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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살의 샤넬과 71살의 사넬 [EDITOR's LETTER]

    [EDITOR's LETTER] 15년 전 쯤의 일입니다. 꽤 비싼 시계를 갖게 됐습니다. 어느 날 점심 식사 자리에 차고 나갔습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취재원 한 명이 시계를 보더니 “아 시계 눈에 띄네요”라고 했습니다. 뿌듯했지요. ‘알아봐 주는군.’ 하지만 유심히 시계를 보던 그는 “그런데 그거 진품 맞나요? 시곗바늘이….” 아놔. 아마도 평소 행색이 명품 시계와는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곗바늘 움직임이 이상해 보였겠지요. 다행히 다른 일행이 “진품 맞네. 바늘이 원래 그렇게 움직여”라고 해줘 오해에서는 벗어났습니다. 물론 나이가 좀 들고 나니 의심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몇 년후 겨울. 한 중견기업 회장님과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회장님은 검정 패딩을 입고 왔습니다. 폼도 나고 회장이 입었으니 당연히 명품이겠거니 하고 브랜드를 살짝 봤습니다. 웬걸, 유***였습니다. 명품은 어쩌면 누가 걸치느냐에 따라 달라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명품은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우선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통하지 않는, 즉 가격을 올려도 수요가 줄지 않는 재화입니다. 미국 사회학자 소스타인 베블렌이 ‘유한계급론’에서 언급해 베블렌 효과로도 불리지요. 가격을 올리겠다고 하면 백화점 앞에 줄을 서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원래 명품은 특정 계층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상류층이 되고자 하는 신분 상승의 욕망이 소비로 나타나며 대중화되기 시작했지요. 이를 ‘파노플리 효과’라고 합니다. 프랑스 등 유럽에서는 파티나 중요한 행사 때 명품 시계를 차고 백을 든다고 하지요.하지만 한국인들은 이런 명품에 대한 고정관념(?)을

    2023.06.12 06:00:01

    12살의 샤넬과 71살의 사넬 [EDITOR's LETTER]
  • 9만4000원에 삼성전자를 산 A를 위해 [EDITOR's LETTER]

    [EDITOR's LETTER] 2021년 1월 어느 날. 한국 사회가 주식에 열광할 때의 일입니다. 후배 A가 대화 도중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습니다. “선배 저 뒤늦게 삼전 주민이 됐어요.” 당시 삼성전자 주식을 사면 “주민이 됐다”고 했고 매수 가격은 층으로 불렀습니다. “몇 층인데?”라고 했더니 “94층이요”라고 답했습니다. 헉! 67층, 75층도 높다고 했는데 94층이라니…. 물론 그때 ‘10만전자’ 어쩌고 하는 얘기도 있긴 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10만원 가더라도 뭐 먹을 게 있을까 싶었습니다. 왜 뒤늦게 샀느냐고 했더니 “나만 삼전 없어”라고 말하기 싫어서라고 했습니다.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래 잘 버텨보자”고 하고 대화를 마무리했습니다. 2020년, 2021년 한국 사회는 주식으로 들썩였습니다. 블라인드와 인터넷 게시판은 물론 방송에도 주식 프로그램이 등장했습니다. 국민들은 집단 흥분 상태였습니다. 삼성전자는 주주가 단숨에 500만 명을 넘어 국민주가 됐습니다. 모두 부자가 될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자신감을 얻은 용감한 투자자들은 한국 주식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테슬라를 비롯한 혁신 기업에 과감히 베팅하고 코인 시장에도 뛰어들었습니다. 부동산 ‘영끌’도 있었습니다. A도 뒤늦게 미국 주식과 코인을 샀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2년은 ‘투자의 시간’이었습니다.뜨거운 시간은 인플레이션으로 싸늘하게 식었습니다. 작년부터 주변에 주식 얘기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손실률 공포로 모바일 주식창을 몇 달째 열어보지 않는 친구도 있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 변화가 감지됐습니다. 4월 말쯤부터 “이제 삼성전자 사도 되겠지요?”라고 묻는 친구들이 몇

