를 빈티지(vintage)라 부른다. 와인의 포도 수확 연도처럼 투자자가 목표로 하는 은퇴 예정 연도를 의미한다.

자신에게 맞는 빈티지를 찾는 공식은 간단하다. 출생연도에 예상 은퇴 나이를 더하면 된다. 예를 들어 1985년생이 만 60세 은퇴를 목표로 한다면 1985에 60을 더한 2045가 목표 빈티지가 되므로 'TDF 2045'가 표준 선택지다.
사고팔 이유가 없다…연금은 TDF에 맡겨라
은퇴까지 약 20년이 남았으므로 초기에는 높은 주식 비중으로 자산을 늘리다가 2045년에 가까워질수록 채권 비중이 자동으로 높아지도록 설계된다. 마찬가지로 1995년생이 65세 은퇴를 목표로 한다면 2060이 목표 빈티지가 된다.

빈티지를 나이에 딱 맞출 필요는 없다. 위험 성향과 재무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다.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높은 수익을 원하는 공격적 투자자라면 공식 계산 연도보다 5~10년 뒤의 빈티지를 고른다.

1985년생이라도 TDF 2045 대신 TDF 2050이나 2055를 선택하면 주식 비중이 높게 유지되는 기간이 길어져 더 공격적인 성장을 노릴 수 있다. 반대로 원금 보존과 안정을 우선하는 보수적 투자자는 공식 연도보다 5~10년 앞선 빈티지, 예컨대 TDF 2035나 2040을 선택해 채권·안전자산 비중을 더 빨리 늘릴 수 있다.

같은 연도의 빈티지라도 운용사에 따라 누적 수익률과 변동성이 상당히 다르다. 글라이드패스의 세부 설계, 자산 배분 전략, 비용 구조, 주식·채권 구성이 운용사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이름과 목표 연도만 보고 아무 TDF나 골랐다가는 기대와 다른 결과를 받아 들 수 있다는 뜻이다. 넘쳐나는 TDF 중 내 연금을 맡길 상품을 고르려면 다음 다섯 가지를 확인해야 한다.

같은 2045라도 결과는 다르다

첫째, 글라이드패스 원칙이 명확하고 시장이 급변해도 그 원칙을 지키는지 살펴야 한다. 글라이드패스 파이낸셜에 따르면 미국에서도 운용사별 주식 비중과 외환 전략 차이로 성과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이에 따라 단기 수익률보다 위험 대비 수익률과 글라이드패스 준수율을 함께 반영하는 평가 기준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국내도 사정은 비슷해서 뚜렷한 평가 가이드라인이 아직 없다. 최근 반도체 주식이 급등하자 애초 원칙과 달리 국내 주식 비중을 급격히 높이거나 국내 주식에만 투자하는 TDF를 내놓은 운용사는 걸러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둘째, 환헤지(H)와 환노출(UH) 전략을 확인해야 한다. TDF는 글로벌 자산에 분산투자를 하므로 외화자산을 보유하게 되고, 환율 변동을 어떻게 처리하는지가 성과에 큰 영향을 준다. 환헤지는 환율 변동을 제거해 투자자산 자체의 가격 변화에만 연동되도록 하므로 환율 변동성이 우려될 때 유리하다.
사고팔 이유가 없다…연금은 TDF에 맡겨라
환노출은 원·달러 환율 변동에 그대로 노출되는데, 금융위기나 경기 침체 때 달러 가치가 오르는 경향이 있어 주가 하락분을 환차익이 일부 상쇄해주기도 한다. 최근에는 주식자산은 환노출을 해 달러의 안전자산 효과를 활용하고, 채권자산은 환헤지를 해 이자수익의 변동성을 줄이는 혼합형 전략을 쓰는 상품도 많다.

셋째, 피투자 펀드의 구성을 봐야 한다. TDF는 겉으로는 하나의 펀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러 하위 펀드를 담는 재간접(fund of funds) 구조다. 즉, TDF 하나를 사면 그 안에 담긴 여러 개의 하위 펀드에 동시에 투자하는 셈이다. 패시브 중심 TDF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월드 같은 시장 지수를 추종하는 ETF 위주로 구성돼 보수가 저렴하고 예측 가능성이 높다.

