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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s LETTER] 챗GPT 시대, 인공지능은 당신의 질문을 평가한다!

     오래전 들은 한 친구의 경험담입니다. 충청남도 어딘가에서 식당에 들렀답니다. 식당 가면 하는 의례적인 질문을 던졌겠지요. "사장님 뭐가 맛있어요?" 보통 김치찌개는 어떻고 제육볶음은 어떻고 해야 하는데 이 식당 주인은 달랐습니다. "집 나와서 먹으면 다 거기서 거기쥬. 아무거나 드세유"라고 답했답니다. 시장에서 물건 값을 깎아 달라고 하면 "에유 냅둬유. 개나 주게"라고 한다는 것과 비슷한 얘기지요. 오늘의 주제는 ‘질문’입니다. 문득 떠오르는 에피소드라 가져와 봤습니다. 질문, 어렵지요. '본질을 묻는다'는 게 질문의 뜻인데 쉽겠습니까.과거 중소기업을 취재할 때 일입니다. 한 사장님을 만났습니다. "노동자로 시작해 매출 수백억원대 회사를 일군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세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일만 했어요“라고 하고 웃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고 했더니 ”토요일에도 일하고 일요일에도 일만 생각했어요"라고 답했습니다.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기사를 어떻게 쓰라구요….'사업 전환에 성공한 다른 사장님에게도 "비결이 뭡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약간 달랐습니다. "척 보면 알아요." 질문을 돌려서 해도 "한 번 보면 알 수 있어요", "우리는 대번에 알아요"라는 말만 반복했습니다.잘못된 질문이었고, 솔직한 답이었습니다. 경영학자들은 일만 생각한다는 것을 '몰입'이라고 부르고 척 보면 안다는 것은 '직관'이라고 부릅니다. 솔직하게 핵심을 표현한 답이었습니다.이후 질문을 바꿨습니다. 한 회장님과 인터뷰. 그는 응급실에 누워 있다가 왔다고

    2023.04.01 06:00:09

    [EDITOR's LETTER] 챗GPT 시대, 인공지능은 당신의 질문을 평가한다!
  • [EDITOR's LETTER] 힙합같은 삶을 살다간 미국의 설계자…전략가를 기다리며

    [EDITOR's LETTER] “매춘부와 스코틀랜드인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 그리고 고아. 카리브 제도의 이름 모를 섬에서 가난하게 살던 놈이 어떻게 영웅에 학자까지 된 거지?”뮤지컬 ‘알렉산더 해밀턴’은 이 질문으로 시작됩니다. 미국 초대 재무장관의 일대기를 그린 뮤지컬은 2015년 최초로 무대에 올려졌지요. 지금은 브로드웨이 역사상 최고의 뮤지컬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디즈니플러스에도 올라왔지요.이 뮤지컬은 기존에 없던 형식을 택했습니다. 랩 중심의 뮤지컬. 힙합과 재무장관이라…. 좀 웃기지 않습니까. 미국 사람들도 처음엔 웃었다네요. 뮤지컬을 기획하고 작사 작곡에 출연까지 한 사람은 린마뉴엘 미란다입니다. 2009년 어느 날 백악관. 버락 오마바 전 대통령 부부는 시와 음악을 통한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행사를 열었습니다. 미란다도 초대받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힙합 앨범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 사람의 삶이 힙합 그 자체인 알렉산더 해밀턴의 이야기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오바마 부부를 비롯해 참석자들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는 말을 이어 갔습니다. “지금 웃으셨지요? 진짜란 말입니다.”힙합. 1970년대 폐허로 변해 가던 뉴욕 브롱스 빈민가에서 탄생한 흑인과 히스패닉들의 음악, 자신의 삶과 생각을 비트에 담아 날리며 현실을 버텨 내는 소외된 자들의 무기…. 의지할 곳 하나 없던 해밀턴의 삶이 힙합 정신과 닿아 있다고 미란다는 생각했습니다.지금 한국의 힙합그룹 호미들의 ‘사이렌’이란 곡을 들으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엄마 내가 돈 못 벌면 파 호적, 차라리 죽는

    2023.03.25 08:16:30

    [EDITOR's LETTER] 힙합같은 삶을 살다간 미국의 설계자…전략가를 기다리며
  • [EDITOR's LETTER] 한국인들의 은행에 대한 코드는?