    2023.06.05 06:01:16

    9만4000원에 삼성전자를 산 A를 위해 [EDITOR's LETTER]
  • 꼴찌 롯데의 반란…무엇이 조직을 바꾸는가[EDITOR's LETTER]

    [EDITOR's LETTER] 스포츠의 매력은 반전, 또는 이변입니다. 한국 축구팀이 U-20 월드컵에서 우승 후보 프랑스를 꺾은 것 같은 일 말입니다. 올해 한국 프로야구에서 이변의 팀은 단연 롯데자이언츠입니다. 롯데는 ‘꼴데’, ‘봄데’로 불립니다. 꼴찌 롯데, 봄에만 반짝하는 롯데라고 붙여진 별칭이지요. 하지만 올해는 다릅니다. 5월 말인데 LG트윈스·SSG랜더스와 1위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무엇이 달라졌을까요. LG 팬으로서 객관적으로 비교해 봤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대호·손아섭 등 과거 롯데를 상징하던 스타플레이어가 없다는 점입니다. 특출난 투수도, 3할 타자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는 뜻밖의 효과로 이어졌습니다. 롯데 구단 관계자는 “특별히 달라진 건 없다. 다만 선수들이 어떻게든 살아 나가려고 하고 나가면 한 베이스를 더 가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습니다. 근성이 살아나고 있다는 게 첫째 달라진 점이었습니다.프로 스포츠에서 스타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팀을 놓고 보면 스타가 방해가 될 때도 있습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스타 이외에 다른 선수들은 액세서리로 취급당하며 전력이 약화되곤 합니다. 기업 조직에서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롯데는 이들이 빠지자 개인 성적보다 팀을 생각하는 마인드가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스타의 공백을 채운 것은 다양성입니다. 과거 롯데는 경남고와 부산고 등 PK 색깔이 짙은 팀이었습니다. 주력 멤버들도 마찬가지였지요. 하지만 올해는 재일 동포 안권수 선수를 비롯해 경기도 안산 출신 황성빈, 서울 출신 유강남·안치홍·김민석, 광주 출신 김원중·노진혁 선수 등이 주력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순혈주의, 즉 색깔을 벗겨 내니 다

    2023.05.29 08:59:16

    꼴찌 롯데의 반란…무엇이 조직을 바꾸는가[EDITOR's LETTER]
  • 전세의 기억과 익숙함의 함정, 그리고 반성[EDITOR's LETTER]

    [EDITOR's LETTER] 셋방 살던 어릴 적 기억이 납니다. 집주인들은 무서웠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머니에게 막 뭐라고 하기도 하고 저와 동생은 떠든다고 혼도 자주 났습니다. 애들이 떠드는 게 당연한 것 아닙니까. 미취학 아동들이 항상 뭔가를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으면 그게 이상한 거지요. 그렇게 몇 번 집을 옮겨 다니면서 부모님이 안쓰럽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나름 성숙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해 마당이 있는 집을 사 이사한 날 부모님의 표정을 잊을 수 없습니다.철이 들고 생각해 보니 전세는 참 이상한 제도였습니다. 본질적으로 전세 제도는 사금융입니다. 집을 빌려 쓰지만 그 대가로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무이자로 목돈을 빌려주는 제도지요. 일반적으로 채권자가 갑, 채무자가 을이지만 전세만큼은 항상 채무자인 집주인이 갑인 이상한 금융 거래라는 점은 지금도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상한 제도지만 오랜 기간 한국 사회에서는 순기능을 했습니다. 부모님이 몇 번 전셋집을 옮긴 것은 저축의 과정이었습니다. 적은 돈으로 전세를 얻고 아버지는 열심히 일해 번 돈을 저축했습니다. 은행은 높은 금리로 돈을 불려줬지요. 그 과정을 반복한 끝에 결국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게 된 것이지요. 집값이 오를 것이란 기대감은 당연했고요. 고금리와 임금 인상, 인구 증가와 집값 상승 등의 조건이 맞아떨어지며 1970년대 이후 전세는 내 집 마련에 사다리 역할을 했습니다. 전세 대출 같은 것은 없던 시절입니다. 그다음 세대도 마찬가지 과정을 밟았습니다. 전세는 그래서 친숙하고, 또 익숙했습니다. 익숙함은 일반적으로 긍정적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래서인지 전세에 대한 선호는 이

