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투자도 안전모드...'해외 주식 ETF' 인기몰이
최근 주식시장 호황과 글로벌 경기 회복 추세에 따른 기대효과로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서학개미’들이 늘어나고 있다. 각 증권사들이 해외 주식 관련 시스템을 개선하고 다양한 이벤트를 출시하며 해외 주식투자에 대한 접근성도 높아졌다.

글로벌 시장에서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 금리 인상 등 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보다 안정적인 해외 주식 상장지수펀드(ETF)로 눈을 돌리는 투자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자금 유입 상위 10종목 중 6종목이 ‘해외 주식 ETF’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해외 주식 ETF 시장 규모는 4조5000억 원을 기록해 전체 주식형 ETF 시장에서 10.8%의 비중을 차지했지만, 올해 해외 주식 ETF 시장 규모는 11조2000억 원으로 지난해 대비 자산 규모가 약 6조6000억 원 증가했다. 이에 따라 전체 주식 ETF 시장에서 해외 주식 ETF가 차지하는 비중도 22%가 됐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증시 호황에 힘입어 주식시장 전반의 가격 상승뿐만 아니라 ETF 시장으로 자금 유입이 크고 늘고 있는 것이다.

한국예탁결제원 세이브로에 따르면 8월 초부터 9월 초까지 약 한 달간 서학개미들이 가장 많이 산 종목은 알파벳으로 1억6176만 달러를 순매수했다. 다음으로는 아이셰어즈 아이복스 USB 투자등급회사채 ETF(LQD)를 7486만 달러 사들였다. 이어 마이크로소프트 6629만 달러, SPDR S&P500 트러스트(SPY) 5911만 달러, 인베스코 QQQ 트러스트 SRS 1 ETF 5402만 달러, 프로셰어즈 울트라프로 QQQ(TQQQ) 4567만 달러, 아마존 4312만 달러, 모더나 4220만 달러, 쿠팡 3757만 달러, 스타벅스 3555만 달러 순이었다.

해외 주식 ETF로의 자금 유입 규모도 상당했다. 특히 테마형 ETF에 대한 수요가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테마형 해외 주식 ETF에는 올해 들어 2조6000억 원의 자금이 새로 유입됐다. 같은 기간 국내 대표 지수인 코스피200과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코리아 지수를 추종하는 ETF에서 5조 원 규모의 자금이 유출된 것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과거 코스피와 코스닥 대표 지수를 추종하는 ETF가 대세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글로벌 시장에 투자하는 ETF 상품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진 것이다.

전기차 등 특정 테마 거래대금 높아
올해 들어서는 중국 전기자동차와 2차전지 등 특정 테마 거래대금이 높았다. 지난해 12월 중국 전기차, 바이오테크 등을 시작으로 최근 3개월 사이 해외 테마형 ETF는 8개나 출시됐다. 이들 상품은 주로 현재 시장을 주도하는 트렌드에 맞춰 친환경, 신기술 관련 종목으로 구성돼 있다.
미국 주요 증시가 7개월 연속 상승하며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자 국내 자산운용사들이 이에 발맞춰 다양한 해외 주식 ETF를 선보인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또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개인투자자들도 해외 경제나 이슈 관련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국내 운용사들은 올해 테마형 해외 주식 ETF를 대거 출시하고 있다. 최근 3개월 사이에 미래에셋자산운용, 삼성자산운용, 키움투자자산운용, 한국투자신탁운용 등이 8개의 테마형 ETF를 출시해 거래소에 상장했다. 올해 국내 증시에 상장된 전체 해외 주식 ETF는 17개에 달한다. 테마별로는 △친환경 △전기차·2차전지 △신기술 △스팩·IPO 등으로 라인업도 다양해졌다.

