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DF, 은퇴 시점서 주식 비중 줄이는 이유는
[한경 머니 기고 = 김동엽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상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시작된 동학개미운동의 여파일까. 최근 연금 시장에도 ‘저축에서 투자로’ 머니 무브가 일어나고 있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타깃데이트펀드(TDF) 수탁고의 증가다.

지난 한 해 TDF 수탁고는 2조2971억 원에서 3조7046억 원으로 늘어났다. 한 해 동안 수탁고가 1조4000억 원이 늘어난 셈이다. 그런데 올해 상반기에 신규로 설정된 자금이 1조9124억 원으로 지난해 순증분을 가뿐히 뛰어넘었다.

TDF가 이렇게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우선 2018년 9월에 도입된 적격 TDF의 도움을 받았다. 퇴직연금은 근로자의 노후생활비 재원이라는 이유로 위험자산 투자 한도를 두고 있다. 퇴직연금 적립금 중 70%까지만 위험자산에 투자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위험자산 중에서는 주식 편입 비중이 40%가 넘는 혼합형 펀드와 주식형 펀드도 포함된다. TDF도 약관상 주식을 40% 이상 편입할 수 있기 때문에 위험자산으로 분류됐다. 따라서 퇴직연금 적립금 중 70%까지만 투자할 수 있었다. 퇴직연금 가입자 입장에서는 나머지 30% 자금을 어디에 투자할지 찾아야 했다.

금융당국에서 2018년 9월 적격 TDF 제도를 도입하면서 이 같은 문제가 해소됐다. TDF 운용 기간 내내 주식 비중이 80%를 넘지 않고, 목표 시점이 지난 다음에 주식을 40% 이상 담지 않는 TDF를 ‘적격 TDF’로 분류하고, 이를 위험자산으로 보지 않기로 한 것이다.
TDF, 은퇴 시점서 주식 비중 줄이는 이유는
이로써 하나의 TDF에 퇴직연금 적립금을 전부 투자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그러자 자산운용사들도 적격 TDF 요건에 맞춰 상품들을 내놓으면서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하기 시작했다. 2019년 이후 TDF 수탁고가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다음으로 코로나19 이후 일어난 동학개미운동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개인들의 주식투자 열풍이 퇴직연금과 연금저축에까지 밀어닥친 것이다. 적격 TDF의 도입과 동학개미운동이 TDF가 활성화되는 데 있어 촉매 역할을 했다면, 연금투자자들이 TDF를 찾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투자 경험과 지식이 많지 않고, 투자에 쏟을 시간이 많지 않은 직장인들이 비교적 편안하게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금가입자가 자신이 예상하는 은퇴 시점에 맞춰 목표 시점을 선정하면, 다음은 TDF가 알아서 해준다. 우선 국내외 다양한 주식, 채권, 부동산, 원자재에 분산투자를 할 뿐만 아니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들 자산 간 비중을 자동으로 조절해준다.

목표 시점까지 기간이 많이 남았을 때는 주식 등 위험자산 비중을 높이 가져가다가 목표 시점이 임박해오면 주식 비중은 줄이고, 채권 비중을 늘려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목표 시점에 맞춰 주식 등 위험자산 비중을 줄여가는 모습이 비행기가 착륙할 때 하강 곡선과 닮았다고 해서 글라이드 패스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번 생각해봐야 것이 있다. 왜 TDF는 목표 시점이 다가올수록 주식 등 위험자산 비중을 줄이고, 채권 비중을 높여나가는 것일까. 다시 말해 TDF의 글라이드 패스는 우하향 하는 모습을 보이는 걸까. 이는 자산운용사가 투자자의 인적자본의 가치, 적자 위험, 손실 회복 기간을 고려해 TDF의 글라이드 패스를 설계하기 때문이다.
TDF, 은퇴 시점서 주식 비중 줄이는 이유는
인적자본을 고려한 글라이드 패스
TDF는 예상 은퇴 연령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을 때는 주식과 같은 위험자산 비중을 높게 가져가다가 목표 시점이 임박할수록 차츰 그 비중을 줄여나간다. 그런데 왜 은퇴 시점이 다가오면 주식 비중을 줄여나가는 걸까.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TDF는 글라이드 패스를 설계할 때 가입자의 ‘인적자본(human capital)’의 가치를 고려하기 때문이다.