    2023.05.22 09:21:14

    전세의 기억과 익숙함의 함정, 그리고 반성[EDITOR's LETTER]
  • “이념이 밥 먹여 주지는 않는다”고 외치는 T25 [EDITOR's LETTER]

    [EDITOR's LETTER]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란 책을 기억하시는지요. 1999년 출간된 세계화에 대한 책입니다. 저자 토머스 프리드먼은 ‘세계화에 참여한 나라들은 경제적 이익을 얻었고 이는 중산층 확대로 이어졌다. 중산층은 안정을 원하기 때문에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는 논지를 폈습니다. 렉서스는 세계화의 상징, 올리브나무는 세계화에 올라타지 못한 중동에 대한 알레고리였습니다. 20여 년 후 세계화의 파열음이 프리드먼의 나라인 미국의 중산층에서 시작됐다는 점은 아이러니입니다. 2012년 초 미국의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가 제조업에 대한 보고서를 내놓습니다. “10여 년간 600만 개가 넘는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졌다. ‘메이드 인 USA’는 자취를 감췄다. 제조업 고용 감소는 중산층의 붕괴를 불러왔다. 제조업 르네상스 추진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미국의 제조업과 중산층 붕괴는 예상하지 못한 결과로 이어집니다. ‘위대한 탈출’의 저자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은 2016년 한 콘퍼런스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최근 15년간 특정 계층의 사망률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사망 원인은 스트레스와 심각한 약물 중독 등이다.” 과거 우범지대 흑인을 묘사할 때 등장한 단어들이었습니다. 이 비극의 주인공들은 일자리를 잃은 45~54세 백인 중년층이었습니다. 디턴은 이어 의미심장한 말을 남깁니다. “사망률이 높게 나타난 백인 남성들이 주로 도널드 트럼프 대선 후보 지지층과 겹친다.” 일자리를 해외에 빼앗긴 백인 저소득층 남성들은 그해 11월 트럼프를 대통령 자리에 올려놓습니다. 트럼프는 세계화의 가치를 부인하고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을 추진합니

    2023.05.15 07:39:10

    “이념이 밥 먹여 주지는 않는다”고 외치는 T25 [EDITOR's LETTER]
  • 한국의 성공 전략, 실용주의의 실종 [EDITOR's LETTER]

    [EDITOR's LETTER] 유튜버들이 전자 제품을 언박싱하는 동영상을 간혹 봅니다. ‘언젠가 누군가의 눈을 피해 사고 말리라’는 생각을 하며 한국 유튜버들이 박스를 뜯고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은 깨알같이 써 있는 매뉴얼을 휙 던져 버리는 겁니다. “너 따위는 없어도 내가 알아서 해”라고 말하는 것처럼….유튜버만 그럴까요. 한국인들은 일반적으로 매뉴얼을 잘 보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글자가 아니라 경험입니다. 한국의 모든 서비스가 빠르기로 유명한 것도 매뉴얼보다 지금 상황을 해결하는 데 집중한 결과일 것입니다. 매뉴얼 사회인 일본과 다른 점입니다. 동일본 대지진 때 일본에서는 구호 물품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유를 살펴보니 매뉴얼에 없는 상황이 발생하자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한국 같았으면 비대위를 결성해 스스로 해결하지 않았을까요. 이런 한국인의 특성을 ‘실용주의’라고 부르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실용주의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조선은 왕조가 500년을 갔다. 하지만 지금은 문화 유적 외에는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겪으며 새로운 한국인이 형성됐고 이들은 시대에 따라 적절하게 대상을 바꿔 가며 좋은 것을 선택하는 실용주의 노선을 전략으로 택했다는 얘기입니다. 흔적은 곳곳에 있습니다. 새마을 운동에 전 국민이 나선 것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배고픔 속에도 자식들 교육에 모든 것을 바친 것은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한 전략이었습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의 대기업은 선진국 기업들을 가장 빨리 따라갈 수 있는 온갖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배를 사와

