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투자자금의 서식지가 옮겨 가고 있다. 은행에서 증권사로, 신탁형에서 중개형으로, 예·적금에서 주식으로.
ISA, 너 좀 많이 바뀌었다
ISA가 환골탈태하고 있다. 국내에 ISA가 처음 도입된 것은 2016년 3월 무렵이다. 만기는 5년이고, 가입자는 1년에 2000만 원씩 5년 동안 최대 1억 원을 투자할 수 있다. 그리고 투자금액에서 발생한 이자와 배당소득에 대해서는 200만 원까지 비과세하고, 초과분은 9.9% 세율로 분리과세를 한다.

절세 혜택만 있는 것은 아니다. ISA 계좌 하나에 예·적금, 펀드, 주가연계증권(ELS)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담을 수 있다. 이 같은 장점 때문에 ISA는 만능통장으로 불리며, 2016년 한 해에만 240만 명의 가입자를 끌어 모았다.

하지만 아쉬운 면도 있었다. ISA 내에서 다양한 투자 상품이 제공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정작 대다수 가입자는 적립금을 예·적금으로 운용하고 있다. 2020년 12월 말 기준으로 ISA에 투자된 자금은 6조8026억 원인데, 이 중 73.8%(5조227억 원)가 예·적금이다.

상장지수펀드(ETF)를 포함해 펀드에 투자된 자금은 겨우 1조665억 원(15.7%)밖에 안 된다. 금리만 높다면 예·적금이라고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문제는 저금리다. 시중금리가 1~2%인 상황에서는 예·적금에서 얻는 이자 수입이 초라할 수밖에 없다. 수입이 적으면 비과세 등 세제 혜택도 그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그러자 첫해 뜨거웠던 관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이듬해부터 가입자 증가세도 둔화되기 시작했다.
ISA, 너 좀 많이 바뀌었다
ISA, 너 좀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올해 접어들면서 ISA 시장이 커다란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변화의 원인은 세 가지다. 첫째, ISA 만기가 5년이므로 2016년 가입자는 올해 만기를 맞는다. 앞서 살펴봤듯이 2016년 한 해에만 240만 명이 ISA에 가입했고, 올해 초 가입자로 남아 있는 사람이 190만 명이 넘는다. 만기 자금을 수령하고 나면, 다시 ISA 가입할지 말지 결정해야 한다. 새로 가입하기로 했다면 어떤 ISA를 선택할지 결정해야 한다.

둘째, 올해 중개형 ISA가 도입됐다. 종전에는 신탁형과 일임형 두 종류만 있었다. 신탁형은 투자자가 구체적으로 운용 지시를 해야 하지만, 일임형은 투자자가 구체적인 운용 지시를 하지 않고 가입할 수 있다. 중개형은 투자자가 직접 운용한다는 점에서 신탁형과 유사하지만, 상장주식에 직접투자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그렇다면 새로 도입된 중개형 ISA에 투자자들이 얼마나 관심을 보일지가 관건이다.

마지막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불어 닥친 주식투자 열풍이 중개형 ISA에 대한 관심을 유발하는 데 한 몫 했다. 올해 들어 이 같은 세 가지 요인이 동시에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ISA 생태계에 변화를 촉발하고 있다. 변화의 방향은 크게 세 가지다. 거래 금융기관이 은행에서 증권으로 옮겨 가고 있고, ISA 종류도 신탁형에 중개형으로 바뀌고 있으며, 투자 대상도 예·적금에서 주식과 ETF로 이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ISA, 너 좀 많이 바뀌었다
신탁형에서 중개형, 은행에서 증권, 예·적금에서 주식·ETF로
우선 은행 가입자는 줄고 증권 가입자는 늘어난 점이 눈에 띈다. 지난해 연말 기준으로 ISA 가입자는 194만 명인데, 이 중에서 92%(178만 명)가 은행에 계좌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에 은행 가입자는 크게 감소했다. 6월 말 기준으로 ISA 가입자는 194만 명인데, 이 중 99만 명(51%)만 은행 가입자다. 이에 비해 증권사 가입자는 16만 명(8%)에서 95만 명(49%)으로 대폭 늘어났다. 아무래도 올해 새로 도입된 중개형 ISA 역할이 컸다. 상장주식에 투자할 수 있는 중개형 ISA는 증권사에서만 가입할 수 있다.