인적자본이란 무엇일까. 모셰 A. 밀레브스키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는 인적자본을 설명하기 위해 ‘주식회사 당신’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그는 일반 회사처럼 ㈜당신이 가진 자산과 부채를 재무상태표로 작성한다. 재무상태표의 왼쪽에는 ㈜당신이 가진 자산을 하나씩 써내려 가는데, 여기에는 주택과 자동차와 같은 실물자산과 함께 은행계좌 잔고, 주식, 채권 등 금융자산이 기재될 것이다.
TDF, 은퇴 시점서 주식 비중 줄이는 이유는
이게 전부는 아니다. 자산을 미래 어느 시점에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당신의 재무상태표에는 실물이나 금융 자산뿐만 아니라 미래에 받을 연금의 현재 가치와 인적자본도 함께 기재돼야 한다. 인적자본이란 어떤 사람이 미래에 벌어들일 잠재적 소득을 현재 가치로 할인한 것이다.

인적자본은 어떤 성격을 가진 자산일까. 주식에 가까울까, 아니면 채권에 가까울까. 근로소득자를 예로 들어보자. 근로소득은 매달 따박따박 수령하기 때문에 비교적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갖는다. 채권의 이자와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공무원의 인적자본은 국채와 가깝고, 일반 직장의 인적자본은 회사채의 성격을 띤다.

당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금융자본과 인적자본을 합쳐 하나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고 해보자. 젊어서는 모아둔 돈이 많지 않지만 미래에 벌어 들일 돈은 많다. 금융자본은 별로 없고, 인적자본만 많은 셈이다. ㈜당신은 채권으로 가득 차 있는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얼마 되지 않는 금융자본은 주식에 투자하더라도 그리 크게 위험하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인적자본은 그 크기가 차츰 감소하고, 대신 금융자본의 규모는 차츰 늘어난다. 앞서 인적자본을 미래에 벌어들일 잠재적 소득의 현재가치라고 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남은 근로 기간이 줄어들면 인적자본의 가치는 줄어들지만, 매 시점 발생한 소득 중 일부를 저축하기 때문에 금융자본은 늘어나게 된다.

어떻게 보면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인적자본을 금융자본으로 바꿔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다. 물론 별다른 누수 없이 인적자본을 금융자본으로 바꿔나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찌됐든 은퇴 시점에 도달할 무렵이면 ㈜당신의 재무상태표에는 인적자본은 별로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당신의 포트폴리오에서 채권 비중이 크게 줄어든 셈이다. 따라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금융자본에서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줄이고 채권 비중을 늘려야 할 것이다. 이 같은 논리를 반영해 TDF의 글라이드 패스를 구현하면, 나이가 들어가면서 주식 비중이 줄어드는 모습을 갖게 된다.

‘적자 위험’ 고려한 글라이드 패스
TDF마다 글라이드 패스를 구현하는 방법은 다르다. 국내에서 가장 큰 자산 규모를 자랑하는 ‘미래에셋자산배분TDF’는 적자 위험을 고려해 글라이드 패스를 설계했다. 적자 위험(shortfall risk)이란 대형 금융사가 자산 운용을 할 때 위험관리 기준으로 많이 활용하는데, 포트폴리오를 운용 수익이 목표로 한 수익에 미달할 가능성을 퍼센트 단위로 나타낸 것이다.

미래에셋전략배분TDF는 적립금을 예금에 맡겨뒀을 때 받을 수 있는 이자보다 TDF를 운용해서 얻을 수 있는 기대수익이 더 적은 것을 적자 위험으로 봤다. 국내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 가입자들은 적립금 중 80% 이상을 예금과 같은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맡겨두고 있다. 따라서 예금에 적립금을 맡겨뒀을 때보다 수익이 덜 나는 상황을 적자 위험으로 정의한 것은 적절해 보인다.
TDF, 은퇴 시점서 주식 비중 줄이는 이유는
주식이라는 자산은 장기적으로 고수익을 가져다주지만 단기적으로 변동성이 커서 손실이 날 수 있다. 이는 이미 여러 차례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버튼 G. 맬킬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는 <랜덤워크 투자 수업>이라는 저서에서 1950년부터 2017년에 걸쳐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에 속한 주식을 보유했을 때 투자 기간에 따른 수익률을 분석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1년간 S&P500을 보유한 사람은 평균 10%의 수익을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수익률의 분포 폭이 너무 넓어서 투자 시기에 따라 어떤 사람은 52%가 넘는 수익을 얻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37%에 이르는 손실을 보기도 했다. 따라서 투자 기간이 짧을 때는 주식을 많이 편입할 수 없다.