    2023.05.06 06:00:01

    한국의 성공 전략, 실용주의의 실종 [EDITOR's LETTER]
  • 조선의 걸 크러시와 K-컬처의 여전사들 [EDITOR's LETTER]

    [EDITOR's LETTER] 블랙핑크를 좋아합니다. 솔직히 노래는 잘 모릅니다. 엄청난 고독과 정신적 압박을 이겨 내고 세계 무대를 휘젓는 모습이 좋습니다. 얼마 전 세계적 음악 행사인 코첼라에서 헤드라이너(메인 공연자)로 무대에 올라 당대 최고의 뮤지션이라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공연도 멋졌습니다. 전사 같았습니다. 무대 구성·노래·퍼포먼스에 대한 해외 언론의 호평이 쏟아졌습니다. 기와지붕과 부채 등을 활용해 한국적인 것을 표현한 것도 기특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어떤 평론가는 “코첼라 무대에 섰다는 것 외에는 남긴 것이 없다”고 혹평했습니다. 평론가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말해야 하나 싶었습니다.이런 지적을 피하고 싶어서일까요. 해외에서 이름을 알린 뒤 한국에 들어오는 전략을 택하는 K팝 가수들이 많다고 합니다. 물론 시장성이 더 큰 이유겠지요. 해외에서 먼저 유명해지고 한국에서 이름을 얻은 사람이 조선시대에도 있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오래전으로 한 번 가 볼까요.조선의 천재 시인 허난설헌은 어릴 때부터 필력이 뛰어났습니다. 많은 시를 썼지요. 스승은 서얼 출신이었습니다. 행복했던 유년 시절은 열다섯 살에 끝납니다. 원하지 않던 정략 결혼, 시집살이는 외롭고 고됐습니다. 그는 시에 여성·서자·서민들이 느끼는 애환을 담았습니다. 시대적 모순들이었습니다. 이 천재는 스물일곱에 짧은 생을 마감합니다. 동생 허균은 그가 남긴 시를 묶어 ‘난설헌집’을 냅니다. 중국 사신이 이를 가져간 후 중국에서는 대유행이 됩니다. 중국인들은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그의 시는 하늘에서 떨어진 꽃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됐다(‘열조시집’).”“당

    2023.04.29 06:00:05

    조선의 걸 크러시와 K-컬처의 여전사들 [EDITOR's LETTER]
  • 세계 최초의 자율 주행차를 누가 죽였나…한국 금융산업을 옥죄고 있는 그 무엇[EDITOR's LETTER]

    [EDITOR's LETTER]‘뜻밖의 발견’이란 표현을 좋아합니다. 과거 역사적 사건이라면 무지함에서 벗어나는 기쁨을 주기 때문입니다. 물론 때때로 먹먹해지는 안타까움이 밀려올 때도 있지만….세종대왕이 출산 휴가를 도입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여자 관노비가 애를 낳고 일하는 것을 가엽게 여겨 출산 휴가를 줬습니다. 이어 산모가 혼자 산후 조리하는 게 어려울 것이라며 남편인 남자 노비도 휴가를 가라고 했답니다. 600년 전 ‘남성 출산 휴가…’라니…. ‘역시’란 생각에 저절로 얼굴에 미소가 돌았습니다.‘때이른 전성기’로 불리는 세종과 세조 때 또 다른 세계 최초의 발명품이 나옵니다. 겨울에도 식물을 재배할 수 있는 인공 온실입니다. 원래 세계 최초는 1619년 독일 하이델베르크 온실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1990년 말 한 고서 수집가가 발견한 책 한 권이 역사를 다시 쓰게 했습니다. 폐지 더미 속에서 나온 책은 ‘산가요록(山家要錄)’이었습니다. ‘산에 사는 백성들에게 필요한 기록’이라는 뜻입니다. 책에는 벽돌과 구들 한지를 활용한 온실 건축법이 기록돼 있었습니다. 이 책은 세종과 세조 때 어의였던 전순의가 1450년 저술해 구전으로만 전해지다가 발견된 것이지요. 독일보다 170년가량 앞서 있었습니다.현대로 넘어와 볼까요. 1993년의 일입니다. 운전자 없는 지프차 한 대가 고려대를 출발해 청계 고가차도~남산1호터널~한남대교를 거쳐 여의도 63빌딩까지 주행하는 데 성공합니다. 2년 후 경부고속도로를 시속 100km로 무인 주행도 해냈습니다. 세계 최초의 자율 주행이었습니다. 규제가 없던 시절이었기에 가능한 실험이었습니다. 개발 주역은 한민홍 고려대 교수였습니다.