이정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과거 개인투자자의 ETF 참여는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인버스와 레버리지 투자 중심이었다”며 “반면 올해는 중국 전기차, 글로벌 리튬 및 2차전지와 같이 해외 테마형 ETF에 투자하는 상품에 집중적인 순매수세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원은 “이제 국내 상장 ETF를 통해서도 친환경과 신기술 투자가 가능하며 향후에도 더 많은 라인업들이 형성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흐름에 힘입어 국내에 상장돼 거래되는 해외 주식 ETF 시장 규모도 올해 2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정보 제공 업체인 에프앤가이드와 메리츠증권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기준 국내 주식형 ETF의 순자산총액(AUM)은 51조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6년 말(18조9000억 원) 이후 2.7배가량 늘어난 수준이다. 지난해 말 대비 9조 원가량 규모가 커졌다. 일평균 거래대금도 올 들어 3조1741억 원으로 크게 늘었다. 이러한 양적인 성장은 전 세계적으로도 괄목할 만하다.

해외 테마형 ETF 인기 지속 전망
금융투자 업계에선 당분간 해외 테마형 ETF의 인기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또 성장주 부진 영향에 조정을 겪었던 로봇·AI 테마주의 상승세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 중국 등 주요국들의 정책적 지원이 이뤄지는 가운데 자동화에 대한 수요가 긍정적인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생산성 향상 수요 및 미·중 재정정책 수혜에 따른 중장기 성장 가시성과, 수주지표 개선세 등을 감안하면 펀더멘탈 측면에서도 모멘텀이 남아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최근 글로벌 로봇·AI 산업 대표주들이 상승하면서 관련 ETF들이 오름세를 나타내고 있다. 대표적인 로봇·AI ETF인 글로벌 X의 로보틱스&AI ETF(BOTZ)는 9월 둘째 주 52주 최고가를 경신했다. 미국에 상장한 BOTZ는 관련 산업을 주도하는 글로벌 대형주 36개 기업에 시가총액 비중으로 압축 투자하는 ETF다.

순자산 규모가 각각 31억 달러(약 4조 원), 18억 달러(약 2조 원)인 아크인베스트먼트의 자동화기술&로보틱스 ETF(ARKQ), 로보글로벌의 로보틱스&자동화지수 ETF(ROBO) 등도 각각 상승세를 이어갔다. 단기간 수익률도 호조세다. ARKQ는 최근 1개월간 5.91%의 수익률을 시현한 가운데 BOTZ와 ROBO 1개월 수익률도 각각 2.22%, 2.05%였다. 이들 ETF의 1년 수익률은 ARKQ 83.83%, BOTZ 50.24%, ROBO 50.24%에 이른다.

금융데이터 제공 업체 레피니티브와 신한금융투자에 따르면 연고점 대비 10% 이상 조정됐던 테마 ETF들 중 로봇·AI ETF는 최근 2주간 신고가를 경신하며 전기차 다음으로 높은 성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신한금융투자에 따르면 BOTZ의 구성 종목 이익 전망은 올해 순이익의 경우 전년 대비 44.7% 성장이 예상된다. 3개월 전 대비 6.8% 상향된 수치다. 내년과 내후년에도 20%를 상회하는 성장률이 예상된다.

김성환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글로벌 공급망 차질과 비용 압박 속에서 업황 회복 여건이 조성되는 중”이라며 “공급망 안정화와 재편을 향한 각국의 관심과 미·중 갈등은 제조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으로 이어지고 있어 로봇·AI 기업들의 직간접적 수혜가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향후 수급 이탈이 완화되고, 비중 50%를 상회하는 일본, 유럽 등 비미국 증시가 반등한다면 모멘텀은 배가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올 상반기 미국의 장비 투자는 전년 동기 대비 16.2% 늘었다. 세계 시장 절반을 점유하는 일본의 상반기 산업용 로봇 수주 역시 같은 기간 45% 증가하기도 했다.

권영배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로봇 산업에 투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ETF를 통한 분산투자”라며 “고성장 산업인 만큼 개별 주식투자는 위험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글 주예린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