    [EDITOR's LETTER] 오늘은 방탄소년단(BTS) 리더 RM의 얘기로 글을 시작합니다. 얼마 전 RM은 스페인 매체와 인터뷰했습니다. 질문자는 비꼬듯이 “K팝의 젊음과 완벽에 대한 숭배 그리고 지나친 노력은 한국의 문화적 특징이냐”고 물었습니다. RM은 담담하게 답했습니다.“서양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한국은 침략 당하고 황폐화되고 두 동강 난 나라다. 70년 전만 해도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 세계가 주목한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사람들이 발전하려고 미친듯이 노력했기 때문이다. 프랑스나 영국처럼 수세기 동안 타국을 식민 지배했던 나라의 사람들이 이제 와서 하는 말이 ‘한국에서의 삶은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요. 자신을 너무 몰아세우는 것 같아요’라니 해내려면 그것들이 필요하다. 그게 K팝을 매력적이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K팝 등에 붙는 K라는 수식어가 지겹지 않냐는 질문에 “그 효과는 확실하다. 그건 프리미엄 라벨이다. 우리보다 앞서 가신 분들이 쟁취해 낸 품질을 보장하는 라벨이다”라고 했습니다. 멋지지 않습니까.K를 말한 김에 화제인 드라마 ‘더 글로리’도 언급해야 할 듯 하네요. 전 세계 넷플릭스 구독자들이 이 드라마가 업로드되기를 기다렸고 올라가자마자 TV 프로그램 부문 세계 1위에 올랐습니다. 마치 애플 제품 출시를 기다리듯 세계인들은 K-드라마 업로드를 기다렸습니다. 넷플릭스 서비스가 안 되는 중국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중국답게 온갖 수단을 동원해 시청한 후 인터넷 게시판을 도배하다시피 했습니다. RM의 말대로 K가 들어가는 것은 문화와 산업에서 품질을 보장하는 라벨에 다다른 게 분

    2023.03.18 06:00:10

    [EDITOR's LETTER] 한국인들의 은행에 대한 코드는?
  • [EDITOR's LETTER] 도전자 모습 되찾은 삼성전자..평택 반도체 공장이 짊어진 숙제들

    [EDITOR's LETTER] 15세기 명나라 전성기 때 중국은 세계 경제의 절반을 차지했습니다. 명나라 황제 영락제는 보물 선단을 건조해 세계 각국에 파견, 대규모 상거래를 했습니다. 이 선단을 이끈 사람이 중국의 탐험가 정화입니다. ‘정화의 대항해’란 말을 들어봤을 겁니다. 영락제는 “짐은 중원을, 정화 너는 바다를 다스린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명나라는 상거래를 통해 부유해졌고 조공을 하는 조선에도 받은 것 이상 내줬습니다. 하지만 영락제와 정화가 사망한 후 중국은 항해를 중단합니다. 그리고 서서히 저물어 갑니다.국력이 약해졌지만 1800년 중국은 세계 경제의 3분의 1을 담당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100년 후 그 비율은 10분의 1로 낮아지고 존재감 없는 국가로 전락합니다. 19세기 먹고살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중국인들은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비참한 생활을 합니다. 미드 ‘워리어’에는 당시 중국인들의 삶이 리얼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같은 19세기 영국은 빅토리아 시대였습니다. 경제사가들은 1862년을 중요한 기점으로 봅니다. 그해 주식회사를 태동시킨 회사법이 제정됐기 때문입니다. 이를 근거로 설립된 유럽의 기업들은 빠른 속도로 세계화 시대를 열었습니다. 물론 식민지 약탈이라는 제국주의적 방식이 동원됐지만….이후 기업은 사람·도시·시대의 형태를 이끌어 왔습니다. 강한 기업이 있는 도시는 번성하고 그 나라는 강국이 됐습니다. 기업이 보잘것없는 나라는 반대였습니다.최근 20년간 중국이 세계 무대에서 다시 그 힘을 보인 것도 기업의 수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세계 100대 정

    2023.03.11 06:00:01

    [EDITOR's LETTER] 도전자 모습 되찾은 삼성전자..평택 반도체 공장이 짊어진 숙제들
  • [EDITOR's LETTER] 인플레이션의 공습…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