하지만 투자 기간을 5년으로 늘리면, 최대 수익률과 최소 수익률은 각각 28.6%, -2.44%가 되고, 10년으로 늘리면 20.1%, -1.42%가 된다. 투자 기간이 15년이 넘어가면서부터는 최악의 기간을 선택해서 투자했을 때도 손실을 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평균 수익률은 비슷했다. 따라서 목표 시점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을 때는 포트폴리오 내 주식 비중을 높게 가져가도 적자 위험은 크지 않다. 하지만 목표 시점이 다가오면 주가가 하락했을 때 만회할 시간이 없다.

실제 전략배분TDF는 목표 시점에서 TDF에 투자한 자산이 정기예금에 맡겨뒀을 때보다 적을 가능성이 5% 이내가 되도록 통제하면서, 동시에 위험 조정 성과가 가장 높게 나타날 수 있도록 글라이드 패스를 최적화했다.

손실 회복 기간 고려한 글라이드 패스
“요즘은 금리가 너무 낮아서 더 이상 퇴직연금을 예금에 맡겨둬서는 안 될 것 같아.”

저금리가 장기화하면서 퇴직연금에 가입하고 있는 직장인이라면 이런 생각을 한두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행동으로 옮기려고 하면 많이 망설이게 된다. 혹시라도 은퇴를 앞두고 주가가 크게 하락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은퇴 후 재취업을 하기도 쉽지 않아 연금으로 생활해야 하는데, 이런 일을 당하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연금가입자들의 이러한 우려를 적극적으로 반영해 만든 글라이드 패스도 있다. 자산가격이 크게 하락한 다음 다시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기까지 걸리는 기간, 즉 ‘손실 회복 기간(Loss Recovery Period, LRP)’을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 글라이드 패스를 만든 것이다. 손실 회복 기간이란 포트폴리오의 투자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서 평균적으로 소요되는 기간을 의미하며, 이 기간에 반드시 손실이 회복된다는 뜻은 아니다.
TDF, 은퇴 시점서 주식 비중 줄이는 이유는
손실 회복 기간은 고점 대비 하락률(drawdown)을 장기 추세 수익률(trend return)로 나눠서 산출한다. 보통 투자에서 위험이라고 하면 변동성(표준편차)을 뜻할 때가 많다. 기대수익에서 벗어나는 것을 위험으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손실 회복 기간을 고려해 글라이드 패스를 구현할 때는 변동성 대신 고점 대비 하락률을 위험 척도로 사용한다. 이는 적자 위험을 고려해 글라이드 패스를 설계할 때와 마찬가지로, 국내 DC형 퇴직연금 가입자들의 강한 손실회피 성향을 반영한 것이다.

고점 대비 하락률이란 분석 기간 동안 투자 대상 자산이 종전 최고점에서 얼마나 하락했는지 보여준다. 장기 추세 수익률은 분석 기간 동안 포트폴리오가 얻은 수익을 연복리로 환산한 수익률이다. 따라서 고점 대비 하락률을 장기 추세 수익률로 나눠서 해당 자산이 손실을 회복하는 데 평균 얼마나 걸리는지 계산한다. 예를 들어 어떤 자산의 고점 대비 40% 하락했고, 장기 추세 수익률이 8%이면 손실 회복 기간은 5년이 된다.

그러면 손실 회복 기간을 이용해 글라이드 패스를 구현하는 방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글라이드 패스에서 투자 자산 비중은 은퇴하기 30년 전부터 5년 단위로 산정한다. 최근 우리나라 고용 상황을 살펴보면, 25세 전후로 첫 번째 직장 생활을 시작해서 55세 전후로 주된 소득이 있던 직장에서 퇴직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략 30년의 직장 생활을 하는 셈이다. 이에 맞춰 은퇴까지 적립 기간을 30년으로 설정했다.

그리고 손실 회복 기간을 7개(1년, 2년, 3년, 3.5년, 4년, 4.5년, 5년)로 나눈 다음 은퇴 시점이 가까울수록 짧게 배치한다. 은퇴까지 30년 이상 남았을 때에는 손실 회복 기간이 5년이 되도록 하고, 20년이 남았을 때는 4년이 되게 한다. 이후에도 같은 방식으로 은퇴 시점에 맞춰 손실 회복 기간을 차츰 줄여나가고, 은퇴 시점부터는 손실 회복 기간이 1년이 되게 한다.

다음 순서는 주식, 채권, 대체자산 등 주요 자산군의 손실 회복 기간을 파악할 차례다. 자산군별로 손실 회복 기간에 대한 파악이 끝난 다음에는 목표 시점별로 각 자산군을 얼마나 편입할지 결정할 차례다.