    2023.04.22 06:00:30

    세계 최초의 자율 주행차를 누가 죽였나…한국 금융산업을 옥죄고 있는 그 무엇[EDITOR's LETTER]
  •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EDITOR's LETTER]

    [EDITOR's LETTER] 많이 보던 문제를 다시 한 번 풀면서 시작하겠습니다. 탁구 라켓과 탁구공의 가격을 합치면 1만1000원이고 라켓이 공보다 1만원 비싸다면 탁구공의 가격은 얼마일까요. ‘궁금하면 500원’입니다.오래전 처음 이 문제를 보고 대번에 “1000원이네” 했습니다. 휴리스틱, 어림짐작의 오류 때문이지요. 뇌가 게을러 생기는 현상이라고도 하고 인지 소모를 최소화하려는 위한 뇌의 구두쇠 전략에 따른 것이라고도 합니다.휴리스틱과 함께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인지적 오류의 대표적 사례는 확증 편향입니다.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지요. 한 실험에서 과학적으로 밝혀졌습니다. 선거 때 지지하는 후보의 연설을 들을 때는 뇌의 다양한 부분 가운데 정보를 감성적으로 처리하는 영역이 활성화됩니다. 반면 지지하지 않는 후보의 연설을 들을 때는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영역이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의역하면 지지 후보 연설 때는 가슴 뜨겁게 심장으로 듣고 반대하는 후보의 말은 의심하며 하나하나 따져보는 차가운 뇌로 듣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짜 뉴스에 속고 제대로 된 정보를 알려주면 “팩트 날조다”라고 주장하게 되는 심리적 기제입니다.이 확증 편향은 필터 버블과 에코챔버 효과에 의해 강화됩니다. ‘생각 조종자들’이란 책에 등장한 용어를 10여 년후 다시 불러왔습니다. 필터 버블은 알고리즘이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필터링된 정보만 이용자에게 전달하는 것을 말합니다. 요즘은 스스로 필터 버블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 더 많아졌습니다. 의견이 다르면 ‘페친’을 끊어버리고 

    2023.04.15 09:09:24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EDITOR's LETTER]
  • [EDITOR's LETTER] 챗GPT 시대, 인공지능은 당신의 질문을 평가한다!