    [EDITOR's LETTER]일주일에 한 번쯤 몸무게를 달기 위해 저울에 올라갑니다. 그 결과를 확인할 때마다 헉 하는 소리가 절로 납니다. 오늘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구나. 올라야 할 주가는 안 오르고 몸무게만….  겨울을 지내며 잠시 정신줄을 놓은 사이 위장이 늘어난 결과입니다. 위장은 계속 뭘 넣어 달라고 데모하는 듯합니다. 위장이 원하는 것을 해결해 주려다 둘째 서프라이즈한 숫자를 발견했습니다. 물가입니다.물가는 몸무게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앞자리가 달라지면 큰 충격이 온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태어나 처음 보는 앞자리라면 더더욱…. 대표적인 게 빅맥과 소주입니다. 브레이크 없이 앞자리가 바뀐 품목들을 잠깐 살펴 볼까요. 빅맥(5200원)과 소주(5000원)에는 5자가 찍혔습니다. 곧 소주에는 6자가 찍힐 듯 합니다. 이미 강남 어디에서는 1만원이 등장했다고 하니 이게 소주가 맞나 싶습니다.비빔밥(1만원)에는 1자가 보이기 시작했고 자장면(7000원)은 7, 카페라테(5800원)는 6에 근접하고 있습니다. 편의점에도 생소한 숫자들이 널려 있습니다. 코카콜라 캔 2000원, 삼다수 1100원, 담배 4800원, 바나나 우유 1700원 등입니다. 이건 양호합니다. 가스요금은 느낌에 딱 두 배쯤 오른 것 같습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가스요금 하소연이 그치지 않습니다. 하루를 버텨내고 친구들과 한잔하고 지친 몸을 택시에 맡기는 것도 부담스럽습니다. 기본 요금은 오르고 기준 거리는 짧아지고 야간 할증률은 높아져 체감은 두 배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정부가 공공 요금 인상을 하반기로 미룬다고 하지만 서너 달 후에는 또 오를 예정입니다. 메가인플레이션이란 표현이 어

    2023.02.25 06:00:24

    [EDITOR's LETTER] 인플레이션의 공습…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
  • [EDITOR's LETTER] 천 개의 얼굴을 가진 인도로 눈을 돌려야 하는 이유

    [EDITOR's LETTER]그 나라에 가면 웬만해선 거스름 돈을 제대로 받을 수 없습니다. 한 푼도 안 주거나 달라고 해도 덜 주기 일쑤입니다. 길거리는 노상방뇨로 더럽기 그지 없습니다. 물도 안심하고 먹을 수 없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공기업 여러 곳이 할 사업을 한 개 기업이 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정경유착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입니다. 빈부 격차는 엄청납니다. 일부 계급은 공공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가 있는 이상한 나라.인도에 대해 들었던 얘기들입니다. 인도가 아니었다면 “딱 망할 각이네”란 말이 그냥 나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도입니다. 이런 인도가 작년부터 국제 무대에서 요상한 기운을 내뿜기 시작합니다. 인도계 이민자 2세가 식민지배를 했던 영국의 총리가 된 것이 가장 큰 사건이었지요. 그러자 미국 기업에 있는 인도계 최고경영자(CEO)들도 조명을 받습니다. 구글·마이크로소프트·트위터·어도비 등에 인도계 천재들이 CEO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대목은 이해가 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인도는 아라비아 숫자의 체계를 만들고 0을 숫자로 처음 사용한 나라입니다. 정보기술(IT) 인재들이 많이 나오는 것은 이런 DNA가 몸에 흐르기 때문 아닐까 합니다.작년에는 영국을 한 방 먹인 기록까지 더해집니다. 경제 규모(GDP)가 영국을 제치고 세계 5위로 올라선 겁니다. 지금도 인도는 영국을 원망합니다. 왜 그렇게 가난하느냐는 질문에 “식민 통치를 하며 영국이 약탈해 간 자원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는 게 인도 외교부 장관의 답변일 정도입니다. 그런 나라가 경제 규모에서 영국을 제친 이벤트가 벌어진 것입니다.2023년 인도에 대한 관심은 더

    2023.02.18 07:01:09

    [EDITOR's LETTER] 천 개의 얼굴을 가진 인도로 눈을 돌려야 하는 이유
  • [EDITOR's LETTER] 이번엔 챗GPT! 뭔 배워야 하는 게 이리 많은지...