은퇴까지 남은 기간이 많으면 상대적으로 손실 회복 기간이 긴 자산군을 많이 편입할 수 있고, 은퇴 시점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손실 회복 기간이 짧은 자산군의 비중이 늘려나가야 한다. 예를 들어 은퇴 기간이 30년일 때는 손실 회복 기간이 5년이나 되기 때문에 주식 비중을 높게 가져갈 수 있다. 하지만 은퇴까지 5년이 남았을 때는 손실 회복 기간이 2년밖에 되지 않는다. 이때는 주식 비중을 높였다가 손실을 보면 2년 내에 회복하기 힘들기 때문에 주식 비중을 줄여야 한다.

이 같은 방식으로 은퇴까지 남은 기간을 고려해 주식, 채권, 대체 자산 간 최적의 자산 배분 비율을 정했으면, 다음 순서는 자산군 내 하위 자산들의 투자 비중을 정할 차례다. 예를 들면 포트폴리오 내 주식 비중을 60%로 정했으면 그 한도 내에서 국내와 해외, 대형주와 소형주, 성장주와 가치주의 비중을 얼마나 가져갈 것인지 정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글라이드 패스는 일반인들의 직관에 부합하는 생애 주기에 따른 자산 배분을 보여주고 있다. 은퇴까지 남은 기간이 많으면 주식처럼 상대적으로 손실 회복 기간이 긴 자산군을 많이 편입하고, 은퇴 시점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채권처럼 상대적으로 손실 회복 기간이 짧은 자산군의 비중이 늘어난다.

자산 배분 펀드인 TDF가 갖는 가장 큰 특징은 글라이드 패스의 존재다. 모든 TDF는 고유의 글라이드 패스를 갖고 있고, 이를 토대로 목표 시점까지 장기 자산 배분을 한다. TDF를 운용하는 펀드매니저에게 있어 글라이드 패스는 망망대해의 등대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글라이드 패스가 한 장소에 고정돼 있는 등대처럼 영구히 변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자산 시장에 대한 장기 전망이 바뀌면 글라이드 패스도 수정될 수 있다. 그런데도 글라이드 패스를 등대에 비유한 이유는 글라이드 패스에 반영된 자산운용사의 철학과 특기는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 운용사의 글라이드 패스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면 TDF를 선택할 때 큰 도움이 된다.

펀드에 투자해 자산을 증식하는 것이 보편화된 미국에서는 모닝스타와 같은 펀드 평가 회사가 정기적으로 TDF를 분석한다. 이때 가장 먼저 글라이드 패스가 어떻게 구현됐는지를 살핀다. 글라이드 패스가 장기 자산 배분을 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위험으로 정의하는지, 시간 흐름에 따라 포트폴리오 내 위험자산과 안전자산의 비중은 어떻게 변화하는지, 위험자산과 안전자산 내에서 세부적인 투자 비중은 어떻게 구성됐는지 분석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국내 펀드 평가 회사의 TDF 분석은 미국만큼 상세하지 않다. 장래에 미국처럼 TDF가 연금 자산을 관리하는 보편적인 수단으로 자리 잡는다면 이 또한 개선될 것이다.

다수의 국내 자산운용사는 해외 운용사에 TDF를 위탁 운용한다. 해외 자산운용사들이 운용 노하우를 보호하기 위해 글라이드 패스 구현 방법을 아예 공개하지 않거나 매우 제한적으로만 알려주기 때문에 참고할 만한 벤치마크가 없는 상황에서 위탁 운용은 어쩌면 손쉬운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 만든 글라이드 패스를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는 마치 중국의 역법으로 우리나라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식을 예측하는 것과 유사하다.

영화에 이와 관련된 일화가 나온다. 세종 4년인 1422년에 있었던 일이다. 서운관은 세종에게 음력 1월 1일에 일식이 있을 것으로 보고했다. 그런데 일식은 서운관이 예측한 시간보다 1각(14.4분)이나 늦게 일어났다. 당시에는 일식을 예측하는 자료와 계산법을 전부 중국에서 가져왔다. 하지만 중국의 하늘은 우리의 하늘과 다르기 때문에 예측은 엇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세종은 우리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식을 예측할 수 있는 역법을 개발하도록 했다. 최근에는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해외에 위탁 운용하던 자산운용사 중에도 글라이드 패스를 자체적으로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변경된 글라이드 패스가 TDF의 성과로 어떻게 연결될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하겠지만, 장기적으로 한국 투자자에게 맞는 글라이드 패스를 개발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글 김동엽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