액티브 중심 TDF는 시장 수익률 초과를 노리는 액티브 펀드를 담아, 운용역의 역량에 따라 높은 수익을 낼 수 있지만 보수가 상대적으로 높고 성과 편차도 크다. 두 방식 중 무엇이 정답이라기보다, 내가 어느 쪽에 더 마음이 편한지를 기준으로 판단하면 된다.
사고팔 이유가 없다…연금은 TDF에 맡겨라
작은 보수 차이도 스노볼 효과

넷째, 글로벌 자산 배분 역량과 운용자산 규모(AUM)를 살펴야 한다. TDF의 성패는 결국 전 세계 수많은 자산군을 얼마나 체계적으로 분석해 최적 비율로 배분하느냐에 달려 있다. AUM이 클수록 규모의 경제로 비용을 낮추고 리서치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할 여력도 생긴다.

자체 글로벌 리서치·자산 배분 엔진을 갖췄는지, 아니면 글로벌 운용사와 제휴해 검증된 글라이드패스 노하우를 활용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국내 일부 운용사가 단기 수익률과 수탁고 경쟁에 치우쳐 애초 제시한 글라이드패스를 지키지 않는 사례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글로벌 운용사와 제휴한 TDF가 장기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

다섯째, 총비용비율(TER)이다. TDF는 1~2년 쓰고 마는 상품이 아니라 10년, 20년 이상 장기 보유하는 연금자산이므로 매년 차감되는 운용보수와 수수료가 중요하다. 연간 0.2~0.3%포인트의 작은 보수 차이도 20~30년 복리로 쌓이면 최종 연금 수령액에서 수천만 원의 차이를 만드는 스노볼 효과를 낸다.

이제 실전 연금 계좌에서 TDF를 어떻게 운용할지 살펴보자. 가장 추천할 만한 구조는 포트폴리오의 중심을 단단히 잡으면서 초과 수익을 노리는 '핵심-위성(core-satellite) 전략'이다. 전체 포트폴리오의 70~80%는 안정적으로 우상향하는 핵심 자산(core)으로 채우고, 나머지 20~30%는 시대적 트렌드를 반영해 높은 수익률을 노리는 위성 자산(satellite)에 배치하는 방식이다.

퇴직연금 계좌에서는 TDF를 핵심 자산으로 삼고, 성장 잠재력이 큰 인공지능(AI) 관련 투자를 위성 자산으로 활용하는 조합이 유효하다. 예를 들어 적립금의 70%는 TDF에 담아 안정적인 노후 자산의 뼈대를 세우고, 나머지 30%는 AI와 같이 향후 유망한 테마의 ETF로 채워 초과 수익을 노려보는 식이다.

코어는 TDF, 위성은 AI

포트폴리오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자산 TDF는 계좌 전체의 안전판 역할을 한다. 글로벌 주식·채권·인프라에 넓게 분산돼 있고 연령에 따라 위험관리가 자동으로 이뤄지므로, 시장이 크게 흔들려도 계좌 전체가 무너지는 것을 막아준다. 감독규정상 적격 TDF는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므로 연금 계좌 내 위험자산 70% 한도 규제에 구애받지 않고 핵심 기반을 탄탄히 다질 수 있다.

이렇게 TDF로 방어막을 구축한 뒤, 나머지 20~30%의 위성 자산에는 AI 산업 생태계에 투자하는 ETF나 테마형 펀드를 담아 포트폴리오의 공격력을 높인다. AI 반도체 밸류체인 기업부터 빅테크 플랫폼, 데이터센터·전력 인프라 관련 ETF 등 기술 패러다임 변화의 수혜를 직접 받는 테마를 골라 시장 초과 수익(알파)을 노리는 것이다.

테마형 기술주 투자는 단기 변동성이 있을 수 있지만, 자산 대부분을 차지하는 TDF가 글라이드패스에 따라 하방 위험을 잡아주므로 계좌 전체가 과도한 위험에 노출되지 않으면서도 성장의 결실을 누릴 수 있다.

연금 투자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감정과 시장 예측에 따른 잦은 매매다. 주가가 오르면 환호하며 사고 폭락하면 겁에 질려 파는 순간, 연금자산은 깎여 나간다. 반대로 처음 고른 상품을 방치한 채 신경을 아예 끄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TDF는 인간의 감정을 배제하고 규칙에 따라 전 세계 우량 자산에 장기 투자하도록 돕는 자동 항법 장치이지만, 조종사인 투자자가 최소한 1년에 한 번은 자신이 고른 TDF가 애초의 원칙과 목표대로 잘 운항하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는 있다.

단기적인 시장 소음에 흔들리지 않고 매달 일정 금액을 꾸준히 적립해 나간다면, 은퇴라는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 든든한 연금이라는 결실을 온전히 거두게 될 것이다.

민주영 신영증권 연금사업부 상무·경영학(연금금융)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