신탁형이 줄고, 중개형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점도 주목할 점이다. 올해 초 172만 명이었던 신탁형 가입자가 6월 말에는 106만 명으로 줄어든 반면, 새로 도입된 중개형 가입자는 88만 명이나 된다. 5년 전에 신탁형에 가입했던 사람이 만기를 맞이한 다음 새로 가입할 때는 중개형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주식투자자 중에 세 부담을 덜기 위해 중개형을 찾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가입자가 늘어나면서 투자자금도 늘었다. 올해 상반기에 전체 ISA에서 늘어난 투자자금이 2조 원인데, 이 중 1조 2000억 원은 중개형에서 증가한 것이다. 신탁형은 4000억 원이 늘어나는 데 그쳤다.

운용 자산의 서식지도 저축에서 투자로 옮겨 가고 있다. 올해 초 전체 ISA 투자자금이 6조4000억 원이었는데, 이 중 5조 원(73.8%)이 예·적금에 맡겨져 있었다. 이에 비해 펀드나 ETF에 투자된 자금은 1조 원(15.1%)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6월에는 전체 투자자금이 8조7000억 원으로 지난해보다 늘어났지만, 예·적금 비중은 64.1%로 줄었고, 그 빈자리를 주식(7.1%)이 차지했다. ETF 비중이 1.8%에서 3.6%로 2배나 늘어난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ISA 가입자가 선택한 운용자산 톱10
ISA 가입자가 선택한 운용자산 톱10
중개형 ISA 투자자금 중 절반은 주식으로 운용
은행에서 증권사로, 저축에서 투자로. 지금 ISA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같은 변화의 중심에 중개형 ISA가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게 변화를 이끈 동인이 됐든, 변화의 결과가 됐든 말이다. 그렇다면 중개형 ISA 가입자들은 주로 어떤 금융상품에 투자하고 있을까. 사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남들이 어떤 상품에 투자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일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래서 중개형 ISA 자금이 가장 많이 투자된 금융상품 10개를 살펴봤다.

독보적으로 1위를 차지한 것은 주식이다. 올해 6월 현재 중개형 ISA에 투자된 자금은 1조2267억 원인데, 이 중 절반에 해당하는 6115억 원(49.8%)이 국내 상장주식에 투자됐다. 2순위는 여전히 예·적금 등이 차지했지만, 그 비중은 22.2%(2726억 원)로 크게 줄어들었다. 같은 시기 신탁형 ISA에 투자된 자금은 6조2982억 원인데, 이 중 84.3%(5조3087억 원)가 예·적금 등에 투자된 것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3순위는 ELS와 DLS가 차지했는데, 이들 파생결합증권에 투자된 돈은 1236억 원(10.1%)이다. 상장주식과 함께 눈여겨봐야 할 것은 ETF다. ISA에서는 국내 증시에 상장된 ETF에 투자할 수 있는데, 국내 ETF가 4순위, 해외 ETF가 6순위를 차지했다. 이 둘을 합치면 ETF에 투자된 자금은 1289억 원이나 된다. 이는 중개형 ISA 투자자금의 10.5%에 해당한다. 같은 시기 신탁형 ISA에서는 투자자금의 2.7%만 ETF로 운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궁금한 게 있다. 왜 굳이 ISA에서 주식투자를 하려고 할까. 비과세 혜택 때문이라고 답한다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ISA를 이용하지 않아도, 어차피 주식 매매차익에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그러는 걸까. 우선 배당주 투자자에게 ISA는 쓸모가 있다. 주식투자자가 얻을 수 있는 수익은 크게 매매차익과 배당으로 나눌 수 있다. 현행 세법은 상장주식 매매차익에는 과세하지 않지만, 배당에는 소득세를 부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당주가 아니라도 ISA에서 주식투자를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혜택이 있다. 주식을 사고팔 때 항상 이익을 남기는 것은 아니다. 가끔 손해를 볼 때도 있다. ISA에서는 주식매매에서 발생한 이익에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으면서, 손실은 다른 금융상품에 발생한 이익과 상계해준다. 예를 들어 해외 ETF에 투자해서 1000만 원 이득이 나고, 국내 주식에 투자해서 500만 원 손실을 봤다고 치자. 이 경우 이익에서 손실을 상계하면 500만 원이 남는다. 이 중 200만 원은 비과세로 하고, 나머지 300만 원은 9.9% 세율로 분리과세를 한다.
ISA 및 일반 금융투자소득 과세체계 비교
ISA 및 일반 금융투자소득 과세체계 비교
2023년부터 ISA 내 주식 매매차익 전부 비과세
2023년부터 금융투자소득세가 도입되면 어떻게 될까. 현재는 대주주가 아니면 상장주식 매매차익에는 과세를 하지 않지만, 2023년부터는 금융투자도 소득으로 과세한다. 현재는 소액주주의 상장주식 매매차익은 과세하지 않고, 펀드에서 발생한 주식 매매차익과 파생결합증권(ELS, DLS)에서 발생한 수익은 배당소득으로 분류해 과세하고 있다. 하지만 2023년부터는 이들 소득을 금융투자소득으로 분류해 과세하게 된다.