     오래전 들은 한 친구의 경험담입니다. 충청남도 어딘가에서 식당에 들렀답니다. 식당 가면 하는 의례적인 질문을 던졌겠지요. "사장님 뭐가 맛있어요?" 보통 김치찌개는 어떻고 제육볶음은 어떻고 해야 하는데 이 식당 주인은 달랐습니다. "집 나와서 먹으면 다 거기서 거기쥬. 아무거나 드세유"라고 답했답니다. 시장에서 물건 값을 깎아 달라고 하면 "에유 냅둬유. 개나 주게"라고 한다는 것과 비슷한 얘기지요. 오늘의 주제는 ‘질문’입니다. 문득 떠오르는 에피소드라 가져와 봤습니다. 질문, 어렵지요. '본질을 묻는다'는 게 질문의 뜻인데 쉽겠습니까.과거 중소기업을 취재할 때 일입니다. 한 사장님을 만났습니다. "노동자로 시작해 매출 수백억원대 회사를 일군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세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일만 했어요“라고 하고 웃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고 했더니 ”토요일에도 일하고 일요일에도 일만 생각했어요"라고 답했습니다.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기사를 어떻게 쓰라구요….'사업 전환에 성공한 다른 사장님에게도 "비결이 뭡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약간 달랐습니다. "척 보면 알아요." 질문을 돌려서 해도 "한 번 보면 알 수 있어요", "우리는 대번에 알아요"라는 말만 반복했습니다.잘못된 질문이었고, 솔직한 답이었습니다. 경영학자들은 일만 생각한다는 것을 '몰입'이라고 부르고 척 보면 안다는 것은 '직관'이라고 부릅니다. 솔직하게 핵심을 표현한 답이었습니다.이후 질문을 바꿨습니다. 한 회장님과 인터뷰. 그는 응급실에 누워 있다가 왔다고

    2023.04.01 06:00:09

    [EDITOR's LETTER] 챗GPT 시대, 인공지능은 당신의 질문을 평가한다!
  • [EDITOR's LETTER] 힙합같은 삶을 살다간 미국의 설계자…전략가를 기다리며

    [EDITOR's LETTER] “매춘부와 스코틀랜드인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 그리고 고아. 카리브 제도의 이름 모를 섬에서 가난하게 살던 놈이 어떻게 영웅에 학자까지 된 거지?”뮤지컬 ‘알렉산더 해밀턴’은 이 질문으로 시작됩니다. 미국 초대 재무장관의 일대기를 그린 뮤지컬은 2015년 최초로 무대에 올려졌지요. 지금은 브로드웨이 역사상 최고의 뮤지컬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디즈니플러스에도 올라왔지요.이 뮤지컬은 기존에 없던 형식을 택했습니다. 랩 중심의 뮤지컬. 힙합과 재무장관이라…. 좀 웃기지 않습니까. 미국 사람들도 처음엔 웃었다네요. 뮤지컬을 기획하고 작사 작곡에 출연까지 한 사람은 린마뉴엘 미란다입니다. 2009년 어느 날 백악관. 버락 오마바 전 대통령 부부는 시와 음악을 통한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행사를 열었습니다. 미란다도 초대받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힙합 앨범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 사람의 삶이 힙합 그 자체인 알렉산더 해밀턴의 이야기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오바마 부부를 비롯해 참석자들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는 말을 이어 갔습니다. “지금 웃으셨지요? 진짜란 말입니다.”힙합. 1970년대 폐허로 변해 가던 뉴욕 브롱스 빈민가에서 탄생한 흑인과 히스패닉들의 음악, 자신의 삶과 생각을 비트에 담아 날리며 현실을 버텨 내는 소외된 자들의 무기…. 의지할 곳 하나 없던 해밀턴의 삶이 힙합 정신과 닿아 있다고 미란다는 생각했습니다.지금 한국의 힙합그룹 호미들의 ‘사이렌’이란 곡을 들으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엄마 내가 돈 못 벌면 파 호적, 차라리 죽는

    2023.03.25 08:16:30

    [EDITOR's LETTER] 힙합같은 삶을 살다간 미국의 설계자…전략가를 기다리며
  • [EDITOR's LETTER] 한국인들의 은행에 대한 코드는?