    [EDITOR's LETTER]참 세상 살기 쉽지 않습니다. 뭔가에 적응할 만하면 새로운 게 또 튀어나오니 말입니다.2021년 봄, 메타버스란 단어가 대유행했습니다. 기사를 쓰기 위해, 대화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해봐야 했습니다. 네이버가 운영하는 플랫폼 제페토에 가입하고 아바타를 만들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 만들었는데 들어가 뭘 해야 할지 몰라 멍 때리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며칠 후에는 얘가 어디 있는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접었습니다. 지금도 제 아바타는 가상 공간에서 배고픔과 추위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그렇습니다.그리고 그 직전에는 음성 기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인 클럽하우스가 유행했습니다. 그것도 해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가입해 기웃거려 봤습니다.아재 같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한 투쟁은 그 이전에도 치열했습니다. 2000년대 중반과 후반에는 블로그와 트위터, 이후 2010년대에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2020년대에는 구독 경제니 뭐니 해서 넷플릭스·웨이브·티빙·밀리의서재, 젊은 친구들은 다 쓴다는 리멤버와 링크트인·에버노트·노션까지…. 다행히 뉴스레터는 안 써 스티비는 배우지 않아도 됐습니다.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50대의 노력이 처절하지 않습니까?이제 숨 좀 돌릴까 했는데 ‘아놔’. 요즘 그 뭐냐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챗GPT란 게 나왔습니다. 눈치를 보니 다들 해본 듯했습니다. 후배가 물어보면 태연한 표정으로 “당연히 알지”라고 답하고 밤에 몰래 들어가 한 번 해봤습니다. 안 되는 영어로 막 물어보고 써 봤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느낌이 팍 왔습니다. “큰

    2023.02.11 06:00:05

    [EDITOR's LETTER] 이번엔 챗GPT! 뭔 배워야 하는 게 이리 많은지...
  • [EDITOR's LETTER] 재밌는 지옥 대한민국 그리고 저출산

    [EDITOR's LETTER] 일부 동물이 갓 태어난 새끼를 먹어 치운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지요. 나무 두더지류(Tree shrew)가 대표적입니다. 환경이 좋지 않거나 집단 내 사회적 지위가 낮아 제대로 기르기 힘들다고 판단되면 새끼를 먹어 버립니다. 에너지를 축적하는 것입니다. 남이 먹기 전에 자신이 먹는 것이 추후 번식 확률을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좀 섬뜩하지요. 하지만 생존이란 그런 것입니다. 가능성이 낮은 번식보다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높은 생존을 택한 것이지요. 진화의 결과입니다.사람은 좀 다를까요. 생태학자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는 한국의 저출산 문제도 나무 두더지의 선택과 비슷하다고 말합니다. 왜 아이를 낳지 않을까. 생존과 번식 가운데 생존을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는 말입니다. 물론 지적인 판단이 더해졌지만….오래전 얘기를 잠깐 해 보겠습니다.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몇 학년 때였는지 가물가물합니다. 해는 넘어가고 놀다 지쳐 집에 돌아갈 때 쯤 학교에 가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저녁반 친구들이었습니다. 학교는 부족하고 애들은 많아 오전·오후·저녁반 등 3부제를 하던 시절입니다. 1970년대 후반입니다. 현재 50대와 40대 후반인 1964년생부터 1974년생까지 매년 90만 명 넘게 태어난 영향이었습니다. 먹고살기는 힘들었지만 많이 낳았습니다. 아마 아이를 노동력으로 인식하는 농경 사회의 문화가 남아 있던 영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해 봅니다.이렇게 태어난 베이비부머들은 결혼 후 대략 2명 정도를 낳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애는 낳아 놓으면 알아서 큰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 이면에는 ‘어제보다 오늘이, 오

    2023.02.04 06:00:03

    [EDITOR's LETTER] 재밌는 지옥 대한민국 그리고 저출산
  • [EDITOR's LETTER] 젊은 세대의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넘어서려면