다만 갑작스레 세 부담이 커질 것을 우려해 금융투자소득 중 일부를 공제해주기로 했다. 먼저 상장주식과 공모주식형 펀드에서 발생한 주식 매매차익은 5000만 원을 공제해준다. 이 밖에 파생결합증권에서 발생한 금융투자소득에서는 250만 원만 공제한다. 이렇게 공제금액을 제외하고 남은 금융투자소득 중 3억 원까지는 22%, 3억 원 초과분은 27.5% 세율로 과세한다. 그러면 이 같은 금융투자소득세 도입이 ISA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상장주식 매매차익을 5000만 원씩이나 공제해주면 굳이 중개형 ISA에 가입해서 주식 거래를 할 필요가 있을까.

현재 ISA 내 이자와 배당소득은 비과세와 분리과세 하도록 돼 있다. 금융투자소득을 어떻게 과세할 것인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만약 금융투자소득을 이자, 배당과 함께 과세한다면 ISA에서 주식 매매를 하는 사람이 역차별을 받게 된다. 왜냐하면 ISA에 가입하지 않고 주식 거래를 하면 매매차익 중 5000만 원은 세금을 안 내도 되는데, ISA 가입자는 기껏해야 200만 원까지만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도 이 같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관련 법률 개정에 나섰다.

현행 세법에서는 ISA 내에서 펀드, 파생결합증권에 투자해서 얻은 소득은 배당소득으로 보고 과세하고 있다. 상장주식에 투자해서 얻은 매매차익은 과세하지 않고 배당은 과세하고 있다. 지난 7월에 정부가 발표한 세법 개정안에 따르면, 2023년 이후 ISA 내에서 국내 상장주식을 양도하거나 공모주식형 펀드를 환매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금융투자소득은 전부 과세하지 않고, 손실이 발생하면 다른 이자·배당소득과 상계해주기로 했다. 이 밖에 파생결합증권에서 얻은 금융투자소득은 다른 이자와 배당소득과 합산한 다음 200만 원 초과분은 9.9% 세율로 과세한다.

정부가 내놓은 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주식투자자 입장에서는 금융투자소득세에 대비해 ISA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우선 투자자금이 많지 않아서 주식 매매차익이 5000만 원을 넘을 리가 없는데, 굳이 ISA에 가입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소액투자자 입장에서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주식을 매매해서 항상 이익만 낼 수는 없지 않은가. ISA 내에서는 주식 매매에서 발생한 손실을 다른 금융상품에서 발생한 이자와 배당소득과 상계할 수 있다. 그리고 주식에 장기간 투자하다가 매도하는 경우에는 그해 금융투자소득이 5000만 원을 넘어갈 수도 있다. 따라서 3년 이상 주식에 투자할 돈이라면 ISA를 활용하는 것이 좋다.

굳이 서둘러 가입할 필요가 있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어차피 금융투자소득에 대한 과세는 2023년에 시작되니까 그때 가서 가입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거다. 중개형 ISA에서 주식만 거래할 작정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투자자금 규모가 크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ISA에는 한 해 2000만 원씩 최대 1억 원을 납입할 수 있다. 그리고 그해 납입한도를 채우지 못하면 다음 해로 이월된다. 따라서 올해 ISA에 가입하고 적은 금액이나마 납입해 두면 2023년에 가서 6000만 원을 투자할 수 있지만, 2023년에 가서 ISA에 가입하면 그 해에는 2000만 원만 투자할 수 있다. 따라서 투자 대상과 투자자금 규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가입 시기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

글 김동엽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