    [EDITOR's LETTER] 오늘은 방탄소년단(BTS) 리더 RM의 얘기로 글을 시작합니다. 얼마 전 RM은 스페인 매체와 인터뷰했습니다. 질문자는 비꼬듯이 “K팝의 젊음과 완벽에 대한 숭배 그리고 지나친 노력은 한국의 문화적 특징이냐”고 물었습니다. RM은 담담하게 답했습니다.“서양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한국은 침략 당하고 황폐화되고 두 동강 난 나라다. 70년 전만 해도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 세계가 주목한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사람들이 발전하려고 미친듯이 노력했기 때문이다. 프랑스나 영국처럼 수세기 동안 타국을 식민 지배했던 나라의 사람들이 이제 와서 하는 말이 ‘한국에서의 삶은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요. 자신을 너무 몰아세우는 것 같아요’라니 해내려면 그것들이 필요하다. 그게 K팝을 매력적이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K팝 등에 붙는 K라는 수식어가 지겹지 않냐는 질문에 “그 효과는 확실하다. 그건 프리미엄 라벨이다. 우리보다 앞서 가신 분들이 쟁취해 낸 품질을 보장하는 라벨이다”라고 했습니다. 멋지지 않습니까.K를 말한 김에 화제인 드라마 ‘더 글로리’도 언급해야 할 듯 하네요. 전 세계 넷플릭스 구독자들이 이 드라마가 업로드되기를 기다렸고 올라가자마자 TV 프로그램 부문 세계 1위에 올랐습니다. 마치 애플 제품 출시를 기다리듯 세계인들은 K-드라마 업로드를 기다렸습니다. 넷플릭스 서비스가 안 되는 중국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중국답게 온갖 수단을 동원해 시청한 후 인터넷 게시판을 도배하다시피 했습니다. RM의 말대로 K가 들어가는 것은 문화와 산업에서 품질을 보장하는 라벨에 다다른 게 분

    2023.03.18 06:00:10

    [EDITOR's LETTER] 한국인들의 은행에 대한 코드는?
  • [EDITOR's LETTER] 도전자 모습 되찾은 삼성전자..평택 반도체 공장이 짊어진 숙제들

    [EDITOR's LETTER] 15세기 명나라 전성기 때 중국은 세계 경제의 절반을 차지했습니다. 명나라 황제 영락제는 보물 선단을 건조해 세계 각국에 파견, 대규모 상거래를 했습니다. 이 선단을 이끈 사람이 중국의 탐험가 정화입니다. ‘정화의 대항해’란 말을 들어봤을 겁니다. 영락제는 “짐은 중원을, 정화 너는 바다를 다스린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명나라는 상거래를 통해 부유해졌고 조공을 하는 조선에도 받은 것 이상 내줬습니다. 하지만 영락제와 정화가 사망한 후 중국은 항해를 중단합니다. 그리고 서서히 저물어 갑니다.국력이 약해졌지만 1800년 중국은 세계 경제의 3분의 1을 담당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100년 후 그 비율은 10분의 1로 낮아지고 존재감 없는 국가로 전락합니다. 19세기 먹고살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중국인들은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비참한 생활을 합니다. 미드 ‘워리어’에는 당시 중국인들의 삶이 리얼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같은 19세기 영국은 빅토리아 시대였습니다. 경제사가들은 1862년을 중요한 기점으로 봅니다. 그해 주식회사를 태동시킨 회사법이 제정됐기 때문입니다. 이를 근거로 설립된 유럽의 기업들은 빠른 속도로 세계화 시대를 열었습니다. 물론 식민지 약탈이라는 제국주의적 방식이 동원됐지만….이후 기업은 사람·도시·시대의 형태를 이끌어 왔습니다. 강한 기업이 있는 도시는 번성하고 그 나라는 강국이 됐습니다. 기업이 보잘것없는 나라는 반대였습니다.최근 20년간 중국이 세계 무대에서 다시 그 힘을 보인 것도 기업의 수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세계 100대 정

    2023.03.11 06:00:01

    [EDITOR's LETTER] 도전자 모습 되찾은 삼성전자..평택 반도체 공장이 짊어진 숙제들
  • [EDITOR's LETTER] 인플레이션의 공습…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