    [EDITOR's LETTER]2004년 11월 이헌재 경제부총리(재정경제부 장관)와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논쟁을 벌인 일이 있었습니다. 국민연금이 쟁점이었습니다. 이 부총리는 국민연금이 앞으로 수십년간 축적되는 만큼 기금 일부를 출산율을 높이는 사업 등 ‘한국판 뉴딜’ 정책에 활용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국민연금을 담당하는 복지부 수장인 김 장관은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를 보장해야 하는 마지막 보루이자 손댈 수 없는 자산”이라며 반대했습니다. 이 논쟁은 얼마간 지속됐습니다. 결국 국민연금 활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어서 이 부총리의 제안은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멋지지 않습니까? 국가의 미래를 놓고 한 정부의 장관들끼리 철학이 담긴 논쟁을 한다는 것 자체가. 김 장관은 복지부 장관으로서의 임무를 다했고 이 부총리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한국 사회에 던져 승패도 일방적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최근 나경원 저출산고령화위원회 부위원장을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국가의 미래가 달린 중대사마저 정치의 대상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었습니다.사건의 출발은 간단했습니다. 국가의 현안에 대해 장관급인 나 부위원장이 아이디어를 낸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이를 대통령실이 연일 반박하고 나 부위원장은 결국 사표를 냅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이를 수리하지 않고 해임해 버립니다. 정치적인 측면에서 할 말이 많지만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한 미국 정치인이 얘기가 떠오릅니다. “정치인들의 문제는 국가의 현안을 해결하는 데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문제를

    2023.01.28 06:00:05

    [EDITOR's LETTER] 젊은 세대의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넘어서려면
  • [EDITOR's LETTER] 다시 시작된 반도체 패권 전쟁, 무사시를 찾는 현대 전략가들

    [EDITOR's LETTER] ‘손자병법(손무)’과 ‘전쟁론(클라우제비츠)’은 많이 들어봤을 듯합니다. 현대 전략가들이 많이 찾는 책입니다. 이 두 권과 함께 세계 3대 병법서로 꼽히는 ‘오륜서’는 약간 낯설게 들립니다. 이 책은 일본의 검객 무사시가 썼습니다. 그는 전란의 시대인 17세기 무사로 살았습니다. 60차례 결투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어 ‘검성(劍聖)’으로 불립니다.현대 전략가들이 무사시를 찾는 이유가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전략 전술을 구사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검술을 썼습니다. 복수에 불타는 청년 검객을 상대할 때는 예정됐던 시간보다 늦게 도착해 화를 돋워 평정심을 잃게 만들어 버립니다. 이 전략을 간파한 상대와 겨룰 때는 일찍 도착해 나무 위에서 기다리다가 단칼에 베어 버립니다. 때로는 장검과 단검 두 자루를 사용하기도 하고 긴 칼을 쓰는 무사에게는 섬에서 결투를 청한 후 칼 대신 노를 무기로 썼습니다. ‘전쟁의 기술’을 쓴 로버트 그린은 “무사시가 모든 결투에서 승리한 요인은 단 한가지였다. 적과 상황에 따라 전략을 바꿨다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나폴레옹도 비슷합니다. 그가 승전을 이어 갈 때 전쟁의 원칙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나폴레옹은 “어떤 원칙도ᅠ신봉하지ᅠ않는다. 나는ᅠ항상ᅠ상황의ᅠ지배를ᅠ받아 왔다”고 답했습니다.전략이 중요한 바둑에서는 이 같은 ‘표변’ 또는 ‘변심’의 힘이 더 두드러집니다. 세계 바둑 1위인 한국의 신진서 기사를 비롯한 고수들은 가끔 이해할 수 없는 수를 둡니다. 버리지 않아도 될 돌들을

    2023.01.14 06:00:01

    [EDITOR's LETTER] 다시 시작된 반도체 패권 전쟁, 무사시를 찾는 현대 전략가들
  • [EDITOR's LETTER] 위기의 시대가 필요로 하는 도전적 리더십

    [EDITOR's LETTER]얼마 전 중견기업의 박 모 팀장은 최고경영자(CEO) 업무 보고를 앞두고 고민에 빠졌습니다. 파워포인트 만드는 게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지요. 다른 팀은 막내를 시켜 멋진 파워포인트를 만든다는 얘기도 들렸습니다. 어린 사원에게 가욋일 시키는 것도, 내 비전을 남에게 맡기는 것도 싫었습니다. 거칠지만 직접 작성했습니다.업무 보고 날. 다른 팀 파워포인트는 화려했습니다. 막대가 벌떡 일어서고, 화면이 갑자기 회전하고, 각종 색상의 차트가 날아다녔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자료에는 정작 들어가야 할 상황 진단과 극복 전략, 실행 방도가 빠져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차분해진 박 팀장. 순서가 돌아오자 담담하게 어디를 향해 갈 것인지, 방도는 무엇인지 설명하고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파워포인트 스트레스를 받는 직장인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성공적인 전략은 복잡한 파워포인트로 설명되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하고 직관적입니다. 그래서 파워포인트를 없애는 회사가 늘어난다는 얘기를 들은 지 10년도 더 된 것 같습니다.화려한 수식의 허무함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10년 전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새로운 버전의 엑셀 출시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새 프로그램을 먼저 본 개발자들은 감탄했지요. 정보기술(IT)업계 종사자들의 반응도 폭발적이었습니다. 스티브 발머 CEO는 으쓱했습니다. 다음 새 프로그램을 실제 사용할 개사료 회사, 운송 업체, 알루미늄 제조 업체 직원들의 반응을 들을 차례. 포커스그룹 인터뷰였습니다. 질문자가 “스프레드시트 소프트웨어에서 중요한 게 무엇일까요”라고 묻자 참가자 대부분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

    2023.01.07 06:00:29

    [EDITOR's LETTER] 위기의 시대가 필요로 하는 도전적 리더십
  • [EDITOR's LETTER] 모두 2023년을 위기라 말하지만...

    [EDITOR's LETTER]연말연초 모임에 가면 항상 받는 질문이 있습니다. “새해 경제는 어떨 것 같습니까?”그래서 11월쯤 되면 전망서와 인터넷, 유튜브를 뒤집니다. 주말 카페에 앉아 생각을 정리하고 나름의 전망도 세워봅니다. 작년에도 준비를 좀 했습니다. 미·중 관계,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 인플레이션, 반도체와 자동차 산업, 부동산 가격, 남북 관계, 한국 기업의 경쟁력 등 이슈들을 점검해 봤습니다. 그런데 연말 수많은 점심·저녁 자리에서 그 흔한 질문을 하는 분이 거의 없었습니다. 괜히 공부했나 싶었지요.  하지만 곧 깨달았습니다. 2023년처럼 전망하기 쉽고 수많은 기관들의 전망이 비슷한 해가 없었다는 것을…. 질문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위기·균열·금리 인상·전쟁·불확실성·수요 위축·하향 조정·감원 등 좋지 않은 뉘앙스의 말을 막 갖다 붙이면 2023년 전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과연 이 전망대로 될까. 약간 다른 생각을 해봤습니다. 2020년 3월이었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고 한국경제신문 증권부장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주가가 1400대까지 떨어졌다가 1700대를 회복하자 많은 사람들이 다시 떨어진다고 걱정했습니다. 그때 누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같이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됐습니다. 주가는 이후 2년간 질주해 3300에 이릅니다.이번 위기도 어쩌면 ‘두려움의 크기만큼 심각하지 않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또 설령 위기가 오더라도 그 타격은 덜할 것입니다. 삼성전자가 이면지를 쓰는 등 ‘쌍팔

    2023.01.01 06:00:01

    [EDITOR's LETTER] 모두 2023년을 위기라 말하지만...
  • [EDITOR's LETTER] 왜 attorney 인가

    [EDITOR's LETTER]1977년 가을 어느날. 서울 변두리 한 동네에 사는 한 초등학교 3학년생은 해질 때까지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동네 빵공장 앞을 지나가는 순간 참을 수 없는 배고픔을 느꼈습니다. 빵 냄새는 상상 이상의 자극이었습니다. ‘집에 가서 엄마한테 사달래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집 앞에 다다르자 망설였습니다. 엄마의 화난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책가방을 던져 놓고 사라졌다가 해가 진 후 들어가면 깨지기 일쑤였으니까요. 소년은 평소 놀던 동네 공터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빵보다 자유를 택한 겁니다.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멍하니 있는데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 바람을 타고 ‘크림빵’ 봉지가 쓸쓸히 날아가는 게 눈에 띄었습니다. 시각과 조금 전 맡은 빵 냄새가 격렬히 결합해 간절한 소망으로 승화합니다. ‘저 빵 봉지를 빵이 들어간 것으로 바꿀 능력이 있는 마술사가 돼야겠어.’ 소년에게 처음 꿈이 생긴 순간입니다. 가난과 배고픔은 꿈을 꾸게 해주던 시절이었습니다.소년의 꿈이 깨진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입니다. 선생님은 ‘마술 허구’라고 알려줬습니다. 동심을 파괴한 선생님의 미운 짓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수업 시간,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었습니다. 손을 들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쉬는 시간에 가라고 단칼에 무시해 버렸습니다. ‘쩝, 참자.’ 그런데 몇 분 후 부잣집 아이가 화장실을 가겠다고 하니 선생은 그러라고 하는 겁니다. 참을 수 없었습니다.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왜 차별 대우하냐”고 따졌습니다. 선생님은 시끄럽다고 무시했지만 이유를 설명해 달라며 계