    [EDITOR's LETTER]일주일에 한 번쯤 몸무게를 달기 위해 저울에 올라갑니다. 그 결과를 확인할 때마다 헉 하는 소리가 절로 납니다. 오늘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구나. 올라야 할 주가는 안 오르고 몸무게만….  겨울을 지내며 잠시 정신줄을 놓은 사이 위장이 늘어난 결과입니다. 위장은 계속 뭘 넣어 달라고 데모하는 듯합니다. 위장이 원하는 것을 해결해 주려다 둘째 서프라이즈한 숫자를 발견했습니다. 물가입니다.물가는 몸무게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앞자리가 달라지면 큰 충격이 온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태어나 처음 보는 앞자리라면 더더욱…. 대표적인 게 빅맥과 소주입니다. 브레이크 없이 앞자리가 바뀐 품목들을 잠깐 살펴 볼까요. 빅맥(5200원)과 소주(5000원)에는 5자가 찍혔습니다. 곧 소주에는 6자가 찍힐 듯 합니다. 이미 강남 어디에서는 1만원이 등장했다고 하니 이게 소주가 맞나 싶습니다.비빔밥(1만원)에는 1자가 보이기 시작했고 자장면(7000원)은 7, 카페라테(5800원)는 6에 근접하고 있습니다. 편의점에도 생소한 숫자들이 널려 있습니다. 코카콜라 캔 2000원, 삼다수 1100원, 담배 4800원, 바나나 우유 1700원 등입니다. 이건 양호합니다. 가스요금은 느낌에 딱 두 배쯤 오른 것 같습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가스요금 하소연이 그치지 않습니다. 하루를 버텨내고 친구들과 한잔하고 지친 몸을 택시에 맡기는 것도 부담스럽습니다. 기본 요금은 오르고 기준 거리는 짧아지고 야간 할증률은 높아져 체감은 두 배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정부가 공공 요금 인상을 하반기로 미룬다고 하지만 서너 달 후에는 또 오를 예정입니다. 메가인플레이션이란 표현이 어

    2023.02.25 06:00:24

    [EDITOR's LETTER] 인플레이션의 공습…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
  • [EDITOR's LETTER] 천 개의 얼굴을 가진 인도로 눈을 돌려야 하는 이유

    [EDITOR's LETTER]그 나라에 가면 웬만해선 거스름 돈을 제대로 받을 수 없습니다. 한 푼도 안 주거나 달라고 해도 덜 주기 일쑤입니다. 길거리는 노상방뇨로 더럽기 그지 없습니다. 물도 안심하고 먹을 수 없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공기업 여러 곳이 할 사업을 한 개 기업이 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정경유착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입니다. 빈부 격차는 엄청납니다. 일부 계급은 공공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가 있는 이상한 나라.인도에 대해 들었던 얘기들입니다. 인도가 아니었다면 “딱 망할 각이네”란 말이 그냥 나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도입니다. 이런 인도가 작년부터 국제 무대에서 요상한 기운을 내뿜기 시작합니다. 인도계 이민자 2세가 식민지배를 했던 영국의 총리가 된 것이 가장 큰 사건이었지요. 그러자 미국 기업에 있는 인도계 최고경영자(CEO)들도 조명을 받습니다. 구글·마이크로소프트·트위터·어도비 등에 인도계 천재들이 CEO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대목은 이해가 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인도는 아라비아 숫자의 체계를 만들고 0을 숫자로 처음 사용한 나라입니다. 정보기술(IT) 인재들이 많이 나오는 것은 이런 DNA가 몸에 흐르기 때문 아닐까 합니다.작년에는 영국을 한 방 먹인 기록까지 더해집니다. 경제 규모(GDP)가 영국을 제치고 세계 5위로 올라선 겁니다. 지금도 인도는 영국을 원망합니다. 왜 그렇게 가난하느냐는 질문에 “식민 통치를 하며 영국이 약탈해 간 자원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는 게 인도 외교부 장관의 답변일 정도입니다. 그런 나라가 경제 규모에서 영국을 제친 이벤트가 벌어진 것입니다.2023년 인도에 대한 관심은 더

    2023.02.18 07:01:09

    [EDITOR's LETTER] 천 개의 얼굴을 가진 인도로 눈을 돌려야 하는 이유