    2022.12.26 06:00:05

    [EDITOR's LETTER] 왜 attorney 인가
  • [EDITOR's LETTER] CEO의 조건…관찰·통찰·성찰

    [EDITOR's LETTER] ‘라 포르나리나(제빵사의 딸)’란 그림이 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 3대 화가 중 한 명인 라파엘로가 자신의 연인을 그린 작품입니다. 이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는 라파엘로를 상징하는 ‘균형과 명료함’ 외에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관찰력입니다.라파엘로는 38세에 죽었고 그림 속 여인은 그가 죽자 수도원으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그녀도 수도원에서 1년 6개월 후 숨을 거둡니다. 수백년이 흘러 이 그림을 다시 화제의 작품으로 만든 것은 의사들이었습니다. 일부 의사들은 “라파엘로는 그림에 자신의 연인도 곧 죽음을 맞게 될 것을 암시했다”는 취지의 논문을 발표합니다. 왼쪽 가슴에 결절이 있고 피부색에 음영이 짙다는 점 등을 들어 이 여인이 유방암으로 죽었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전이성 유방암 환자의 생존 기간은 3년이고 이 그림이 그려진 지 3년 후 이 여인은 사망했습니다. 미술 평론가들은 “천재 화가의 관찰력은 그녀의 암 흔적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관찰은 당시 화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습니다. 르네상스 화가의 임무는 가시적 세계를 재현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관찰이 화가들에게만 중요했던 것은 아닙니다. 미국에서 자동차의 도시 하면 어디가 떠오르십니까. 세계 자동차의 수도로 불렸던 디트로이트입니다. 하지만 현대 자본주의의 기초가 된 분업 구조를 구현한 포드의 첫째 자동차 조립 공장은 디트로이트가 아닌 시카고(디어본)에 있었습니다. 헨리 포드는 어느 날 시카고 도축장을 방문합니다. 이곳을 돌던 포드의 눈에 들어온 것은 도축장 천장에 설치된 레일이었습니다. 작업자가 돌

    2022.12.16 16:54:09

    [EDITOR's LETTER] CEO의 조건…관찰·통찰·성찰
  • [EDITOR's LETTER] 한국 경제와 정권도 구한 수출의 마법은 풀리고 있는데…

    [EDITOR's LETTER]“국산이 아직 일제한테 안 되네. 맞나?”(아버지)“그래도 국내 1위입니다. 백색 가전 1위를 놓친 적은 없습니다.”(아들)“국내? 1위? 국내 1위? 니 어디 전국체전 나가나?”(아버지)시청률 1위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재벌 회장이 아들을 꾸짖으며 한 말입니다. 실제 현실에서도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 둘 다 비슷한 말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결과 삼성이 어떻게 됐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생각해 보면 축복 받은 나라는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박해를 피해 영국에서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온 미국 선조들이 도착한 땅은 한 대륙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축복의 땅이었습니다. 유럽에도 복 많은 나라들이 있습니다. 스페인·그리스·이탈리아·프랑스 등은 한 해가 시작되는 1월 1일을 수백억 달러의 경상 수지 흑자로 출발합니다. 지중해를 끼고 있는 빼어난 자연환경, 수많은 문화유산 등으로 매년 여행 수지 흑자가 수백억 달러에 달하기 때문입니다. 이들 나라가 경상 수지 적자를 낸다는 것은 흑자를 모조리 까먹으면서 한 해를 보냈다는 말입니다. 고등어 강국 노르웨이는 그냥저냥 살고 있었는데 1970년 북해 유전 발견으로 나라와 후손들이 팔자를 고쳤습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교과서에서 나온 대로입니다. 자원은 없고, 자연환경은 내세울 정도는 아니고, 유적도 유럽에 비하면 남은 게 별로 없습니다. 그런 나라가 북쪽으로 가는 길은 막혀 있고 미사일은 시시때때로 인근 영공을 날아다닙니다. 깊은 한숨이 나오는지요.  그래서

    2022.12.10 06:00:10

    [EDITOR's LETTER] 한국 경제와 정권도 구한 수출의 마법은 풀리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